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95화 (95/167)

<-- 95화 : 1차 침공-01 -->

“응?”

시간이 지났는데도 공간은 열리지 않았다.

원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시간이 되면 눈앞에 공간이 열리고 그 안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면서 필드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공간이 열리지 않다 보니 필드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

동하는 이상한 생각에 스마트폰의 베타테스트 어플을 확인했다. 카운트다운 메시지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뭐, 뭐지?”

혹시 자신의 계정이 차단당한 것인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동하는 일전에 만물상점에 들어갔다가 무림 종족의 아이디가 발각되어서 정상적인 인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차원이동으로 빠져 나오지 않던가?

한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필드에 가지 못한 건 남궁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도 공간이 열리지 않았고, 끝내 필드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남궁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공자님,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요.”

남궁혜는 정상적으로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계정이 차단당할 리 없었다.

그렇다고 동하와 남궁혜의 관계를 샤이언 종족이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혹시?”

무림 종족 전체가 차단당하기라도 한 걸까?

동하의 머릿속에는 온갖 잡념이 떠올랐다.

사실 동하가 위험을 무릅쓰고 필드에 가려는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었다.

결정체.

인류가 능력을 각성하기 위해서는 결정체가 필요하다.

괴수들이 지구를 침공하기까지는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동하는 그전에 최대한 많은 동료들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드에서 괴수를 사냥하고 결정체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었다.

“설마 놈들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동하는 왠지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 같아서 초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하의 스마트폰과 남궁혜의 손목에 심어진 칩에서 동시에 울림이 전해졌다.

우우웅!

-울트라 베타테스트의 1차 1기의 모집이 완료되었습니다. 14일 후에 2차 모집이 시작됩니다.

어느새 이름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그냥 베타테스트였는데, 지금은 울트라 베타테스트였다.

“14일 후라고?”

동하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플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14란 숫자가 나타났다.

“공자님, 우리들의 계정이 차단당한 건 아닌 것 같아요.”

“휴우, 그런 것 같군요.”

동하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대로 필드에 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예전에는 테스터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면 지금은 기수를 나누고 정해진 인원만 필드 테스트를 하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예전보다 꼼꼼하고 깐깐하게 느껴졌다.

‘나 때문인가?’

그런 인상이 깊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그날 동하가 만물상점을 무사히 빠져나간 방법에 샤이언 종족 내에서도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동하가 포기할 리 없었다.

아무리 경계가 삼엄하고 시스템이 견고해도 동하는 필드에 가서 괴수들을 사냥하고 결정체를 가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동하의 착각이었다.

시스템은 그리 단순한 이유로 바뀐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동하가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인류에ㅔ 엄청난 혼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동하가 현실로 돌아온 것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동하는 1시간 동안 남궁혜와 이런저런 대책을 논의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 외에는 딱히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남궁혜가 무림 종족 내에서 1기 테스터에 뽑힌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만물상점에 접속해서 정보를 끌어 모을 계획이었다.

아마 다른 테스터들도 지금쯤이면 멘붕에 빠져서 정보를 알아보려고 만물상점에 접속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동하는 당분간 만물상점에 접속할 수 없었다.

정보를 알아내는 일에 있어서는 동하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 남궁혜가 예전부터 신기할 정도로 정보를 가져오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동하는 모든 것을 남궁혜에게 맡기는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나마 이건 위험부담이 별로 크지 않아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동하는 내일 다시 남궁세가에 오는 것으로 하고 헤어졌다.

“그나저나 갑자기 시간이 많이 생겼네.”

동하는 처음엔 수정을 일찍 만날까 싶었지만, 미현이 생각났다. 미현을 집에 데려다 주고 수정을 만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미현과 친구들을 지금까지 안내해준 유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도 예의였다.

동하는 유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그녀들은 뮤지컬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인근에 있는 피자 가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잘 됐네요. 나도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정말요?

유경의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그녀는 은근히 동하가 오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동하 씨 나도 있어요.

“혜주 씨?”

-오빠, 빨리 와.

옆에서 혜주와 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다. 20분쯤 후에 도착할 거야.”

동하는 전화를 끊고 람보르기니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하는 순간이었다.

동쪽 하늘에 노을이 진 것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괴이한 현상에 동하는 차에서 내려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노을이 질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7시 정도는 되어야 노을이 지고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데, 하물며 동쪽 하늘에 노을이 생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길을 지나가다 말고 괴이한 현상에 넋을 잃고 동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성이 떨어지려고 저러는 걸까?”

“에이, 유성이 쏟아진다고 하늘이 저렇게 변해?”

“그게 아니면 혹시 오로라 현상?”

“오로라 현상은 주로 북극에서나 나타나는 거지. 그리고 저건 오로라 현상도 아니야. 보면 완전히 틀리잖아.”

설왕설래.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 하나 명쾌하게 해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이상 징후에 두렵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멋있는 광경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으음.”

동하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했다.

괴수들이 지구에 나타날 때마다 이상 징후가 하나씩 생겨났다. 1차 침공 때에는 백주대낮에 천둥번개가 쳤었고, 2차 침공 때에는 태양이 사라지고 사방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설마……?”

괴수들이 지구에 침공하려면 아직 시기상으로 5년이나 남아 있었다.

설령 시간이 단축된다 해도 이건 너무 빠르다.

그래도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울트라 베타테스트가 진행된 지도 1시간이 넘었고, 그건 만물상점의 시간으로 치면 이틀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액션이 취해져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동쪽 하늘.

지리적인 위치만 놓고 보면 서울이 있는 곳이었다.

동하는 유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머리에는 플로피햇을 쓰고 얼굴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수정은 철저히 얼굴을 가린 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대학 동기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수정은 뒤늦게 연락을 받고 서둘러 레스토랑에 왔지만 그때는 한창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한수정?”

“다들 잘 지냈지?”

수정이 자리에 앉으며 모자를 벗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친구들이 음식을 먹다 말고 황당한 표정으로 수정을 쳐다보았다.

“부끄럽게 그게 뭐야?”

“우린 연예인이 다가오는 줄 알았다.”

“에효, 어쩔 수 없어. 요즘 얼굴을 가리지 않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사인해 달라고 극성을 부려서.”

그건 그랬다.

M뱅크가 화제가 될수록 수정의 존재가 부각이 되고 있었다.

예전보다 팬클럽의 규모도 훨씬 커졌고, 어딜 가든 밀려드는 사인요청에 수정은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제는 사람들 시선 때문에 변장을 하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

“5분 정도? 방금 막 음식이 나왔어.”

식탁에는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와인도 주문해서 한잔씩 마시고 있었다.

“수정아, 너도 주문해야지.”

“아냐. 별로 배가 안 고파서 그냥 샐러드만 조금 먹을게.”

수정은 날씬한 편인데도 요즘 부쩍 체중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동하가 워낙 키가 큰데다 슬림한 편이라 음식을 조금만 많이 먹어도 왠지 동하와 비교가 되는 것 같았다.

“근데, 한수정. 지금 보니까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어라, 진짜네? 명색이 본부장인데 너무 대학생 스타일로 입고 다니는 거 아냐?”

“이상해? 어려 보이지는 않고?”

“얼레? 전에는 나이가 어려보이면 부하직원들에게 얕잡아 보인다고 정장만 입고 다녔잖아?”

“머리 스타일도 커리어 우먼처럼 보여야 한다며 단발머리만 고수하더니 지금은 여대생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네.”

“내, 내가 그랬나?”

“흐음. 뭔가 수상한 냄새가 느껴져.”

“너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지?”

“그런가? 그렇다면 요즘 하는 일이 잘 되니까 그런 거겠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친구들이 수상한 얼굴로 수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들의 육감은 놀라울 만큼 무서운 법이다. 친구들은 수정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열기를 감지했다.

“사실대로 말해봐. 수정이 너, 남자친구 생겼지?”

“어, 어떻게 알았어?”

“네 얼굴에 딱 쓰여 있는데 뭘.”

“어떤 남자인데?”

“헤헤.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야.”

“우와. 정말 있긴 있구나?”

“그냥 뭐…… 아직은 알아가는 단계야.”

수정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이는 몇 살이고 무얼 하는 사람이며 어떻게 만났는지. 여기저기서 질문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냥 학생이야.”

“오오! 그럼 대학원생? 그래서 스타일이 대학생처럼 바뀌었구나?”

“아니, 대학교 2학년생이야.”

풉!

친구들이 와인을 마시다 그만 뿜고 말았다.

그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어렸던 것이다.

“학교를 몇 년 휴학했나?”

“이제 2학년생인데 몇 년 휴학으로 되겠어?”

“하긴.”

“그럼 편입생인가?”

“에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편입을 했으면 3학년으로 들어가야지 2학년으로 가는 건 아니지 않아?”

“그것도 그렇겠네.”

“ROTC로 군대를 갔다 왔으면 대충 맞을 거 같은데?”

“아. 그러면 가능하겠다.”

친구들은 무조건 동하와 수정의 나이가 최소한 동갑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대학교 2학년이라는 말에 이리저리 꿰맞추었지만,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수정은 이래서 가급적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이쯤 되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숨기고 싶지 않았다.

“흠흠. 동하 씨는 아직 미필이야.”

“구, 군대를 안 갔다고?”

“미필이면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이라는 건데?”

“21살.”

“풉!”

친구들이 다시 한 번 와인을 마시다 말고 뿜고 말았다.

이제는 두 눈이 그렇게 커질 수 없을 만큼 튀어 나왔다.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

“21살이라면 도대체 우리와 몇 살 차이가 나는 거야?”

“야, 너희들. 여기서 나이 차이가 왜 나와?”

수정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그녀의 눈빛이 살쾡이처럼 무섭게 변해 있어서 친구들은 흠칫 놀라야 했다.

어딜 가나 그놈의 나이가 문제였다.

☆ ☆ ☆

“저쪽을 봐봐? 하늘이 이상해.”

“어? 진짜 그렇네. 노을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태양은 반대쪽에 있지?”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노을이 동쪽 하늘에 생기는 경우도 있나?”

서울의 하늘은 인천보다 노을의 색깔이 더 진했다. 그리고 그건 동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색깔이 진해졌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동차들도 멈춰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경과 혜주 그리고 미현과 그녀의 친구들도 피자 가게로 가는 도중에 동쪽 하늘에 생긴 이상 현상에 발걸음을 멈춰 선 채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유경아, 저게 무슨 현상인지 알아?”

“글쎄. 나도 처음 보는 거라서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유경은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해가 서쪽에서 뜬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경은 종말론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 저 현상은 지구에 무슨 심각한 이상이 생겨서 나타난 징후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때였다.

“어어? 저길 봐?”

어떤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헉? 저, 저게 뭐야?”

사람들의 입에서 헛바람이 튀어 나왔다.

그리 멀지 않은 하늘 위 허공에 공간이 열리더니 그 속에서 갑자기 3미터 크기의 괴수가 튀어나왔다. 온몸이 녹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있어서 얼핏 보면 사마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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