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94화 (94/167)

<-- 94화 : 입찰경쟁-04 -->

동하를 영입하려는 경쟁은 뜨거웠다.

가장 먼저 불을 지핀 것은 서용훈 사장이었고, 그 다음에 뛰어든 쪽은 다온텔레콤이었다. 새경텔레콤이 가장 늦었지만, 사실 새경텔레콤은 딱히 동하와의 접점이 없어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여기에 미셜 화장품까지 있어서 동하를 차지하기 위한 전무후무한 영입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건 영입 경쟁이라 할 수 없었다.

영입이라 하면 능력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인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동하는 어느 한곳에 소속되어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동하는 사업을 같이할 업체를 자신이 선정하는 것이지, 누가 자신을 데려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통신이면 통신회사, 화장품이면 화장품업체, 사체를 이용한 무기면 무기사업.

각기 특정한 분야를 어느 한곳과 독점을 맺고 사업을 진행하고 싶은 게 솔직한 동하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는 입찰에 가까웠다.

영입과 입찰은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동하의 생각은 일개 개인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광오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하나 그런 황당한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원래 동하는 통신 분야는 다온텔레콤과, 그리고 무기 사업은 대한그룹, 마지막으로 화장품은 미셜 화장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진행해 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한전자의 서용훈 사장이 여기에 제동을 걸려고 했고, 새경텔레콤이 가세하려 했다.

본격적인 입찰 경쟁의 막이 오른 셈이었다.

하지만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한 서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기존에 사업을 해오던 수정과 다온텔레콤 입장에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동하 씨, 오늘 시간 되세요?

“이걸 어쩌죠?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어려울 것 같아요.

-피이, 동하 씨 너무한다. 나 같은 미녀가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하는데도 너무 비싸게 구는 거 아니에요?

수정의 목소리에서 살짝 서운한 기운이 묻어 나왔다.

동하와 통화를 하는 것도 며칠만의 일인데다 동하의 얼굴을 본 것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이렇게 오랜만에 통화하는 것이라면 좀 더 반가워 할 줄 알았는데, 동하의 목소리가 너무 사무적으로 들렸다. 그러니 동하가 계속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미안해요. 그런 뜻은 아닌데…….”

동하는 뒤늦게 사과를 했다.

그러고 보니 수정에게 다음 아이디어를 말해준다고 하고서는 계속 차일피일 미루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밤늦게라도 잠깐 볼까요?”

“쳇, 엎드려 절 받기네.”

“늦으면 12시쯤 될 것 같은데, 수정 씨 집 앞으로 갈게요.”

“그러던가 말든가.”

수정이 전화를 툭 끊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피어올랐다.

“앗싸.”

너무 기쁜 나머지 수정은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으로 동하가 먼저 만나자고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런 날은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이어리에 메모까지 하는 정성을 잊지 않았다.

하나 정작 자신이 왜 동하에게 전화를 했는지 까맣게 잊은 수정이었다.

‘아차. 아빠가 다음 아이디어 때문에 동하 씨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한다는 걸 그만 깜빡하고 말았네.’

이제 수정은 다온그룹 차원에서 직접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움직여야 동하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조건은 동하가 부르는 만큼 줄 용의도 있었다.

M뱅크로 다온그룹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했으니 그야말로 동하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본부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예?”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셔서 말입니다.”

끙!

‘내가 못 살아.’

수정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동하가 만자고 했던 게 어찌나 좋았던지 자신이 사무실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다, 다들 잡담 그만 하고 일들 하세요.”

수정이 근엄한 표정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지만, 직원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 웃어댔다. 수정의 얼굴은 이제 목덜미까지 빨개졌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동하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고 있었다.

☆ ☆ ☆

친구들이 다들 부러운 시선으로 미현을 쳐다보았다.

오빠의 백으로 미술관을 공짜로 구경할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관상이니 싸움이니 하는 말이 나올 때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하나 정작 미현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에효.’

친구들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하긴,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이니 친구들이 오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현은 친구들의 말을 계속 듣고 있으려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왠지 친구들을 기만하는 것 같았다.

“우리 오빠 아니야.”

“응? 너희 오빠 이름 동하잖아?”

“그렇긴 한데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야.”

“동명이인?”

“우리 오빠는 관상에 대해 몰라. 그리고 싸움은 그리 잘하지도 못하고 화장품? 풋! 그런 건 근처에도 가본 적 없어.”

말을 하다 말고 미현이 실소를 터뜨렸다.

이름은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었다.

유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현의 표정을 보면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빠에 대해 저렇게 모를 수가 있나 싶었다.

“유경아?”

그때, 혜주가 눈짓으로 미현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제야 유경이 생각이 난 듯 미현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네. 혜주야, 인사 해. 이쪽은 동하 씨 동생 미현이야.”

“동하 씨 동생이 왜……?”

혜주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미현을 쳐다보았다.

“동하 씨가 부탁을 했거든. 오늘 특활 시간이라고 해서 내가 미술관 견학을 시켜주고 있는 중이야.”

“야, 서유경.”

혜주가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동하 씨 동생이 있으면 있다고 처음부터 얘기를 했어야지.”

“나 참. 네가 그럴 틈이라도 줬니?”

그것도 그랬다.

아까 전화해서 어디 있는지만 묻고 바로 전화를 끊은 것도 혜주였고, 미술관에 들이닥쳐서 곧장 동하가 어쩌고 한 것도 혜주였다.

“히잉.”

혜주가 울상을 지었다.

이놈의 입이 망정이었다.

동하가 배신을 했느니 어쩌니 해도 지금 새경텔레콤을 나락에서 구해줄 사람은 동하 밖에 없었다. 동하에게 잘 보여도 시원치 않을 판인 것이다. 더구나 강승민 회장은 동하를 스카우트하고 싶어서 난리도 아니었다.

새경텔레콤 쪽에서 거액의 돈을 제시해도 동하가 마음을 돌릴까 말까한 상황에서 혜주가 입방정을 떨었으니 이러다 미운털이 박힐까 두려웠다.

“아, 안녕?”

“예, 언니. 안녕하세요.”

미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도 우리 오빠와 아는 사이세요?”

“그, 그렇지. 처음엔 유경이 때문에 알게 됐지만, 그래도 동하 씨와는 나름 친하다고 생각 하고 있어.”

“한데 언니는 새경텔레콤과는 무슨 관계세요?”

“으음……. 아빠가 회장님이니까 흔한 말로 새경텔레콤의 영애쯤 되겠네.”

“도대체 이건…….”

미현은 말문이 막혔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동하가 아는 여자들의 배경이 죄다 범상치가 않았다.

한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범상치 않은 가문의 여인들이 하나같이 동하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하가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고 있는 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인 미현이었다. 그건 미현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친구들도 상당히 놀랐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혜주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미현에게 말했다.

“저기 있잖아……. 방금 내가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면 안 될까?”

“예? 배신이 어쩌고 한 거 말인가요?”

“꺄악! 다 기억하고 있었어.”

혜주는 자신의 입을 쥐어뜯고 싶었다.

그녀는 완전 망했다는 생각에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풋!

미현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상황이 심각해서 참으려고 했지만, 혜주의 표정이 너무 우스웠다.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다, 얘. 동하 씨가 알면 새경텔레콤만 미운털 박힌단 말이야.”

“아, 알았어요. 오빠에게는 말하지 않을 게요.”

“진짜? 그래주면 평생 은인으로 생각할게.”

혜주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처음엔 농담이겠거니 생각했던 미연이 적잖이 당황할 정도였다.

도대체 동하가 무슨 짓을 했기에 새경텔레콤 같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저토록 긴장을 하는 걸까?

옆에 있던 미현의 친구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유경 언니. 혹시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우리 오빠는 관상에 ‘관’자도 몰라요.”

“서일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 최동하. 아니야?”

“맞아요. 우리 오빠에요.”

“그럼, 이상하네. 동하 씨는 사람 얼굴만 봐도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 사는 것까지도 정확히 알아맞혀.”

“맙소사.”

미현은 비명을 질렀다.

이제 보니 동명이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던가?

난생 처음 듣는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들을 줄이야.

그렇다는 건 싸움도 무림 고수처럼 엄청 잘한다는 뜻이 아닌가?

“언니는 오빠가 싸우는 것도 보셨나요?”

“당연히 봤지. 우리를 나쁜 사람들 손에서 구해주기도 했고. 손에서 장풍이 나간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 대단하더라.”

“마, 말도 안 돼. 오빠는 그 흔한 태권도 도장 한 번 간 적이 없어요.”

동하는 회귀하기 전에는 통통할 정도로 덩치가 있어서 운동신경이 그리 좋지 않았다. 당연히 평생 운동하고는 담을 쌓아왔던 동하였다.

“우와. 대박!”

유경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그건 혜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현이 동명이인으로 생각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현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동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는 듯하더니 이내 수화기 너머로 동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오빠.”

-미현이니?

“사실대로 말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사람 얼굴만 보고도 무엇이든 알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싸움도 무림 고수처럼 엄청 잘했어?”

-그거야 뭐,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오빠!”

미현이 빽 하고 소리쳤다.

“내가 그놈의 미국 타령 그만 하라고 했지? 상식적으로 미국 유학 한 번 갔다가 왔다고 사람이 그렇게 달라진다는 게 말이 돼?”

-미현아, 그건 나중에 하자. 지금 오빠가 누굴 좀 만나고 있어서…….

“오빠?”

하지만, 이미 통하는 끊어진 뒤였다.

“쳇, 두고 봐.”

미현의 눈빛이 살쾡이처럼 변했다.

이렇게 불친절한 오빠는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다.

이건 뭐 양파도 아니고……. 어떻게 된 게 까면 깔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이 쉴 새 없이 나오는데, 미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동안 개망나니로 살았대?’

☆ ☆ ☆

동하는 서용훈 사장을 만난 후 곧장 남궁세가로 차원이동을 했다.

그때가 대략 4시 정도였으니까 서용훈 사장과 3시간 정도를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눈 셈이었다.

서용훈 사장은 동하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그건 다름 아닌 동하의 아버지 성진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성진은 경제사범으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서용훈 사장이 특별사면을 추진해서 늦어도 내년 광복절 특사에 포함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확실히 솔깃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성진이 출소하려면 4년은 더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대한그룹은 정재계에 두루 인맥을 가지고 있지. 그들에게 부탁하면 광복절 특사에 들어갈 수 있을 걸세.”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서용훈 사장은 한남동에 있는 빌딩을 동하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하는 부담스러운 나머지 극구 사양을 했지만, 원래 그 빌딩은 미셜 화장품의 사무실로 쓰려고 작년에 구입했던 것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미셜 화장품이 대한전자 맞은편 건물에 들어와 있었다.

“어차피 우리들도 관리하기 힘들었네. 건물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입주해서 장사를 하고 있지. 혹시라도 대한그룹이 임대업을 한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이미지에 그리 좋을 것도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제가 그냥 빌딩을 사겠습니다.”

“허허, 사람 성의를 계속 무시하는 것도 그리 좋지 않네. 자네보고 대한전자와 계약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받게.”

서용훈 사장이 너무 완강하게 나오다 보니 동하도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다.

동하는 졸지에 10층짜리 빌딩의 주인이 되었다.

“자네 어머니께서 이모님과 함께 식당을 하지 않나?”

“예, 맞습니다.”

“그럼, 이곳으로 옮기는 건 어떤가? 유동 인구도 많고 주변에 지하철역도 있다 보니 잘될 것 같은데.”

아버지 성진에 이어 어머니 성혜까지.

서용훈 사장은 철저하게 준비한 티가 역력했다.

동하는 자신의 마음을 잡으려고 대한전자의 사장인 서용훈이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동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원래 통신 분야는 다온텔레콤과만 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자신 때문에 다온텔레콤이 뜨면 대한전자가 어려움에 처하다 보니 생긴 현상인데,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았다.

동하는 충분히 알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로 서용훈 사장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조금도 쉬지 못하고 넘어온 남궁세가였다.

남궁혜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다.

“공자님, 오늘 무척 피곤해 보여요.”

“끙. 말도 마십시오. 어찌나 바쁘던지…….”

동하는 피식 웃었다.

피곤하긴 해도 왠지 마음은 뿌듯했다. 그 모든 것이 다 자신을 잡기 위해 벌어진 일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혜 씨 옷과 침낭이 있습니다.”

“정말이요?”

“제 것을 사는 김에 혜 씨 것도 같이 샀어요. 한데, 옷은 사이즈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등산용품이다 보니 색깔이 화려하긴 했지만, 모두 동하가 사체의 액체로 강화한 것이어서 착용감이나 안전성 면에서는 무림 종족의 옷은 감히 따라올 수 없었다.

“고마워요, 공자님. 잘 입을게요.”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느새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3…2…1.”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시간이 정확히 00:00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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