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89화 (89/167)

<-- 89화 : 궁극의 비기-03 -->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동하는 만물상점의 모든 블록을 돌아다닌 끝에 골동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에서 곤륜노자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아이템을 찾아냈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줄 수 있다는 부채.

바로 음양조화선이었다.

만물상점에는 음양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아이템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동하가 음양조화선에 주목한 것은 설명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음양조화선. 태초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 비밀을 풀면 능히 천기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설마 이게 끝이야?”

동하는 다른 부연설명이 더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태초의 비밀이 무엇이고 음양조화선에 어떤 능력이 담겨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었다.

“20만 포인트!”

동하는 가격을 보는 순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싸도 너무 비싸다. 아직 음양조화선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20만 포인트를 주고 살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동하는 가능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포인트를 지불해서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이래서는 포인트를 벌다 끝날 것 같았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겠군.’

탐이 난다고 몰래 가지고 나갈 수는 없었다.

동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아이템을 복사할 생각이었다.

일반적인 물건들은 완벽하게 복사가 되었지만, 아이템은 어떻게 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물의 모양을 완벽하게 복사할 자신이 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능력까지 복사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템 복사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하는 음양조화선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머릿속에 담기 위해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과연 될까?’

동하는 건물과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인벤토리를 열고 A급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일전에 선은장에서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곤륜노자 등을 구할 때 얻었던 아이템이었다.

당시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 중에서 무림 종족의 능력을 가진 자가 있었다.

동하가 꺼낸 아이템은 바로 무림 종족의 능력을 가진 자의 것이었다.

이 아이템은 수정처럼 맑은 구슬처럼 생겼지만, 보기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운기행공을 할 때 손에 쥐고 있으면 정신을 맑게 해주고 공력을 급증시켜 주는 효과도 있어서 절세의 기보가 따로 없었다.

“하긴, 달리 A급 아이템이 아니지.”

동하도 최근에 운기행공을 할 때는 항상 구슬을 손에 쥐고 수련을 했다.

그래서인지 고작 한 달이 넘었을 뿐인데도 동하는 상당한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동하는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지 잠시 망설여졌다. 혹시 복사를 했다가 잘못되면 괜히 아까운 아이템 하나만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나 동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음양조화선을 복사하기 위해서는 같은 종족인 무림 종족의 아이템을 이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일이었다.

“좋다.”

동하는 이내 마음의 결심을 하고, 매직 카메라의 능력을 일으켜 머릿속으로 음양조화선을 떠올렸다. 모든 부분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순간 동하는 복사의 능력을 사용해 구슬을 음양조화선으로 만들었다.

겉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수천 년의 풍파를 견뎌온 세월의 흔적과 살짝 상처가 나고 찍힌 부분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쉬이익!

동하는 부채를 펼쳐서 휘둘러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몰라 음의 기운을 일으켜 보기도 했고, 양의 기운이 담긴 무공을 펼쳐 보기도 했지만, 동하가 복사한 음양조화선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평소 구슬을 손에 쥐었을 때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겉모습만 부채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A급 아이템인 상태 그대로였다. 아이템의 능력까지 복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동하는 처음부터 그럴 것 같아서 같은 무림 종족의 아이템을 사용했던 것인데, 그마저도 실패했던 것이다.

이래서는 아까운 아이템만 하나 버린 꼴이었다.

동하가 그렇게 낙심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머릿속으로 아까 럭셔리 매장에서 보았던 ‘만능의 손’이 떠올랐다.

왜 이 순간 만능의 손이 떠오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동하에겐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의 좋은 예가 있지 않던가?

서로 비슷한 능력이 합쳐져 동하는 환골탈태를 경험하게 되었고, 능력의 증폭이 일어나 전혀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었다.

원래 1+1=2가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이지만, 동하에겐 1+1=∞(무한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만능의 손과 복사의 능력은 서로 비슷한 능력이어서 매직 카메라와 예측 안경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던 것이다.

‘오케이.’

동하가 마음의 결심을 내리고 골목 밖으로 빠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아까 만물상점 입구에서 보았던 차원의 관리자들이 무림 종족으로 보이는 테스터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응?”

동하는 직감적으로 차원의 관리자들이 찾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 ☆

‘혹시 발각된 건가?’

무사히 인증을 받고 만물상점에 들어온 터라 약간 방심하고 있었다.

한데, 차원의 관리자들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처음부터 자신을 잡기 위해 덫을 준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차원의 관리자 중 한 명이 동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너, 이리 잠깐 와봐.”

“무슨 일로 저를…….”

동하는 조심스럽게 그 자에게 다가갔다.

‘젠장.’

아무래도 인증을 하려는 것 같았다.

무림 종족으로 인증을 받으면 정체가 탄로 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원의 관리자가 동하에게 소속을 물었다.

“어디 종족이냐?”

“판타지 종족입니다.”

“그래? 생긴 건 무림 종족 같은데.”

얼굴이 길쭉하고 말상처럼 생긴 자였다.

그는 동하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얼굴도 그렇지만 옷도 판타지 종족의 것이 아니군. 손목을 내밀어라.”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동하가 인증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가는 바로 자신이 판타지 종족이 아니라는 것만 알려주는 꼴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동하는 겁에 질린 얼굴로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이렇게 멍청한 행세라도 해서 상대를 방심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띠링!

정보창에 동하의 정보가 떠올랐다.

동하는 판타지 종족으로 두 번의 필드를 뛰었고, 실버 등급까지 올랐었다.

그와 같은 정보가 촤르륵 펼쳐졌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인증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첫 번째가 종족과 행성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접속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칩의 일련번호를 체크한다. 우연히 어느 하나를 위조하고 속일 수는 있어도 세 가지 모두를 속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동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동하는 판타지 종족의 행성인 탈루얀 대륙에서 접속한 것도 아니었고, 칩의 일련번호 또한 무림 종족의 것이어서 인증을 통과하기 위한 2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묘책이 떠오를 리 없었다.

결정적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동하도 전혀 준비나 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으음.’

동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은밀하게 주먹에 힘을 주고 여차 하면 눈앞에 있는 차원의 관리자를 죽이려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말상 얼굴의 동료들이 다른 테스터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동하가 말상을 죽이면 바로 경보가 발동될 것이고 동하의 정체가 적들의 눈에 발각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만물상점에 접속할 수 없게 될 터였다.

1초가 영겁처럼 느껴졌다.

긴장한 나머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차원의 관리자가 이내 두 번째 인증을 시도하려는 순간이었다. 그자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고, 동하의 얼굴에 침이 튀었다.

“에취!”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하는 피하지 않았고, 얼굴 여기저기에 침이 묻고 말았다.

동하는 주먹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어쩌면 말상 얼굴을 죽이지 않고도 이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윽!”

동하는 더럽다는 듯 소매로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았다.

“어디다 재치기를 하는 겁니까?”

“아아, 미안. 이놈의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군.”

그러고 보니 말상 얼굴은 아까부터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아무리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샤이언 종족이라 해도 감기만은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나 그깟 하찮은 감기가 동하를 위기에서 구해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에취!”

그자가 또 다시 재채기를 했다.

“으엑?”

동하는 기겁을 하며 저 멀리 물러났다.

말상 얼굴이 코를 풀며 동하에게 손짓으로 그만 가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문득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종족으로 정보가 나왔으니 굳이 두 번째나 세 번째 인증은 안 해도 되겠지.’

더구나 자신의 침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얼굴에 묻힌 놈이니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겠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동하가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맞은편에서 카일이 몇 명의 수하들을 대동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카일은 동하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그냥 지나쳤다.

“여긴 어떤가?”

“에취! 아직 수상한 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스터.”

“흐음. 괴이한 일이군.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카일이 눈살을 찌푸렸다가 문득 방금 스치듯 만났던 동하를 떠올렸다.

“방금 그자는? 무림 종족 같았는데 당연히 인증은 했겠지.”

“아닙니다, 마스터. 놈은 판타지 종족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군. 생긴 모습은 무림 종족처럼 보였는데, 세 가지 인증 절차는 모두 했겠지?”

“그, 그게…….”

말상 얼굴이 우물쭈물 말을 더듬었다.

순간 카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이냐?”

“사, 사실은 재채기가 나오는 바람에 첫 번째 인증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놈은 분명 판타지 종족이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 우리가 찾고 있는 자는 종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몰랐단 말이냐?”

“아!”

그제야 말상 얼굴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들이 찾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심지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고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인증을 거치는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도 소홀히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었다.

카일이 자신을 따라온 수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아까 그자를 쫓아가 나머지 두 가지 인증 절차를 끝내고 와라.”

“예, 마스터.”

☆ ☆ ☆

그 시각 동하는 럭셔리 매장에 있었다.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이라 할 수 있었다.

포인트 거지인 동하가 만능의 손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구매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몰래 훔쳐서 나오는 것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복사의 능력을 높이려고 찾아온 마당에 만능의 손을 복사하려 할 리도 없었다.

남은 것은 하나.

동하는 만능의 손의 능력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테스터들이 북적거리는 럭셔리 매장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아이템을 흡수하는 건 도박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동하는 밀려드는 긴장감에 침이 마르고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갔지만, 어차피 할 거라면 최대한 대범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그래, 까짓것 걸리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

만능의 손은 금빛 팔찌였다.

보기에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보일뿐더러 만능의 손을 착용하는 순간 그때부터 맥가이버를 뛰어넘는 맨손의 마술사가 되는 것이다.

꿀꺽!

동하는 살며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매장에는 테스터들이 많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만능의 손에 관심을 주는 테스터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음양조화선의 능력을 흡수하면 힘들게 복사할 일도 없고, 이중으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지금 동하는 쫓기는 입장이라 언제 차원의 관리자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음양조화선의 비밀을 풀지 못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능력을 흡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곤륜노자에게 가져가 연구를 하면서 비밀을 풀려면 흡수보다는 복사가 맞는 일이다.

아무튼, 동하는 만능의 손을 구경하는 척 살며시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팔찌다 보니 가볍게 손목에 착용해 보았다. 문득 매장 직원이 동하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그렇다고 착용하면 안 된다고 말리지는 않았다.

이내 매장 직원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됐다.’

동하는 정신을 집중하고 주문을 걸 듯 자신의 마음속으로 ‘흡수’라고 외쳤다.

처음 괴음이 들려왔을 때만 해도 이런 양방향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괴음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이 필요할 때만 동하에게 정보를 주었고, 동하의 물음에는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동하의 능력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스마트폰 속에 녹아 있던 프로그램과 동하의 몸속에 있던 능력이 하나로 동기화가 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띠링!

-흡수를 하겠습니까?

“응. 흡수!”

순간 괴음이 발동을 하고 만능의 손의 능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팔찌를 착용한 손목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손목에서 시작된 청량한 기운이 팔을 타고 동하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띠링!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어느새 만능의 손이 푸석하게 변해 있었다.

동하는 그것을 재빨리 손목에서 풀고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복사해온 가짜 만능의 손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동하를 쳐다보고 있는 테스터들은 없었다.

‘휴우!’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른 누가 지켜본 자도 없었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동하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자세히 지켜보긴 어려웠을 터였다.

그나저나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겉모습만 보면 동하가 복사한 짝퉁은 정말 진품처럼 보였다.

누군가 이것을 포인트를 주고 사지 않는 이상 가짜라는 것이 발각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동하의 복사 능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다 보니 정교한 문양을 비롯해서 조그마한 스크래치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복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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