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궁극의 비기-02 -->
만물상점 입구는 인증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기다란 줄이 만들어졌다.
인증절차는 제법 까다로웠다. 인증을 받고 만물상점 안으로 들어가는 테스터보다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서는 테스터들이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더욱 길어졌다.
인증 담당은 만물상점의 안내 직원들이었다.
그 옆에는 차원의 관리자들이 눈에 힘을 주고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테스터들은 불편해도 감히 입도 뻥긋 하지 못했다.
동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순서를 기다렸다.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동하가 부여받은 베타테스트 어플은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샤이언 종족이 정식으로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하가 위조한 것도 아니었다.
9성급 S몬의 몸속에 심어져 있던 것이 고스란히 동하에게 전이가 된 것이라 엄밀하게 말하면 진짜이면서도 가짜인 셈이었다.
“과연 인증이 될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인증을 받지 않고 은둔술로 은밀하게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은둔술로 모습을 감추는 방법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저자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군.’
동하의 눈이 한 사내의 얼굴에 박혀 있었다.
그자의 이름은 카일.
바로 블랙울프의 대장이며 샤이언 종족 내에서 가장 강한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카일의 기운은 차원의 관리자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누구지? 설마 결정체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한 자일까?’
그만큼 카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동하는 은밀하게 숨어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정공법을 택했다.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긴 했지만, 이미 만반의 준비는 해놓은 상태였다.
동하는 테스터들이 어떻게 인증을 받는지 자세히 지켜본 다음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팔을 내밀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 내렸지만, 겉으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림 종족이시군요.”
“예.”
“접속한 장소도 무림 행성이 맞네요.”
띠링!
안내 직원이 동하의 손목을 스캔했다.
정식으로 부여받지 않은 일련번호라면 경보음이 울려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정상적으로 부여받은 일련번호라는 뜻이었다.
그제야 안내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인증이 되셨습니다. 즐거운 쇼핑이 되십시오.”
‘휴우.’
동하는 속으로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천천히 만물상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공법이 멋지게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혹시나 경보음이 울리면 어쩌나 잔뜩 긴장한 것이 사실이었다.
십년은 감수한 기분이었다.
동하의 베타테스트 어플은 스마트폰에 있다.
하나 지금 동하는 손목을 내밀어 인증을 받지 않았던가?
간단해 보이지만, 세상에서 오직 동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동하는 스마트폰 안에 있는 베타테스트 어플을 자신의 손목에 복사했던 것이다. 동하의 손목에서 일련번호가 나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복사 능력이 없었다면 동하는 감히 인증을 받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테스터들 중에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계 종족이나 다른 종족들 역시 몸 안에 칩이 심어져 있는 구조였다.
만약 여기서 동하가 스마트폰을 내민다면 인증을 받기도 전에 의심을 살 게 뻔했다.
더구나 동하는 무림 종족으로 인증을 받을 생각이었다. 당연히 무림 종족에 스마트폰 같은 기계가 있을 턱이 없었다.
동하의 복사 능력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이젠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자동차를 복사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어플까지 고스란히 복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이었다.
아직 음양신과를 찾지 못한 이상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동하는 남궁세가에 들렸다가 만물상점에 접속했지만, 남궁혜는 같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동하와 함께 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동하의 짐이 될 게 뻔했다.
남궁혜는 동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후후. 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동하는 빙그레 웃으며 남궁혜를 안심시켜 주었다.
남궁혜는 그런 동하가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이를 악물로 수련에 매진했다.
하루라도 빨리 강해져서 동하를 도와주는 것이 그녀에게 내려진 지상과제였다.
☆ ☆ ☆
오픈 세일.
동하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만물상점은 재오픈 기념으로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포인트 거지인 동하로써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할인 규모는 매장마다 달랐지만, 어떤 곳은 최대 40%까지 행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 이게 300포인트야?”
동하는 매직 카메라를 보고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예전에 동하가 샀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에 똑같은 모델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500포인트에 샀던 것인데, 지금 매장에 있는 매직 카메라의 가격은 300포인트였던 것이다.
40%가 할인된 폭탄가였다.
이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동하는 졸지에 호구가 된 기분이었지만, 사실 그래서 더 구미가 당겼다. 이런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었다.
“쩝!”
포인트가 없는 게 한이었다.
내일부터 필드가 열리지만, 황당하게도 세일 기간은 오늘까지였다.
이것들이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래서는 누구를 위한 할인 행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테스터들도 있었다.
그들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쇼핑을 하고 다녔는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만물상점을 둘러보니 많은 부분에 변화가 있었다.
별로 인기 없는 매장은 사라지고 처음 보는 매장이 여럿 눈에 띄었다.
또한 포인트가 비싼 아이템들만 취급하는 럭셔리 매장이 새로 생긴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긴 1만 포인트 이하의 아이템을 취급하지는 않네.”
달리 럭셔리 매장이 아니었다.
가격이 엄청나게 고가이다 보니 평소 접하지 못했던 물건들이 많았다.
취급하는 물건은 무기와 장비, 그리고 무공과 포션 등 모든 종족의 아이템을 아우르면서도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까지 있었다.
럭셔리 매장은 테스터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동하는 문득 지구의 럭셔리 매장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테스터들은 무기와 장비, 무공과 포션 등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같은 위력의 무기나 장비를 갖는 건 모든 테스터들의 꿈이자 희망사항이었다.
하지만, 아이템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누구도 사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크크.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동하는 속으로 뿌듯한 마음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미친놈처럼 픽픽 웃어대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테스터들이 동하를 쳐다보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동하에겐 테스터들이 꿈에도 바라마지 않는 무기와 장비 등은 차고도 넘쳤다.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빼앗은 아이템을 8개나 가지고 있었다.
등급 자체도 높았다. 가장 낮은 등급이 B등급으로 럭셔리 매장 내에서도 상위 등급에 해당하는 아이템이었다. 가격으로만 놓고 보아도 럭셔리 매장에서 파는 아이템 중에서도 상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게 맞다.
동하는 그제야 비싸게 주고 산 아이템의 악몽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테스터들의 관심은 온통 무기나 장비 쪽에 쏠려 있었지만, 오히려 동하는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능의 손: 기계 종족의 능력이 담겨 있는 아이템으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
동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원래 음양신과를 찾으러 위험을 무릅쓰고 만물상점에 들어온 동하였지만, 어느새 관심은 온통 아이템에 쏠려 있었다.
만능의 손.
확실히 탐이 나는 물건이었다.
지금 동하의 능력 중 하나인 복사하는 능력에 만능의 손이 더해진다면 몇 배는 더 능력이 업그레이드 될 것 같았다.
복사하는 능력은 말 그대로 복사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건 곧 복사할 대상이 없는 건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만능의 손은 고치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할 수 있으니 복사하는 능력과 만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격이 문제로군.”
무려 4만 포인트였다.
그것도 지금 할인 행사를 해서 그 가격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가격이 예전으로 돌아가 5만 포인트가 된다.
럭셔리 매장 내에서는 중급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그리 비싼 축에 속하지도 않았다.
하나 동하에게 4만 포인트가 있을 리도 없지만, 설령 필드를 뛴다고 해도 쉽게 벌 수 있는 포인트도 아니었다.
“쩝! 20% 할인이네.”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4만 포인트 가격을 보았다가 나중에 5만 포인트를 주고 사려면 아까워서 과연 구매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케이. 일단 저건 스킵해 두고.’
동하는 잠시 미련을 버리고 음양신과를 찾기 시작했다.
이게 은근히 노가다였다.
단서라고는 비급과 기보.
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막연한 생각이 들었지만, 동하는 모든 매장에 들어가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 ☆ ☆
“마스터, 드디어 저희가 찾던 자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방금 무림 종족의 테스터가 발급하지 않은 일련번호를 사용해 인증을 받고 만물상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림 종족이라 했나?”
“예, 마스터. 그렇다고 놈이 무림 종족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럴 테지. 한데 말이네. 그자가 우리가 찾던 자인 줄 어찌 확신하는가? 단순히 대항 세력 중 한 명일 수도 있지 않나?”
카일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블랙울프의 수하들과 함께 동하를 잡기 위해 보이지 않는 덫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만물상점이 다시 오픈한지도 벌써 4일째였다. 내일이면 필드가 열리는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아서 내심 초조해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직까지 동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원의 관리자를 한꺼번에 다섯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극강의 능력을 소유한 인물이며, 복합 능력을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더구나 무슨 수법을 쓴 것인지는 몰라도 만물상점의 시스템까지 무력화 시키고 유유히 도망친 전력도 있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던 카일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그의 적수는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하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래서였다.
카일은 타누스 박사의 제안을 수용하고 샤이언 종족 중에서 첫 번째로 결정체를 이식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이식을 받는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면 버티지 못한다. 만일 버틴다고 해도 육체가 결정체를 거부하면 실험 도중에 몸이 폭발해 죽을 수 있었다.
카일은 그런 모든 제약을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복합 능력을 갖게 되었다. 비록 1성급 결정체에 불과했지만, 카일은 예전에 비해 2배 이상 강해진 상태였다. 이제는 동하와 한번 정면으로 맞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입가에 절로 침이 고일 정도였다.
로이는 빙그레 웃었다.
“단순히 대항 세력이었다면 경보음이 울렸을 겁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자가 사용한 수법은 매우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도의 기술이라……?”
“시스템 상으로는 분명 저희가 발급한 적이 않은 번호이긴 한데, 위조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군.”
“그날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유유히 만물상점의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도망친 자가 아니고는 이런 기술을 지닌 자가 있을 리 없습니다.”
카일도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까지 샤이언 종족의 기술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
바로 만물상점에서 세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이고 무림 행성에서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을 죽인 장본인 밖에 없었다.
“흐흐, 네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일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중동이라 했던가?
덫을 쳐놓고 계속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다.
카일의 얼굴에서는 진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네놈의 정체를 발가벗길 수 있겠구나!”
동하의 정체는 샤이언 종족들조차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사안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인증을 바꾸고 복합 능력까지 지닌 동하가 어떤 행성의 종족인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동하의 정체를 밝혀낼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동하의 능력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극강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