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유일무이-01 -->
사실 거의 다 된 밥이었다.
솔직히 사내는 이번에 유경의 차를 보고 대박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주변의 동료들이 바람을 잡아준 덕분에 상황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변했고, 이대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고 경찰에 고소를 하면 엄청난 합의금을 뜯어낼 수 있었다.
물론 유경과 혜주의 표정을 보면 경찰에 고소하는 걸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좀 더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낼 수 있었다.
한데, 난데없이 동하가 나타나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것이다.
아니, 단순히 재만 뿌렸나?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그는 졸지에 자기 입으로 자해공갈단임을 시인한 상태였다.
그래서 더 동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넌 오늘 뒈졌어.”
퍽!
사내의 주먹이 동하의 얼굴에 작렬했다.
맞아도 제대로 맞았다. 싸움에는 원래 자신이 있던 그였던지라 이 정도면 얼굴이 돌아가야 정상이었다.
“으아악!”
하지만, 주먹에 맞은 동하는 멀쩡했고, 정작 비명을 지른 사람은 바로 사내였다. 그는 마치 단단한 철판을 후려친 듯 주먹이 으스러져 있었다.
“후후! 네놈이 먼저 나를 친 거다.”
동하는 사내를 번쩍 들어 올린 다음 바닥에 강하게 패대기쳤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동하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가관도 아니었다.
쿵!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 내렸다.
사내는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게다가 주먹까지 으스러져서 고통이 몇 배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는 사내의 가슴을 발로 짓밟았다.
“컥!”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게 어디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도 이렇게까지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자동차 수리비는?”
“무, 물어내겠습니다.”
“너 혼자 물어내는 건 조금 억울하겠지?”
“예에?”
“네놈의 동료들이 여기에 있는 거 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동료들이 누구인지 당장 불어.”
매직 카메라 능력을 활용해 사내의 기억을 읽으면 동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동하가 찾아내는 것이라 얼마든지 오리발을 내밀 수 있다.
그래서였다.
사내가 직접 동료를 말해주면 더 이상 빼도 박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 그건…….”
퍽!
“크악!”
동하가 사내의 턱을 걷어찼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사내는 눈물 콧물 흘려대며 울어댔다.
“두 번 묻게 하지 마라. 다음에는 온몸을 잘근잘근 짓밟아 줄까?”
“아, 아닙니다.”
사내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차라리 배신을 하면 했지 동하에게 맞고 싶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동료 세 명을 지목했다.
동료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지만, 이내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깟 놈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그들은 세 명이었다. 더구나 그들 역시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시건방진 새끼.”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어디서 자동차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지랄이냐?”
그들은 일제히 동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 세 명은 채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달려왔던 자세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으악!”
“크아악!”
두 놈은 갈비뼈가 부서지고 마지막 한 놈은 얼굴이 뭉개졌다.
“세, 세상에.”
“맙소사.”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동하의 움직임은 엄청났다. 어떤 사람은 정말 동하가 와이어를 걸고 영화를 촬영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볼 정도였다.
“유경아, 동하 씨 무슨 소림사 출신은 아니지?”
“너도 참. 그게 말이 되니?”
“하지만, 저 모습을 봐. 동하 씨 손바닥에서 장풍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유경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 ☆ ☆
사건이 정리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동하는 자동차 수리비를 받는 대신 경찰서에 연락을 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자해공갈단 일행을 연행하면서 모든 사건이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그것이 맞는 일이다. 자해공갈단의 돈으로 차를 고쳐봐야 결국 그 돈 역시 누군가에게 사기를 쳐서 뜯어낸 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사건이 정리가 되고 유경의 자동차를 정비업체에 맡기고 나왔다.
“동하 씨, 오늘 고마웠어요.”
“핫핫! 제가 뭐 한 일이 있나요? 멀쩡한 팔을 다친 척 거짓말 하던 게 운 좋게도 저에게 걸린 탓이죠.”
“그게 정말 이상하네요. 분명 그 사람 팔이 부러졌었는데.”
“그러게. 자기가 망치로 내려쳤다면서? 한데, 어떻게 퉁퉁 부어있던 것까지 깨끗이 나아질 수가 있는 거지?”
유경과 혜주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설마 눈 깜짝할 사이에 동하가 부러진 팔을 고쳐주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참, 동하 씨는 처음부터 그걸 알아본 건가요?”
“뭘요?”
“아까 그 사람이 자해공갈단이라고 시인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잖아요.”
“엥? 동하 씨가 그런 말을 했었어?”
혜주는 처음 듣는 말에 놀라운 눈빛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동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냥 운이 좋았어요. 사실 그 상황에서 무슨 뾰족한 방법이 떠올라야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는데, 거기서 팔이 안 부러진 게 딱 걸린 거죠.”
동하는 계속 시치미를 뗐다.
유경과 혜주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동하를 쳐다보았지만, 그렇다고 동하가 딱히 무엇을 한 건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따르릉!
동하의 핸드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만요.”
동하는 그녀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서용훈 사장일세.
“아, 예. 안녕하셨습니까?”
-자네 혹시 지금 유경이하고 같이 있나?
동하가 잠시 유경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자네와 단둘이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오늘 시간 괜찮나?
“저는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편하게 회사로 오는 게 어떤가?
지금이 4시 무렵이라 저녁을 먹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차 한 잔 마시자고 호텔을 찾기도 그랬다.
“지금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겠네.
동하가 전화를 끊자 유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 전화에요?”
“후후! 아는 분이신데 중요한 볼일이 있다며 만났으면 하시네요.”
동하는 차마 서용훈 사장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아무래도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와! 이제 보니 동하 씨 용자시네. 우리 같은 미녀를 내버려두고 그냥 가버릴 줄은 몰랐어요.”
“얘는 참.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잖니.”
유경이 눈을 하얗게 치켜뜨고 혜주를 흘겨보았다.
“얼씨구.”
혜주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농담 한 마디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었다.
“동하 씨, 우린 괜찮으니까 어서 가보세요. 동하 씨에게 넋두리 좀 늘어놓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네요.”
“넋두리요?”
“사실 요즘 저나 혜주 모두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든요.”
“두 분 모두 학업 문제는 아닐 것 같고. 혹시 그룹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왠지 서용훈 사장이 전화를 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한그룹과 새경텔레콤에 동시에 문제가 생길 만한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에요.”
“정말 괜찮겠어요? 차도 없잖아요.”
“택시 타고 가던가 아니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면 돼요.”
유경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하지만, 넋두리를 하지 못해서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동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면서도 다음에 만나자는 말을 하고는 그녀들과 헤어져 대한전자로 향했다.
“어휴, 짜증 나. 이게 다 다온텔레콤 때문이야.”
혜주가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혜주야, 조용히 해. 동하 씨가 들으면 어쩌려고?”
“네 동하 씨는 이미 저 멀리 사라졌는데 어떻게 듣니?”
혜주는 잔뜩 꼬여 있었다.
하긴, 유경이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이번에 다온텔레콤이 출시한 M뱅크 때문에 새경텔레콤의 타격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주가는 연일 떨어지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는 새경텔레콤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다온텔레콤이 올해 안으로 새경텔레콤의 점유율을 앞지르는 건 아닌지 혜주 역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건 이번 M뱅크 사건으로 새경텔레콤의 재계 순위가 2단계나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만년 꼴찌였던 다온텔레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혜주였기에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한전자 상황이 새경텔레콤보다 나은 것도 아니었다.
이번 M뱅크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 건 대한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핸드폰 단말기 시장에서도 다온전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원래 2배 이상 차이가 벌어졌던 단말기 점유율이 이번 M뱅크 출시 이후 그 간극이 많이 좁혀진 상태였다.
“그나저나 이상하단 말이야. 멤버십 카드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M뱅크는 정말 그 언니 작품이 아닌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유경이 너는 수정 언니하고 별로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잖아.”
재벌 2세들이나 3세들 사이에는 모임도 있고, 자주 교류를 하며 지내곤 한다.
하지만, 대한그룹과 다온그룹 사이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유경과 수정의 사이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예전 모임에서 만났을 때 수정 언니 입으로 사업 체질이 아니라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고 했단 말이야. 하긴, 그 언니 꿈이 예전부터 교사였으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 뭐.”
“설마 그룹 차원에서 수정 언니에게 밀어주는 건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멤버십 카드와 M뱅크를 기획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
“새경텔레콤에서 그 사람을 찾으려는 거야?”
“그래야 하지 않겠어? 아빠 말로는 사운이 걸렸다고 하는데 어떻게든 찾아야지. 대한전자도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원래 유경은 동하에게 상담을 하고 도움이 받을까 싶었다. 국문학과 출신의 동하가 전자업계의 일을 알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워낙 다방면에 신기한 능력을 가진 동하이다 보니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 ☆ ☆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에는 안내 직원의 도움 없이도 동하는 혼자서 사장실을 찾아 올 수 있었다.
“어서 오게.”
서용훈 사장이 반갑게 동하를 맞아 주었다.
동하가 소파에 앉자 예전의 그 비서가 이번에도 탁자 위에 차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서용훈 사장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셜 화장품의 신규 브랜드는 아마 다음 주 중에 출시가 될 것 같네.”
“잘 됐군요.”
“며칠 내로 광고도 볼 수 있을 걸세.”
“후후. 저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그렇다면 정말 내일 안으로 미셜 화장품의 주식을 사야할 것 같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혹시 이번에도 미셜 화장품의 주식을 살 생각인가?”
“예? 그, 그걸 어떻게…….”
동하가 깜짝 놀라 표정으로 서용훈 사장을 쳐다보았다. 서용훈 사장이 마치 자신의 속내를 읽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역시 그랬군.”
“설마 제가 주식을 사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 그렇다고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진 말게. 사실 우린 자네에게 운명을 걸지 않았나?”
인천시장인 차종호 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용훈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룹의 운명이 걸린 일을 너무 쉽게 결정할 수는 없지 않겠나? 해서 자네의 뒷조사를 약간 했던 것일세.”
“흐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사실 입장을 바꿔놓고 동하가 서용훈 사장이 되었다고 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한데, 다른 것은 다 젖혀두고 왜 주식만 언급을 하는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주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닐세. 단지 내가 묻고 싶은 건…….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다온텔레콤에서 출시한 M뱅크 말이네. 자네가 기획한 건가?”
“푸웁!”
동하는 차를 한 잔 마시다 깜짝 놀라 그만 사래가 들렸다.
서용훈 사장이 탁자 위에 있던 휴지를 뽑아서 동하에게 건네주었다.
“아, 이런.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네.”
“죄송합니다.”
“헛헛! 그 반응을 보니 자네의 기획이 맞는 것 같군.”
서용훈 사장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에 그리 놀라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서용훈 사장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하의 기획 하나로 지금 업계 1위였던 새경텔레콤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었고, 대한전자의 단말기 점유율 역시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흐음. 그렇다면 멤버십 카드도 자네 작품이겠군.”
“끙! 그것도 맞습니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사장님께서 아시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헛헛! 그것 참.”
이제 실소만 나온다.
동하의 능력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설마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들을 쥐락펴락 할 수 있을 정도인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러다 정말 동하 한 명 때문에 재계 순위가 완전히 뒤바뀔지도 몰랐다.
“한데, 사장님. 뭐가 잘못된 겁니까?”
“자네의 잘못은 아닌데……. 아무튼 자네가 기획한 그 M뱅크 때문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고 있네.”
“그, 그게 무슨…….”
“대한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새경텔레콤은 위기론까지 대두될 정도란 말일세.”
“아!”
그제야 동하는 아까 유경이 넋두리하고 싶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동하는 지금까지 다온텔레콤의 주가만 신경 썼지 다른 기업의 상황을 살피지는 않았다. 사실 다른 기업의 상황을 살필 이유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대한그룹과 새경텔레콤 같은 대기업이 자신이 기획한 M뱅크 때문에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건 그만큼 M뱅크가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소리 아닌가? 유경과 대한전자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그렇다면 다음 기획은 좀 더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군.’
동하는 흐뭇한 생각에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보게, 최 군.”
“예, 사장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다른 기획도 가지고 있나?”
더 이상은 없겠지.
아무리 아이디어 뱅크라고 해도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멤버십 카드와 M뱅크를 기획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그냥 확인 차 물어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몇 가지 아이템이 더 있어서 다온텔레콤과 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 하나도 아니고 몇 가지씩이나?”
“예, 사장님.”
이렇게 된 이상 동하도 더 이상 서용훈 사장을 속일 수 없었다.
“M뱅크는 기성세대를 위한 것인지라 다온텔레콤 측에서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없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자, 잠깐!”
서용훈 사장이 급히 동하의 말을 끊었다.
아이디어를 국숫발 뽑아내듯 뚝딱 만들어 내는 것도 놀라운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나눠가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고?
서용훈 사장은 대한전자의 수장으로 오랜 시간 일을 해왔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오죽하면 해괴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서, 설마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벌써 생각해낸 것인가?”
“그게 아니고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M뱅크 사업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잠시 텀을 두려고 제가 적당한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허허! 도대체 자네는…….”
이젠 놀랄 힘도 없었다.
도대체 눈앞의 동하가 국문학과 2학년생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더구나 이런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집안이 쫄딱 망하고 달동네로 이사를 가서도 한동안 개망나니로 살았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그것도 멤버십 카드와 M뱅크 못지않은 파급력을 가지고 있나?”
“아마도 그럴 거라고 확신합니다.”
서용훈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의 귀에는 ‘멤버십 카드와 M뱅크 못지않은 파급력’이란 말만 맴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