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M뱅크-03 -->
“그나저나 다음 사업은 언제 알려줄 거예요?”
“나야 아무 때나 상관없긴 한데, 아직 M뱅크 사업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M뱅크는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동하 씨. 다음 사업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가능할까요?”
수정도 이것만큼은 크게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다온텔레콤이 확실하게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 타깃으로 젊은 세대를 공략해야 옳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다.
원하는 대로 아이디어를 마구 뽑아 낼 수 있다면 그게 어디 인간인가?
젊은층과 기성세대를 확실하게 나눠가며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하나 동하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군요. 젊은 세대라……. 그런 아이템이 몇 개 있긴 합니다.”
“예에?”
수정은 걸음을 걷다 말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이디어가 한 개도 아니고 몇 개가 있단다. 이쯤 되면 놀라다 못해 동하가 존경스러워질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주차장이 시끄러워지더니 한기문과 그 친구들이 나타났다.
“어라? 동하 네가 주차장엔 어쩐 일이냐?”
주차장이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동하의 집안이 쫄딱 망했을 때 자동차를 압류 당한 것쯤은 한기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동하가 피식 웃었다.
“저기에 차를 주차했는데 형도 차를 이곳에 주차했나 봐요?”
“응? 응, 나도 너하고 같은 방향에 주차를 했는데 같이 가면 되겠네.”
한기문은 한심한 생각에 절로 혀를 찼다.
‘집안이 망했는데도 여전히 차를 굴리고 다니는 모양이네. 쯧쯧, 개망나니 성격은 여전하구나!’
곁눈질로 힐끔 수정을 쳐다보았다.
한기문의 눈이 번쩍 떠질 만큼 대단한 미녀였다.
서초지점에서 일을 하면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수정처럼 세련되고 도시적인 미모를 지닌 사람은 처음이었다.
수정이 입고 있는 옷이며 핸드백까지 모든 게 명품이 아닌 게 없었다. 그것만 봐도 수정이 제법 돈 많은 집안의 딸이라는 게 느껴졌다. 왠지 개목에 진주목걸이처럼 동하에게는 과분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는 최동하 집안이 쫄딱 망한 건 알고 있는 건가?’
어쩌면 나이가 많아서 어린 동하를 가지고 노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겠군.
무엇 하나 부족함 없어 보이는 수정이 개망나니 동하를 만날 이유는 딱히 그것 밖에 없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한기문이라고 합니다.”
한기문이 정중한 태도로 수정에게 인사를 하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그는 수정이/ 명함을 받으면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줄 알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일개 증권회사 직원에게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삭제했으면 합니다~)
수정은 동하를 쳐다보며 누구냐고 눈짓으로 물었다.
그녀도 눈치라는 게 있다. 딱 봐도 동하와 그리 친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음흉해 보이는 것이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도 꾹 참은 건 혹시 동하와 친한 사이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동하가 피식 웃었다.
“어머니 친구 아들이에요. 우리가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서울에서 살다 인천으로 내려갔단 것은 알고 있죠?”
“예.”
“그때 우리가 갈 곳이 없어서 며칠만 머물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매몰차게 거절했던 사람의 아들이에요. 그 이후부터는 아예 연락도 끊어 버리더라고요.”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이였나 보죠?”
“그럴 리가요. 어머니와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친한 사이였어요.”
“와! 정말 너무하네요. 듣는 내가 다 화가 나네. 아무리 세상인심이 야박해도 그렇지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면서 어쩜 그럴 수가 있죠?”
수정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경멸스럽게 변했다.
한기문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분명 사실은 사실인데 모욕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은 친하게 지내도 혹시 자신들의 처지가 어려워지면 야박하게 외면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야, 최동하?”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이었다.
동하가 어느새 람보르기니 앞에 멈춰 섰다.
“나는 다 왔는데 그럼, 무슨 할 말 더 있어요?”
“뭐, 뭐야? 이게 지금 네 차라고?”
‘설마. 아니겠지?!’
집안이 쫄딱 망해서 인천 달동네로 도망치듯 이사를 간 주제에 이 비싼 람보르기니를 끌고 다닐 리는 없지 않은가?
‘분명 저 여자 차겠지.’
한기문이 곁눈질로 수정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정작 수정도 깜짝 놀랐다.
“동하 씨, 차 바꿨어요? 예전에는 페라리였던 걸로 아는데.”
“아, 그때 수정 씨하고 타고 다녔던 게 페라리였던가?”
만능 자동차를 몇 대 복사했더니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차를 타고 다녔는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건 집에 있어요.”
“피이, 동하 씨 검소하게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자동차 수집이 취미인 줄은 몰랐네요.”
“내참, 아까는 나보고 청년 재벌 소리 듣겠다면서요?”
“하긴, 며칠 만에 100억 원을 버는데 동하 씨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든 그건 사치가 될 수 없겠네요.”
쿵!
한기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동하의 집안이 쫄딱 망한 거 아니었나?
한데 난데없이 100억 원이란다.
아니, 청년재벌이라고?
그것도 며칠 만에 벌었다는 수정의 말에 한기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람보르기니를 보지 않았다면 수정의 말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기문이 기억하고 있던 이전 생애에서의 최동하는 사업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개망나니였으니까.
‘그렇다면 뭐야? 지금 저 여자가 동하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는 소리잖아?’
그가 멍하니 동하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형?”
“어? 왜 동하야?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그게 아니라 좀 비켜 달라고. 형 때문에 차 문을 못 열잖아.”
“미, 미안.”
한기문은 급격하게 주눅이 들고 위축되고 있었다.
아까 동하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우쭐 거렸던 생각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이거야 말로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쓴 격이었다.
동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튼, 찌질한 성격은 여전하군.’
그러니 겨우 증권회사에 취직했다고 그 유세를 떨며 잘난 체를 하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동하는 겨우 이런 것으로 한기문에게 뭔가를 보여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유치할 수도 있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하지 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형, 나중에 연락할 테니까 그때 봐요.”
“그, 그래.”
“수정 씨, 차체가 낮으니까 조심해서 타요.”
“알았어요.”
수정이 조심해서 차에 올라탔다.
차체가 워낙 낮아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상태로 타고 내릴 때 자칫 속옷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부아아앙!
람보르기니가 굉음을 내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동하 씨, 나 방금 잘했죠?”
“뭐가요?”
“100억이라고 말한 거요. 그 사람이 동하 씨에게 하는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푸하핫! 그런 거였어요?”
“헤헤. 그 인간 너무 못돼 처먹었잖아요. 그리고 사실인데 뭐 어때요.”
수정이 귀엽게 웃었다.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여인이었다.
한편, 한기문이 멀어져가는 람보르기니를 멍하니 쳐다보았고, 친구들은 한 마디씩 해댔다.
“요즘엔 집안이 쫄딱 망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니나봐.”
“나도 집안이 망하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닐 수 있을까?”
“나원 참. 달동네에 사는 사람이 페라리를 집에 처박아 두고 살아?”
“그, 그게 그러니까…….”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어려울 때 돕고 살아야지. 어머니 친구라며? 한데, 어떻게 집안이 망했다느니 달동네에 산다느니 사람을 그렇게까지 망신을 줄 수가 있냐?”
“저 친구가 돈을 많이 벌었기에 망정이지. 우리 집안이 쫄딱 망해도 왠지 너에게는 충분히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겠다.”
“난 그냥 집에 갈란다.”
“에이, 나도 김이 팍 샜다. 우리 다음에 보자.”
한기문의 친구들이 하나둘 주차장을 떠나갔다.
☆ ☆ ☆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정은 미사리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도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다시 서울로 건너와 영화를 보았더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수정은 조심조심 들어오다 우뚝 멈춰 섰다.
거실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한석민 사장이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고, 초저녁잠이 많은 허은실 여사도 오늘은 어쩐 일인지 잠을 자지 않고 거실에 나와 있었다.
“늦었구나!”
“예, 아빠. 엄마, 저 다녀왔어요.”
“아까 황 기사가 네 차를 가지고 들어오던데 혹시 너……?”
“헤헤. 그렇게 되었어요.”
“허허, 그것 참.”
한석민 사장이 실소를 터뜨렸다.
수정의 얼굴에 행복한 기운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당장 이틀 후에 M뱅크를 공개하는 행사가 열리는데 한가하게 남자나 만나서 데이트할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일곱 살이나 어린 남자를 만나면서 저리도 좋을까 싶었다.
“그래, 최 군은 잘 지내고 있더냐?”
그렇게 물어보는 것을 보니 이야기가 꽤 길어질 것 같았다.
마침 수정도 할 얘기가 있어서 소파에 앉았다.
“최근에 어딜 갔다 왔나 봐요. 통화권 이탈 지역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주가가 오른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까요.”
“헛헛! 주가라니. 혹시 우리 회사 주식을 사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예전에 그럴 거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흐음.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구나! 그럼, 최 군이 우리 회사의 주주가 되었구나!”
“그냥 주주가 아니에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동하 씨가 글쎄 100억 원을 투자했대요.”
“뭐, 뭐라고?”
한석민 사장이 놀란 눈빛으로 수정을 쳐다보았다.
“최 군이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의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 나이에 100억 원의 자금을 굴린다고?”
태어나면서부터 재벌2세나 재벌3세가 아니고서는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하 씨 말로는 우리에게 돈을 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 50억 원을 더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갈수록 점입가경이라더니…….’
들을수록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지 황당할 지경이었다.
“그렇다는 건 우리 말고도 다른 곳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소리 아니냐?”
“저도 그게 못내 궁금해서 물어 봤는데, 전혀 다른 분야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이건……?”
한석민 사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다온텔레콤에서 과감하게 50억 원을 주었을 때는 그만큼 M뱅크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다른 곳에서도 50억 원을 주었다는 건 그 역시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석민 사장은 난데없이 그게 무슨 사업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분명 M뱅크 만큼이나 시장 파괴력이 엄청날 게 틀림없었다.
“혹시 최 군과 다른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동하 씨가 젊은 세대를 공략할 카드를 몇 개 가지고 있대요.”
“그, 그게 정말이냐?”
“동하 씨의 말로는 M뱅크를 뛰어 넘으면 뛰어 넘었지 결코 못하지 않을 거라고 하네요.”
“허헛, 그것 참.”
이젠 놀라는 것도 지친 상태였다.
수십 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한석민 사장이었지만, 동하처럼 괴물 같은 사람은 난생 처음이었다.
“아무튼, 아빠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는 거죠?”
“무엇을 말이냐?”
“제가 동하 씨 만나는 거요.”
“크흠.”
한석민 사장은 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으면서 너무 주책 떠는 거 아니냐고 말을 하려다가 수정의 눈동자가 살쾡이처럼 변하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입을 닫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이것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허은실 여사가 하얗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너 대안그룹의 오 군은 어떻게 할 건데? 오 군에게서 오늘 두 번이나 연락이 왔었다.”
“그 인간은 너무 거만하고 무례해서 싫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선택한 사람이 일곱 살이나 어린 학생이니? 남들이 들으면 웃어, 이것아.”
“엄마!”
수정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역시나 그녀의 눈빛이 살쾡이처럼 무섭게 변해 있었다.
“아, 아니 얘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당신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뭐라고 한 마디 좀 해 봐요.”
허은실 여사가 한석민 사장에게 도움을 구했다.
평소엔 허은실 여사의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던 한석민 사장이었지만, 이번에는 딴청을 피우며 눈길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험험!”
“아, 아니 저이가?”
☆ ☆ ☆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다온텔레콤과 제휴 은행들이 공동으로 행사를 통해 M뱅크 사업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모든 언론 매체들이 M뱅크 사업을 집중 조명했고, 향후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부상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외 언론에서도 이번 M뱅크 사업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다온텔레콤은 연일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다온텔레콤의 비상과 새경텔레콤의 추락.
M뱅크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시장에서는 M뱅크 전용 단말기가 품귀 현상이라 한다. 다온텔레콤 측은 이달 안으로 라인을 증설하겠다고 밝혔지만, 당분간 공급 부족 현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대한민국 통신 트렌드를 주도해 온 새경텔레콤을 제치고 다온텔레콤이 브랜드 파워 1등을 차지했다. 이는 창립이후 처음 맞는 일로 다온텔레콤은 겹경사를 맞았다.
(하나경제TV 김승대 기자)
-멤버십 카드에 이은 M뱅크 출시로 2연타석 홈런 친 다온텔레콤.
그 중심엔 한수정 본부장이 있다. 그녀는 멤버십 카드를 기획한 장본인이며 M뱅크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여대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리더로 한수정 본부장이 영예의 1위를 차지했다.
(여성잡지 7월호 김성은 기자)
그야말로 M뱅크는 광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온텔레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M뱅크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며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다온그룹을 비롯해서 모든 계열사의 주가마저 연일 큰 폭으로 오르고 있었다.
수정은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신문은 물론이고 TV 뉴스에도 그녀의 기사가 나오면서 수많은 남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수정의 미모가 워낙 빼어난데다 지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져 아이돌 못지않은 팬클럽이 결성된 것이다.
기뻐하는 쪽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
“으아악!”
김선일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요즘 그의 하루하루는 울분을 토해내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멤버십 카드 이후로 그는 사사건건 수정에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상황에서 이젠 M뱅크 사업까지 더해져 그는 감히 수정을 올려다 볼 수조차 없게 된 상태였다.
김선일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던 주주들 역시 모두 수정에게 떠나고 그에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구나 이제는 마케팅부 직원들까지 공공연하게 그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김선일은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젠장.”
하지만, 이런 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건 그 역시 언론에 알려지기 전까지 M뱅크 사업을 하는지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수정은 이번 일에 철저히 그를 배제했던 것이다.
어쩌면 수정의 짓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 한 회장의 소행일 테지.
그걸 생각하면 김선일은 분해서 밤에 잠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으으,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했단 말이지?”
김선일은 이를 악물었다.
사람이 벼랑 끝까지 내몰리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이대로 무너질 김선일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수정을 끌어내리고 다온텔레콤을 차지하려던 김선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수정을 끌어내리는 게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두고 봐라. 이번에 당한 모욕은 반드시 되갚아 주마.”
김선일의 눈빛이 하이에나처럼 사납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에게는 다온텔레콤을 집어 삼킬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었다.
☆ ☆ ☆
다온그룹의 약진에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이 김선일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는 바로 대한전자의 서용훈 사장이었다.
서용훈 사장은 연일 신문 1면을 차지하고 있는 다온텔레콤의 기사를 보다 말고 신문을 탁자 위에 집어 던졌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M뱅크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M뱅크 전용 단말기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자 당연히 대한전자의 핸드폰 점유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아직 기사화 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에 기사가 발표 되면 대한전자의 위기론이 대두될 지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M뱅크와 관련된 것들은 다온텔레콤이 독점을 하고 있어서 전용 단말기를 만들어 다른 은행에 납품할 수가 없었다.
대한전자는 부랴부랴 새경텔레콤과 연계를 맺고 아직 M뱅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은행들과 제휴를 맺었지만, 이미 다온텔레콤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 상태였다.
지금 뛰어들어봐야 고작 다온텔레콤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꼴이었다. 그것만큼 남다른 1등 주위를 고수해온 대한전자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었다.
“이게 한수정 양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서용훈 사장은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수정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데 그녀는 똑똑했지만, 그렇다고 사업적으로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흐음. 아무래도 이상해.”
서용훈 사장은 문득 다온텔레콤 쪽에서 동하의 통장으로 보내준 50억 원을 떠올렸다.
그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동하는 그 이후에 다온텔레콤의 주식을 사지 않았던가?
그건 마치 다온텔레콤의 주가가 조만간 오른다는 것을 모르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