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M뱅크-01 -->
대청 안에는 곡소리로 넘쳐났다.
열아홉 명의 기사단이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였다.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 때에는 이미 싸움이 끝나고 난 뒤였다.
“너, 너는 누구냐?”
그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동하의 능력은 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설령 그들이라 해도 열아홉 명의 기사단을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쓰러뜨리지는 못한다.
“후후! 네놈들을 저승으로 인도할 사람이다.”
차앗!
동하는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하의 손에는 어느새 퉁거스의 검이 들려져 있었다.
다른 손에는 지옥수를 착용했다. 동하가 평범해 보이는 가죽 장갑이었던 지옥수를 착용하는 순간 익룡의 발톱이 튀어 나왔다.
이 정도면 공격력 쪽으로는 완전 무장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원래 동하의 공격력은 아주 강했다. 그것이 퉁거스의 검과 지옥수가 더해지자 몇 배는 더 증폭이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동하는 선은장에 들어서기 전에 인벤토리에서 괴수의 사체로 강화한 옷을 꺼내 갈아입은 상태였다.
슈거거걱!
풍운뇌전검이 번개를 일으켰고, 지옥수가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댔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은 감히 막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피하기에 급급했다.
“으헉?”
“어떻게 네놈의 손에 풍운뇌전검과 지옥수가…….”
그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 두 개의 아이템은 서로 속성이 달라서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다.
설령 사용한다 해도 위력이 온전하게 나올 리 없었다.
그들은 각자 품속에서 아이템을 꺼내들고 반격을 시도했지만, 동하는 어렵게 잡은 선기였다.
그는 아예 방어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 일변도로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지옥수가 방어력을 향상시켜 주었고, 거인의 힘이 동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무조건 속전속결이었다.
상대는 차원의 관리자만 다섯 명이었다.
천하의 동하라 할지라도 방심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들 다섯 명 중에는 탱킹을 시도할 수 있는 불사의 능력과 거인의 힘을 지닌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 다섯 명은 마법과 무공, 그리고 야수와 염력, 닌자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각기 다른 다섯 개의 능력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장점을 극대화하지는 못했다.
원딜과 근딜은 있지만, 결정적으로 탱커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파티를 형성해 서로의 능력을 배가하지 못하고 각자의 능력으로 동하와 싸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동하도 그런 점을 십분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 여섯 명은 한 데 뒤섞여 격렬하게 싸웠다.
순식간에 오십여 초는 흘렀지만, 어느 쪽도 쉽게 승기를 잡지 못하고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곤륜노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저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한때 천하제일 고수였던 곤륜노자는 차원의 관리자 한 명과 싸울 때는 우세를 점했지만, 두 명이상과 싸웠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다. 그것도 그나마 차원의 관리자가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대단하다.’
타오와 야이는 멍하니 넋을 잃고 동하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젠 존경스럽다 못해 동하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특히,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 중에 야수 종족의 능력자가 있어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저건 야수의 능력이 극대화된 상태였다.
야수 종족 중에서는 누구도 저자를 이길 수 없었다.
더구나 아이템까지 착용하고 있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연거푸 펼쳐내고 있었다.
한데도 동하는 그자의 공격을 유유히 막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반격을 펼쳐 궁지로 몰아넣었다. 만약 옆에서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자는 죽어도 몇 번은 더 죽었을 상황이었다.
‘저, 저게 공자의 능력이라고?’
왕세기와 제갈소연은 동하가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본다.
이미 남궁혜에게 듣기는 했지만, 마법과 무공 그리고 여러 가지 능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싸우는 모습은 환상 그 자체였다.
처음 선은장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차원의 관리자들의 만행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눈과 귀를 막고 싶었던 그들이었다. 그래서 놈들이 동하의 손에 박살이 나서 나가떨어질 때마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남궁혜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쩌면 이것 역시 천기자의 예언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었다. 샤이언 종족은 여전히 강했고, 무림 종족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한 상태였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이제는 동하의 손에 무림 종족들이 구원을 받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 ☆ ☆
미친놈이 용감하단 말이 있다.
동하는 오직 한 놈에게만 죽자고 덤벼들었다.
그 타깃은 동하와 인연이 있던 바로 그자였다.
“으으.”
그자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처음 동하를 깔보고 우습게 여기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마법의 능력자였다. 이미 7서클에 오른 그는 아이템까지 착용해서 마법적인 면에서 동하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지옥수의 방어력과 거인의 힘이 동하의 신체를 평소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으으, 이 공격 마법이 왜 안 통하는 거야?”
벌써 동하의 몸에 몇 번이나 공격 마법을 적중시켰지만, 동하는 좀처럼 쓰러질 줄 몰랐다. 분명 죽어도 몇 번은 더 죽어야 하는데 동하는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순식간에 기운을 차리고 다시금 달려들었다.
바로 불사지체의 능력이었다.
불사지체가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는 가히 괴물에 가까웠다.
목이 잘리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도 동하를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차원의 관리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동하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마법의 능력을 가진 차원의 관리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이젠 두렵고 무서워서 이빨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옆에서 네 명의 동료들이 그를 도와주기 위해 협공을 펼쳐주었기에 몇 번이나 죽을 번한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그들의 협공도 동하의 기세를 막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하는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전형적인 탱커처럼 거인의 힘으로 몸빵을 했고, 다소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하면 풍운뇌전검과 지옥수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해 버렸다.
탱커와 근딜 그리고 원딜의 능력이 동하의 몸에서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동하도 이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지만, 풍운뇌전검과 지옥수는 유형의 기운을 갈기갈기 잘라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나 사체로 강화한 동하의 옷은 누더기로 변한 지 오래였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근육이 갈라지고 찢어져 피가 흘러 내렸지만, 동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시간이 지나면 불사의 능력이 저절로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그래도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동하는 불사지체를 믿고 공격 일변도로 나갔지만, 온몸에 쌓이는 데미지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다섯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만약 여기에 불사의 능력을 가진 자나 거인의 힘을 가진 자가 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씨익!
“하지만, 네놈은 죽는다.”
동하가 지옥수를 그자의 가슴에 쑤셔 박아 넣었다.
“컥!”
둔탁한 신음과 함께 그자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동하는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무릎을 직각으로 세워 그자의 얼굴을 찍어 버렸다. 뼈가 부서지고 피가 튀며 그자의 신형이 저 멀리 나가 떨어졌다.
겨우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동하는 지금까지 전신을 압박해 들어오던 적들의 기세가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와는 반대로 네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은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으로도 어쩌지 못한 것을 네 명으로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큭!”
비명과 동시에 무너져 내린 자는 염력의 능력자였다.
풍운뇌전검이 그의 가슴을 찌르고 피가 솟구쳐 나왔지만, 동하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재빨리 지옥수를 휘둘러 그 자의 옆구리에 두 번을 더 찔러 넣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염력의 능력자가 바닥에 쿵 하고 넘어졌을 때는 이미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세 명 남은 차원의 관리자들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 ☆ ☆
어느새 시간이 정오를 지날 무렵.
선은장은 불길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죽은 사실이 알려지면 발칵 뒤집어질 터. 아마 조사 차원에서 다른 자들이 와서 무림 종족을 들쑤시고 다닐 게 틀림없었다.
곤륜노자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과감하게 선은장을 불태워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샤이언 종족의 문명이 발달했다 해도 불에 타서 모든 게 재가 되어 버린 곳에서 증거를 찾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곤륜노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선은장을 불태웠지만, 동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르신, 저 때문에 무림 종족이 곤란을 겪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오히려 자네 때문에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네.”
그건 그랬다.
그들을 감시하던 차원의 기사단과 차원의 관리자들이 모두 죽은 뒤였다. 더 이상 그들을 구속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그 지옥 같은 광산에 돌아가 노예로 살아갈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우린 단전을 잃고 폐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자유를 찾았으니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거 아니겠나?”
곤륜노자의 말에 다른 사람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도록 차원의 관리자들이 벌인 만행을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수치심에 분노하며 좌절하는 사람들까지.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빨을 악물고 참았다.
이대로 복수도 하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에 가서도 분하고 억울할 것 같아서 죽을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자네의 능력이 실로 대단하더군. 자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나이를 잊고 호승심이 생겨날 정도였다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말이네. 무공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어.”
“예?”
“노부가 지금은 폐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안목은 죽지 않았다고 자부하네. 자네가 어떻게 구파일방과 정파의 무공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식의 이해도는 생각보다 부족해 보였네.”
“흐음.”
그야말로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동하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곤륜노자의 능력이 동하에 비할 바는 아니라 해도 그의 경험과 풍부한 지식은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어르신께서 부족한 점을 지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헛헛! 자네에게 지도란 말은 어불성설이지. 같이 연구하는 거라면 또 몰라도.”
곤륜노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건 곤륜노자가 동하에게 부탁하고 싶던 말이었다.
사실 그는 남궁혜로부터 동하에 대해 전해들은 말이 있었다.
“동하라는 청년이 천기자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고?”
“그건 확실해요. 공자님의 몸에는 단전 말고도 심장 부근에 서클이 있어요.”
“그렇군. 천기자의 예언이 지금 와서 실현이 될 줄이야.”
동하의 능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능력을 품고 있다 보니 오히려 조화가 되지 않았다.
만약 그것들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만 있다면 동하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터였다.
곤륜노자는 일단 무공만이라도 확실하게 체계를 잡아줄 생각이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다.
고수들이 상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도인이 우화등선을 하기 어렵 듯 무인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경지로 올라서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무조건 수련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동하는 또 한 번의 기연을 만난 셈이었다.
☆ ☆ ☆
“후우!”
동하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만물상점에서 워낙 우여곡절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달동네로 차원이동을 했다가 아차 하고 곧바로 새로 이사한 아파트로 향했다.
대부분의 일을 해결한 상태였기에 동하의 얼굴은 한결 가벼웠다.
결정체와 관련된 단서는 곤륜노자가 찾아보기로 했다.
무림 종족에도 힘의 원천이나 생명의 근원과 관련된 단서가 있긴 했지만, 그건 수천 년 전 신화 속에 나오는 것이라 확실하지 않았다.
단서를 찾는 것은 단지 하루 이틀만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더구나 이제 곤륜노자를 비롯해서 당시 선은장에 있던 노예들은 샤이언 종족에게 쫓기는 입장이었다.
그들이 숨어 있을 거처가 마땅치 않았지만, 당분간은 남궁세가에 머물다가 위급한 순간에는 남궁혜의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했다.
타오와 야이도 자신들이 접속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궁세가에 머물렀다.
그들 역시 쫓기는 입장이라 위급한 상황이 오면 곤륜노자와 마찬가지로 남궁혜의 인벤토리에 숨을 생각이었다.
그건 왕세기와 제갈소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남궁세가는 졸지에 도망자들의 거처로 변했지만, 남궁혜는 오랜만에 남궁세가에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왠지 모르게 기쁘기까지 했다. 그리고 동하는 곤륜노자에게 무공을 배우기 위해 하루에 한 번은 남궁세가에 들렀기 때문에 혹시라도 위험에 노출된다 해도 그리 걱정하진 않았다.
동하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로 향할 때는 만능 자동차를 이용했다. 인벤토리에서 람보르기니를 꺼내 한창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을 때였다.
따르릉!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동하 씨, 저 수정이에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