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눈 깔아-02 -->
“흐흐.”
난교와 살육이 벌어지는 전각에도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주변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엇인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건 영락없이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악동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영감, 감히 우리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만큼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겠지?”
“죽일 테면 죽여라. 노부에게 있어 이미 생과 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흐흐, 영감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뭐, 뭐라고?”
곤륜노자가 불길한 생각에 눈동자가 흔들릴 때였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야릇한 미소와 함께 전각의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을 데려와라.”
잠시 후,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대청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블랙울프 소속의 기사단으로 차원의 관리자들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제복은 얼핏 평범해 보였지만, 일종의 갑옷이라 할 수 있었다. 제복은 강화 인챈트가 되어 있어서 그들의 능력과 특성을 업그레이드 해주었던 것이다.
일명 ‘차원의 기사단’.
그들 역시도 각자 한 가지씩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수준이 차원의 관리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장비와 아이템으로 능력을 강화해서 어지간한 고수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차원의 기사단이 쇠사슬로 사람들을 묶고 짐승처럼 질질 끌고 있었다.
“이, 일환아.”
“아…… 버지!”
“흑흑! 할아버지.”
“으으.”
곤륜노자의 얼굴에 핏발이 섰다.
쇠사슬에 묶여 끌려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곤륜노자의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이었던 것이다.
“흐흐, 영감. 이제 좀 상황 판단이 서셨나?”
“서, 설마 네놈들이…… ?”
곤륜노자의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패악무도한 일이었다.
“빙고.”
“크크, 아마 영감의 생각이 맞을 걸?”
“벌건 대낮에 수많은 노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감은 영감의 며느리와 손녀들과 난교를 맺게 될 거야.”
부르르!
곤륜노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정말 입에 담기도 끔찍한 일이었다.
한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차원의 관리자들은 그보다 더한 짓을 하고도 남을 자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흥!”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어디서 개가 짖어대는군.”
뚜벅뚜벅.
말과 함께 대청에 들어선 사람은 바로 동하였다.
꿈틀!
차원의 관리자들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설마 방금 그 말…… 우리보고 들으라고 지껄인 거냐?”
아니겠지.
이미 동하는 그들의 허락도 없이 불쑥 대청에 난입한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했다.
하물며 그들을 개에 비유하고 오만불손한 언행을 일삼은 건 백 번을 죽어도 부족할 대역죄였다.
한데 이게 웬걸?
점입가경이라더니 동하가 그들을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멍멍 짖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상판대기는 더 개같이 생겼군.”
약속이나 한 듯 대청이 조용하게 변했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던 사람들도 이때만큼은 두려움도 잊은 채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세상에!’
‘맙소사. 제정신이 아니야.’
하지만, 동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쉽게 참을 수 없었다. 선은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아무리 행성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했다고 해도 그렇지 엄연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개돼지들에게도 하지 못할 만행을 저지른다는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구가 멸망을 하면 인류 역시 이런 만행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닌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분노가 솟구쳐 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으으.”
차원의 관리자들은 서로의 귀를 의심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화가 치밀다 못해 이젠 실소마저 나오려고 했다. 저놈이 지금 자신들이 누군지나 알고 지껄이고 있는 것인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응?”
문득 다섯 명의 차원의 관리자 중 한 명이 두 눈을 크게 치떴다.
그는 각진 얼굴에 눈이 야수처럼 무섭게 생긴 자였다.
“그래, 맞아. 이제야 네놈이 누구인지 생각이 났다. 네놈은 며칠 전 만물상점에서 보았던 바로 그 겁쟁이 자식이로군.”
그랬다.
그는 동하가 차원의 관리자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자였다.
동하가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다.”
누가 보면 정말 반가운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하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렇지 않아도 그때 당한 빚을 가슴 한편에 쌓아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그동안 잘 지냈냐?”
“크크. 어이가 없군.”
각진 얼굴의 사내가 끝내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네놈을 죽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서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 발로 다시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
“막내야, 아는 놈이냐?”
“흐흐. 형님,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만물상점에서 만났다던 그 머저리 같은 놈 말입니다.”
“아! 이제 기억이 나는군. 계집이 하도 살려달라고 빌어서 봐주었다는 바로 그놈 말이냐?”
“크크. 맞습니다.”
차원의 관리자들 눈에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봤더니 계집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놈이었군.”
“한데, 저런 머저리 같은 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모양이로군.”
“이래서 미개한 것들은 목숨을 살려주는 자비를 베풀면 그게 권리인 줄 알고 기어오른단 말이야.”
어지간히 화가 치밀어 오른 모양이었다.
개돼지보다 못한 것들이 꼴에 자존심이랍시고 기어오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무림 종족의 정기를 말살하려고 언어도단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는데도 아직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까지 기어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좋다. 사자 우리에 던져지고도 네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흥.”
동하가 차갑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차원의 관리자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소리쳤다.
“모두 눈 깔아.”
“뭐, 뭐라고?”
“개 같은 것들이 감히 누굴 똑바로 쳐다보고 지랄이야? 눈을 확 파버리기 전에 모두 눈 깔지 못해?”
동하의 몸에서 압도적인 포스가 퍼져 나갔다.
오죽했으면 차원의 관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순간 움찔 거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느낀 차원의 관리자들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대청에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지려는 순간이었다.
☆ ☆ ☆
‘토, 통쾌한 말이다.’
곤륜노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잠시 잊은 채 동하의 말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동하의 호기에 곤륜노자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호승심이 잠시나마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십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듯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진작 저렇게 했어야 했었다. 그놈의 가족과 손자 손녀들이 무엇이라고 그렇게까지 치욕을 참고 모진 목숨을 이어온 건지.
그의 눈에서 주르륵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곤륜노자는 공력을 잃고 폐인이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안목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동하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이는 한때 천하제일 고수였던 곤륜노자인 자신의 능력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그의 아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 동하의 나이가 이제 겨우 약관이 갓 지나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림 종족에 저런 기재가 있었던가?’
하지만, 언제까지 통쾌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상대는 차원의 관리자들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차원의 관리자가 한두 명만 있는 게 아니라 무려 다섯 명이나 있지 않던가?
아무리 화가 나도 나서면 안 되는 일이었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지나도 늦은 게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때가 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이었다.
“이보게, 젊은이.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도망치게.”
훗날을 도모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동하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동하는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어르신께 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노, 노부를 말인가?”
“어쩌면 무림 종족은 물론이고 우주의 운명이 걸린 일입니다.”
“우, 운명이라니…….”
“어르신이 모르는 건 무림 종족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게 맞습니까?”
“예전에는 그런 과분한 찬사를 받았던 적은 있었네.”
“그렇다면 됐습니다.”
무공을 잃어도 머릿속에 든 지식까지 잃어버린 건 아니지 않았던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동하는 이곳이 적진인지도 잊은 것 같았다.
곤륜노자와 너무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또 한 번 차원의 관리자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특히 각진 얼굴의 막내는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곱게 죽여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그가 차원의 기사단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차원의 기사단이 앞으로 나섰다.
가장 먼저 나선 자는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인이었다. 체격 또한 어찌나 좋은지 온몸이 근육 덩어리였고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사람은 절로 주눅이 들었다.
그가 허리춤에서 무지막지하게 생긴 방망이를 꺼내들었다.
장대한 키와 체구에 맞게 그가 꺼내든 방망이는 1미터가 넘었다.
“네놈의 뼈란 뼈는 모조리 으스러뜨려주마.”
쿵쿵!
그가 방망이를 앞세워 동하의 앞으로 다가왔다.
키가 크고 체격이 장대하다고 몸이 느리다고 생각하며 오산이었다.
그는 무림 종족의 능력을 가진 자 같았다.
쇄애액!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방망이 안에 무림 종족 특유의 현묘한 초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때, 곤륜노자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게. 부딪치면 위험해. 그자는 차원의 기사단일세. 무림 종족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있고 가진 바 능력이 결코 약하지 않네.”
맞서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무조건 피했다가 기회를 보고 반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피식!
동하는 차갑게 웃었다.
확실히 녹녹한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신화경에 이른 동하의 눈에는 그자의 빠른 움직임도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무척이나 느리게 보였다.
“굼벵이가 따로 없군.”
동하는 손가락에 힘을 주고 번개처럼 움직여 거한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솜씨였다.
거한은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동하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이는 소림사의 응조권으로 금나수법의 최고봉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한 번 손을 잡히면 스스로 손목을 끊지 않고는 빠져나올 도리가 없었다.
“윽!”
거한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순히 손목을 잡혔을 뿐인데 전신이 마비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하가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거한의 팔을 뒤로 돌려 우두둑 꺾어 버렸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대청에 울려 퍼졌다.
거한의 팔이 허공에 덜렁거렸다.
하나 동하는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어느새 거한의 손에 있던 방망이가 동하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동하는 방망이로 미친 듯이 거한의 전신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지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동하의 구타는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거한의 몸은 뼈란 뼈가 모조리 부러지고 으스러져 만신창이로 변했다.
“이, 이놈이?”
“죽여 버리겠다.”
거한의 모습에 차원의 기사단이 흥분했다.
그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들고 동하에게 달려들었다.
모두 열아홉 명이었다.
원래 거한까지 합쳐서 스무 명이었고, 그들 스무 명이 한 팀이 되어 화운진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비록 차원의 기사단의 능력이 차원의 관리자들에 비해 한 단계 아래라 해도 스무 명이 모이면 천하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테스터들 역시 그들이 무서워 감히 눈 밖에 나는 행동은 할 수조차 없었다.
슈거거걱!
무시무시한 바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동하를 향해 몰려들었다.
한쪽에서는 마법이 걸려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염력이 공격해 들어왔다.
그들 모두 원거리 딜러들처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동하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데 주력했다.
그와 동시에 불사의 능력으로 무장한 자가 동하의 품으로 달려들었고, 닌자의 능력을 가진 자가 번개같이 검을 휘둘러왔다. 그들의 행동은 톱니바퀴처럼 척척 맞아 떨어졌고, 그 모든 능력들이 한데 뒤섞여 증폭효과까지 만들어냈다.
인간의 힘으로 그 모든 능력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실수한 것이 있었다. 마법과 염력의 능력을 지닌 자들이 한 데 모여 원거리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하는 가장 성가신 그들의 움직임부터 봉쇄했다.
대청에는 죄 없는 무림 종족도 많기 때문에 고서클의 공격 마법을 쓰는 건 가급적 자제했다.
대신 2서클의 라이데인을 시전했다. 비록 저서클 공격 마법이긴 했지만, 한 자리에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7서클의 동하가 펼치는 것이기에 2서클로 펼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 펼쳐졌다.
쾅! 콰르릉!
마법과 염력의 능력자들이 서 있던 곳에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먼저 공격한 건 차원의 기사단이었지만, 그들은 시동어를 외쳐야 하는데 반해 동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결국 그것이 후발선제의 묘리를 담아 동하의 마법이 먼저 그들을 공격했다.
“크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네댓 명의 기사단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
운이 좋게 벼락을 피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낭패한 몰골이 역력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무림 종족이 마법을…….”
원거리 딜러들이 일제히 진형에서 이탈해 나가떨어지자 동하의 움직임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는 가장 먼저 눈앞에 다가오던 닌자 능력자를 향해 살짝 앞으로 짓쳐 나갔다.
“헉?”
그자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단 한 번의 움직임이었지만, 닌자 능력자는 완전히 중심을 잃고 와르르 무너졌던 것이다.
그 틈을 놓칠 동하가 아니었다.
퍽!
“크아악!”
동하의 주먹이 그 자의 얼굴을 후려 갈겼다.
피가 튀고 얼굴이 주저앉았다.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던 그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이번에는 방망이로 무자비하게 얼굴을 내리쳤다.
빠각!
머리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흘러 내렸다.
동하는 그것으로도 부족해 미친 듯이 그자의 몸을 짓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