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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70화 (70/167)

<-- 70화 : 결정체-02 -->

시신을 녹이고 증거를 인멸하는 작업을 남궁세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남궁혜도 동하가 마법의 용광로로 괴수의 사체를 녹이는 장면을 많이 보았던 터라 나름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궁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신을 녹여서 시냇물에 버리면 그야말로 모든 흔적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고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동하와 남궁혜가 남궁세가에 돌아온 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엘가나는 로그아웃을 해서 라오디아 행성으로 돌아갔고, 다른 사람들은 남궁세가에 남아 치료를 받았다.

동하에게는 자신의 피와 괴수의 사체를 섞어서 만든 특별한 약이 있었다.

예전에 만들어 두고 아직까지 쓸데가 없어서 인벤토리에 넣어만 두고 있었는데,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셈이었다.

이 특별한 약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었다.

야수 종족의 사내들은 닌자의 능력자인 퉁거스에게 당해서 온몸이 난도질을 당한 듯 검상이 심했고, 그에 비해 왕세기와 제갈소연은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으스러지는 등 상처의 종류가 제각각이었다.

동하가 만든 약은 어떤 상처도 상관없이 빠르게 회복시켜 주었다.

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상처가 심하지 않은 부분은 약을 조금만 써도 상관없었지만, 상처가 심한 부위는 약을 많이 발라야 했다.

아무튼, 야수 종족의 사내들과 왕세기, 그리고 제갈소연은 어디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회복상태는 순조로웠고, 아마 약을 두세 번 만 더 발라주면 상처의 대부분 은 회복이 될 것 같았다.

네 명의 남녀가 정신을 차리고 동하에게 감격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사실 야수 종족의 사내들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 동하가 무서운 신위로 세 명의 차원의 관리자를 죽이고 자신들을 구해준 것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었는데, 막상 신기한 약으로 그토록 심했던 자신들의 검상을 순식간에 치료해 주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동하 앞에 무릎을 꿇고 뭐라 뭐라고 떠들어 댔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진 못했지만, 대충 뉘앙스로 보아 자신들을 수하로 받아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나마 왕세기와 제갈소연은 같은 무림 종족이라 대화가 통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계속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남궁혜가 만물상점에서 동하가 구해준 것과 차원이동으로 로그아웃 시스템을 뚫고 무림 종족의 행성으로 오게 된 것, 그리고 동하가 직접 만든 약으로 그들을 치료해 준 것까지 이야기를 하고 났을 때는 왕세기와 제갈소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가지 다급한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 시작한 일은 바로 마법의 용광로로 시신을 녹여 흔적을 없애는 것이었다. 먼저 두 놈의 시신을 녹이고 마지막으로 모리츠의 시신을 녹이던 중이었다.

“응?”

동하가 마법의 용광로 안에서 꺼낸 건 탁구공 크기만 한 동그란 구슬이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구슬은 푸른빛이 감돌아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동하가 놀란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모든 걸 녹인다는 마법의 용광로 안에서도 구슬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처음의 형체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구슬은 녹지 않으려고 저항을 했고, 그것이 끝내 충돌을 일으켜 마법의 용광로가 요동쳤던 것이다.

“공자님, 그게 뭘까요?”

남궁혜도 신기한 표정으로 구슬을 쳐다보고 있었다.

“글쎄요.”

동하는 혹시 몰라 살며시 공력을 주입했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구슬과 공력의 상성이 통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거인의 힘은 어때요? 모리츠의 몸에서 나온 거니까 어쩌면 거인의 힘과 상성이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동하는 즉시 남궁혜의 말대로 거인의 힘을 일으켜 구슬에 압박을 가했다.

드드드.

동하의 손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동하가 거인의 힘을 높이면 높일수록 손에서 생겨나는 진동의 크기도 더욱 높아졌다.

“으음.”

동하가 서서히 힘을 풀었다.

그건 일종의 거부반응이기 때문이었다.

마법의 용광로와 구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마법의 용광로가 요동쳤던 것과 비슷한 사례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으음.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니다.”

구슬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방금 동하가 일으킨 거인의 힘이라면 어지간한 물건은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져야 정상이었다.

아마 남궁혜도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한데, 구슬은 버티는 것도 부족해서 오히려 거인의 힘과 맞서 싸우기까지 해서 동하는 혀를 내둘렀다.

바로 그때였다.

동하의 등 뒤에서 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야수 종족의 물건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사람은 야수 종족의 두 사내들이었다.

“호오? 이게 정말 야수 종족의 물건입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의 씨앗이라 불리는 열매로 야수 종족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나무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이, 이게 열매라고?”

동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구슬을 쳐다보았다.

보통 열매라면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생명의 씨앗은 그럴 수 없지 않던가?

하지만, 야수 종족의 사내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사실입니다. 생명의 나무 열매는 백 년에 하나씩 열리는데, 그 안에는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파워가 들어있습니다.”

“파워?”

구슬에 강력한 힘이 깃들인 건 동하도 경험한 바였다.

“야수 종족에게는 생명의 근원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 야수 종족은 수만 년 전부터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씨앗이 열리게 되면 병든 자가 치료를 받고 나약한 자들이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흐음.”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동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아무런 막힘이나 어려움 없이 야수 종족의 사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 이게 어떻게……?”

그제야 야수 종족의 사내들도 깜짝 놀랐다.

그들 역시도 생명의 씨앗에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씨앗은 야수 종족의 원천이라 할 수 있었다. 생명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고, 공자님?”

남궁혜는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구슬 때문에 동하가 야수 종족의 사내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이 구슬이 무엇이기에 야수 종족의 사내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 이건 말이죠.”

동하가 간략하게 생명의 씨앗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 ☆

야수 종족은 타협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행성이 파멸을 당하고 모든 야수 종족이 멸망을 당할지언정 샤이언 종족의 손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샤이언 종족도 이렇게 지독한 종족은 처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야수 종족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주 말살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야수 종족의 능력이 필요했다.

야수 종족은 괴물에 가까운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일반적인 맹수가 가지고 있는 본능보다 몇 십 배 증폭된 것이라 거의 초능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샤이언 종족은 야수 종족을 죽이지 않고 굴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는데, 그때 마침 샤이언 종족이 들고 나왔던 것이 바로 생명의 나무를 잘라 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죽음조차 불사하던 야수 종족이 생명의 나무를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에 바로 안색이 변하고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결국 야수 종족도 샤이언 종족의 노예가 되어 테스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생명의 나무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안도했다.

그만큼 생명의 나무와 생명의 씨앗은 야수 종족에게 있어 생명 그 이상의 보물이었다.

한데, 생명의 씨앗이 왜 지금 동하의 손에 있는지 야수 종족의 두 사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였다.

“혹시 그게 소문의 그 물건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사람은 왕세기였다.

그들도 동하가 남궁혜에게 설명해 주는 것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무림 종족의 언어였다. 동하는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야수 종족의 사내들은 그렇지 못해서 이번에는 동하가 야수 종족의 사내들에게 통역해 주어야 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도 우연히 들은 겁니다. 샤이언 종족이 결정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은밀하게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겨, 결정체라고?”

동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난데없이 결정체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이것 말고도 다른 것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닙니까?”

동하의 심각한 표정에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단지 샤이언 종족이 모으는 물건들은 힘의 원천이나 생명의 근원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쿵!

동하는 철렁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힘의 원천과 생명의 근원.

이것들이야 말로 결정체를 이루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문득 왠지 알 수 없는 운명과 직면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모든 것은 괴수의 근간을 이루는 결정체로부터 시작되는 일이었다.

한데, 만약 샤이언 종족이 결정체를 만들지 못하게 되면 지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물론 지구가 멸망당하지 않는다고는 장담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행성들은 차원의 관리자들의 손에 멸망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다.

결정체를 만들지 못하면 다른 대체 수단으로 지구를 침략할 테지.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인류의 최후가 이전 생에서보다는 더 길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야수 종족의 행성에 이것 말고 다른 생명의 씨앗은 더 없는 겁니까?”

“없습니다. 백 년에 하나씩 생기는 것이니 두 개의 생명의 씨앗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잘 됐다.

이것만 샤이언 종족에게 빼앗기지 않으면 샤이언 종족도 결정체를 만드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동하가 생명의 씨앗을 야수 종족의 사내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걸 잘 보관하십시오. 샤이언 종족이 빼앗긴 걸 알고 분명 다시 되찾으려 할 겁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생명의 씨앗을 지켜낼 힘이 없습니다.”

분명 야수 종족에겐 목숨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감히 동하의 손에서 생명의 씨앗을 건네받지 못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가 샤이언 종족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동하가 보관을 하면서 샤이언 종족이 결정체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게 더 현명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때만큼은 동하도 예의를 차리기 위해 다시 한 번 권하지 않았다.

동하가 의도해서 생긴 일은 아니었지만, 분명 샤이언 종족의 대업을 방해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

하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막말로 생명의 씨앗이 하나 빠졌다고 결정체를 만들지 못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뿐.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하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겠지만, 두 개 혹은 세 개가 없어지면 그때는 계획 자체를 봉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혹시 힘의 원천이나 생명의 근원과 관련된 것을 갖고 있는 종족이 또 있는지 알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어떤 행성에는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힘의 원천이나 생명의 근원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있다. 그것들이 아예 상상속의 허구인 것도 있지만, 야수 종족처럼 진짜로 전해져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거라면 제가 알고 있어요.”

이번에는 제갈소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도 자신이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었다.

“엘프의 숲에도 생명의 나무가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어요.”

“에, 엘프라면?”

동하는 엘가나를 떠올렸다.

그녀가 있었다면 더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이미 그녀는 라오디아 행성으로 떠난 뒤였다.

야수 종족의 두 사내는 라오디아 행성으로 되돌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동하를 주군으로 인정한 상태였다.

야수 종족은 쉽게 무릎을 꿇지 않지만, 한번 충성을 바치면 목이 잘리고 심장이 도려내진다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동하는 든든한 수하를 얻은 셈이었다.

그들이 라오디아 행성에 가서 엘가나를 만난다고 해서 다시 동하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쩝. 아쉽군.’

동하는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무림 종족은 어떻습니까?”

“흐음. 저희도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이 있긴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곤륜노자께서는 어쩌면 아실 수도 있어요.”

“곤륜노자?”

“세상에 모르시는 것이 없을 만큼 박학다식한 분이면서 세상을 초탈한 듯 인품이 고결하다 해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분이에요. 전대 무림 맹주이시기도 하죠.”

“그럼, 그 곤륜노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샤이언 종족이 곤륜노자를 폐인으로 만들고 온갖 허드렛일을 시키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만약 그분께서 무림 종족에 힘의 원천과 생명의 근원과 관련된 것이 없다고 하면 정말 없는 것이겠지요?”

“그건 틀림없어요. 그분이 없다면 정말 무림 종족에는 없는 거예요.”

반대로 곤륜노자가 있다면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터.

동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곤륜노자를 만나보죠.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남궁혜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동하의 계획을 반대했다.

차원의 관리자들이 도처에서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또한 무림 종족의 행성에는 차원의 마스터라고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자가 총독으로 와 있었다.

동하가 만물상점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난 이후라 어쩌면 경계가 더 삼엄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하는 개의치 않았다. 샤이언 종족이 결정체를 만드는 것을 봉쇄할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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