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모두 죽었어-02 -->
좁은 골목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야말로 충격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동하의 모습에 누구도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30초.
이게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명백했다.
동하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행성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명사요, 무적의 전사들로 통하던 차원의 관리자가 어린아이라도 된 것 마냥 나약하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세, 세상에…….’
남궁혜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동하의 능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차원의 관리자들과 싸우는 건 시기상조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동하를 말리기에 급급했다. 오히려 그녀는 드워프가 힘 한 번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모리츠의 손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숨이 막힐 정도였다.
‘역시 아직은 차원의 관리자들과 맞설 때가 아니야.’
남궁혜는 이번에 포인트 대박을 터뜨리고 모든 포인트를 공력에 쏟아 부어 능력을 높였지만, 여전히 차원의 관리자들과 비교하면 태양 앞에 놓인 반딧불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복수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떤 치욕을 받더라도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동하가 차원의 관리자들을 도발하는 말을 할 때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었다.
이건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다. 차원의 관리자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어쩌자고 도발을 하는지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었다.
‘방금 공자님은 무공 말고도 거인의 힘을 사용했던 것 같아.’
남궁혜는 동하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동하가 모리츠와 주먹으로 정면 대결을 했을 때 순수하게 무공만 사용한 건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놀라운 일이었다.
동하의 무공도 그녀의 생각보다는 훨씬 강했지만, 거인의 힘조차도 모리츠에 비해 그리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왠지 남궁혜의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 왔다.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차원의 관리자들 손에 무림 종족의 행성이 무너지고 남궁세가가 멸문을 당한 치욕을 조금이나마 대갚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두 명이나 남아 있는 상황.
여전히 안심하기엔 이르다.
더구나 로그아웃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원의 관리자를 거의 초주검으로 만들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걱정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만물상점에 모여 있던 차원의 관리자들이 모두 달려오고도 남을 일이었다.
‘도대체 뒷수습을 어떻게 하시려고…….’
남궁혜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엘가나는 멍하니 동하를 쳐다보았다.
드워프가 동하에게 도움을 청할 때만 해도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하는 것인 줄 알았었다.
한데, 이게 웬걸?
모리츠를 어린애 다루 듯하는 동하의 무시무시한 능력에,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볼을 꼬집어 볼 정도였다.
드워프는 어느새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졌다.
엘가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반드시 만물상점을 빠져 나가야만 했다.
하나 아직도 두 명의 차원의 관리자가 남아 있었다.
한편, 한동안 충격에 빠져 멍하니 동하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모리츠를 번갈아 쳐다보던 차원의 관리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네, 네놈은 누구냐?”
“어……떻게 무림 종족이 거인의 힘을 사용할 수가 있는 거지?”
그들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동하가 무공 외에도 복합 능력을 펼쳐서 모리츠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그것 외에는 모리츠를 어린애 상대하듯 그토록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 복합 능력 중에는 거인의 힘이 있었던 것 같았다.
당연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샤이언 종족도 불가능한 일을 일개 무림 종족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제법 눈썰미가 있군.”
동하가 피식 웃었다.
그건 곧 순순히 복합 능력을 인정한 것이었고, 동하는 굳이 속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너희들은 죽는다.”
두 명의 차원의 관리자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더 이상 동하의 말이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놈은 복합 능력자였다.
설마 돌연변이라도 되는 것일까?
세상에 무서울 게 없을 것 같던 차원의 관리자들도 이때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남궁혜는 그제야 동하에게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사고를 치면 뒷수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로그아웃을 할 수 없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차원의 관리자들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동하는 이전 생애에서처럼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이 아니었다.
가슴은 뜨겁게 움직여도, 머리는 누구보다 차가웠다.
동하는 앞뒤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아도 철저히 계산하고 모든 가능성을 따진 다음 충분할 정도의 승산이 있을 때만 움직였다.
로그아웃 상황?
만물상점의 다른 사람들에게나 어려운 일이지 동하에겐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동하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해결책이 있나요?’
남궁혜가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다.
동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남궁혜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어떻게 로그아웃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들었지만, 동하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 ☆ ☆
“혹시 네놈이 대항 세력의 수장이냐?”
두 명의 차원의 관리자들은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동하를 노려보며 그렇게 물었다.
“글쎄.”
동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엄밀하게 말하면 샤이언 종족의 미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9성급 S 몬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동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실망이군. 설마 시치미를 뗄 생각이냐?”
“핫핫! 내가 네놈들이 무서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무엇이냐? 대항 세력의 수장이 아닌데도 누구도 갖지 못한 복합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누군지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들어라.”
동하가 불사 종족의 능력을 가진 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특히, 네놈은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한 번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거든.”
불사 종족의 능력을 가진 자가 치를 떨었다.
“흥, 네놈의 복합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다. 하지만, 거인의 힘이 모리츠에게나 통했지 나에게도 통할 것 같으냐?”
물론 무림 종족의 무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양손 가득 잡고 있던 왕세가와 제갈소연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품속에서 가죽 장갑을 꺼냈다. 일명 지옥수라는 것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죽 장갑처럼 생겼지만, 이것 또한 만물상점의 아이템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만물상점에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속성이 유니크해서 가격이 몇 십만 포인트가 넘었고, 이는 오직 VVIP를 위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만물상점의 VVIP는 거의 샤이언 종족의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가죽 장갑을 손에 착용하면, 바로 익룡의 발톱으로 변해 무엇이든 자르고 벨 수 있었다. 또한 방어력도 향상시켜 주었다.
불사의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상처를 입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얼마든지 상처도 입고 팔과 다리가 잘려져 나갈 수도 있었다.
하나 지옥수를 착용하면 상처를 입는 횟수가 크게 줄어든다.
그건 불사의 능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달리 유니크급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사의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속성이 제대로 구현이 되지 않고 익룡의 발톱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원래 불사의 종족은 엄청난 생명력에 비하면 공격력은 약간 부족한 편이었다.
그것을 샤이언 종족의 박사들이 고심 끝에 지옥수라는 장갑을 만들어 획기적으로 보완했던 것이다.
사기 캐릭터 같은 방어 능력에 익룡의 발톱으로 극대화시킨 공격력까지.
순식간에 능력이 대폭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눈앞의 불사 종족의 능력을 가진 차원의 관리자는 처음으로 지옥수를 꺼내서 착용해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불사의 능력만으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만큼 동하의 복합 능력을 꺼리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스르릉!
옆에 있던 차원의 관리자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예리하고 서늘한 기운이 골목 안을 가득 채웠다.
‘명검이다.’
검을 뽑아든 것만으로도 그자의 기세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야말로 검과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누가 검이고 누가 차원의 관리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닌자 종족의 능력자인가?”
“호오?”
그자의 눈에서 이상한 광채가 떠올랐다.
아직 능력을 펼친 것도 아닌데도 자신의 능력을 알아본 것에 적잖이 놀랐다.
“나는 통거스, 그리고 저쪽은 아이난이라 한다.”
통성명을 하자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의 이름이나 알고 죽으라는 의도였다.
“흐흐, 네놈은 실수했다. 너는 우리가 아이템으로 무장하기 전에 우리 세 사람을 상대했어야 했다.”
통거스의 검은 A급 아이템이었다.
무한의 내구력을 지니고 있어서 아무리 사용을 해도 부서지거나 날이 무뎌지지 않을 뿐더러 한 번 검집에서 나오면 피를 보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 속성이 있었다.
또한 검을 가진 사람의 능력을 높여주는 마력도 있어서 어린 아이가 휘둘러도 어지간한 사람은 감당하기 어렵다.
하물며 닌자의 능력자인 통거스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통거스와 아이난은 시선을 짧게 교환한 채 동하를 포위했다. 차원의 관리자들의 장기인 파티를 펼치려는 것이었다.
동하가 복합 능력자라 해도 그들은 차원의 관리자들.
더구나 절대적인 아이템으로 무장한 이상 동하는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기서 죽을 놈은 바로 네놈이다.”
“그렇군.”
동하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압도적인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통거스와 아이난은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능력자였다.
아이난이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지옥수를 활용해 탱킹을 시도하고, 통거스가 닌자의 검술로 근딜을 시도하면 그들의 장점은 더욱 극대화 될 것이고 단점은 사라질 터.
그렇다면 파티를 봉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왔다.
“차앗!”
먼저 움직인 건 동하였다.
바닥을 박차고 통거스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자 아이난이 기다렸다는 듯 동하의 길목을 차단하려 했다.
역시 동하의 생각이 맞았다. 그는 탱커를 자처해서 동하의 관심을 자신에게 이끈 다음 통거스가 자연스럽게 근딜을 시도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동하도 예측하고 있던 방법이었다.
그는 즉시 2서클 마법인 홀드를 걸어 아이난의 발을 묶었다.
“어억?”
아이난의 발이 바닥에 고정이 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아이난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 이건……?”
아이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마법이라니.
더구나 시동어를 외치지 않고도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는 건 동하가 고서클의 마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거인의 힘과 무림 종족의 무공에 이어 마법까지 시전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홀드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아이난은 홀드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홀드는 2서클 마법만 습득해도 펼칠 수 있는 저서클 마법이라 그 위력은 별로다. 하지만 지금 동하는 7서클의 수준에 올라 있었고, 당연히 6서클로 시전하는 홀드는 2서클로 시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콰콰콰콰!
거친 파도가 몰려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공할 장력이 아이난을 공격했다.
동하가 홀드로 아이난을 묶고 곧바로 장력을 펼쳐 공격을 가해왔던 것이다.
아이난은 홀드에 발이 묶여서 움직이는 것이 여의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에겐 유니크급 아이템인 지옥수가 있었다.
아이난이 두 팔을 휘둘러 동하의 장력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무림 종족의 무공이나 마법 등 눈에 보이고 형체가 있는 공격들은 지옥수로 얼마든지 산산조각 내버리면 그만이었다.
“흐흐, 네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아이난이 지옥수를 휘둘러 홀드를 파훼한 다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이상하게 변했다.
무언가 거대한 힘이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컥!”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아이난은 또 한 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아이난은 재빨리 지옥수로 저항을 하려 했지만, 이번엔 그리 쉽지 않았다.
사방에서 무형의 기운이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고 있어서 어느 한쪽을 끊어버린다고 바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난은 금방이라도 온몸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점차 지옥수의 방어력이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무겁게 짓누르던 기운들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절대 무공이나 마법이 아니었다.
‘서, 설마 염력?’
그건 공포와 경악의 감정과 다를 바 없었다.
아이난에게는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로 동하가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