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차원의 관리자들-02 -->
거리가 너무 한산했다.
가게 문을 닫은 곳도 있었고, 거리에는 테스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평소의 만물상점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어제만 해도 만물상점은 테스터들로 북적거렸고, 매장 문을 닫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동하는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남궁혜와 만나는 중앙 분수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동하는 발걸음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남궁혜가 건물 뒤에 숨어 있다가 고개만 쏙 내민 채 손짓으로 동하를 불렀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그녀가 몸을 숨긴 건물은 오늘 매장 문을 닫은 곳이라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동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역시 무슨 일이 있군.’
동하가 건물 사이로 들어가자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남궁혜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공자님, 어서 도망치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공자님은 죽어요.”
남궁혜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동하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가만히 서 있자 남궁혜는 아예 동하를 잡아끌었다.
“어서요. 어서!”
“허헛! 이유라도 알아야 도망을 치든 말든 할 게 아닙니까?”
“그게…… 차원의 관리자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접속한 자들을 찾고 있어요.”
남궁혜는 금방이라도 차원의 관리자들이 들이닥칠 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었다.
동하는 그제야 만물상점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판이하게 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혹시 누가 발각된 사람이 있습니까?”
일전에 동하는 차원의 관리자와 작은 마찰을 겪었다.
평소였다면 절대 그냥 지나칠 리 없었지만, 그때는 차원의 관리자들이 대항 세력을 찾는다고 동하를 그냥 놔두고 가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그날 대항 세력들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결국 생각해낸 방법이 접속 방법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일 테지.
남궁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지금 만물상점이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접속 상태를 확인하려면 일일이 바코드를 찍어 어느 종족인지 등의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감히 차원의 관리자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검문을 실시한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워낙 불시에 벌어진 일에 대항 세력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오늘을 위해 샤이언 종족의 박사들과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계획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접속을 할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로그아웃을 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바꾸어 버렸다. 그러니 대항 세력들은 졸지에 함정에 빠진 꼴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의 대항 세력들이 만물상점에 침투해 있었다.
종족도 다양했다. 판타지 종족은 물론 야수 종족과 거인 종족 등. 대부분 샤이언 종족에게 고향과 행성이 무너진 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대항 세력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필드를 뛰면서 거기에서 얻은 포인트로 능력을 높여 샤이언 종족에 맞설 만한 힘을 키우고 있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이들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대항 세력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기 위해 평소보다 더 무섭고 잔인하게 움직였다.
남궁혜는 그래서 더 겁에 질려 있었다.
동하가 만물상점에 접속을 하게 되면 100% 정체가 발각될 것이 뻔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워낙 타 종족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궁혜는 이미 보스전을 통해 동하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차원의 관리자들과 맞서는 건 자살행위라고 생각했다.
“공자님,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말씀을 하실 때가…….”
“후후! 그 문제라면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사실 방금 남궁세가에 갔다가 그곳에서 접속을 했거든요.”
“저, 정말이요?”
남궁혜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치떴다.
동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남궁혜는 긴장이 풀어졌는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말 다행이에요.”
동하는 왠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가족들 말고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걱정해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드디어 차원 이동에 성공하셨군요.”
이건 단순히 공간이동을 넘어선 상태였다.
“후후! 혜 씨가 어제 사진을 잘 찍어준 덕분입니다.”
“정말 공자님의 능력은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공간이동이 가능할 수가 있는 거죠?”
어디 차원 이동뿐인가?
아이템을 흡수해서 이전보다 몇 단계는 더 각성한 동하였다.
동하는 남궁혜에게 딱히 비밀로 숨길 것도 없어서 그녀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동하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좁은 골목 안으로 두 명의 남녀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처가 심각해 보였다.
남자는 연신 울컥 피를 토하면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었고, 여인은 한쪽 팔이 부러졌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 ☆ ☆
“응?”
동하의 눈이 여인에게 향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토끼처럼 기다란 귀를 가진 엘프 여인.
그녀는 언제 한 번 정령의 관에서 동하에게 따뜻한 조언을 해준 적이 있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에 반해 남자는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지녔으며 키가 작은 반면 체구가 단단했다.
바로 대장장이 종족으로 유명한 드워프였다.
흠칫!
두 명의 남녀도 동하와 남궁혜의 존재를 감지하고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들은 처음엔 동하와 남궁혜를 차원의 관리자로 생각하고, 얼굴 가득하게 절망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차원의 관리자는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만나면 살아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사실 뒤에서 쫓아오는 자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한데, 난데없이 눈앞에 차원의 관리자가 두 명이나 더 늘어났다고 생각했으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엘프의 여인은 이내 동하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다, 당신은 그때……?”
울컥!
엘프 여인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피를 한 사발이나 토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온몸이 천근만근이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드워프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아무래도 나는 틀린 것 같아요. 아저씨만이라도 어서 도망치세요.”
“그럴 수 없다.”
드워프는 엘프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샤이언 종족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손을 잡은 상태였다.
쿨럭! 쿨럭!
드워프가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럴 때마다 피를 토해 냈고, 피 속에 내장 부스러기들이 섞여 나왔다.
“아, 아저씨!”
“나는 여길 벗어나도 살기 어렵다.”
드워프는 이미 죽어도 몇 번은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대로는 절대 죽을 수 없었다.
여기에 전 우주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료들은 차원의 관리자들이 함정을 파 놓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전멸하게 되면 내일 또 다른 사람들이 만물상점에 접속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항 세력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멸하게 될 것이 뻔했다.
드워프가 결연한 표정으로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남아서 시간을 끌 테니 엘가나 너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이곳을 빠져나가라.”
어쩌면 그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몰랐다.
몇 번이고 로그아웃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아무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빠져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살아서 동료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아, 아저씨?”
“어서 가지 않고 무얼 꾸물거리는 게야?”
드워프의 입에서 역정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는 엘프 여인인 엘가나를 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엘가나가 입술을 꾹 깨물고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등 뒤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로군.”
☆ ☆ ☆
“아!”
“으으.”
엘가나와 드워프는 절망했다.
아주 잠시 시간을 지체한 것이 끝내 천추의 한으로 남고 만 것이다.
쿵쿵!
검은색 망토를 입은 자가 지축을 뒤흔들며 다가왔다.
어마어마한 근육을 가진 키가 2미터가 넘는 거한이었다.
그는 입가에 조소를 가득 머금은 채 엘가나와 드워프를 쓱 쳐다보다 문득 한쪽에 서 있던 동하와 남궁혜의 모습이 보였다.
“네놈들은 뭐냐?”
남궁혜는 벌써부터 심장이 무섭게 떨려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여기서 한 많은 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항 세력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하가 비정상적인 곳에서 접속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저, 저희는 대항 세력들이 아니에요.”
“흥, 그건 바코드를 찍어 확인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지.”
“저희는 떳떳합니다.”
남궁혜는 오히려 손을 내밀어 어서 바코드를 찍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동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제발 순순히 자신의 뜻을 따라 달라는 뜻이었다.
‘으음.’
동하 역시 굳이 소란을 피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남궁혜를 따라 팔을 내밀었다.
차원의 관리자가 바코드로 동하와 남궁혜의 손목을 스캔했고, 정보가 촤르륵 펼쳐졌다.
동하와 남궁혜 모두 무림 종족에 접속 경로도 무림 종족의 행성이 맞았다.
“정상이로군.”
차원의 관리자가 의심을 풀었다.
“그럼, 네놈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그, 그게…… 이곳에서 공자님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어요.”
“뭐, 뭐라고?”
“헤헤! 아무래도 호텔을 이용하기에는 포인트가 너무 많이 들어서…….”
남궁혜는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부끄럽고 창피하긴 했지만, 일단은 살고 볼 일이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동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단순히 입술만 가져다 대면 의심을 살 수도 있어서 깊고 진하게 입맞춤을 나누었다.
동하도 일단 박자를 맞춰 주었다.
그는 두 팔을 둘러 남궁혜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차원의 관리자가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팔을 내밀어 동하와 남궁혜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천한 것들. 걸리적거리지 말고 저리 꺼져라.”
주르륵!
남궁혜는 엄청난 힘에 감히 대항하기 어려웠다.
그녀의 몸이 속절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이, 이런 힘이라니.’
다시 한 번 차원의 관리자들 손에 의해 남궁세가가 무너지던 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거한이 힘을 조절해서 약하게 펼쳤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손속에 살기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만약 동하와 남궁혜를 죽일 생각으로 조금만 더 힘을 주었다면 남궁혜는 피를 토하고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건 누구보다 동하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동하는 힘을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 몸을 맡겼다. 덕분에 그의 몸도 남궁혜와 마찬가지로 주르륵 밀려나고 말았다.
‘엄청난 힘이다.’
이런 미증유의 힘은 오직 하나.
바로 거인의 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힘이 어찌나 무시무시한 지 자신과 비교해서 별로 뒤처지지 않았다.
‘어쩌면 순수한 거인의 힘만 놓고 보면 나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겠군.’
동하는 새삼 차원의 관리자들의 능력을 알 것 같았다. 남궁혜가 자신과 입을 맞추면서까지 그토록 노력을 한 이유도 이제 이해가 된다.
쿵쿵!
그때 거한이 지축을 뒤흔들며 엘가나와 드워프에게 다가갔다.
“흐흐, 내 손에서 잘도 도망쳤겠다!”
드워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원의 관리자들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서 악마가 따로 없었다.
특히 눈앞에 있는 자는 더욱 잔인해서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을 취미로 여기는 자였다.
“죽엇!”
드워프가 마지막 힘을 다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원래 드워프는 손재주가 뛰어나 건축이나 대장장이 등 못 하는 게 없지만, 전투 능력도 뛰어난 편에 속한다. 선천적으로 키는 작아도 힘은 센 편에 속했다.
쇄애액!
도끼가 맹렬한 기세로 거한의 다리를 향해 찍어갔다.
“흐흐.”
하지만, 거한의 입에서는 비릿한 조소가 흘러 나왔다.
깡!
도끼가 거한의 다리를 찍었지만, 황당하게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바로 거인의 힘이었다. 워낙 근육이 철판처럼 단단하고 강하다 보니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 마침 다리가 가려웠었는데 시원하게 잘도 긁어 주는구나!”
맙소사.
도끼에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드워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거한이 드워프의 목덜미를 잡아채고는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강하게 바닥에 패대기쳤다.
“켁!”
우드득.
뼈가 부서지고 머리가 깨졌다.
한데, 하필 그가 나가떨어진 곳이 동하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한은 동하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골목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 역시 검은색 망토를 입은 차원의 관리자들이었다.
그들은 양손에 각기 한 사람 씩 머리채를 잡고 짐짝 다루 듯 질질 끌고 왔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의식을 잃고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사람도 있었다.
하나 공통적으로 그들은 얼마나 혹독하게 당했는지 온몸에 성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