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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62화 (62/167)

<-- 62화 : 환골탈태-01 -->

‘한마디로 쓰레기로군.’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동하는 이전 생애에서 사회나 정치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차종호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했었다.

좋은 이미지? 전국구 스타 의원?

모두 개소리였다.

차종호는 전형적인 위선자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이런 인간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나 마찬가지였다.

‘부전자전이라더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로군.’

동하도 이전 생애에서 개망나니처럼 살아서 그런 인간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마 손바닥의 손금 보듯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차종호는 분명 자신의 앞날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약속을 어기고 어떤 짓도 서슴지 않고 벌이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하물며 을왕리 사건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을왕리 사건이 알려지면 차종호는 정치인 생명을 내려놓아야 할 만큼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완전히 마음에 놓일 만큼 사건을 처리해 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할 게 뻔하다. 더구나 장남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그 울분 또한 쉽게 가라앉지 않을 테고.

지금이야 새경텔레콤도 얽혀 있으니 당장에는 무슨 짓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마음 푹 놓고 있다가는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를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들 결심을 굳히면 자신의 치부가 될 것들을 하나둘 정리하려 들 수도 있다.’

동하는 대충 그 시기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때쯤이면 을왕리 사건에 관한 모든 증거가 사라지고 없을 테니 시기적으로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결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동하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차종호의 정치 인생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적당한 때만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었다.

동하의 사전에 자비나 관용 따위는 없었다.

원래 인생이 그런 법이다. 어설프게 공격을 하면 나중에 오히려 역공을 받기 십상이다.

밟으려면 확실하게 밟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어설프게 밟으면 언제고 뒤통수에 칼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하는 차종호를 완전히 파멸시킬 생각이었다.

두 번 다시는 재기할 수도 없고, 영원히 대한민국에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려면 을왕리 사건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굳이 서용훈 사장과 서건우 회장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미 차종호와의 전쟁을 시작한 상태였다. 차종호를 잡을 덫은 만들어 둔 상태였고, 적당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이 모든 것들을 말해 주기에는 당장 동하와 유경이 을왕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날 동하는 유경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동하는 유경과 함께 텐트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텐트를 치기 무섭게 싸움에 휘말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어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동하는 가급적 그 일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다.

동하가 서용훈 사장에게 괜히 ‘차종호에게 올인해 보라’고 말했던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차종호를 상대하는 건 동하 혼자서도 충분한 일이었다. 당연히 서용훈 사장까지 나서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동하는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었다.

하지만, 서용훈 사장이 자신을 믿고 차종호와 있었던 모든 악연을 자세히 말해 주는데, 끝까지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었다. 그건 동하에게 도와달라는 완곡한 표현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끙!

“사, 사실은…….”

동하의 입에서 그날 을왕리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경의 입장을 생각해서 동하가 먼저 을왕리에 놀러 가자고 제안을 했고, 배 시간표를 착각해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 ☆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용훈 사장은 아까부터 계속 눈썹을 씰룩 거렸다.

남녀 사이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도 딸을 가진 아빠의 입장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네하고 유경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나중에 따로 묻기로 하지.”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지금이라도 그때의 일을 터트리면 어떨까?”

“글쎄요. 그 사건만으로는 차종호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는 있어도 정치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진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고 역공을 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리 성숙한 편이 아니었다. 조금만 자숙하고 돌아와도 또다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는 게 대한민국 정치판의 현실이었다. 특히 지지기반이 확실하고 자금력이 탄탄한 차종호는 충분히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그렇군.”

그건 서용훈 사장이나 서건우 회장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자칫 무리하게 차종호를 공격하려 하다가 대한그룹이 뒤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오히려 역공을 당하기 쉬웠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때라니?”

서용훈 사장과 서건우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조금만 기다리시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실 겁니다.”

동하는 자세한 이야기는 해줄 수 없었다. 그러자면 자신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말해야 하는데, 그건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날 동하는 경찰서에서 마냥 조사만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찰서에 들어가기 직전에 은밀하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염력을 이용해 경찰서 밖에 스마트폰을 띄워 놓았다.

염력은 내공이나 마법과는 또 다른 종류의 능력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도 들어 올리거나 가져올 수도 있었고, 저 멀리 집어 던져 공격할 수도 있었다. 모든 건 정신을 어느 정도 집중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당시 동하는 담당 경찰에게 조사를 받느라 계속 염력을 사용할 순 없었다.

때문에 중요한 부분에서는 염력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허공에 띄워 촬영을 하다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싶으면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식으로 동하는 자신이 부당하게 편파적인 수사를 당하는 모습을 모두 촬영할 수 있었다.

다행히 새벽에 이루어진 일이라 경찰서 밖은 어두워서 사람들 눈에 발각되지 않았다. 하긴, 발각이 되었어도 그게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에 사진 촬영 기능이 없었다. 당연히 동영상을 촬영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인천시장 쪽과 통화하는 모습도 촬영이 되었고, 인천시장의 아들이 무고한 여인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사실도 고스란히 담겼다. 거기에는 반병신이 된 장남의 모습부터 여덟 명의 양아치들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출한 10대 소녀들과 원조교제를 했다는 것 역시 녹화가 되었다. 이건 동하가 담당 경찰에게 유도 심문을 해서 진술을 얻어낼 수 있었다. 물론 소녀들 역시 경찰서에 따라와 진술할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얼굴과 진술 역시 녹화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의 동영상은 1080P까지 지원이 되는지라 화질이 CCTV나 캠코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차종호의 압력에 경찰들이 편파수사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차종호는 꽤나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하나 완벽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안 하니만 못한 법.

동하는 이 영상을 언론에 뿌려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하는 이것으로 덫을 놓을 생각이었다. 원래는 시간을 두고 진행해도 충분했는데, 서용훈 사장과 서건우 회장 때문에 시기를 조금 앞당길 생각이었다.

“흐음. 자네는 차종호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군. 정말 그자를 재기 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나?”

“분명 그렇게 됩니다.”

“그걸 어찌 그리 확신할 수 있나? 혹시 그것도 관상으로 알 수 있는 건가?”

“설마요.”

동하는 빙그레 웃었다.

“사실 덫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덫이라고?”

“차종호는 반드시 걸려들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덫이지요.”

“허허!”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확신에 찬 동하의 말에 서용훈 사장과 서건우 회장은 황당한 생각마저 들었다.

☆ ☆ ☆

사무실에는 서용훈 사장만 남아 있었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동하에 대해 조사한 신상내역이 적혀 있었다.

대한그룹의 정보팀은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조사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리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동하의 정보가 모두 나와 있었다.

“그것 참.”

서용훈 사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가 그런 법이다.

서용훈 사장은 첫눈에 동하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대한그룹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차대한 순간에 첫인상만 믿고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적어도 동하가 누구인지 조사를 해보고 충분히 결정해서 판단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것이 오히려 더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동하의 신상내역에는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동하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천하의 개망나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변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신뢰를 잃었고, 친구들조차 욕을 할 정도였다. 교수들은 동하의 불성실한 자세와 태도에 짜증을 낼 정도였다.

심지어는 가족들도 동하를 싫어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동하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 축제에서 국문학과가 7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동하 덕분이었고, 어렵던 이모의 식당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주어 맛집으로 인기를 끌게도 만들어 주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학교에서도 동기나 후배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고, 가족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었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것들 투성이였다.

그래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철이 들면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작 서용훈 사장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사업적인 일에 관해서였다.

우선 동하는 잉크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번 돈을 모두 다온텔레콤에 투자해 60%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이건 마치 멤버십 카드가 발표될 것을 알고 있던 것 같지 않은가?”

서용훈 사장은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미셜 화장품에 100억 원에 제품을 공급하게 된 것은 그 역시 알고 있는 일.

한데, 특이한 것은 동하의 통장에 다온텔레콤에서 50억 원의 돈이 입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다온텔레콤에서 돈을 주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조사 기간이 짧다 보니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동하의 능력을 비추어 보건데 다온텔레콤과 사업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필이면 다온텔레콤이라니…….”

서용훈 사장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다온텔레콤이야 말로 대한그룹과는 앙숙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동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파일에는 오늘 동하가 다온텔레콤의 주식을 100억 원 가량 매입한 사실까지 적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다온텔레콤에서 받은 50억 원의 돈과 미셜에서 받은 50억 원까지 몽땅 털어 넣었다는 뜻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최근 다온텔레콤은 멤버십 카드 이후 딱히 성장 동력이 없어서 주가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앞으로도 주가가 딱히 오를만한 일은 없을 터였다.

한데도 다온텔레콤에 몽땅 투자했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어쩌면 최 군이 다온텔레콤과 하고 있는 사업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동하의 능력은 관상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업적인 역량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하는 3개월 정도만에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150억 원 넘게 벌었고, 완전히 망했던 집안도 단박에 일으켜 세웠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아니지. 이건 설령 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야.”

어쩌면 그래서일 수도 있었다.

길고 길었던 고민과 갈등도 드디어 끝낼 때가 된 것 같았다.

서용훈 사장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동하의 능력을 믿고 일단 기다려 보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 ☆ ☆

대한전자를 나왔을 때는 어느새 5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화에 몰두한다고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도 몰랐다.

그나마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동하는 본격적으로 매직 카메라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집안이 망하기 전에 살았던 저택에서 시작해 추억이 담긴 장소 몇 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역시.”

동하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추억들이 카메라에 찍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머릿속에 없는 것들은 찍히지 않는다는 제한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매직 카메라의 성능에 국한된 것일 뿐, 아이템 사이에 연동이 되면 어떻게 변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동하는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꺼냈다.

매직 워치는 손목에 차고 있으니 굳이 꺼낼 필요는 없지만, 스위치를 눌러 레이저와 적외선 센서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예측 안경은 얼굴에 썼고, 두 손으로는 매직 카메라를 잡았다. 동하는 만능 자동차에 탄 상태였다.

결국 네 개의 아이템과 동하의 신체가 모두 연결된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드드드득!

네 개의 아이템들 사이에서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동하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 나왔다.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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