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58화 (58/167)

<-- 58화 : 수직상승-03 -->

만물상점은 오늘도 여전히 테스터들로 북적거렸다.

동하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한 번은 만물상점에 와서 남궁혜에게 무림 종족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이곳의 하루는 현실에서는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현실에서 사용하는 시간은 10분 내외였다.

이제 동하는 제법 무림 종족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말을 할 때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간단한 의사 표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동하의 무기와 장비 강화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 가고 있었다.

오늘도 동하가 만물상점에 오자마자 무기와 장비를 강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모두 철저히 사전에 예약한 사람들이었다. 남궁혜가 선별해서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문제가 벌어진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이 차곡차곡 인벤토리에 쌓여가고 있었다.

이제는 전국의 금은방을 돌아다니면서 골드바를 처분하는 속도보다 무기와 장비를 강화해서 생기는 골드바가 더 많을 정도였다.

동하는 틈나는 대로 남궁혜로부터 남궁세가의 독문무공을 배웠다.

동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공과 보법이라 할 수 있었다.

공격적인 능력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계속 경공과 보법을 배우는 일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었는데, 남궁혜가 아무 조건 없이 오직 남궁세가에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에 염치없이 냉큼 받아 들였던 동하였다.

동하의 무공 습득 속도는 가히 경이적이었다.

동하의 단전에는 100년의 내공이 있었다. 그는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빠른 속도로 남궁세가의 무공들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남궁혜는 항상 볼 때마다 놀라곤 했다. 그녀가 몇 년을 어렵게 수련해서 겨우 터득한 것을 동하는 며칠이면 그녀보다 더 완벽하게 펼쳤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공자님.”

“늦었죠? 미안합니다. 이것저것 일이 바빠서…….”

오늘은 하마터면 시간을 내지 못할 뻔했다. 밤새 유경과 있다가 헤어진 게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호! 괜찮아요. 대신 오늘은 무슨 특별한 것을 가져왔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남궁혜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커피 어때요?”

“아유, 그건 다신 안 마실래요. 전에 한 번 마셨다가 잠이 안 와서 결국 밤 샜단 말이에요.”

“푸하핫! 그런 가요?”

일종의 과외비라 할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동하는 수업료를 대신해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 남궁혜에게 주었는데, 이제는 그게 하나의 규칙으로 정해진 상태였다.

남궁혜는 은근히 식탐이 많았다.

그녀는 지구의 음식에 아주 푹 빠진 상태였다.

예전에는 초콜릿을 먹고 수업 시간 내내 입맛을 다셨고, 일전에는 돈가스에 빠져 며칠 동안 돈가스를 간식으로 가져다 준 적이 있었다.

“짜잔.”

동하가 인벤토리에서 피자를 꺼냈다.

“이게 뭐에요?”

“피자라는 겁니다.”

“피자?”

박스를 열기도 전에 식탐을 자극하는 냄새가 남궁혜의 코를 찔렀다.

그녀의 입가에는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후후! 피자를 사자마자 만물상점에 온 것이라 아직 따듯하네요. 이건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거든요.”

“그래요?”

남궁혜는 처음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이내 두 눈을 크게 치떴다.

오감이 짜릿해질 정도로 색다르면서도 입안을 자극하는 맛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감동 그 자체였다.

“너, 너무 맛있어요.”

“목이 메일 수도 있으니까 콜라하고 같이 먹어요.”

남궁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콜라는 예전에도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어서 이제는 능숙하게 받아 마셨다. 피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동하는 한 조각 밖에 먹지 않았지만, 남궁혜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다. 저렇게 먹어대는데도 여전히 놀랍도록 날씬한 것을 보면 남궁혜는 정말 축복받은 여자인 것이 틀림없었다.

“근데, 공자님.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죠?”

“아, 이건 카메라라고 하는 겁니다.”

“카메라?”

“이렇게 버튼을 누르면 사진을 찍는 거죠.”

동하는 카메라의 기능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였다.

“오늘 무림 종족의 행성으로 돌아갈 때 이걸 가져가요.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건물과 장소들 위주로 찍어서 내일 가져와요.”

“중요한 일인가요?”

“어쩌면요.”

아직 확신할 수 없어서 섣부른 예측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템 연동과 인술의 결합이 무림 종족의 행성까지 통할 수 있다면 동하는 지구에서 로그인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림 종족에서도 로그인을 할 수 있게 될 터였다.

☆ ☆ ☆

오늘은 정신없이 바쁜 일들의 연속이었다.

동하는 만물상점에서 남궁혜에게 특별 과외를 마치고 현실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사기 위해 곧장 백화점으로 향했다.

저녁 약속은 사업상 만나는 자리여서 평소 입던 대로 캐주얼 차림으로 입고 가면 실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하는 정장과 구두를 각각 한 벌 씩 사서 그 자리에서 입었다.

순간 사람이 확 달라 보였다.

양복 매장에 걸려 있는 모델의 사진보다 동하의 모습이 훨씬 더 어울렸다.

매장의 여직원이 몇 번이고 힐끔거리며 동하를 쳐다볼 정도였다.

동하는 곧바로 약속 장소인 서울호텔로 공간이동을 했다.

서울 지리는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데다 서울 호텔은 상당히 유명한 곳이라 어렵지 않게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인술까지 펼쳐서 인근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누구도 동하와 만능 자동차를 보지 못했다.

동하가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유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하 씨.”

“어? 왜 안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화장실 간다고 나왔다가 잠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어요.”

동하가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강혜련 여사 그리고 서용훈 사장이 먼저 도착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와. 동하 씨 그렇게 수트를 입으니까 못 알아보겠어요.”

유경은 동하가 수트를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정말 잘 어울렸다. 훤칠한 키에 슬림하면서도 근육질 몸매이다 보니 화보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후후! 유경 씨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사실 정장이 없어서 오늘 부랴부랴 백화점 가서 사 입은 거예요.”

“계속 사업을 하실 거면 앞으로 몇 벌 더 준비해 두는 게 좋겠어요.”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저기…… 동하 씨.”

“예?”

“혹시 제가 혜주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구했다고 언짢게 생각한 건 아니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내가 동하 씨를 창피하게 생각해서 부모님께 연락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에요. 단지 상황이…….”

“나 참. 그것 때문에 여기서 기다렸던 겁니까?”

“어쩌면 동하 씨가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요. 만약 그 상황에서 유경 씨 부모님이 알게 되었다면 내가 더 난처했을 겁니다.”

동하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지만, 유경은 내내 그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긴, 동하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처리한 것이니 마음이 걸렸던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일까?

얼핏 본 유경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 ☆ ☆

“안녕하십니까, 최동하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유경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동하는 정중하면서도 온몸에 자신감이 배어 있는 모습이었고, 서용훈 사장과 강혜련 여사는 부드러우면서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유경은 동하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러니까 꼭 부모님들에게 동하를 소개시켜 주는 자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하는 서용훈 사장이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낯이 많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렇다고 유경과 닮아서 낯이 익은 건 아니었다.

유경의 우월한 미모와 몸매는 강혜련 여사에게 물려받은 것 같았다.

잠시 후 예약 시 미리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공적인 자리라고 꼭 일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나 사적인 일들로 분위기를 가볍게 풀고 본격적으로 공적인 일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분위기가 한결 편하게 만들어졌다.

서용훈 사장과 강혜련 여사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권위의식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이가 한참 어린 동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공적으로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동하를 엄연히 사업 파트너로 대등하게 생각해 주었다.

‘유경 씨가 달리 소탈한 성격이 아니었군.’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치고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동하는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유경 씨하고는 친구인데 편하게 대해 주셔도 됩니다.”

“호호. 초면에 그럴 수 있나요?”

“그게 맞지. 다음에 만나면 그때 편하게 대하겠네.”

강혜련 여사의 이번 만남에 대한 목적은 공적인 목적이 반, 그리고 사적인 목적이 반이었다.

유경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지만, 결코 동하를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사실 동하와 유경이 같이 들어오는 모습만 해도 그랬다.

강혜련 여사는 어이가 없었다.

한 눈에 봐도 유경이 입구 밖에서 동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였다.

그녀는 아까부터 동하의 말투나 동작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젊은 사람답지 않게 침착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개 이런 자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들 부부는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당연히 초조해하거나 작은 실수를 연발하기도 하는데 동하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사적인 목적으로 동하를 관찰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강혜련 여사는 음식을 먹으면서 동하에게 화장품 사업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 보았다.

“유경이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물량이 많지 않아서 한정판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요?”

“집에서 계산을 해봤는데, 50밀리리터 용량으로 한 달에 5백 개에서 1천 개 정도가 최대일 것 같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생산이 가능할 것 같나요?”

“그건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 일단은 3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드에 가서 괴수들의 사체를 꾸준히 확보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동하는 지금 가지고 있는 사체를 기준으로 말했다.

이것 때문에 사체를 최대한 아끼고 있었다.

무기와 장비 강화 사업에 사용은 하고 있지만, 다행이 사체의 양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무기와 장비 강화 사업은 보안 유지에 어려움이 있어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어느 순간이 되면 과감하게 접을 생각이었다.

강혜련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다른 쪽과도 접촉을 가져볼 생각이었다고요?”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물량이 적다 보니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저에겐 더 유리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적인 마인드로는 당연히 그래야죠.”

오히려 강혜련 여사는 좋은 자세라 칭찬해 주었다.

“일단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쪽에 독점 공급하는 조건으로 100억 원 어때요?”

“예?”

동하는 깜짝 놀라 강혜련 여사를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액수가 너무 과했다.

“혹시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에요. 우린 이것으로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에요.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고 경쟁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거든요.”

그렇게 보면 솔직히 100억 원도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강혜련 여사와 서용훈 사장도 나름대로의 복안이 있었다.

그들은 사실 화장품을 만들어 나오는 수익 모두를 동하에게 주어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말 그대로 수익을 내는 것보다 회사를 지켜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하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충분히 수익을 낼 자신이 있었다.

입소문만 타면 얼마든지 초고가 정책으로 나가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사려고 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광고가 중요한데, 그건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번에는 서용훈이 입을 열었다.

“대신 우리도 조건이 있네.”

“예, 말씀하십시오.”

“50억 원은 현금으로. 그리고 나머지 50억 원은 주식으로 주었으면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흐음.”

동하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회사가 망하면 50억 원 상당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그렇다는 건 결국 50억 원 밖에 손에 쥘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나 그와는 반대로 미셜 화장품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주가가 오르면 50억 원이 또 100억 원 어쩌면 그 이상도 될 수 있었다.

‘그래 까짓 거.’

인생 뭐 있나.

동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