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아이템 연동-03 -->
계획 변경.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원래 동하는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철저히 숨길 생각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정부의 손에 끌려가 실험용 쥐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류의 멸망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있을 때였다.
처음 회귀했을 때만 해도 동하는 9성급 S몬의 위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고, 인류의 멸망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 어떤 것으로도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벙커를 짓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나 지금은 동하가 9성급 S몬이었다. 몸속에 전이된 9성급 S몬의 모든 능력을 각성시키면 지구의 파멸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혼자서 독고다이로 괴수들과 맞서는 건 한계가 있다.
자고로 한 손이 열 손을 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건 이미 필드에서 몇 번이고 경험한 일이지 않던가?
동하가 9성급 S몬의 모든 능력을 각성해서 엄청나게 강해졌다 해도 혼자서 모든 괴수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전 생애에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타난 건 3차 침공 때부터였다. 이것만 시기상으로 대폭 앞당길 수만 있어도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었다.
“동료들이라…….”
지금까지는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단어였지만,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동하를 도와줄 동료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능력자들을 각성시켜줄 결정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 필드에도 없는 것이 결정체 아니던가?
각성자들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는 다음에 필드가 재개가 되고 괴수들 심장에 결정체가 있는지 확인하고 결정할 사안이었다.
“동료들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
일단은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맞다.
그중 하나가 괴수들의 침공을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 두는 것이었다.
결정체로 무장한 괴수들에겐 보호막이 있어서 재래식 무기로는 죽일 수 없었다.
오직 괴수의 사체로 만든 무기나, 결정체로 능력을 각성한 사람만이 죽일 수 있었다.
그나마 1차 침공부터 2차 침공까지는 괴수들의 능력치가 그리 높지 않아서 사체로 만든 무기나 능력자가 없었어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70억 인구 중에 10%가 넘는 사람들이 죽는 건 물론이고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고 건물이 무너졌다.
한데, 만약 지금부터 미리 대비하고 준비를 했다가 1차 침공 때부터 사체로 만든 무기를 사용한다면 결과는 어떨까?
아마 별다른 인명 피해 없이 무사히 괴수들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1차와 2차 침공에 한해서이지만 말이다.
3차 침공부터는 괴수들의 능력이 급속도로 강해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능력자들이 나타나 괴수와 맞서 싸우는 시기이기도 했다. 길드가 생기고 정공이 생겨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만약 이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면 인류는 괴수들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싸워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것이 고민이었다.
사체로 무기를 만들어 침공을 준비하는 것과 능력자들을 각성시키는 것, 이 두 가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동하가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도 인류의 멸망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을까?”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정부와 손을 잡고 무기를 개발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기업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이전 생애에도 정부의 주도하에 괴수의 사체로 무기를 만드는 곳과 기업 중에서도 무기를 만드는 곳이 있었다.
그러니 굳이 정부에게 알린 후 침공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게 최선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어떤 곳이 더 동하에게 이득이 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하는 엄밀하게 말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었다.
사실 이전 생애에서 그들은 인류 공동의 적인 괴수들을 놓고도 서로 분열을 일으켰었다.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다가 끝내 연합사령부조차 결성하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이 사사건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고, 일본과 러시아 역시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괴수의 사체에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보니, 모든 나라에서 괴수의 사체를 확보하는 것에만 열을 올렸던 것이다.
정보 공유?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이전 생애에서는 능력자를 많이 보유한 나라가 강대국이 되었다.
때문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거액에 스카우트 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했고, 돈에 국적을 팔고 나가를 바꾸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나라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연합사령부를 결성했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능력자가 부족한 국가들이 괴수들의 손에 하나씩 파괴되고 사라졌고, 결국 최후에는 삼십여 개의 나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위기감을 느낀 인류는 그제야 욕심을 버리고 연합사령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너무 늦어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하고나 손을 잡는 일도 없다.”
정보가 곧 돈이다.
동하는 호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화론자도 아니었다.
합당한 보상이 없다면 단 한 개의 정보도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 생애에서의 정치인들처럼 욕심만 앞세우다 인류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마음도 없었다.
절충.
모든 건 상황에 따라 적절히 판단할 생각이었다.
☆ ☆ ☆
동하는 오전에 수련을 하고 오후에는 증권사 지점을 찾아가 다온텔레콤의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도, 동하야!”
통장을 받은 성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통장에 적힌 액수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소사. 이, 이게 모두 얼마니?”
“다온텔레콤에서 받은 돈도 있고,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벌기도 했고요. 아무튼, 그 돈은 모두 어머니가 쓰세요.”
“아이고, 동하야. 네가 힘들게 번 돈인데 내가 어떻게 쓰니?”
“후후! 저는 다온텔레콤에서 받을 돈이 더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그래도…….”
성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집이 망하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토록 속을 썩이던 동하가 마음을 잡더니 순식간에 집안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감회가 새로웠는지도 몰랐다.
동하는 괜히 성혜의 눈물을 보고 코끝이 찡했다.
“어머니, 당장 집부터 알아보러 다니세요.”
“그래, 그러마. 이모하고 같이 돌아다녀봐야겠다.”
성혜는 인천 지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참, 이모 식당은 잘 되고 있죠?”
“그럼. 요즘에는 돈가스 김밥하고 김치말이 국수를 먹으려고 멀리서 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단다.”
“정말 잘 됐네요.”
“너무 바빠서 주방 아주머니도 뽑았는걸.”
성혜는 주로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지만, 손님이 몰려드는 바쁜 시간에는 그녀가 김밥도 말았다.
그리고 동하의 이모 성미는 식당의 메뉴를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성혜와 거의 동업하는 형식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긴, 동하가 식당의 주 메뉴를 알려준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동하야.”
“예, 어머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난 일은 계속 하고 싶다. 요즘엔 일 하는 게 재밌기도 하도. 이 돈으로 이모 가게를 리모델링 해서 새롭게 단장하면 어떨까?”
“그 돈은 어머니 드린 것이니까 쓰고 싶은데 쓰세요.”
동하가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성미의 식당을 리모델링 해주고 싶은 건 동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전에 수정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회사에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으니 조만간 50억 원이 입금될 거란 소식을 전해왔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그만큼 다온텔레콤이 M뱅크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와 더불어 동하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튼 동하는 여러모로 금적적인 여유가 있었다.
더구나 다온텔레콤이 M뱅크를 발표하기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다.
동하는 그때까지는 돈을 은행에 넣어 두고 투자할 시기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 ☆ ☆
생각해 보면 예측 안경이 보여주는 장면의 시기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고민했던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측 안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산과 바다 같은 지역이나 장소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사람이었다.
글씨와 숫자는 예측이 불가하다고 주의사항에 적혀 있었을 뿐 사람에 대한 내용은 없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건 사람에게도 예측 안경이 통한다는 뜻이었다.
만약 예측 안경이 사람에게도 통한다면, 그건 어떤 사람의 사주팔자를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할 것이었다.
어쩌면 사주팔자보다 훨씬 더 정확할지도 모르지.
아무튼, 동하는 날이 밝자 오전 수련을 끝내고 월미도로 향했다.
가장 먼저 지역이나 장소에 대해 확인할 게 있었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게 있었던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인천에서 제일 큰 번화가였던 동인천 지역보다 한창 주안과 부평이 젊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을 때였다. 관교동 일대는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상당히 번잡하게 변해 있었다.
이런 곳은 예측 안경으로 살펴봐도 딱히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건물 한두 개 생겼다가 사라지는 건 별로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하는 대략적인 완공 시기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건물이나 조만간에 완공될 건물, 한창 개발 진행 중인 장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는 영종도였다.
당시에 영종도는 월미도에서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었다. 대신 차를 가지고 배를 탈 수 있어서 동하는 이번엔 만능 자동차를 벤츠로 바꾸었다. 벤츠 중에서도 최고급 모델이었다.
주변에 여자들이 힐끔힐끔 동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가벼운 옷차림에 짐을 한 가득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친구들끼리 해수욕장에 가는 것 같았다. 얼핏 텐트도 보인다. 하긴, 이 시기만 해도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보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을 때였다.
아무튼 동하가 살짝 말이라도 걸면 그녀들은 동하에게 바로 넘어올 분위기였다.
‘아서라.’
이전 생애에서는 그런 맛에 살았던 동하였다.
하지만, 이젠 누군가를 만나도 진지하게 만나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 철이 들기도 했겠지만, 지구 멸망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한 동하는 하나의 작은 인연이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싶었다.
부아아앙!
영종도에 내리자마자 동하는 액셀을 밟고 차를 몰았다.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설 자리는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차 공사가 마무리 되려면, 1년이라는 공사기간이 조금 더 남아 있었다.
예측 안경으로 시기를 확인하기에는 최고의 대상이었다.
“응?”
지금 진행하고 있는 1차 공사가 마무리 되어 완공된 공항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10년 정도 후에 2차 개발이 완공된 공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10년이 넘는 건 예측하지 못한다는 뜻이겠군.”
이것으로 범위는 조금 좁힐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범위가 너무 넓었다.
동하는 영종도를 나와 문학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문학경기장을 짓고 있었다.
문학경기장은 완공이 되려면 2년 하고도 몇 개월의 시간이 더 있어야만 한다. 인천국제공항에 비해 공사기간이 1년 정도 더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었다.
“아!”
동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예측 안경에 보이는 문학경기장의 모습이 완전하지 않았다.
“2년 안팎이로군.”
이것으로 예측 안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하루 종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예측 안경이 보여준 수정의 저택 붕괴가 괴수들과 관련이 있다면, 1차 침공이 5년이란 시간에서 2년으로 앞당겨졌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저택의 붕괴가 괴수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왠지 불길한 생각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조건 서두르는 수밖에.”
동하도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젠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기 보다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법의 용광로로 사체를 연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아마 기업과 손을 잡으면 이런 쪽에서는 훨씬 연구가 빨리 진행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동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대한그룹이나 다온그룹과 조금이나마 인맥이 있다는 것. 다온그룹은 사업적인 파트너 관계로 꽤나 친밀하지만, 아쉽게도 다온그룹은 계열사 중에 방위산업과 관련된 사업체가 없었다.
대한그룹은 그저 서유경을 알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대한그룹은 ‘대한텔레스’라는 군수산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그룹과 다온그룹에는 각각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물론 두 개의 재벌기업이 동하가 생각하고 있는 기본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바로 그들과 사업을 논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