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53화 (53/167)

<-- 53화 : 아이템 연동-02 -->

동하가 본 것은 폭탄을 맞은 듯 처참한 광경이었다.

성처럼 화려하고 거대하던 수정의 저택은 형상을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그 자리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동하는 조금 더 알고 싶었지만, 예측 안경은 그 이상의 정보는 보여주지 않았다.

“분명 일부 건물 잔해들이 남아 있었어.”

이건 건물이 붕괴된 흔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설령 가스가 폭발해도 거대한 저택이 한순간에 폐허로 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 미사일이나 폭탄이 터질 리는 만무한 일.

“천재지변도 아니야.”

동하가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다른 곳은 모두 멀쩡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도대체 뭐지?”

동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택이 이렇게까지 폐허로 변했다면 수정을 비롯해서 그녀의 식구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예측 안경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적중률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는 게 좋겠지.’

동하는 안경을 벗었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 다시 안경을 썼다. 그리고 최대한 염력을 끌어 올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염력의 관건은 정신력 집중이었다. 모든 집중을 눈으로 모아 예측 안경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약간 다른 점이 있긴 있었다.

처음에 확인했을 때는 저택이 있는 곳이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면 지금은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물 잔해들이 조금이나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흐음.”

건물이 붕괴되고 저택이 폐허로 변하는 건 확실했다.

하나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는지는 잠직조차 되지 않았다.

“이게 리모델링의 흔적일 리는 없잖아?”

멀쩡한 저택을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이런 식의 리모델링은 머리털 나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혹시?”

동하는 불현 듯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괴수들의 출현.

그것들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정체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더구나 동하는 혹시라도 5년 후에 벌어질 괴수들의 침공이 훌쩍 앞당겨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지 않던가?

“아차!”

그제야 동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정확한 시기였다.

예측 안경이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게 언제부터 적용이 되는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1년 후가 될지, 아니면 5년 후가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일 당장 폐허로 변할 수도 있었다.

동하는 수정이 걱정이 되었지만,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하면 예측을 한 보람이 없어진다.

“젠장, 예측 시기라니…….”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동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은 당장 폐허로 변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 ☆

동하가 집에 들어온 건 12시가 넘어서였다.

그리고 필드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이후 4일만의 귀가였다.

마침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어?”

아무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성혜가 일을 끝내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미진은 수험 공부 때문에, 그리고 미현은 여름방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니? 연락을 해도 전화도 안 받고.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죄송해요, 어머니. 일이 좀 바빠서 연락한다는 것도 깜빡했어요.”

이전 생애에서라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오는 건 이전 생애에서 개망나니로 살던 동하의 특기 중 하나였다. 그러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였다.

성혜는 물론이고 미진과 미현은 슬슬 걱정하고 있었다. 혹시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예전의 개망나니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동하의 모습에 그녀들은 그제야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사고를 친 것 같지는 않았다.

“오빠,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데 연락도 못할 정도로 바쁜 거야?”

“미현이가 오빠 걱정 많이 한 모양이네.”

“그야 당연하지. 오빠가 또 어디 가서 사고나 치지 않을까…… 읍!”

미현은 말을 하고도 깜짝 놀라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핫핫! 괜찮아. 내 과거가 있는데 하루나 이틀 만에 없어지겠니?”

동하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이 시간까지 다들 잠 안자고 뭐하고 있어?”

“오빠 기다렸지.”

“오빠가 계속 안 들어오니까 걱정이 얼마나 걱정했는데. 앞으로 또 한 번만 그랬단 봐?”

“아이쿠, 미안합니다요. 앞으로는 꼭 연락하고 다니겠습니다요.”

동하는 앓는 소리를 하며 손을 싹싹 빌었다. 그 모습에 세 여인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지하 골방에는 훈훈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근데, 오빠? 뒤에 종이 가방은 뭐야?”

“참, 이거.”

동하가 종이 가방 세 개를 내밀었다.

“어? 핸드폰이네?”

“누가 쓰라고 준 거야.”

“진짜? 핸드폰 세 개를 전부 다?”

“우와! 이거 다온전자에서 나온 최신 핸드폰이네.”

미진과 미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후후! 그런 게 있다.”

사실은 수정이 동하에게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원래는 동하의 부모님 몫 두 대를 더 해서 모두 3대를 가져왔던 것인데, 동하는 이미 사용하는 핸드폰이 있어서 바꿀 생각이 없었다.

동하는 핸드폰을 선물 받고 느끼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동생들은 핸드폰이 없었다. 집이 망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모두 해지했던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한 달에 만 원 이상 하는 핸드폰 요금은 그녀들에게 사치였다. 한데도 동하만이 계속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이전 생애에서 얼마나 동하가 인생 막장으로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안에는 멤버십 카드도 들어 있었다. 일종의 법인 명의의 핸드폰으로 요금은 다온텔레콤 측에서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요금 걱정은 하지 말고 팍팍 써도 돼.”

“오, 오빠! 이거 정말 다온텔레콤 법인 폰이야?”

“그렇다니까.”

동하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세 명의 여인은 어지간히 놀란 모습으로 반문했다.

“오빠가 어떻게 다온텔레콤의 법인 폰을 가지고 있어? 그것도 세 개씩이나?”

그녀들은 자세히는 몰라도 회사의 임원은 되어야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설령 그게 아니어도 직원도 아닌 동하에게 법인폰을 줄 리 없었다.

“거기 멤버십 카드 보이지?”

“이거?”

“너희들 멤버십 카드가 뭔지는 알고 있지?”

“응. 광고에서 보니까 영화 볼 때도 할인 받고 편의점에서 물건 사도 할인 받고 하던데, 그거 맞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좋았다.

특히 편의점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다온편의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멤버십 카드가 사실은 오빠 아이디어거든. 핸드폰은 다온텔레콤에서 감사 차원에서 준 거고.”

“지, 진짜?”

이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을 자신들의 오빠가 만들었다니.

오빠가 이렇게 능력이 좋고, 똑똑했었나?

미진과 미현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그럼, 오빠 다온텔레콤 직원이 된 거야?”

“제의가 들어오긴 했는데, 싫다고 거절했다.”

“뜨악! 오빠, 미쳤어? 그걸 거절하면 어떡해?”

“맙소사! 요즘 취직하기가 어렵다고들 다들 얼마나 난린데.”

미진과 미현은 크게 아쉬워했고, 성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속내도 미진과 미현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하가 속으로 웃었다.

그녀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수정의 저택 문제 때문에 다소 마음이 무거운 동하였다.

예측 시기를 알아낼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더 고민이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염력을 이용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예측 시기를 알아내야만 한다.

어디 그뿐인가?

멸망을 대비한 플랜을 새롭게 짜야 해서 앞으로 더 바빠질 게 뻔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족들을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돌아 다닐 수는 없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전 생애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부터 하나씩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어머니, 내일 저하고 집 좀 알아보러 가요.”

“우리 형편에 그게 무슨 소리니?”

“돈은 신경 쓰지 마세요. 아파트 몇 채 살 돈은 있으니까.”

“뭐, 뭐라고?”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느닷없이 성혜의 놀란 목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뒤를 이어 미진과 미현의 경악 어린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 ☆ ☆

-미셜 화장품 이대로 침몰하는가?

지난 6월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신규 브랜드 론칭으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지금까지 시장반응은 참혹할 정도로 썰렁하다. 백화점에서도 처음으로 매장을 철수하는 곳이 발생하는 등 전혀 신규 브랜드 출시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여성잡지 7월호 김성은 기자)

-미셜 화장품 2분기 실적 –10% 어닝 쇼크 충격.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시장 잠정치를 크게 밑도는 기록적인 영업적자에 더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력한 제품 다변화 및 관리 전략의 부재를 그 이유로 꼽지만 너무 비싼 가격에 고객들의 구매의욕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경제TV 김승대 기자)

-대한그룹의 발목 잡는 미셜 화장품. 끝내 코스닥의 발목도 잡나.

대한전자를 필두로 대한그룹 계열사의 주식이 3일 연속 일제히 급락했다.

코스닥 시장도 덩달아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전날 무려 –2.51%를 기록한 데 이어 오늘도 1.65% 떨어져 불안감을 더해가고 있다. (매일신문 최재현 기자)

모든 기사가 미셜 화장품의 내용으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결코 유쾌한 내용의 기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태훈 사장은 신문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대한건설의 사장이었다.

하나 최근에 이렇게 기분 좋은 기사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대한그룹은 세 명의 형제들이 치열하게 후계자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세간에는 왕자의 난이라 불릴 정도였다.

서태훈은 대한그룹의 장남이었지만, 항상 둘째인 서용훈 사장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했던 서태훈이지만, 서용훈 사장 체제에 이르러 대한전자가 크게 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요 근래 점점 불안함을 느껴가던 서태훈이었다.

왠지 서열 구도에서 크게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데, 서용훈 사장이 알아서 헛발질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었다.

이것으로 서용훈 사장을 대한전자에서 끌어내릴 방안도 만들어진 상태였다.

지금 이대로는 미셜 화장품을 계속 끌어안고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헐값에 매각을 시도하려 해도 마땅한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긴, 머리에 총을 맞지 않고서야 영업적자가 –10%를 기록한 곳을 누가 사려고 하겠는가?

그렇다고 미셜 화장품을 청산하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가끔 대기업 중에서도 계열사를 청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한그룹의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일등이란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었다.

더구나 미셜 화장품의 직원들은 물론 투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게 뻔해서 반발 움직임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당장 서용훈 사장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를 게 틀림없었다.

이래저래 서태훈 사장에겐 희소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좋군. 왠지 오늘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

☆ ☆ ☆

서용훈 사장과 강혜련 여사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반전을 모색하기 위해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강수까지 두었는데 오히려 특수를 누리기는커녕 백화점에서 철수하는 점포가 발생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 미안해요 여보!”

“흐음.”

집안의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져갔다.

처음 미셜 화장품 사업을 언급한 사람은 강혜련 여사였다.

하지만, 대한그룹의 일등 이미지에 맞게 초고가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서용훈 사장이었다.

그러니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여보,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글쎄.”

서용훈 사장의 역량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만큼 상당히 뛰어났다.

대한전자가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는 데는 서용훈 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지금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매각과 청산.

미셜 화장품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중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든 엄청난 악재로 다가올 게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서태훈과 서정훈이 이 같은 기회를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했다.

그들은 분명 미셜 화장품 사태를 최대한 키워서 서용훈 사장의 리더십에 흠집을 만들 게 뻔하다.

어떻게 보면 미셜 화장품이나 곤두박질치고 있는 주가보다도 서태훈과 서정훈의 공격이 더 걱정되는 일이었다.

유경은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 같아서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웃고 노는 것도 미안할 정도였다.

그녀는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지만, 아직 학생의 신분인지라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동하 씨는 혹시 방법을 알고 있을까?’

관상에도 능통하고 여러 가지 재주에도 능한 동하였다.

게다가 메이크업 기술도 거의 마법사처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지 않던가?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건 동하가 건네준 화장품 샘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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