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51화 (51/167)

<-- 51화 : 본격적인 멸망 대비 프로젝트-02 -->

“3억 원이라고요?”

“워낙 잉크의 양이 많아서 그것들을 모두 처분하는데 꽤 어려웠습니다.”

동하는 차 안에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굳이 금액을 숨기지 않았다.

수정은 얼마나 놀랐던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저, 정말 놀랍네요. 다 쓴 잉크가 그렇게 돈이 많이 될 줄은 몰랐어요.”

“가끔 쓰레기도 돈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설마 재벌 손녀가 다 쓴 잉크를 수거해서 팔려는 건 아니죠?”

“그런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수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동하는 정말 돈을 버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누가 다 쓴 잉크를 수거해 3억 원을 벌 수 있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동하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 3억 원을 다온텔레콤에 투자해서 60%의 수익을 얻은 것이다.

동하가 주식에 투자할 때만 해도 다온텔레콤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연일 신저가를 새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데도 결국 주식이 오를 걸 예상하고 모든 돈을 몰빵해서 5억 원을 투자했으니 대단하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참, 잉크들은 잘 모아두고 있죠?”

“계열사와 협력업체에 버리지 말고 모아 두라고 지침을 내렸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동하가 수거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으니 앞으로 두 달 정도만 더 기다리면 또 다시 엄청난 양의 잉크가 나올 것이었다.

“인천은 와 본적 있어요?”

“음…… 월미도는 가본 적이 있어요.”

“그럼 송도에 한 번 가 봐요.”

“송도라면 들어본 적 있어요. 혹시 송도 유원지?”

“후후! 그건 애들이 소풍 가는 곳이고.”

동하가 차를 몰고 간 곳은 송도 유원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10년 뒤에 송도 신도시가 들어설 곳이지만, 지금은 도로를 따라 푸른 바다가 끊임없이 물결치며 찰랑거리고 있었다.

동하도 회귀하고 나서 이곳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길을 따라 걸었다.

이곳은 차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아서 운전 연습하기에 나름 괜찮은 장소였다.

“오래 만에 오니까 좋네. 수정 씨, 혹시 재벌 손녀를 뙤약볕에서 걷게 했다고 속으로 욕하는 건 아니죠?”

“칫, 그 정도 개념은 있거든요?”

수정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데이트 하는 기분도 나고 기분이 좋았다.

“동하 씨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뭐가요?”

“나이는 분명 나보다 어린데 이상하게 큰오빠처럼 든든한 기분이 들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수정 씨 진짜 짱이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지만 사실 서른여덟 살까지 살다가 회귀를 했거든요.”

“풉!

수정이 빵 터진 나머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 진짜인데. 그러니까 편하게 큰오빠라고 불러도 된다는 뜻이에요. 어서 오빠라고 불러보렴, 수정아!”

“와! 동하 씨, 은근슬쩍 말도 놓고. 이제 보니 완전 선수네.”

“이거야 원. 이게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진실을 진실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네.”

“푸웁!”

수정은 이제 눈물을 흘려가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들어 이렇게 마음 놓고 웃고 떠든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단순히 내 얼굴을 보려고 인천까지 내려온 것 같지는 않고. 혹시 주가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야 뭐. 택시를 타고 인천까지 올 정도면 급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일 테고, 다온텔레콤에겐 지금의 호재를 이어갈 마땅한 성장 동력이 없잖아요.”

“동하 씨는 정말…….”

수정은 할 말을 잃었다.

동하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가지가 빠졌어요.”

“예?”

“혹시 다온텔레콤에 입사할 생각 없어요?”

☆ ☆ ☆

한 마디로 낙하산이었다.

수정은 동하를 본부장 직속 부서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요즘은 취업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시기였다.

막말로 이력서를 100통은 넣어야 겨우 취직이 될까 말까한 상황이었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취업이 어려웠고, 자격증을 몇 개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 학생에게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만큼 수정은 동하의 능력과 재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일 터였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놓을게요.”

수정은 당연히 동하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동하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혹시 조건이 약해서 그런가요? 원하시면 학교 다닐 수 있도록 출근 시간을 조정해 줄 수 있어요. 등록금도 장학금 형식으로 일체 지원해 줄게요.”

확실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고마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쨌거나 수정은 동하의 능력을 알아봐준 셈이었다.

이전 생애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묘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 동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마찬가지에요.”

순간 수정이 크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수정 씨 제안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럼요?”

“흐음. 아까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있다고 했죠?”

“아!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혹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돼요?”

“그건…… 때가 되면 알려 줄게요.”

지금은 화장품 사업에 관해 알려줄 상황은 아니었다.

다온그룹의 계열사 중에서 생활건강 파트가 있었다.

여기에서 화장품도 만들고 샴푸나 비누 등도 만들고 있었지만, 화장품과 관련해서는 미셜 쪽을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신 나에게 다온텔레콤의 성장 동력이 될 만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어요.”

“지, 진짜요?”

“물론 공짜로는 어렵다는 거 알죠?”

“그거야 당연하죠. 이번에는 어떤 걸 원하세요?”

수정의 눈빛이 어느새 적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지 않던가?

동하는 결코 허튼 소리는 하지 않았고, 그의 입에서 ‘성장 동력’이란 구체적인 단어가 나왔을 때는 분명 멤버십 카드에 버금가는 엄청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자리를 옮길까요?”

“그래요, 그럼.”

데이트 아닌 데이트는 그렇게 끝났다.

☆ ☆ ☆

동하는 차를 몰고 송도 유원지 근처로 향했다.

이제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카페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M뱅크라고요?”

“쉽게 말하면 핸드폰으로 은행 업무를 본다고 생각하며 됩니다.”

동하가 꺼낸 아이디어는 바로 M뱅크란 것이었다.

M뱅크.

인터넷뱅킹의 초창기 버전으로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전 생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앞으로 1년 정도 후에 출시가 되고 2,3년 내에 모든 통신사와 은행이 사활을 걸고 뛰어드는 사업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M뱅크 전용 핸드폰이 따로 필요했다.

M뱅크 전용 핸드폰에 칩을 끼우면 계좌이체나 잔액조회 등 간단한 업무를 핸드폰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었다.

통신사가 은행과 제휴를 맺으면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는 셈이었다.

특히, 전국 각지에 지점이 많은 곳일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이전 생애에서는 약간의 제약이 있었다.

우선 은행 업무를 사용할 전용 칩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과 제휴를 맺어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제휴가 활발하지 못해서 통신사와 은행이 각각 한곳 밖에 제휴를 맺지 못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다온텔레콤이 A라는 은행과 제휴를 맺고 M뱅크 전용 단말기를 만들었다면 다른 은행과는 제휴를 맺을 수 없었다. 그건 은행 역시 마찬가지여서 다온텔레콤과 제휴를 맺고 또 다시 새경텔레콤과 동시에 제휴를 맺지 못했다.

하나 지금 굳이 이렇게까지 구분해서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을까?

시장을 몇 년 앞당겨서 선점하는 것이니 모든 은행과 제휴를 맺고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었다.

“어때요?”

“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죠?”

“M뱅크를 주식 쪽과도 연계를 하면 파급효과가 더 커질 겁니다.”

“아!”

수정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은행에 가지 않고도 핸드폰으로 돈을 보내고 업무를 볼 수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으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짜릿해지는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경제적인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 같았다.

아니, 단순하게 파급효과만 생각할 게 아니었다.

성장 동력이 확실한 사업이었고, 통신업계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온텔레콤의 주가도 엄청나게 오를 게 틀림없었다.

‘대단해. 정말 놀라워.’

수정은 이제 놀라다 못해 경이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아직 한국에는 무선인터넷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동하는 그보다 한 발 더 앞서서 생각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이 못내 놀라운 수정이었다.

은행과 주식.

이건 무조건 되는 사업이었다.

이제 만년 꼴찌에서 벗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새경텔레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점유율이 오를지도 몰랐다.

관건은 무선인터넷이었다.

다행히 최근에 일본 쪽에서부터 무선인터넷이 유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통신사들도 한창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빠르면 2개월. 늦어도 6개월 안에 출시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당연히 무선인터넷을 시작함과 동시에 M뱅크 서비스를 내놓으면 그 효과가 더욱 커질 터였다.

“동하 씨, 정말 고마워요.”

“후후! 고맙기는 제가 더 고맙죠. 공짜도 아닌데요, 뭘.”

이번에는 대가를 비싸게 불렀다.

무려 50억 원이었다.

아이디어 값으로는 엄청난 액수였다.

아마 다른 회사 같으면 단박에 거절했을 것이었다.

분명 아이디어만 쏙 빼먹고 토사구팽 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은 그런 얄팍한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동하의 가치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그리고 M뱅크 사업으로 다온텔레콤의 이미지가 크게 상승하고 점유율도 껑충 뛰어오르면 50억 원의 몇 십 배는 더 벌고도 남을 터.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동하는 처음에 100억 원을 불러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번 한 번으로 사업을 끝낼 사이도 아니고 그에겐 몇 개의 아이디어가 더 있었다. 나름 절충했던 것이다. 물론 다온텔레콤의 주식이 오르면 그쪽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다온텔레콤의 주식이 큰 폭으로 오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동하가 나서서라도 주식이 껑충 뛰어 오르게 만들면 된다.

‘일단 주식은 빼놔야겠군.’

그랬다가 나중에 50억 원을 받으면 M뱅크 관련 사업을 발표하기 바로 직전에 모든 돈을 몰빵할 생각이었다.

‘서두르는 게 낫겠지?’

애초에 3년 안에 벙커를 완성할 생각이었다.

하나 남궁혜가 얻어온 정보에 따르면 느낌이 뭔가 좋지 않았다.

문득 동하는 남궁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필드가 중단된 이유가 괴수들 심장에 결정체라는 것을 심어 놓고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래요.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정확하지 않아요. 판타지 종족이 얻은 정보에는 결정체 속에 모든 능력을 넣을 수 있다고 하고 다른 종족에서 얻은 정보에는 서로 충돌이 있어서 실험 자체가 실패했다고 하고.”

어렵게 얻어온 정보였지만, 정작 남궁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사실 결정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순간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놀랐다.

결정체라니.

이것이야 말로 필드 속의 괴수와 지구를 침공했던 괴수들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벌써 결정체가 완성 된다고?’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이전 생애에서는 5년 뒤에 1차 침공이 일어나는데, 이대로라면 몇 년은 앞당겨질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부터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벙커를 빠른 시일 안에 지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까지 동하는 인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척이나 수동적인 생각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9성급 S몬의 위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동하였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9성급 S몬을 막을 수 없었다. 인류의 멸망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동하가 바로 9성급 S몬이기 때문이다.

아직 9성급 S몬의 능력이 모두 발현된 것은 아니지만,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단순히 벙커를 만들고 가족들과 몇 년 동안만이라도 단란하게 사는 게 삶의 목표가 아니었다.

가족들이 죽지 않고 지켜줄 방법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멸망 대비 프로젝트의 방향도 바뀌어야 정상이었다.

아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서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멸망 대비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동하 씨?”

“예?”

“무슨 생각을 하는데 몇 번을 불러도 못 듣는 거예요?”

“아, 미안합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눈앞에 수정이 있는지도 잊고 있었다.

“쳇,”

수정이 잠시 입술을 삐죽였다.

자신 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앞에 두고 딴 생각에 빠져 있을 줄이야.

왠지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이번 한번만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아이디어도 있다고 했죠? 그것도 말해 주면 안 될까요?”

“후후! 나중에요. 일단 하나씩 하죠.”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른 통신사를 찾아가 아이디어를 확 풀어 버릴 겁니다.”

“노,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다른 아이디어의 파급 효과가 더 높을 거라는 걸 말입니다.”

“약속은 꼭 지킬 거예요.”

다른 아이디어가 파급효과가 더 높다는 말에 수정은 기가 질렸다.

도저히 동하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건 뭐 화수분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아이디어가 저렇게 많을 수가 있지?’

동하가 다른 통신사에 간다는 것처럼 무서운 말도 없었다.

멤버십 카드에 이어 M뱅크까지.

동하가 보여준 아이템은 겨우 2개에 불과하지만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동하에 의해 통신사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였다.

만에 하나 위에서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녀가 가진 주식을 팔아서라도 무조건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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