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본격적인 멸망 대비 프로젝트-01 -->
다온텔레콤이 내놓은 멤버십 카드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출시 한 지 이제 겨우 보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젊은 세대들 중에서 다온텔레콤의 멤버십 카드 혜택을 활용해서 데이트 비용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온텔레콤은 연일 광고를 통해 멤버십 카드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언론에서도 ‘꼴찌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는 등 멤버십 카드의 혜택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다루었다.
바닥에 떨어졌던 다온텔레콤의 상황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올드하고 보수적이던 이미지 또한 개선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최근에는 N세대라 불리던 젊은 층의 유입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번 달 들어서는 처음으로 새경텔레콤을 제치고 가입자 순증 비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당연히 그 효과는 주가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주식 차트의 그래프도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새경텔레콤에서 부랴부랴 맞불 작전을 펼치기 위해 멤버십 카드를 내놓았지만, 그리 큰 이슈를 몰고 오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장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제과업체 등 대부분 쓸 만한 제휴업체는 이미 다온텔레콤이 선점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고작 멤버십 카드 하나가 이렇게까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그의 상상을 몇 배는 더 뛰어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가 멤버십 카드 출시를 허락한 이유는 바닥까지 떨어졌던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작은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와, 주주총회에서 수정을 본부장으로 밀어주려는 의도에서였다.
아무튼, 멤버십 카드의 효과는 고스란히 주주총회에까지 이어졌다.
김선일에게 기울었던 주주들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수정에게 힘을 실어 주면서 새로운 본부장으로 수정을 추대했다.
가히 압도적인 표 차이라 할 수 있었다.
한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심 욕심이 생겼다.
한두 가지의 성장동력만 더 있다면 다온텔레콤은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치고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지긋지긋한 만년 꼴찌에서 벗어나는 건 물론 새경텔레콤과의 경쟁도 충분히 해볼 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멤버십 카드에 이은 확실한 성장 동력이 없는 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주가만 해도 그랬다. 연일 신저가 치던 주식이 멤버십 카드 발표 이후 10일 넘게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다 최근 3일 동안 조정을 받고 10% 가량 떨어진 상태였다.
멤버십 카드를 발표하기 전과 비교하면 60%가량 주가가 올랐지만, 시장에서는 다온텔레콤에게 미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더 요구하고 있었다.
새경텔레콤에서도 멤버십 카드를 발표한 이상, 다온텔레콤이 언제까지 젊은 층의 지지를 계속 이끌어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다온텔레콤에서 확실하게 호재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주가는 또 다시 조정을 받아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성장과 추락.
지금 다온텔레콤은 극과 극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 본부장 일은 할 만하더냐?”
“아직은 배우고 있는 단계에요.”
“기획만 맡다가 막상 이런저런 실무를 처리하려다 보면 힘이 들기도 할 게다.”
“그래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선일이는 어떻더냐?”
“오빠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그 아이는 가급적 믿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지금은 웃으면서 너를 대하고 있어도 언제든 네 등에 칼을 꽂을 아이다.”
아마 이번 주주총회에서 가장 배신감을 느꼈을 사람도 바로 김선일이었다.
그토록 믿었던 주주들이 절반 이상 배신을 하고 수정을 밀어주었으니 아마 그 성격에 지금쯤이면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을 게 뻔했다.
한데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정을 돕고 있다면 얼마나 지독하고 교활한 성격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선일이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네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
“입지라고 하시면……?”
“아마 선일이는 사사건건 네 일을 방해할 게다. 어쩌면 끊임없이 실적을 만들어 계속 너를 압박해 들어올지도 모르지. 함정을 파고 너를 끌어 내리려고 할지도 모른다.”
수정도 한 회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사업적인 면에서는 김선일이 그녀보다 더 뛰어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멤버십 카드만 해도 그랬다.
최근 조정을 받고 있는 주가를 보면 멤버십 카드 효과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정이었다.
그 이후에 확실한 후속 대책으로 쐐기를 박아야만 했다.
주주들이 원하는 것이 그런 것이었고, 그녀 스스로도 본부장이 된 이후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멤버십 카드는 동하의 아이디어였지 않던가?
제휴업체를 선정하는 것부터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까지 동하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하진 못했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동하 씨는 무얼 한다고 전화도 잘 안 받는 거지?’
수정은 회장실을 나와 전화를 꺼내 들었다.
멤버십 카드의 성공 이후 가장 먼저 동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마다 동하는 수련을 한다고 전화를 받지 못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필드에 가서 레이드를 뛰었다가 다시 만물상점에 가서 남궁혜에게 무림 종족 언어를 배운다고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 ☆ ☆
“젠장!”
김선일이 사무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들고 있던 서류를 집어 던졌다.
사사건건 수정에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 처지는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이번에야 말로 다온텔레콤을 집어 삼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주주들 대다수의 마음도 거의 김선일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게다가 최근 다온텔레콤은 협력업체 강매사건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었는데, 김선일이 구원투수처럼 짜잔 하고 등장만 하면 모든 게 끝나는 일이었다.
구체적인 방법도 있었다.
그는 옥슨과의 합작 건을 놓고 발표를 앞두고 있었고, 이것으로 다온텔레콤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한데, 그것이 눈앞에서 틀어지고 만 것이다.
멤버십 카드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획이었다.
그리고 멤버십 카드의 효과가 이렇게까지 좋을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완패도 이런 완패가 없었다. 주주들이 변심을 하고 수정을 지지한 것을 마냥 배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이대로 무너질 김선일이 아니었다.
수정의 앞에서는 진심인 척 그녀를 축하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한 회장의 외손자인 김선일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게 뻔했다.
이번에만 해도 그랬다. 다온텔레콤이 과징금을 받고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김선일이 공정위에 은밀하게 정보를 흘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두고봐라. 반드시 그 계집을 끌어내리고 말겠다.”
그의 눈빛이 하이에나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 ☆ ☆
“60% 이상 올랐네?”
동하가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은 주식이었다.
다온텔레콤이 멤버십 카드를 발표하고 10여일 정도가 지난 상태였다.
그동안은 필드에 전념한다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
그게 지금 60% 이상 오른 것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투자원금이 5억 원이었는데, 그새 시세차익이 3억 원이 생겨 총 보유주식 가치가 8억 원으로 늘어난 셈이었다.
하지만, 3일 전까지만 해도 주가는 70% 넘게 올라갔다가 지금 3일 연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였다.
그에 반해 새경텔레콤의 주가는 지난 10일 넘게 떨어졌다가 최근에 와서 서서히 회복해 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약발이 끝났다고 봐야 하나?”
동하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고작 십 여일 사이에 3억 원을 벌었으면 엄청난 것이었다.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몇 년을 노력해도 벌기 힘든 돈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호재가 있는데도 벌써 조정을 받고 있는 게 내심 어이가 없었다.
52주 신저가를 다시 쓴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치고 올라갔어야 정상이었다.
동하는 새삼 다온텔레콤이 만년 꼴찌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뭔가 하나만 더 터져주면 좋겠는데. 도대체 다온텔레콤에는 인재들이 없나? 어떻게 하는 일이 죄다 이 모양이냐?”
이러니 ‘개잡주’란 소리를 듣지.
동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전에 동하가 투자했던 제약회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주식이란 호재가 생겨나면 무조건 오른다.
사전에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게 주식이란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문제였다. 언제 어느 기업에서 어떤 호재가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그게 언제 쯤 생겨났지?”
동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의 기억이 맞는다면 대충 2,3년 정도 후에 생겨나는 것들이 있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따르릉!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도대체 무슨 남자가 그래요?
“수, 수정 씨?”
-나 참. 그동안 얼마나 전화했는지 알아요?
“아, 미안해요. 내가 요즘 바쁜 일이 있어서 전화 받을 형편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발신번호표시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전화가 온 건 알아도 누구에게 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미안하죠?
“예?”
-그럼, 우리 지금 만나요.
“아, 지금도 조금 바쁜데.”
“내가 동하 씨 있는 곳으로 갈게요. 거기 어디에요?”
“여기 인천인데.”
“이, 인천이요?”
당장이라도 올 것처럼 얘기하던 수정이 순간 움찔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경인고속도로만 타면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기였다.
모르는 곳은 지도를 보고 알음알음 찾아가던 시기였기에 상대적으로 여자들과 길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차를 몰고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 갈게요. 그러니까 우리 만나요.”
“오는 거야 상관없지만, 괜찮겠어요?”
동하는 곧 죽어도 자신이 서울에 올라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 ☆
자고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당장 아쉬운 쪽은 수정이었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인천에 내려왔다.
이때만큼은 동하도 적잖이 놀랐다. 재벌 손녀가 기사도 대동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온 건 솔직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떻게 택시를 타고 와요?”
“헤헤! 그냥…… 조용히 할 말이 있어서랄까?”
엄밀하게 말하면 한 회장의 귀에 들어갈까 싶어서였다.
만에 하나 그녀가 동하를 만난다는 사실을 한 회장이 알면 괜히 동하를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래요, 뭐. 인천까지 온다고 고생 했어요.”
“쳇, 앓느니 죽지.”
수정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솔직히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다온그룹의 공주로 통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남자들조차 그녀에게 오라 가라 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동하가 특별하게 생각되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전화만 몇 번 하고 얼굴을 보는 건 한 달도 넘은 것 같았다.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근데, 동하 씨 집이 인천이었어요?”
“예.”
“아, 정말 몰랐어요. 우리 회사에 잉크를 수거하러 와서 당연히 서울에 사는 줄 알았죠.”
수정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혹시나 동하가 여자 친구와 인천으로 바람을 쐬러 갔으면 어쩌나 싶어 은근히 마음을 졸이면서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어쩐 일입니까?”
“설마 이렇게 길거리에 세워놓고 말하자는 건 아니죠?”
“아차. 내가 요 며칠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빨리 집에 들어갈 생각에 정신이 없네요.”
“정말 많이 바빴던 모양이네요.”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요.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길까요?”
동하는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시켜 놓았다.
“타요.”
“어머?”
수정이 동하의 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노란색 페라리였다.
동하는 인천에 내려오기 직전에 청담동 일대를 돌아다녀 벤츠와 페라리를 각각 한 대씩 복사했다.
내부나 외관은 모두 똑같고 번호판만 경차의 것으로 바꾸었다.
차를 복사하게 되면 번호판까지 그대로 복사가 되는데, 그럼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하긴, 이 상태로 사고가 생겨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번호판을 경차 번호판으로 바꾸면 적어도 책임 주체자는 동하가 된다.
“뭐해요, 어서 타지 않고.”
“예? 아, 예.”
수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경제적인 여유가 되면서도 힘들게 잉크를 수거하러 다녔던 거예요?”
자칫 물어보는 게 실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동하의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하는 다른 자동차를 복사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서 대충 둘러댔다.
“잊었어요? 다온텔레콤 주식에 몰빵했잖아요.”
“아! 그랬었지. 제법 돈을 버셨겠네요. 한데 도대체 얼마를 투자했기에……?”
“어디 보자……. 이거저거 다 해서 5억 원 정도 투자를 했군요.”
“우와! 동하 씨 생각보다 꽤 능력자시네. 집안이 생각보다 넉넉하시구나!”
부모님 돈으로 투자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비롯해서 재벌 2,3세들이 모두 그렇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 리가요. 최근 두 달 정도 바싹 일해서 번 돈입니다.”
“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