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예측 안경 -->
“결정체?”
“바로 그렇네. 이제부터 이 결정체로 괴수들의 등급이 정해질 걸세. 아마 두 가지 이상의 복합 능력을 괴수에게 심어주는 것도 가능할 것 같네.”
“맙소사. 드디어 성공하셨군요, 박사님!”
시얀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타누스 박사의 손에 있는 손가락 크기만 한 모양의 결정체를 쳐다보았다.
그것이 바로 결정체였다.
타누스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 조그만 결정체 안에는 10년의 내공과 불사 종족의 방어막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방어막의 강도는 겨우 10% 수준으로 그리 높진 않았지만, 지금이 실험 단계임을 생각하면 그것조차도 대단한 일이었다.
“어, 엄청나군요.”
시얀은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결정체를 괴수의 심장에 이식을 해서 그 성능을 실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누스 박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결정체를 실험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결정체를 이식하면 괴수들의 능력이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자면 괴수들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한데, 그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괴수들에게 내공만 있고 무공초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정체 안에 무공초식을 넣어 보려고 했지만, 그것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체 안에 마나를 집어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법 주문서를 함께 넣는 부분에서 계속 오류가 발생했다.
결국 이게 무슨 소린가?
내공은 있는데, 초식은 사용할 수 없으며 마나는 있지만, 마법 주문을 걸 수 없는 것과 똑같았다.
“반쪽짜리로군요?”
“그런 셈이지.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정체도 큰 빛을 보지 못할 걸세.”
“흐음.”
시얀이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시얀이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박사님, 방법이 있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인가?”
“괴수들의 머릿속에 소프트웨어를 깔아주면 어떻겠습니까?”
“소프트웨어?”
“솔직히 내공만 있으면 위력이 반감되지 않겠습니까? 무공 초식을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자동으로 괴수들이 무공 초식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
“초식이나 마법 주문이 담긴 소프트웨어를 괴수의 몸에 심고 그 능력들을 필요할 때마다 자동으로 다운로드 시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희들의 통제를 따를 수도 있게 되겠지요.”
“그런 방법이 있군.”
타누스 박사가 기발한 생각이라는 듯 자신의 무릎을 탁 하고 쳤다.
그렇게 한다면 마법이나 다른 종족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겠군.”
“저에게 믿고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헛헛! 자네 전공이 소프트웨어 개발이었지?”
타누스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우주 말살 프로젝트가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이보게, 시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흐음. 빠르면 6개월. 늦어도 1년 안에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한 빨리 끝내야 하네. 최대한 6개월 안에 끝낼 수 있겠나?”
“한 번 해보겠습니다, 박사님.”
시얀이 결의를 다졌다.
“그럼, 그전까지는 잠시 필드를 중단하는 것으로 하지.”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제 필드를 테스트 하는 건 무의미하지 않겠나?”
“하긴, 결정체와 무공 초식 관련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필드가 확 바뀔 테니까요.”
상부의 재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건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타누스와 시얀.
이 두 명의 천재로 인해 우주 말살 프로젝트가 한층 더 탄력을 받았다.
그리고 그건 동하의 이전 생애에 비해 3년 정도 단축되어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나비효과일지도 몰랐다.
동하의 회귀로 인해 이전 생애에서 벌어졌던 역사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었다.
☆ ☆ ☆
이번엔 쇼핑에 한결 여유가 있었다.
포인트가 많다 보니 어떤 것을 사고,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나 갈등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동하는 세 번의 필드를 뛰고 세 번에 걸쳐 포인트를 벌었지만, 이번에 밀림던전 한 번 돌고 번 포인트가 이전의 세 번보다 배는 더 많았다.
동하는 지금 만큼은 만수르가 부럽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골든벨이라도 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과소비를 하고 포인트를 허투루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동하는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해야 할 능력을 확실하게 높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동하가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의외로 생활관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매번 마법이나 무공 아이템을 먼저 사고 나중에 생활관에 들리다 보니 상점에는 남아 있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생활관의 아이템들은 한정판 개념이었다. 양이 넉넉지 않아 쉽게 품절되고는 했다. 그에 반해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아이템은 재고가 넉넉해서 품절이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동하의 선택은 적중했다.
“아이템이 제법 있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예측 안경]
정말 간만에 보는 핫한 신상 아이템이었다.
이름만 봐도 뭔가 포스가 단단히 풍겨 나왔다.
과연 동하가 생각했던 것처럼 설명서에는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가장 먼저 주식이 떠올랐다.
왠지 심연의 눈동자의 확장판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것으로 주식에 투자를 하면 다시 한 번 대박을 칠 것 같았다.
하지만, 설명서에는 특이하게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글자나 숫자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끙! 그렇다면 주식은 어렵겠군.”
로또나 즉석복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떤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거지?
동하는 얼핏 감이 오지 않았다.
안경은 디자인이 완전 꽝이었다.
커다란 안경테와 두꺼운 렌즈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아! 누가 만들었는지……, 참.”
80년대 고시생들도 이건 창피해서 외면할 것 같았다.
가격도 1,000포인트였다.
생각보다 엄청 비싼 가격에 동하는 적잖이 놀랐다.
“뭐가 이렇게 비싸?”
[적중률 20%. 횟수 제한 없음. 특히 지역이나 장소. 산이나 바다라면 적중률이 최고 25%까지 올라감.]
“아!”
동하는 횟수 제한이 없다는 문구에 탄성을 터트렸다.
그건 결국 무제한이란 소리였다.
동하에게 무제한 아이템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항상 횟수 제한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1,000포인트가 그리 비싼 건 아니었다.
물론 적중률도 생각보다 높았다.
예전 심연의 눈동자에 비하면 최대 다섯 배가 높은 수치였다.
하나 적중률의 높고 낮음은 동하에게 크게 의미가 없었다. 염력을 사용하면 아이템이 가진 본연의 능력 이상을 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설명서를 계속 읽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읽은 후에야 감을 잡은 듯 동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거 정말 잘만 활용하면 대박일 수 있겠는데?”
지금 허허벌판인 곳이 있다고 치자.
이런 곳은 누구도 발전 가능성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측 안경을 쓰고 허허벌판을 바라보면 미래에 이곳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측 안경을 통해 변화된 풍경이 보일 것이다. 이 지역이 투자가 되면 발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허허벌판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예측이 맞을지에 대한 확률은 최대 25%였다.
반대로 지금은 무척 발전한 곳이 미래에는 상권이 죽거나 유동인구가 대폭 떨어진 낙후된 곳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동하는 즉시 부동산 투자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주식 투자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지만, 사실 주식은 위험성이 높은 편이었다.
그에 반해 부동산은 깡통을 찰 위험은 없으면서도 성공만 하면 수십 배의 이익을 벌 수 있었다.
동하는 혹시 똑같은 아이템에 적중률만 낮은 게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다. 적중률이 5% 수준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었다.
“쩝! 없네.”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동하에겐 적중률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니었다.
☆ ☆ ☆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하가 확인한 다음 아이템은 매직 워치였다.
이번에는 예측 안경처럼 디자인이 촌스럽지 않고 무척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묻어 나왔다.
전체적으로 티타늄 소재와 금을 조합해 만들어져 상당히 세련되어 보였고 평상시에 차고 다녀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기능이 동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서 간단하게 건강검진을 할 수 있는 건 물론, 건강이 좋지 않으면 그에 맞는 치료 방법을 제시해 주거나 몸에 좋은 음식도 알려 준다.
한 마디로 개인 주치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기능이 치료나 건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매직 워치에는 다양한 워치페이스가 있었다.
때문에 시계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어떤 워치페이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건강검진 역시 다양한 워치페이스 중 하나였다.
음악을 듣고 전화를 할 수 있는 건 기본이지만, 지구에서 시계로 전화를 거는 것은 십 년도 더 지난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음악은 저장해 두었다가 들을 수는 있겠군.”
또 다른 워치페이스 중 하나는 매직 워치 안에 레이저와 적외선 센서가 내장되어 있는데 그것으로 사물을 스캔하면 작은 화면 위에 다양한 정보가 떠올랐다. 성분을 분석해주는 건 기본이고 건물의 구조와 언제 지어졌는지 연도까지 알려주었다.
“혹시 시간을 멈춰주는 기능은 없나?”
동하는 기대를 품고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었지만, 그런 기능은 없었다.
약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런 기능만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질렀을 것이었다.
가격도 300포인트였다.
워치페이스가 다양해도 그리 끌리지 않았다.
더구나 가격까지 높으니 그냥 돌아설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건강을 체크해주는 게 어딘가?
워치페이스를 간단하게 조작해서 레이저로 스캔하면 다른 사람의 건강 상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까짓 거.”
집에 주치의 한 명 둔다는 생각으로 질렀다.
그 이후에도 동하의 쇼핑은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포인트가 많다 보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쇼핑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하는 전부터 사고 싶었던 피아노 관련 교재 앞에 섰다.
[피아노 셔먼 속성 마스터]
가격은 1,000포인트였고, 책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체르니와 비슷한 수준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동하는 기타에 이어 피아노까지 연주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 ☆ ☆
만물상점의 테스터들이 술렁거렸다.
그건 바로 당분간 필드가 열리지 않는다는 공지 때문이었다.
1. 필드를 전면 리뉴얼하기로 함.
2. 그때까지는 누구도 필드를 할 수 없음.
3. 대신 만물상점은 하루에 한 번 접속해서 아이템을 사고 능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음.
4. 신중하게 시간을 갖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걸 추천함.
무슨 이유로 리뉴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때문에 테스터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지금보다 난이도가 대폭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은 공통적으로 일치했다.
왠지 공지라기보다는 경고 같은 느낌이 강했다.
무엇보다 마지막 네 번째 항목이 마음에 걸렸다. 신중하게 시간을 가지라는 것을 보면 정말 난이도가 극악하게 오를 것 같았다.
“이거 모든 초점을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맞춰야 하나?”
“하아! 난 이번에 생활관에서 괜찮은 아이템을 사려고 포인트를 모아 두었는데…….”
여기저기서 테스터들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분노하고 좌절하는 테스터들도 많았다.
지금도 충분히 등급이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상승해서 포인트를 버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포인트를 벌기 이전에 괴수들의 손에 죽는 자들이 속출했고, 설령 살아남았다 해도 도전에 실패해서 멤버십 카드를 회수 조치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한데, 여기서 더 난이도가 상승하면 그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포인트가 많은 사람들은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서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정말 죽으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인 사람도 있었다.
바로 동하였다.
남궁혜의 소개로 무림 종족들이 한두 명 동하를 찾아와 무기와 장비를 강화했던 것이다.
명백하게 ‘야매’였다.
만물상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사람들의 눈을 속여 가며 무기와 장비를 강화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거나 탈이 나도 AS를 받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최소가 1,000포인트가 넘는다.
허나 이건 겨우 하급 능력에 불과하고 필드 2관에서조차 통하지 않는다.
필드 2관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급 이상으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10,000포인트 이상이 필요하다. 하물며 필드 3관부터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무림 종족들은 포인트 거지였다.
아니, 무림 종족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족들이 포인트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때문에 중급 이상으로 능력을 높이는 일은 필드를 열 번 이상 뛰고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당장 다음 필드가 걱정이 되어 아쉬운 대로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무기나 장비를 강화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였다.
야매면 어떻고 불법이면 또 어떤가?
무기와 장비를 강화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은 게 솔직한 그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남궁혜가 보증을 서고 자신의 강화한 보검의 위력을 보여주는데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남궁 소저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소.”
“무조건 선불입니다. 황금은 가져 오셨겠지요?”
“포인트가 별로 없어서 이거 밖에는 준비하지 못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