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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42화 (42/167)

<-- 42화 : 밀림던전-01 -->

그날 이후로 동하의 주변에서 더 이상은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덕분에 동하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동하는 새벽에 운기행공을 하고 청운적하검법을 수련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은둔술에 투자하고 있었다. 은둔술이 몸을 숨기는 것 외에는 별다른 효용이 없지만, 지금 동하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다.

처음에는 몸속에 있는 기도를 갈무리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것을 잘만 응용하면 인증 절차에서 상대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바로 감추고 싶은 것만 감추고, 드러내고 싶은 능력을 드러내 원하는 종족으로 인증을 받는 것이었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기도를 모두 감추는 건 정신만 집중하면 되지만, 감추고 싶은 것과 드러내고 싶은 것을 나누는 건 생각도 두 개로 나누어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정신 수련의 일종이었다.

필드에 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7일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동하는 그때까지 생각을 두 개로 나눠 컨트롤하고 기도를 분리하는 방법에 사활을 걸었다.

☆ ☆ ☆

한편 그 시각 샤이언 행성에서는 타누스 박사가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자를 인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증 결과, 그자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흐음.”

타누스 박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피를 추적해서 흔적을 찾았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인증됐다면, 상대가 자신들의 기술을 역으로 이용해서 농락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적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

이쯤 되면 타누스 박사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주 최고라 자부하던 샤이언 종족의 기술이 벌써 두 번이나 무력화 된 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샤이언 종족보다 더 과학 문명이 발달한 행성과 종족은 우주 어디에도 없었다.

“박사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다시 한 번 지구에 인력을 보내 추적을 하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 없네. 이미 지구에서 떠났을 게야.”

설령 지구에 남아 있다 해도 똑같은 수법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대항 세력들의 짓일까요?”

“그럴지도…….”

타누스 박사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았다.

대신 다음 필드가 얼마 남지 않은 이상 인증 절차에 각별히 신경을 쓸 생각이었다.

“일전에 그자가 판타지 종족이라고 했었나?”

“예, 박사님.”

“자네 생각에는 그자가 이번에도 접속을 시도할 거라고 보는가?”

“글쎄요. 저희가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다시금 접속을 시도하려 하겠습니까?”

“그렇겠지.”

타누스 박사는 지금 새로운 연구로 정신이 없었다.

그건 바로 모든 종족들이 지니고 있는 개개의 능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일전에 떠오른 영감에 따라 타누스 박사는 벌써 연구를 시작한 상태였다.

이번 연구가 성공하면 샤이언 종족의 과학 문명이 비약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그만큼 획기적인 연구였다.

그래서였다.

한번 무엇인가에 몰두하면 오직 거기에만 정신을 쏟아 붓는 타누스 박사인지라 솔직히 인증 관련 문제가 계속 되는 상황이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시얀도 그런 타누스 박사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모든 문제를 자신이 처리하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인증이 바뀌거나 오류가 생기면 바로 시스템이 중지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게.”

“알겠습니다, 박사님!”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동하가 생각을 두 개로 나누는 수련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엿새 째였다.

“내일이면 필드에 가는 날이로군.”

카운트다운이 하루로 다가온 상태였다.

이번에는 왠지 더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문제가 됐던 인증의 오류 때문일 것이다.

만물상점 쪽에서 지구에 사람을 보내 자신을 감시하고 인증까지 했으니, 아마 이번 필드에선 동하가 로그인할 것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수련은 제법 성과가 있었다.

생각을 두 개로 나누어 원하는 능력은 감추고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은둔술이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하는 것인데다 동하가 수련하고 있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든 것이라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많았다.

동하는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수련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지만, 카운트다운까지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필드에서 인증을 받을 때는 한 치의 실수도 나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연습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비록 하루 밖에 남지 않았지만 동하는 포기하지 않고 생각을 두 개로 나누는 수련을 끊임없이 반복해 나갔다.

이번에도 생필품은 필수였다.

특히 이번에 갈 곳은 밀림던전.

버너에 밥을 해 먹고 여유 있게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동하는 모든 음식을 빵과 과자로 채웠다. 우유를 사서 빵하고 같이 먹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상할 수도 있어서 콜라와 주스로 대체했다. 물론 캔 커피는 덤이었다.

이번에는 캠핑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저번에 밀림던전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동하의 마음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렇게 먹을 음식까지 준비를 하자 시간은 밤 10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동하는 이번에는 집 근처에 있는 모텔에 투숙했다.

학교가 있는 서울까지 가려면 적어도 2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최대한 시간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하나만 더 준비하면 끝이군.”

동하는 인벤토리에서 마법의 용광로를 꺼냈다.

그리고 남아 있던 괴수의 사체를 마법의 용광로에 몽땅 집어넣은 후 두 손을 용광로에 가져다 대고 불꽃을 일으켰다.

“파이어.”

마법의 용광로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번에는 만물상점에서 실험할 때보다 사체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그래서인지 10분이 넘었는데도 사체가 완전히 녹지 않았다.

동하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5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마법의 용광로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하는 거의 탈진이 되어서야 겨우 마법의 용광로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학학!”

비록 1서클 마법이지만, 15분이 한계였다.

동하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괴수의 사체가 모두 녹아 액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위험했던 순간이다.

아마 마법을 시전하는 시간이 1분만 더 지속되었어도 완전히 탈진해서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동하의 몸에 4성의 내공과 거인의 힘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최소한 4서클이 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동하가 필드에 가기 전날 사체를 녹인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엔 갑옷을 만들 생각이었다.

동하는 옷을 강화해서 일종의 갑옷을 만들 생각이었다.

과연 옷이 강화될지는 아직 동하도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착용감이 불편해서 입고 다니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그래도 강화에 성공하면 동하는 또 다른 무기를 손에 넣는 셈이었다.

사실 지난 번 필드에서 현실로 돌아오기 직전에 동하는 만물상점에서 무기를 강화했었다.

그때 마음 같아서는 옷을 강화해서 갑옷을 만들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옷이 없어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갑옷을 제작하면 마나가 부족할 것 같아서 가장 뒤로 미루었던 일이었다.

동하는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냈다. 상의와 하의 각각 세 벌씩 준비를 했는데, 그것을 모두 사체의 액체로 강화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모자와 신발도 몇 개 준비했다.

동하는 그것들까지 모두 강화를 마치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정도면 완전한 중무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하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 사체를 녹인 액체는 많이 남아 있어 동하는 예전에 사 두었던 침낭과 간이용 침대. 그리고 배게까지 모두 강화해 버렸다.

“이제 정말 다 끝났네.”

카운트다운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8시간 정도였다.

☆ ☆ ☆

동하가 눈을 뜨자 어느새 새하얀 공간으로 이동해 있었다.

양쪽 벽에서 붉은 빛이 쏟아져 나오며 동하의 몸을 스캔했다.

‘지금이다.’

이미 몇 차례 경험이 있는 동하였다.

룸에 들어오기 무섭게 인증이 시작된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던 일.

잠시도 지체하거나 꾸물거려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동하는 재빨리 정신을 집중해 능력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단 하나의 능력만 빼고 다른 하나의 능력을 안으로 갈무리 했다.

성공 확률은 반반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실패할 확률이 조금 더 높았지만, 이번엔 실패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동하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랐다.

‘제발!’

띠링!

-테스터 인증 완료.

그와 동시에 하얀색 벽에 동하의 상태가 떴다.

종족: 무림

단계: 실버

순위: 250,000명 중 199,991등

VVIP: 상위 0.01~0.02%. VIP: 상위 0.021~0.2%.

‘휴우. 다행이다.’

동하는 모든 기력이 한 순간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극도로 긴장을 한 것이 정신을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무림 종족.

그랬다.

동하는 무림 종족으로 인증을 시도했고, 그것이 멋지게 성공할 수 있었다.

판타지 종족으로 인증을 받는 건 위험한 일.

그렇다고 불사의 종족이나 거인 종족으로 인증을 받아 처음부터 다시 1단계를 거칠 생각도 없었다.

동하는 무조건 밀림던전을 뛰어 괴수의 사체를 긁어모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붉은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은둔술을 풀지 않았다.

제한 시간은 40초로 늘어난 상태였다.

지난 10여 일 동안 미친 듯이 은둔술을 수련했더니 닌자의 인술이 1% 회복이 되어 4%대로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쿨 타임도 3분에서 2분50초로 줄어든 상태. 하지만, 지금 여기에선 쿨 타임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무림 종족의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니, 순위가 저번보다 10계단 정도 내려갔다.

그래도 여전히 실버 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붉은 빛이 사라졌다.

제한 시간을 10초 정도 남겨 두었을 때의 일이었다.

은둔술이 1% 회복되어 제한 시간이 40초로 늘어나지 않았다면 자칫 낭패를 겪었을지도 몰랐다.

“이, 이제 모두 끝났구나!”

더 이상 벽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인증 절차에서 동하가 완벽하게 승리했단 뜻이었다.

띠링!

-필드 2관을 개방합니다.

성공이었다.

동하는 속으로 환호했다.

공간이 일렁거리며 동하의 몸이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동하는 밀림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력 하나는 빨랐다.

이제는 거대하게 하늘 높이 솟아 오른 나무들을 봐도 처음처럼 그렇게 놀랍거나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띠링!

-본인의 능력으로 출구를 찾아 나오세요. 제한 시간은 7일입니다.

☆ ☆ ☆

경험은 이래서 무서운 법이다.

동하는 지난 번 밀림던전에 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 했었다. 어디로 가야 출구로 나갈 수 있을지 그 방향을 알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익룡의 습격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우리만큼 침착했다.

일단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동하의 자신감은 몇 배 더 상승하는 것 같았다.

“설마 출입구의 위치가 바뀌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조금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만큼 동하는 철저하게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동하는 가장 먼저 인벤토리를 열고 검을 꺼냈다.

그리고 괴수의 사체로 강화한 옷을 꺼내서 갈아입었다.

동하는 혹시라도 인증을 받을 때 괴수의 사체로 강화한 게 잘못될까 싶어서 불편해도 필드에 들어와 갈아입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사체를 녹인 액체를 옷 전체에 발라서 디자인상으로는 볼품이 하나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무겁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활동하는 데 전혀 불편할 것 같지 않았다. 통풍이 잘 안 되어서 땀이 나면 좀 곤란할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 정도면 활동성 면에서는 합격이었다.

하나 애초에 갑옷 대용으로 만든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방어력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동하는 시중에서 파는 부엌칼을 하나 챙겨왔다.

이것은 사체로 강화한 것이 아닌, 그냥 평범한 부엌칼이었다.

동하는 자신의 몸을 향해 부엌칼을 찔렀다.

카캉!

가벼운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부엌칼 끝이 부러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에 반해 옷은 멀쩡했다.

동하는 자신감을 얻고 신발과 모자도 실험을 했고, 그것들 모두 강화에 성공했다. 부엌칼은 이제 칼자루만 남아 있었다.

“이제 다 죽었어.”

동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끔찍한 악몽을 선사했던 밀림던전.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한다.

동하의 복수혈전은 그렇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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