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40화 (40/167)

<-- 40화 : 근자감 -->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고?”

“예, 박사님. 인증 프로그램 쪽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한 일 아닌가?”

타누스 박사는 샤이언 종족 내에서도 최고의 브레인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주 말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총괄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는 연구진들과 함께 지난 번 필드에서 벌어진 인증 오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시스템 상으로는 절대 무림 종족에서 판타지 종족으로 인증이 바뀔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시스템상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증이 바뀌려면 한 사람의 몸속에 무림 종족과 판타지 종족의 능력이 같이 들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는 현재 샤이언 종족의 뛰어난 과학 문명으로도 실현 불가능한 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연구진들은 다각도로 필드의 시스템을 점검했다.

심지어는 해킹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살펴보기도 했다.

“해킹 쪽은 어떻게 되었나?”

“다행히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우주에서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샤이언 종족이다.

당연히 샤이언 종족의 프로그램을 해킹할 수 있는 행성과 문명이 존재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한데, 박사님?”

“무슨 일인가?”

“인증 오류가 났던 베타테스트 어플이 로그아웃 된 곳을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한데,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어느 행성인데 그러는가?”

“그게…… 지구입니다.”

“지, 지구? 자네 뭔가 착각한 거 아닌가?”

“저도 이상해서 몇 번이나 확인을 했지만, 매번 같은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이,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

타누스 박사가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베타테스트 어플은 샤이언 종족이 침공을 했던 행성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전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데, 아직 샤이언 종족은 지구라고 불리는 행성을 침공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우주 말살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실험하기 위한 대상으로 점찍어 놓은 곳이 아니던가?

지구에 베타테스트 어플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긴, 베타테스트 어플이 있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구인의 능력으로는 필드에서 1분도 버티기 어려웠다.

당연한 일 아닌가?

지구에 마법이나 무공이 있는 게 아니어서 필드에 가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그아웃까지 했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지구인은 아니라는 뜻이로군.”

“그럴 겁니다. 아마 누군가 베타테스트 어플을 탈취해 지구로 도망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흐음.”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얘기였다.

샤이언 종족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암세포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일도 그 대항 세력과 관련된 일인지도 몰랐다.

“자네 생각에는 대항 세력들이 우리 샤이언 종족보다 더 진보한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인증 사건은 분명 시스템 오류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자의 흔적을 찾아봐야 할 것 같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며칠은 걸립니다. 그리고 지구에는 마나가 희박해서 프로그램을 돌리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요? 차라리 상부에 연락해서 지원을 받는 것이…….”

“그건 너무 시끄러워져서 안 되네. 아마 그자는 잡히기도 전에 다른 행성으로 도망치고 말 걸세.”

타누스 박사는 다른 행성의 종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박사님!”

시얀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타누스 박사는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두 개의 아이디라…….”

절대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문득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타누스 박사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 떠올랐다.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건 거대한 충격이었다.

최근에는 괴수들과 몬스터들의 능력을 높이는 부분에서 거대한 벽에 봉착한 것처럼 조금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어쩌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림 종족과 판타지 종족. 그리고 불사의 종족과 거인의 힘을 모두 한데 집약한 최고의 몬스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어.”

☆ ☆ ☆

시들했던 꽃이 살아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동하는 자신의 피에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쩌면 자신의 피는 괴수의 사체보다 더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긴, 9성급 S몬의 피인데 오죽할까.

동하는 자신이 박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법의 용광로로 정제하는 것만으로도 사체의 속성이 바뀐다는 사실은, 이전 생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흐음. 그렇다면 화장품과 정제해도 속성이 바뀔까?”

동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문득 좀 더 실험을 진행해 보고 싶었다.

마침 동하는 유경에게 부탁해 미셜 화장품 샘플을 받아왔었다.

이번에 론칭 행사에서 발표할 제품이었다.

동하는 사체를 녹인 액체에 화장품의 비율을 달리해서 몇 가지 조합을 만들었다.

사체의 비율이 높은 쪽과 화장품의 비율이 높은 쪽. 그리고 정확히 1:1 비율까지.

동하는 여러 가지 샘플을 자신에게 먼저 사용했다. 피부 트러블이 생겨도 동하는 회복 능력이 있어서 금방 치유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피부 트러블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사체의 비율이 높은 쪽에서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사체의 비율을 조금만 더 높여볼까?”

하지만, 이건 피부가 따끔거렸다.

동하의 피부가 철판처럼 단단한데도 이 정도면 보통 사람이라면 큰일 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비율은 딱 이 정도가 적당하겠군.”

과유불급이라 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안 하니만 못하다는 것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어떤 것 같아?”

“글쎄.”

“미진이 너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는 어떠세요?”

“나도 아직은 모르겠구나!”

동하는 지금 미진과 미현 그리고 성혜를 상대로 자신이 만든 화장품을 임상으로 실험하고 있었다. 화장품을 얼굴에 가볍게 뿌려주는 것으로, 미스트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검증이 안 된 물건이었다. 혹시라도 그녀들의 피부에 트러블이 생길 것을 대비해 동하는 자신의 피를 섞은 사체의 액체도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근데, 오빠! 이게 뭐야?”

“화장품인데 한번 만들어 봤다.”

“엥? 오빠가 화장품을 만들었다고?”

미진과 미현의 눈이 더 할 나위 없이 커졌다.

요즘 들어 자신들의 오빠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도 잘 하고 영업을 해서 돈도 벌고. 심지어 최근에는 기타를 사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몇 년 동안 해온 것처럼 능숙하게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오빠, 기타도 칠 줄 알았어? 난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당연히 본 적이 없을 수밖에.

만물상점에서 아이템으로 얻게 된 능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해서 동하는 3년을 꾸준히 연습한 사람처럼 모든 코드를 능숙하게 바꿀 수 있었다.

“미국에서 배워서 그런 거야.”

“쳇, 무슨 말만 하면 다 미국이야. 요리도 미국에서 배운 거라고 했잖아?”

“그랬나?”

또띠아 피자니 스파게티는 딱히 둘러대기 그래서 미국에서 배웠다고 핑계를 댄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무슨 일만 생기면 미국에서 배운 거라고 핑계를 대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설마 화장품을 만드는 것도 미국에서 배웠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

“어떻게 알았냐? 이거 미국에서 배운 거야.”

“오빠! 똑바로 말 안 해? 미국에서 사고만 치고 다닌 거 우리도 다 알고 있거든?”

예전 같았으면 큰일이 나고도 남을 소리를 요즘은 편하게 농담처럼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동하는 미진과 미현에게 부탁해서 며칠 동안 경과를 지켜보았다.

피부에 자극은 없는지, 별 다른 트러블은 생기지 않는지, 그리고 사용 전후 피부가 달라진 점이나 좋아진 점은 없는지.

미진과 미현은 자신들이 마루타가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학교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들의 생각을 노트에 꼼꼼히 기록해서 며칠 후에 동하에게 전해 주었다.

성혜도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사용 후기를 기록했다.

피부 트러블은 없음.

얼굴에 뿌리면 청량한 느낌은 들지만, 딱히 보습효과에 좋은지는 모르겠음.

대신 얼굴이 땅기는 현상이 있음.

미진과 미현이 전해준 노트를 요약하면 대충 세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내용만 보면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원래 싸구려 화장품일수록 피부 당김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혜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동하야, 눈가에 주름이 약간 없어진 것 같지 않니?”

“그런가요?”

“얼굴 피부가 왠지 팽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이거 가만히 생각해보면 왠지 보톡스 효과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이맘때는 보톡스가 조금씩 보급되던 시기였기에 보톡스를 알고 있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동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동하가 만든 화장품에 보톡스 효과가 있다면 이건 정말 대박이었다.

미셜 화장품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막말로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였다.

동하는 좀 더 자세하게 실험하고 싶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도구로는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나저나 핸드폰은 오늘로써 4일째인가?”

동하는 화장품 연구 말고도 배터리 실험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전기 에너지로 속성을 바꾼 액체 속에 배터리를 집어넣었다가 다음 날 빼서 사용하기 시작한 지 오늘로 나흘째였다.

아직 배터리 잔량이 약간 남아 있었다.

동하는 실험을 위해 평소보다 핸드폰을 더 많이 사용했다.

쓸 데 없이 이곳저곳 전화도 하고 핸드폰을 계속 대기 상태로 만들어 배터리를 소모시켰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남아 있단 말이지?”

배터리 성능이 향상된 것은 틀림없었다.

마법의 용광로에 라이트닝을 주입해 사체의 속성을 전기 에너지로 바꾼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실험이 끝난 건 아니었다.

충전을 할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체크해야 하고, 괴수의 사체로 한 번 강화한 배터리는 몇 번까지 충전해서 사용해도 성능이 그대로인지도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일이었다.

☆ ☆ ☆

그날은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날이 화창했다.

유경은 오전 내내 드레스 룸에서 패션쇼(?)를 하고서야 겨우 옷을 골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셔링 스커트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잔뜩 단장하고 나온 느낌이 팍팍 묻어났다.

“너무 꾸몄나?”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연출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최대한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에 동하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오늘 시간이 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패션쇼가 시작된 것도 바로 그때 이후부터였다.

-아무 일 없는데 그건 왜요?

“일전에 제가 투자 관련해서 얘기한 적이 있죠?”

-예? 아,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네요.

“유경 씨에게 줄 것도 있고 1시 정도에 보죠.”

-그래요, 그럼.

원래 유경은 오늘 제법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친구들이 미셜 화장품을 써 보고 사용 후기를 말해주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유경을 위해서 며칠 동안 고생을 하고 시간을 내서 모이는 것이었지만, 유경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유경은 동하와 단둘이 만나는 건 처음이라 은근히 설레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학교 축제에서 오재미를 터트려서 받았던 영화예매권도 챙겼고, 혹시 시간이 길어져 술을 먹을지도 몰라 차도 놔두고 갔다.

유경이 10분 일찍 장소에 도착했지만, 동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유경 씨가 늦은 게 아니라 제가 일찍 온 겁니다.”

“그래도…….”

“아아! 계속 사과만 하다 날 새겠네. 오늘은 제가 유경 씨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만나자고 한 거니까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오늘도 풀코스인가요?”

유경은 일전에 동하가 가르쳐 주었던 축제 속성 마스터가 떠올랐다.

“잘 알고 계시네요. 원래 투자를 받기 전에 이런 식으로 로비를 하는 법이거든요. 그래야 나중에 거절을 못하게 되어 있어요.”

“풋!”

유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걸 사전에 다 말하고 로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일종의 근자감이죠.”

“그, 근자감이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한자성어 같기도 하고 속담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란 뜻입니다. 일명 허세죠.”

“풉!”

유경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높여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유경을 쳐다보았다.

“조, 좋아요, 그럼. 어떤 비즈니스인지는 모르겠지만, 동하 씨가 로비하는 걸 보고 결정을 해야겠네요.”

부탁하는 사람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유경이 대한그룹의 손녀라면 대부분 주눅이 들어서 모든 행동에 자신감이 없거나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아부하기에 바쁘거나 둘 중 하나다.

한데, 동하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일은 일언지하에 거절할 줄도 알았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동하에게 유경은 점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왠지 그 근자감 저도 배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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