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39화 (39/167)

<-- 39화 : 사체의 연구 -->

“화장품이라…….”

동하는 유경에게 즉답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메이크업을 훌륭하게 시연한다고 해도, 과연 미셜이란 브랜드가 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진정한 명의는 환자의 아픈 마음까지도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셜 화장품의 매출이 저조한 이유는 샤넬이나 디올처럼 품질은 뛰어나지 못하면서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건 곧 미셜 화장품의 품질이 받쳐주지 못하면, 동하가 메이크업을 잘해도 백약이 무효란 뜻이었다.

동하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눈이 반짝거렸다.

그에겐 화장품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괴수의 사체였다.

정제하는 방법에 따라 응용 분야도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 괴수의 사체였다.

애초에 동하가 기적의 화장품을 유나에게 사용했던 것도 괴수의 사체를 연구하려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전 생애에서는 괴수의 사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정제해서 수많은 곳에 적용했고, 많은 분야에서 혁명이 일어났었다.

그중 한 곳이 화장품이었다.

사실 적용 가능한 분야가 어디 화장품 하나뿐인가?

적용할 곳은 실로 광범위했다. 동하의 머릿속에는 이전 생애에서 인류가 사체를 이용해 발명했던 온갖 물건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을 모두 동하가 만들 수만 있다면 앞으로 돈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맹점이 있었다.

설령 동하가 괴수의 사체를 정제하는 방법을 알아내 여러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해도 판매처가 없으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유경 씨, 저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행사는 도와줄 수 없어도 나중에 저에게 투자하게 될 수도 있단 말이지요.”

“투, 투자요?”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동하가 하는 알 수 없는 말에 유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처음에 동하의 거절에 아쉬움과 섭섭한 감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6월에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동하는 인천의 단칸방에서 사체를 녹인 액체를 가지고 한창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짧고 간단한 실험이라 굳이 학교에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계속 주의를 갖고 지켜보고 체크해야 하려면 학교보단 집이 더 편한 것도 있었다.

“흐음. 이게 과연 되려나?”

만물상점에서 사체를 녹인 액체를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일부를 가져온 동하였다.

작은 단칸방 한가운데에 마법의 용광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3시를 막 지난 이 시간에는 집에 아무도 없어서 동하는 마음 편히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동하가 가장 먼저 실험을 한 것은 사체를 녹인 액체에 1서클 마법인 라이트닝을 주입해 액체의 속성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마법을 이용한 정제 방법이 성공할지는 동하도 확신하지 못했다.

이전 생애에서는 마법의 속성을 부여하는 방식은 효과가 전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인류가 괴수의 사체를 정제하던 방법은 첨단 장비를 이용해 사체의 크기를 분자 수준이나 나노입자로 만들고 거기에 여러 재료를 혼합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동하라고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마법의 용광로 안에서라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괴수들의 사체도 녹였으니 다른 방법도 통할지도 몰랐다.

하긴, 실패한다고 손해 보는 것은 별로 없지 않던가?

그리고 이 방법이 성공하기만 하면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대폭 줄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실험하고 볼 일이었다.

“라이트닝!”

동하는 마법의 용광로에 두 손을 대고 전기를 일으켰다.

마법의 용광로 안에서 치지직하고 스파크가 튀면서 괴수의 사체를 녹인 액체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 ☆ ☆

괴수의 사체는 단순히 사물의 상태를 강화시켜 주는 기능만 있는 건 아니었다.

괴수의 사체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 있었다. 이 에너지가 여러 재료들과 만나면 속성이 완전히 바뀌고 그 쓰임이 180도 달라진다.

건설용 철재를 몇 십 배 이상 강화시켜 줄 수도 있고, 자동차의 차체를 보다 가볍게 하면서도 장갑차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전기와 결합하면 배터리가 되고 의약품과 만나면 피부노화는 물론 불치병을 치료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거의 모든 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괴수의 사체가 인류에게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준 것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대충 이 정도면 됐겠지?”

마나를 생각해서 3분 정도만 가열해 주고 마법의 용광로에서 손을 떼었다.

조금 더 마나를 흘려보내 가열해 줄까도 싶었지만, 사체를 녹인 액체의 양이 많지 않아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동하의 예상이 맞는다면 사체를 녹인 액체는 1서클 마법인 라이트닝이 발휘되어 이제 전기 에너지로 바뀌었을 터.

여기에 괴수의 사체가 가진 본연의 능력, 즉 사물의 상태를 강화시켜 주는 능력까지 더해져 미니 발전소로 변해 있을 것이다.

“과연 생각처럼 되었을까?”

정제 방법이 달라서 확신은 하지 못했다.

일단 사체를 녹인 액체가 전기 에너지로 바뀌었는지도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전 생애에서는 괴수의 사체를 이용해 강화된 배터리를 사용했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기본으로 10일 가까이 사용할 수 있었고, 전기차의 배터리도 한 번 충전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었다.

확실히 모험이긴 했다.

이전 생애에서는 배터리 안에 있는 음극과 양극의 성분들을 모두 괴수의 사체로 대체를 해서 출시했다. 전해액도 괴수의 사체를 녹인 액체로 대체했다. 때문에 폭발할 위험은 감소시키면서 성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었다.

동하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전해액의 성분을 괴수의 전기 에너지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물론 괴수의 사체에 사물의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힘이 있으니 음극과 양극을 구성하는 성분도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게 성공할지는 동하도 미지수였다.

그래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었다.

하긴, 사람의 체온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술도 나왔으니 어느 정도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실험이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벙커를 만들어 그 안에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도, 더 이상 전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하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라이트닝을 주입한 액체에 핸드폰 배터리 하나를 담가 두었다.

그건 바로 동하가 회귀하기 이전에 쓰던 것으로, 구형 모토로라 핸드폰이었다.

동하에게는 두 개의 핸드폰이 있지 않던가?

다른 하나는 이전 생애에서 가져온 스마트폰. 이건 통화도 할 수 없고 베타 테스트 어플 외에는 사용할 수도 없지만, 9성급 S몬의 능력이 전이되어 있어서 스마트폰이라고 하기 보다는 또 다른 동하라 생각하는 게 더 적합하다.

배터리만 해도 그랬다.

동하가 회귀를 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스마트폰의 배터리는 여전히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스마트폰 안에 다운로드했던 음악을 쉴 새 없이 들었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동하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보고 영감을 얻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모토로라 핸드폰은 배터리가 두 개였다.

만약 라이트닝 속성이 부여되지 않았다면 배터리는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될 것이고, 액체의 속성이 전기 에너지로 바뀌었다면 배터리의 성능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완성은 되긴 됐는데…….”

딱히 보관할 그릇이 없었다.

이전 생애에서는 글락스락 등의 용기가 발달해서 그런 곳에 보관하면 되겠지만, 지금 이런 단칸방 현실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밥그릇에 보관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동하는 임시방편으로 조그만 종이 상자를 구해와 비닐봉지를 상자에 뒤집어 씌웠다.

피식!

허접하고 볼품없는 모습에 동하는 웃음이 나왔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그렇게 인류의 문명의 새로운 혁명은 허름한 단칸방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 ☆

방이 좁긴 좁았다.

액체 속에 배터리를 담가 둔 상자를 가족들 몰래 보관하고 체크할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계속 살펴보는 것만 아니면 인벤토리에 넣고 보관을 하겠지만, 시간대 별로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액체 속에 배터리를 담가 놓은 지 1시간이 넘었는데도 별다른 이상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동하는 약간 안심이 되었다.

최소한 과부하가 걸려 폭발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좀 더 체크는 해야겠지?”

일단 하루 정도 담가 놓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면 전기 에너지가 배터리 안에 충분히 흡수될 것 같았다.

첫 번째 연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동하는 다른 실험을 진행해 나갔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훨씬 간단했지만, 성공 여부를 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건 다름 아닌 사체의 액체 속성을 치료가 가능한 속성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동하는 일단 돈이 들어가지 않고 간단하게 실험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액체의 속성을 치료용으로 바꾸는 것만 해도 그랬다.

원래 동하에게 신성마법이 있었다면 마법의 용광로에 힐을 시전해서 액체의 속성을 바꾸려고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동하의 마법은 화염계열. 빙계계열. 그리고 뇌전계열. 이 세 가지 계열의 마법만 있었다.

당연히 마법의 용광로에 힐을 불어 넣어 액체의 속성을 바꾸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동하에겐 불사의 능력이 있지 않던가?

아직 완벽한 상태는 아닐지라도 동하는 보통 인간보다 수명이 길고 신체 재생 능력 또한 뛰어나다.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윤기가 흐르는 건 기본이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근육이 단단한 것이 거인의 힘의 능력 때문이라면 불사의 능력은 몸속의 피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고로 피 속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 어쩌면 이 한 번의 실험으로 치료용은 물론이고 화장품 분야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동하는 인벤토리를 열고 자이언트 쇼트 페이스드 베어의 이빨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팔뚝에 그어 상처를 만들어 냈다. 상처는 이내 아물었지만, 그 전에  몇 방울의 피가 사체를 녹인 액체에 떨어졌다.

“이것으로 과연 속성이 바뀔까?”

피의 양이 너무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실험 단계일 뿐이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에는 피의 양을 조금 더 늘려서 투입하면 된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투입량을 조금씩 높여가며 진척 상황을 체크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실험이었다.

마침 단칸방에는 두 개의 화분이 있었다.

방안 공기가 좋지 않아서 미현이 사다 놓은 건데 두 개의 화분 모두 꽃이 시들시들해진 상태였다.

동하는 그중 한 곳에만 자신의 피가 섞인 액체를 뿌려 주었다.

첫 번째 실험은 실패였다.

다음 날 보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동하는 첫째 날보다 피를 두 배 가량 늘려서 투입했다.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에 각각 뿌려 주었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응?”

다음 날 보니 시들시들하던 꽃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에 반해 액체를 뿌리지 않은 쪽은 어제보다 더 많이 시들해진 상태였다.

동하는 자신감을 얻고 다시 한 번 피의 양을 늘렸다. 이번엔 세 배 가량을 투입했다. 이번에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루에 세 번을 뿌려 주고, 다음 날까지 결과를 지켜보았다.

☆ ☆ ☆

“어? 이게 왜 이러지?”

가장 먼저 이상 현상을 발견한 사람은 역시 미현이었다.

미현은 학교에 갈 생각도 잊은 채 멍하니 화분을 들여다보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두 개의 화분에 있던 꽃들이 모두 시들해져서 가져다 버리려던 참이었다.

한데, 한 개의 화분은 완전히 시든 반면 다른 하나의 화분은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난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언니, 이거 어제만 해도 시들하지 않았어?”

미현이 미진을 보고 물었다.

“그, 그러게?”

신기하긴 미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잊은 채 화분을 이러지러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동하는 그녀들의 반응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마가 내려도 폭우가 와도 동하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 뒷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이놈의 불친절한 괴음은 비가 오니까 새벽 수련을 걸러도 된다고 친절 따위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나마 뒷산에 조그마한 동굴이 있어서 비를 쫄딱 맞고 운기행공을 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오늘 새벽에도 비가 내렸다.

동하는 운기행공을 마치고 청하적하검법을 수련하는 것으로 오전 수련을 마무리 지었다. 비가 오는 날엔 1시간 동안 달리는 것과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은 할 수 없었다. 비에 쫄딱 젖은 몸으로 헬스장에서 운동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칠 일이었다.

동하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미진과 미현은 학교에 가고 집안에 아무도 없었다.

대신 그의 눈에 활짝 살아난 꽃이 들어왔다.

“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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