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기적의 화장품-02 -->
지금 카페 안에는 이상한 일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동하가 일부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유나의 화장을 고쳐 주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메이크업 해주는 일은 방송에서조차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호기심을 품은 손님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광고 효과 아니던가?
대신 동하는 사람들이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유나를 사람들에게서 등지게 만들었다. 그건 유경이나 혜주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녀들은 유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쓱쓱싹싹!
동하가 유나의 화장품들을 이용해 그녀의 얼굴에 화장을 해 나갔다.
사실 메이크업은 1분도 안 돼서 끝낼 수 있었다.
아니, 1분이 뭔가?
기적의 화장품을 바르기만 하면 되니까 30초도 필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누가 봐도 의문을 갖게 될 터.
사실 너무 빨리 해도 문제였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길 테니 말이다.
동하는 10분 넘게 유나의 화장품을 이용해 화장을 하는 척 시늉만 했다. 동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라도 기적의 화장품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세상에 기적의 화장품 같은 물건이 존재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분가량 흘렀을 때 동하는 드디어 준비했던 필살기를 꺼내들었다.
원래 동하는 화장을 시작하기 전에 손을 씻고 오겠다고 하고 화장실에 가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기적의 화장품을 꺼내 손바닥에 아주 극소량을 짜냈다. 그것을 내내 숨기고 있다가 브러시를 이용해 슬쩍슬쩍 유나의 얼굴에 터치해 나갔다.
유나의 얼굴이 점점 섹시하게 변해갔다.
마치 앵두를 살짝 입에 물고 유혹이라도 하듯 그녀의 두 눈에서 도발적인 기운이 흘러 나왔다.
그저 약간 귀엽기만 했던 유나가 순식간에 섹시한 얼굴의 여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사람들이 깜짝 뒤집어질 일이었다. 유나가 숍에서 받고 온 메이크업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나의 얼굴을 본 동하는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가 약한 것 같았다.
아무리 기적의 화장품이 미모를 상승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원래 귀여운 인상을 가진 유나를 완벽할 정도로 섹시한 스타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화장품을 사용했을 때 그 능력이 더 빛을 발한다는 뜻이로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건 아니니까.
바로 그때였다.
문득 동하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잠깐. 혹시 기적의 화장품도 염동력과 상관이 있을까?’
이전에도 심안의 눈동자와 영업의 신이 염동력과 만나서 엄청난 상승효과를 이끌어 내지 않았던가?
시험해 봐서 나쁠 건 없지.
동하는 즉시 브러시를 쥔 손에 염동력을 흘려보내고 다시금 유나의 얼굴을 천천히 터치해 나갔다.
사실 지금까지 동하는 염동력을 한 번도 업그레이드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필드에서 몬스터나 괴수들과 싸우려면 염동력 보다는 무공이나 마법 아니면 불사지체와 거인의 힘이 활용도가 더 높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실생활에서는 항상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게 염동력이었다.
‘어?’
동하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브러시가 지나간 유나의 얼굴이 새롭게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섹시하기만 했다면 지금은 유나의 귀여운 면이 한층 더 부각이 되어서 몇 배는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보정효과였다.
☆ ☆ ☆
“맙소사! 이, 이게 지금 내 얼굴이라고요?”
유나는 손거울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울 속의 그녀는 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건 단순히 화장을 고친 수준이 아니었다. 위장을 넘어 아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상에…….”
“맙소사!”
유경과 혜주 등은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그녀들은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과연 저게 말이 되기는 하는 걸까?
아무리 메이크업 실력이 뛰어나도 그렇지.
평범한 얼굴의 유나가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미녀로 확 변해 있었다.
성형 수술 말고 단순히 화장만으로 저렇게까지 사람의 얼굴이 바뀌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바로 자신들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더구나 동하가 시종일관 유나의 화장품만 사용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동하 씨. 무슨 마법을 부리신 거예요?”
“그것도 겨우 10분 밖에 안 걸렸다구요.”
“아까 내가 메이크업을 약간 할 줄 안다고 말했잖아요.”
“이, 이게 어딜 봐서 약간이에요?”
충격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심지어 카페에서 지켜보던 손님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마 유경이나 혜주 등 동하의 주변에 그녀들이 없었다면 몇몇 여자 손님들은 동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지도 몰랐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혜주였다.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유경을 쳐다보았다.
“유경아, 정말 잘 된 것 같아.”
“뭐가?”
“이번에 너희 어머니께서 럭셔리 라인업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며?”
“미셜 말이니?”
“응. 이번에 런칭도 한다고 하지 않았어?”
“다음 주야. 한데, 그건 왜?”
“동하 씨에게 부탁해 봐.”
“아!”
유경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혜주와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화장품이었다.
화장품은 럭셔리 브랜드와 보급형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새롭게 론칭하는 화장품은 샤넬이나 디올을 잡기 위해 만든 럭셔리 브랜드였다.
보통 새로운 제품을 발표해도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기 마련이다.
보급형 제품을 출시할 때는 행사를 생략하기도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는 최대한 신경을 써서 성대하게 메이크업 쇼를 개최하는 게 업계 관행이었다. 행사 초대장을 보내는 것도 그랬다. 각계 계층의 명사들은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연예인 등 천 명 정도를 선별해서 초대하는 것이다.
이때 브랜드의 광고 모델인 연예인이 직접 행사장에 와서 팬 사인회도 하는 등 순서에 따라 여러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VIP 고객들에게 샘플을 나눠 주는 것 역시 빠질 수 없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유경의 집안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샤넬이나 디올을 잡기 위해 가격을 초고가 정책으로 잡았지만, 사실 화장품이라는 것이 충성도가 높아서 기존에 쓰던 제품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 같은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당연히 시장 점유율이나 매출 면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각에서는 그녀의 집안을 조롱할 때 꼭 미셜이란 화장품 브랜드를 걸고 넘어가곤 했다.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였다.
☆ ☆ ☆
“동하 씨, 혹시 다음 주에 시간 되세요?”
유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동하가 다음 주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동하조차도 그때가 되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동하는 여름 방학 동안에 출장 메이크업 방식으로 돈을 벌어볼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은 마법의 용광로와도 관련이 있었다. 동하가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는 마법의 용광로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괴수들의 사체를 녹여서 만든 액체는 어떤 재료를 첨가하느냐에 따라 그 사용처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석유를 대체하는 신에너지로 사용할 수도 있고, 단순하게 물건을 강화시킬 수도 있었다. 용광로 안에서 사체를 분자 수준이나 나노입자 수준으로만 분해시킬 수 있다면 배터리 수명을 대폭 연장시킬 수 있었다.
이런저런 연구를 하려면 제법 큰돈이 필요한데 지금 동하의 돈은 모두 주식에 들어가 있지 않던가?
그래서였다.
일종의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출장 메이크업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철저히 예약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만 메이크업을 해준다면 하루에 한두 시간만 투자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기적의 화장품은 무조건 돈이 되는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충분히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자들조차도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게 여자들의 심리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성형 중독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까?
못생긴 여자들이나 평범한 얼굴의 여자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돈을 쓸 것이다.
게다가 집안이 부유한 여자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동하는 성공한다는 쪽에 목숨이라도 걸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비싸게 가격을 책정해도 돈을 쓸 여자들은 반드시 쓰게 되어 있다. 서민들이야 콩나물 천원어치를 사도 가격을 깎으려 하지만, 부자들은 검증된 물건에는 몇 백만 원 혹은 몇 천만 원조차도 주저하지 않고 쓴다.
원래 메이크업 숍을 운영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동하가 하려는 일은 흔히 알고 있는 메이크업 숍과는 거리가 멀었다. 헤어를 손질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부미용 쪽과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냥 단순하게 메이크업만 고쳐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따로 자격증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근데, 유경 씨.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 사실 그게 말이죠…….”
유경이 조심스럽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집안을 말하면 왠지 동하와 멀어질 것 같아서 계속 망설이던 참이었다.
하지만, 막상 밝히고 나니까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해성사라도 한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동하 씨가 꼭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간절해서 꼭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섞여 있었다.
“으음. 글쎄요.”
어떻게 보면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이긴 했다.
카페에서 유나에게 메이크업을 해 준 것도 입소문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하물며 단 한 번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테고 굳이 힘들게 입소문 내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예약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을 사양하고 싶은 동하였다.
특히, 텔레비전 방송 카메라에 찍히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유경 씨가 미셜 화장품과 관련이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데요?”
“미안해요. 동하 씨를 속이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후후! 저도 뭐, 유경 씨에 대해 묻지 않았으니 딱히 속인 건 아니죠.”
미셜 화장품이라면 대한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였다.
대한그룹.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부동의 1위이며 특히, 대한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유명했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유경을 보며 그냥 집안이 부유한 정도로만 생각했지 대한그룹의 손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브랜드 미셜은 몇 년 후에 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한그룹의 계열사 중에서 유일하게 망하는 사업이라고 당시 뉴스에서 대대적인 보도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긴, 지금 유경의 말을 들어보면 사업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동안 국제적으로 럭셔리 이미지를 쌓아 올린 샤넬이나 디올을 단 시간 안에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마 화장품 브랜드가 몇 년 후에 망한다는 건 이번에 새롭게 정비를 해서 론칭하는 화장품이 시장에서 엄청난 실패를 겪을 것이란 뜻이었다.
“동하 씨, 정말 우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흐음. 혹시 그날 언론이나 매체에서 옵니까?”
“그건 왜요?”
“그냥 남자가 메이크업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좀 그렇잖아요.”
동하는 대충 둘러댔다.
하지만, 유경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이지 충분히 알겠어요. 매체라면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말씀하시는 거죠?”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이번 행사는 철저히 각계 명사들을 초청한 자리라 카메라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나마 듣던 중 다행이었다.
카메라에 찍힐 일만 없다면 동하도 더 이상 꺼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회사 모델이 있어요. 원래는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간단하게 화장을 하면서 제품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는데, 그걸 동하 씨가 해 주는 것으로 바꾸려고요.”
“흐음. 그것만 하면 되는 겁니까?”
“예.”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이번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퍼포먼스가 될 것이었다.
동하가 10분 남짓한 메이크업으로 유나의 얼굴을 180도 변신시켜 주었듯 회사 모델의 얼굴도 변신시켜 줄 수만 있다면 미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크게 달라질 것 같았다. 어쩌면 브랜드 이미지가 대폭 개선될 수도 있었다.
유경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동하 씨,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저는 동하 씨가 꼭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