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대박-03 -->
통신사의 부가 서비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멤버십 카드를 꼽을 수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어떤 통신사가 어느 곳과 제휴를 맺고 얼마나 할인을 해주고 적립을 해주는지 경쟁적으로 광고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기성세대들은 멤버십 카드가 있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겐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딜 가든 멤버십 카드를 활용해 음식도 할인 받고, 영화도 할인을 받아서 보고, 가지고 있는 멤버십 카드로 편의점을 이용하지 않던가?
처음 멤버십 카드가 나온 게 대략 이맘때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려 17년 전 일이었다.
동하는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집안이 망하고 학교 축제가 끝났을 때쯤 새경텔레콤에서 멤버십 카드를 발표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게 9월쯤이었지, 아마?’
그렇다면 3개월 정도 남은 셈이었다.
새경텔레콤보다 먼저 발표를 하려면 시간적인 압박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시간도 아니었다.
지금 동하가 쓰고 있는 통신사가 새경텔레콤이라 희미하게나마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새경텔레콤은 부동의 업계 1위인 곳이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통신 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로 젊은 세대를 겨냥해서 만든 것이 멤버십 카드였다.
새경텔레콤은 멤버십 카드를 발표해서 젊은 세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었다.
동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신비한 소녀의 이미지를 활용한 새경텔레콤의 광고였다. 그것이 대 히트를 치면서 당시 N세대라 불리던 젊은 층의 소비자를 대거 흡수할 수 있었다.
“어때요?”
“대충은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등급별로 고객들에게 포인트를 주고 그 포인트로 제휴를 맺은 곳에서 할인을 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거 아닌가요?”
“그 정도면 정확하게 이해했네요.”
“하지만, 우리가 왜 그걸 해야 하죠? 포인트도 결국 돈이에요.”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혹은 수백만 명의 고객들에게 포인트를 준다면 왠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 같았다.
“후후! 그런 생각을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핸드폰을 사면 단말기 보조금이라고 해서 지원해 주지 않나요?”
“그,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보조금을 1,2만원 더 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군요.”
하지만 보조금을 조금 더 준다고 해서 올드하고 보수적인 회사 이미지가 개선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포인트를 준다고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멤버십 카드의 핵심은 ‘공짜’ 마케팅에 있습니다.”
“공짜 마케팅?”
이번에는 귀가 솔깃했다.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는 법이다.
특히, 그것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상당한 파급력이 전해질 게 뻔했다.
“예를 들어서 멤버십 카드로 PC방을 무료로 사용할 수 제휴 업체와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곳 중 어디가 좋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제휴 업체인 PC방이죠.”
“동네에 빵집이 두 군데가 있어요. 한 곳은 멤버십 카드로 10% 할인을 받고 살 수 있는 반면 다른 한 곳은 전혀 할인이 안 됩니다. 그럼 어디에서 사시겠습니까?”
“흐음.”
“다온그룹 계열사 중에 편의점 있죠?”
“예, 있어요.”
“젊은 세대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 편의점이죠. 만약 멤버십 카드로 할인을 받고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최소한 경쟁업체에는 안 가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편의점 시장 점유율도 끌어 올리면서 젊은 세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죠.”
“아!”
수정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최대한 다온그룹의 계열사와 멤버십 카드를 연계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수정이 눈빛을 반짝거렸다.
이제야 동하의 의도를 100% 이해한 것이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동 통신사들 중에서 젊은 세대들의 문화 코드를 선도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올드하고 보수적인 회사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젊은 고객층도 대거 끌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멤버십 카드라고?”
“이해가 어려우시면 보조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백화점에도 멤버십 카드가 있지만, 그건 적립을 받는 것이죠. 하지만, 이건 할인을 받고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획기적이라 생각합니다.”
동하와 만난 지도 이미 이틀이나 지난 상태였다.
수정은 기획안을 작성해서 한 회장에게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흐음. 정말 이틀 만에 이 기획안을 만든 것이 맞느냐?”
“예, 회장님!”
“고생을 좀 했겠군.”
“아닙니다.”
한 회장이 그렇게 말할 만 했다.
기획서는 이틀 만에 만든 것치고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
요약서는 2페이지였고, 그 다음 부연서가 첨부 자료들을 포함해서 10페이지나 되었다. 기획서 안에는 시장 예측 자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다온편의점과 제휴를 맺고 멤버십 카드를 론칭하면 편의점 점유율이 어느 정도 올라갈지에 대한 예측인 것이다. 지금 다온편의점은 업계 2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1위 업체와는 두 배 차이로 뒤처진 상태였다.
“이건 계열사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회장님!”
“생각은 나쁘지 않군.”
한 회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OK 사인이 난 것이 아니기에 수정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한 회장은 저러다가도 갑자기 기획안을 다시 가져오라고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그건 수정이 손녀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회장은 공적인 일에는 철저해서 손해가 날 것 같은 일에는 가족이라 해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수정은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이틀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기획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동하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어떤 업체와 제휴를 맺고 할인율을 어떻게 적용해야 좀 더 파급력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동하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기 전에는 항상 기획서가 통과되면 꼭 밥을 사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공짜 마케팅은 또 무슨 소리냐?”
“그것도 간단합니다. 제휴 업체인 PC방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과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곳 중 회장님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이번에도 수정은 동하가 썼던 비유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건 기획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회장이 잠시 생각을 하다 문득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석민 사장을 쳐다보고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는 상당히 괜찮아 보입니다.”
“초기에 포인트를 주는 것 때문에 주주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층의 지지는 확실히 이끌어 낼 수 있겠지요. 다온텔레콤이 새로운 문화 코드를 창출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업 이미지가 올라갈 겁니다.”
“선일이가 준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 것 같으냐?”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한 회장이 아무리 냉정해도 수정에게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수정이의 말처럼 저희도 충분히 획기적이라 생각됩니다. 선일이가 준비하는 일은 내년에나 되어야 상용화 할 수 있는 반면 저희는 당장 이번 달에도 출시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까지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건 다음 달 주주총회에서 공석이던 본부장을 선출하기 때문이었다.
“좋다. 그룹 차원에서 밀어줄 테니까 반드시 이번 달 내에는 끝내야 한다.”
드디어 한 회장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같은 시각.
동하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하루가 48시간으로도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정과 했던 거래가 초대박을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다온그룹의 계열사는 30개나 된다. 그리고 하청업체는 이백 개가 넘었다. 그중에는 규모가 작은 곳도 있었지만, 제법 규모가 큰 곳도 많았다.
아무튼, 수정이 미리 계열사와 하청업체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동하는 어렵지 않게 잉크와 토너를 쓸어왔다. 인사 청탁 전화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업체들 쪽에서도 버리는 것들이라 손해 보는 것도 없었다.
동하는 다온그룹의 계열사와 하청업체들이 전국에 퍼져 있다 보니 규모가 작은 곳은 그냥 포기할 정도였다.
“이, 이게 다 뭔가?”
“보다시피 잉크와 토너들입니다.”
“세, 세상에…… 자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무, 무슨 잉크와 토너들이 이렇게 많아?”
김명한은 까무러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금까지 동하가 가져온 잉크와 토너도 충분히 많았다.
오죽하면 수도권과 지방에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동하가 가져온 물건들을 처리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라 했다.
김명한은 혹시 몰라 그때보다 몇 명을 더 섭외해 놓은 상태였다.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동하가 아무리 물건을 많이 가져와도 곤란해 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지금까지 동하가 가져온 물건들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전국의 모든 잉크와 토너를 동하가 모조리 수거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번엔 어딜 들어갔기에 잉크와 토너가 이렇게 많은 건가?”
“다온그룹 아시죠?”
“다, 다온그룹? 맙소사! 설마 본사는 물론이고 계열사와 하청업체에서 모두 가져온 건 아니겠지?”
“후후!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 진짜로 계열사와 하청업체 모두를?”
김명한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다온그룹은 재계 순위 3위의 글로벌 기업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본사에 들어가는 것만도 심장이 떨려서 하기 어려운데, 동하는 계열사와 하청업체까지 쓸어 왔다고 한다.
괴물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하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이거 다 처리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자, 잠깐만.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네.”
“그럼, 예상 가격 먼저 뽑아 볼까요?”
“그럴까?”
이번에도 동하에게 한방 먹은 김명한이었다.
☆ ☆ ☆
무려 3억 원이 넘었다.
김명한은 그 많은 잉크와 토너를 처리하는 데 5일이 더 걸렸다.
그것도 전국의 잉크 충전방을 모두 동원해서야 겨우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윈윈이었다. 동하도 대박이 났지만, 전국의 충전방도 대박을 맞은 셈이었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잉크 충전 시장이 본격적으로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스마트폰의 베타테스트 어플은 어느새 숫자 1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이면 또 다시 필드에 가는 날이었다.
동하는 다온그룹을 마지막을 더 이상 다른 기업에 들어가 잉크와 토너를 가져오진 않았다. 대신 그동안 부족했던 수련과 운동을 하며 다음 필드를 준비했다.
다온그룹 한곳만으로도 이미 동하가 생각했던 액수를 훨씬 초과한 상태였다.
기존에 들어갔던 다섯 개의 회사 수익까지 합치면, 동하의 통장에는 4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돈으로 적당한 곳에 땅을 살까도 싶었다.
동하는 벙커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대략 2, 3백억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규모는 일단 지하 50미터 깊이에 3층 건물로 구상했다. 가장 위층은 물탱크를 설치하고 창고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2층은 주거지로. 3층은 독서와 운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었다.
아무튼, 땅값이 비싸지 않은 외곽 쪽이라면 4억 원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벙커를 만들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땅을 사는 것이었다. 동하는 처음 회귀했을 때만 해도 앞이 막막했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4억 원을 그냥 땅을 사는데 쓰는 건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다온텔레콤에서 멤버십 카드를 발표하면 분명 주가가 뛸 것이 틀림없었다.
더구나 지금 다온텔레콤은 과징금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상태였다.
“주식은 분명 오른다.”
그래도 동하는 어찌해야 할 지 고민이었다.
땅을 먼저 살지, 아니면 주식으로 재투자를 해서 이윤을 극대화할지.
이건 며칠을 고민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동하는 과감하게 재투자를 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지금 동하는 멸망을 대비하는 과정에 있었다.
땅만 사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재투자를 통해 돈을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일전에 동하가 샀던 주식도 꾸준하게 오르고 있었다.
그때 동하는 제약회사의 주식을 샀었는데, 동하가 주식을 사고 며칠 동안 상한가를 쳤었다. 처음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상한가를 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뒤 외국의 제약회사와 합작해서 신약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 이후에는 미친 듯이 주식이 올라서 지금은 원금대비 2배의 수익을 챙긴 상태였다.
하지만, 동하는 아직 주식을 빼지 않았다.
아직 처음 설정했던 3배의 수익이 되지 않은데다, 한 달이 되려면 며칠 더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 주식에 올인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