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30화 (3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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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온텔레콤이 최근 이동전화기를 강매하는 관행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계열회사 직원도 모자라 하청업체 직원에게까지 핸드폰을 강제로 팔아넘기며 문제가 되고 있다. 다온텔레콤은 30개 협력업체에 평균 500대의 핸드폰을 판매하도록 강요했다. 목표한 대수를 채우지 못하면 하청물량을 줄인다는 협박에 협력업체 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직원들에게 휴대폰을 바꾸도록 강요했고, 심지어는 가족과 지인들까지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다온텔레콤은 두 달 동안 1만5천 대의 핸드폰을 판매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이 뒤진 다온텔레콤이 무리하게 영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 직원까지 동원한 것 같다고 덧붙이고 시정명령과 함께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경제TV 김승대 기자)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기에 이 따위 기사가 올라와?”

한 회장의 눈빛은 겨울 호수처럼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수정은 그것이 불같이 역정을 내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여긴 회사다. 회장님이라고 불러.”

“예, 회장님!”

수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다온텔레콤의 기획실장으로, 한 회장의 손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강매 사건 역시 그녀가 주도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들이 핸드폰을 계열회사에 강매하는 건 관행이라 할 수 있었다. 수정은 여기에 더해 하청업체들에게 판매를 강요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까지 동원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과징금 문제는…….”

“어리석은 것. 지금 그깟 20억 원이 아까워서 이러는 줄 아느냐?”

한 회장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다온텔레콤은 이통사 중에서 시장 점유율이 가장 낮았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가뜩이나 시장 점유율이 만년 꼴찌인 다온텔레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데, 이런 사건마저 터졌으니 우호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다온텔레콤에 대한 불신은 고스란히 다온전자에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내가 너를 너무 믿은 것 같구나!”

움찔!

수정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 회장의 성격은 단호하기 이를 데 없어서 비정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한 번 신임을 잃고 눈 밖에 나면 두 번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달에 주주총회가 있는 건 알고 있겠지?”

“예, 회장님!”

“이대로 가면 주주들이 선일이를 본부장으로 추대할 게다.”

“그, 그건…….”

“그 아이가 영특하긴 하지. 사업의 맥을 읽을 줄도 알고. 그래도 그 아이는 어디까지나 외인이다.”

김선일은 한수정의 고모의 아들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회장의 외손자였지만, 한 회장은 외가의 핏줄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한 회장은 가능하면 수정에게 다온텔레콤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주주들의 마음은 이미 김선일에게 기울어진 상태였다.

수정이 이번에 실수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다온텔레콤은 올드하고 보수적인 느낌이 강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었다.

경쟁사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에 비하면 더욱 초라한 현실이었다.

수정은 이런 부정적인 인식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에 비해 김선일은, 지금 옥슨이란 게임업체와 손을 잡고 6개월 가까이 PC용 온라인 게임을 핸드폰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하면 그동안 올드하고 보수적이었던 기업 이미지를 타파하고 젊은 세대 공략에 성공. 시장 점유율까지 높일 수 있을 터였다.

더구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브라우저가 내장된 핸드폰 무선 인터넷 게임 기술은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었다.

다온전자의 기술과 역량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마 조만간 발표가 날 것이다.”

아직 기술적으로 해결할 것들이 남아 있어서 내년 상반기가 되어야 상용화 되겠지만, 이번 과징금 사태를 덮고,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광고가 필요했다.

한데, 시점이 미묘했다.

주주총회에가 열리기 바로 직전에 대대적인 광고를 계획하고 있었다.

“수정아,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한 달 안에 전세를 뒤엎을 만한 기획을 가져오지 못하면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할 게다.”

“예, 회장님!”

한 회장의 단호한 목소리에 수정의 어깨가 축 하고 늘어졌다.

☆ ☆ ☆

“기획실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요?”

“그러게. 이러다 기획실 사람들 전부 해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에이, 강 대리님! 설마요. 그래도 명색이 기획실장이 회장님 손녀인데 그렇게까지 하실려구요.”

“쯧쯧, 자넨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회장님이 공적인 일에는 단호하게 책임을 묻는 것을 모를 수도 있겠군.”

“그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긴 하지만 정말 그 정도로 단호합니까?”

“손녀이니 기회는 한 번 더 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 일을 만회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기획실장이라 해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야.”

다온텔레콤은 하루 종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직원들은 두세 명만 모여도 과징금 얘기로 시끄러웠다.

‘흐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상황이 좋지 않은데?’

동하는 지금 엘리베이터 안에서 직원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원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만 해도 몇 명 되지 않았는데,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5층에서 우르르 몰려들어왔던 것이다.

9, 10, 11, 12, 13층.

사람들이 모든 층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엘리베이터는 졸지에 에스컬레이터로 변하고 말았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내렸다.

“마케팅부서는 축제 분위기이겠군.”

“그건 왜 또 그런 겁니까, 강 대리님!”

“자네 아직 우리 회사에 두 개의 라인이 있다는 말도 모르나?”

“아! 그 얘기라면 알고 있습니다. 마케팅부장님과 기획실장님 라인 말씀이시죠?”

회사가 곤경에 처했다고 모두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번 과징금 사태로 김선일이 이끄는 마케팅부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게 뻔했다.

“이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니까. 기획실장님이 회장님 손녀라고 덥석 그쪽 라인을 탄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하겠지.”

“대리님은 어떤 라인에 서신 겁니까?”

“그건…….”

그때 띵동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바로 12층이었고, 동하의 기억이 맞는다면 마케팅부가 있는 곳이었다.

‘결국 마케팅부장 라인이란 소리네.’

그나저나 일이 조금 복잡하게 변한 것 같았다.

일단 총무부의 분위기를 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커피 값만 날리고 빈손으로 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동하는 13층에 내리기 무섭게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양손에 들고 있던 커피들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 ☆ ☆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총무부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동하는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거 혹시 총무부 전체가 기획실장 라인인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은 게 전부이긴 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는 영업의 신이 아니라 영업의 신 할아버지를 먹어도 효과를 보긴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영업의 신은 상대의 믿음을 얻고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데, 상대의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는 믿음이고 나발이고 마음을 이끌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땐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게 좋긴 한데…….”

그래도 확실하게 하려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단순히 과징금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어두워서 그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총무부가 기획실장 라인이라는 것만 확인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직원들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응?”

그때 마침 사무실 안에서 여직원 한 명이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동하는 번쩍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는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인벤토리를 불러냈다. 그리고 아까 넣어 두었던 여덟 개의 커피 중 하나를 꺼낸 후 인벤토리를 공간 속으로 집어넣었다.

잠시 후, 아까 그 여직원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동하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와의 거리가 바로 눈앞까지 가까워졌을 때였다. 동하가 은밀하게 공력을 흘려 그녀의 한쪽 다리를 밀었다.

“악!”

그녀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하에게 작업을 걸려고 일부러 넘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뜬금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 조심하세요.”

동하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 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바닥에 넘어지는 상황은 모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손에 들고 있던 커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며 바닥에 던졌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었다.

“고, 고마워요.”

“괜찮아요? 발을 삐끗하신 것 같던데.”

“저는 괜찮은데 커피를 떨어뜨려서 어떡해요?”

“그것보다는 일단 바닥부터 닦아야겠는데요?”

“아차! 잠깐만요.”

여인이 화장실에 들어가 마포걸레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는 바닥을 닦으면서도 동하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혹시 옷에 커피가 묻은 건 아니죠?”

“예, 다행히 묻지는 않았는데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네요.”

“죄송해요. 어떻게 하면 좋죠?”

“으음. 혹시 동전 있으세요?”

“예? 동전이야 지갑에 있긴 한데 그건 왜……?”

“자판기 커피 한 잔이면 될 것 같아서요. 같이 한 잔 하실래요?”

그녀는 곁눈질로 사무실을 힐끔 쳐다보았다. 지금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약간 눈치가 보였지만, 이내 동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지갑 가지고 올게요.”

☆ ☆ ☆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에게 알아낸 정보는 결코 적지 않았다.

지금 다온텔레콤은 권력 싸움이 한창이었다. 사장과 기획실장의 한 씨 집안과 부사장과 마케팅부장의 김 씨 집안 사이에 후계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총무부의 부장과 과장은 기획실장의 라인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기획실장이 좌천이라도 되는 날엔 그들 역시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쩝!”

아까운 시간만 낭비한 셈이었다.

동하는 깨끗이 포기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두 개 중 하나는 지하 3층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11층을 내려가고 있었다. 동하가 조금 기다렸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좀처럼 올라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안 되는 날엔 뭘 해도 안 된다고 하더니 오늘이 딱 그런 날인 것 같았다.

“끙! 이놈의 회사는 나하고 궁합이 안 맞나…….”

바로 옆에 비상구가 보였다.

동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천천히 내려갈 생각에 비상구로 향했다.

쾅!

비상구 문이 닫히며 좁은 계단 사이에 울려 퍼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는 인벤토리를 불러내 아이스카페모카를 꺼냈다. 다행히 얼음은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주변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한창 일 할 시간인데 비상계단에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동하가 인벤토리를 공간 안으로 밀어 넣고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이었다.

흠칫!

왠지 등 뒤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하가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았다.

좁은 난간 사이로 여인이 두 눈을 크게 치뜨고 동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 세상에…….”

그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은은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마, 말도 안 돼.”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숨어 있듯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던 그녀였다. 그저 혼자 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아무도 찾지 않은 비상계단에 앉아 한창 시름에 잠겨 있을 때 난데없이 동하가 나타난 것이다.

놀라기는 동하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14층 계단 쪽에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가 난간 사이로 여인의 눈빛을 쳐다보는 순간 그녀의 품속에 넣어둔 사원증 정보가 눈앞으로 좌르륵 밀려오기 시작했다.

기획실장 한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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