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27화 (27/167)

<-- 27화 : 영업의 신-01 -->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동하는 백보신권을 수련하느라 체크아웃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그 결과 5 포인트를 더 지불해야 했지만, 무공 초식을 얻어서인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백보신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백보신권은 상승의 권법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 배운다고 모든 걸 마스터하기는 어려웠다.

동하는 생활관으로 넘어가 본격적인 쇼핑을 시작했다.

어제에 비해 만물상점은 많이 한산해진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포인트에 압박을 느껴 빨리 쇼핑을 마치고 돌아간 것 같았다.

“이번엔 특가 세일 하는 게 없네.”

무공 초식 문제가 해결이 된 이상 좀 더 수월하게 생활관을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일단 동하가 원하는 물건이 없었다. 특히 심안의 눈동자와 관련된 아이템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동하는 매장 직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런 아이템은 자주 나오는 게 아닙니다, 손님! 이번에는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설령 나온다 해도 물량이 적어서 바로 매진되기 쉽고요.”

“아, 그렇군요.”

동하는 입맛을 다셨다.

왠지 맥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즉석복권으로 단단히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던 동하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동하는 터덜터덜 음악과 관련된 블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피아노와 관련된 아이템을 사려고 했었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포인트가 적어서 기타로 방향을 선회했다.

“3년 과정에 500포인트입니다.”

매장 직원이 파란색 포션을 내밀었다. 포션을 마시면 3년 과정을 마스터할 수 있고, 곧바로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132.

이건 다음으로 이월시켰다가 다른 것을 사는 데 보탤까 싶었다.

그때 동하의 눈에 두 개의 아이템이 들어왔다.

-기적의 마스크 팩! 1+1 구매 찬스. 단 한 번으로 10일 동안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고, 어두운 피부 톤을 밝게 해주며 안티에이징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동하는 갑자기 성혜가 떠올랐다.

최근 몇 개월 만에 10년은 부쩍 늙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가격이 40포인트나 해서 살짝 갈등하기도 했지만, 동하는 성혜를 생각해서 과감하게 질렀다.

그리고 동하의 눈에 들어온 아이템은 ‘영업의 신’이라고 불리는 알약이었다.

-말하는 것이 두려워 고개 숙인 그대. 더 이상 영업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대의 말속에 믿음과 신뢰를 높여주어 누구든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다. 영업의 신 알약 10정. 1정에 한 번 사용 가능.

가지고 있다 보면 언제고 유용하게 사용할 날이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아이템이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매장 직원의 말도 있어서 눈에 보일 때 사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알약이 10정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10번이라…….

짧다면 짧지만,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을 회수였다.

다행히 가격이 90포인트였다.

동하가 포인트를 지불하고 나자 2포인트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다음 필드를 기약하고 베타테스트 어플을 터치해 로그아웃했다.

☆ ☆ ☆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필드에서 보낸 시간은 8일이었지만, 현실 세계에선 대략 4시간 정도 지난 것이다. 이틀에 1시간 꼴이었다. 이 정도 시간 차이라면 만물상점에서 시간을 며칠 더 보내도 현실과의 갭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동하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베타테스트 어플에 21일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정확히 3주였다.

필드가 끝나고 만물상점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아무래도 현실에 온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과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하가 준비해 두었던 음식 재료들도 이미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 이 시간이면 한창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할 때였다.

동하는 과실의 문을 잠갔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불러냈다.

공간이 열리고 핸드백이 나타났다.

설명서에 따르면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고 나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구나 인벤토리가 여성용 핸드백처럼 생기지 않았던가?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남성용 크로스백으로 바꾸던가 해야지 원.”

인벤토리 안에는 기적의 마스크 팩과 영업의 신이란 알약이 10정이 들어 있었다.

기적의 마스크 팩은 성혜를 생각해서 구매한 것이기에 별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영업의 신이란 알약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동하는 이전 생애에서 사고로 불구가 되기 전에 잠깐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당연히 몬스터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전이었다.

물론 동하는 그 지랄 맞은 성질 때문에 5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두긴 했지만, 그때 했었던 것이 바로 영업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영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5일 동안의 경험이었지만, 동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영업이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물며 원하는 가격과 단가를 맞추려고 상대의 비위도 맞춰야 하고 원치 않은 리액션도 취해야 하는데, 이전 생애의 동하에겐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5일도 오래 버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때 동하가 했던 일은 일반적인 영업하고는 약간 달랐다.

보통 영업이라 하면 물건을 파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당시 동하는 사무실이나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다 쓴 잉크를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었다.

☆ ☆ ☆

한창 잉크충전방 붐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워낙 정품 잉크가 비싸다 보니, 일각에서는 프린터 장사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잉크로 돈을 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에는 다 쓴 잉크나 토너는 버린다는 개념이 강할 때였다.

리필 잉크라는 것도 그랬다.

충전방에 가면 리필 잉크를 팔지만, 사람들은 설마 자신이 내다 버린 잉크나 토너를 수거해 그것에다 리필 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다 쓴 잉크나 토너를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규모가 큰 회사나 병원 같은 곳은 사용한 잉크나 토너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문에 당시 동하가 다녔던 회사에 제법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형병원이나 사무실에 들어가 공짜로 쓸어 오다시피 했었다. 공짜로 버려 주겠다는데 사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간혹 운이 좋으면 하루에 백만 원도 넘게 벌었다.

하지만,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우선 말도 잘 해야 하거니와 붙임성도 좋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하는데, 회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잡상인 취급 받기 일쑤였다.

이렇게 취급받게 되면, 그 대상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동하는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무시를 당하는 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몰랐다.

하루에 열 번은 더 화가 나는 것을 꾹 참았다. 아니, 화가 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사무실이나 병원에 들어갈 생각만 하면 소화가 되지 않을뿐더러 무섭고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난 그때 9천 원짜리 잉크를 9천 원 주고 사왔었지.”

칼라 잉크 중에는 다 사용한 것인데도 가격이 9천 원인 것도 있었다.

토너는 그보다 더 비싸서 1만6천 원 하는 것도 있었다.

그나마 돈을 주고 물건을 사면 잡상인 취급은 덜 받는다. 괜히 거래하는 기분도 들어서 동하는 회사에서 책정해 준 가격표대로 물건을 사왔는데,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솔직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9천 원짜리 잉크를 3,4천 원에 사오는 것이 능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하는 영업 능력이 완전히 꽝이었던 셈이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동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주눅이 들고 위축이 되어서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이러니 영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전 생애보다 시기적으로 2년은 빠르구나!”

그렇다면 아직 이쪽 세계도 그렇게까지 치열하진 않을 터.

당시에는 잉크와 토너 수거가 최고로 정점에 올랐을 때여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한번 뚫어 놓은 업체를 다른 곳에서 치고 들어가면 가격이 확 올라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동하는 시기상으로 지금이라면 충분히 해 볼만 한 생각이 들었다.

발품만 팔면 투자금 한 푼 들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지금 동하에게 가장 안성맞춤의 일이었다.

주식을 빼기 전까지 약 한달 정도 하기에는 이것보다 더 적당한 일도 없었다.

한 번 거래처를 만들면 꾸준히 연락이 온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구나 동하는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뒤라 예전처럼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후후! 그리고 나에겐 영업의 신이란 알약도 있지.”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 ☆

동하는 잉크와 토너를 수거하기 전에 거래처부터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하긴 그렇다.

동하가 잉크와 토너를 수거해도 그것을 사 줄 사람이 없으면 결국 헛수고한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예전 기억을 알음알음으로 기억해서 찾아갔다.

과연 지금도 충전업체가 같은 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잉크 충전이 대중화가 된 것이 아니기에 어쩌면 시기상으로 그 충전업체가 생겨나기 전일지도 몰랐다.

사실 이곳이 아니면 동하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거덕 거릴 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충전업체는 지금도 같은 곳에 있었다.

“사장님?”

“누구십니까?”

“여기 수거해 온 잉크와 토너를 사주는 곳 맞죠?”

“그렇긴 합니다만…… 여길 어찌 알고 왔습니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 순간 주민등록증이 동하의 눈앞에 촤르륵 펼쳐졌다.

‘이름이 김명한이었군. 나이는 41살이네.’

일단 이름만 알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어려울 게 없다.

“소개 받고 왔습니다. 김명한 사장님 맞으시죠?”

“일단 자리에 앉아요.”

김명한이 동하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소개를 받고 찾아온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최근 들어 전국에 잉크 충전방이 하나둘 생기고 있었고, 잉크와 토너를 수거해 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영업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잘만 하면 돈을 좀 벌 수 있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설명을 필요 없겠고……. 가격은 여기 있는 대로 받을 거니까 나중에 수거해 올 때 브랜드명하고 프린터 제품명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

김명한이 A4용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곳에 잉크와 토너 브랜드와 제품명이 적혀 있었고, 가격 역시 책정되어 있었다.

동하는 김명한과 가볍게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즉석복권이나 주식에 비할 바는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명한이 얘기한 것처럼 잘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다.

만물상점에 심안의 눈동자 같은 아이템이 자주 나오지 않는 이상 이렇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동하는 곧장 일에 착수했다.

제일 먼저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프린터가 있는 곳이면 다 쓴 잉크나 토너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학교에선 인맥을 활용할 수도 있으니까 가급적 영업의 신을 쓰지 않고 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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