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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22화 (22/167)

<-- 22화 : 카운트다운 -->

“컥!”

김일택은 호흡곤란을 느낄 만큼 숨을 쉬기 어려웠다.

겨우 동하의 발 하나가 가슴에 올라가 있을 뿐이었지만, 김일택은 거대한 바위 밑에 깔린 듯한 기분이었다.

‘무, 무슨 힘이 이렇게……?’

이건 도저히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일택은 가슴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지만, 이젠 동하가 무서워 감히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하물며 복수니 자존심이니 하는 건 저 멀리 갖다 버린 지 오래였다.

커피숍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충격과 경악!

사람들은 무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동하가 김일택을 바닥에 패대기친 장면이 압권이었다.

선하는 멍하니 넋을 잃고 동하를 쳐다보았다. 저토록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저, 저 선배가 정말 국문학과 최악의 개진상이라고?’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개진상이 저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아예 성자로 불려야 마땅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들은 동하와 관련된 소문 중에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싸가지가 없는 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도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동하의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깨웠다.

“선하야, 지금 당장 경찰서에 전화해.”

“예에?”

“여기에 기획사를 사칭한 사기꾼이 있다고 신고를 하란 말이야.”

“예, 선배님!”

선하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창가로 다가갔다.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고 전화를 끊는 순간 여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너무 멋있는 것 같아.”

“딱 내 이상형이야.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고. 싸움도 무지 잘 하고.”

“내가 가서 전화번호 달라고 얘기해 볼까?”

“아서라. 분명 망신만 당할 거야.”

“하긴, 저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 우릴 상대하겠어? 보나마나 여자 친구가 있을 거야.”

선하도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들의 말이 십분 공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한 일이었다.

‘저런 사람이 개진상이라고?’

☆ ☆ ☆

사건이 정리된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현장에 나온 경찰들이 김일택의 손에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사실 조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커피숍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내용의 증언을 했고, 결정적으로 갤럭시엔터테인먼트에 전화해 김일택의 거짓말을 확인했던 것이다.

“김일택은 전과가 있더군요. 아가씨,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경찰의 말에 유경은 다시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김일택은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시켜 놓았고, 유경이 차에 타면 미리 준비한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전해줄 생각이었단다.

유경은 다시 한 번 동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그때, 동하가 나타나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응?”

동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경찰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걸 보았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동하에게 설명을 듣던 경찰을 찾아가 물었다.

“혹시 저를 도와주셨던 분은 어디 가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까 그 학생이라면 조금 전에 학교로 돌아갔어요.”

“네에?”

“축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나중에 필요한 증언이 있으면 연락 달라면서 전화번호를 주더군요.”

“아, 네!”

유경은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겪어온 남자들이란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잘 보이려고만 할 줄 알지 지금처럼 무심하게 말도 없이 돌아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신선한 충격이다 못해 맥이 빠졌다.

그녀는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분 학교가 어디인 지 알 수 있을까요? 참, 전화번호도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 ☆ ☆

“야, 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지금이 몇 시냐? 우리가 장을 보고 오라고 했지 누가 데이트 하고 오라고 했냐?”

선하가 주점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 7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선배들은 화가 잔뜩 난 상태였고, 동기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 그게 아니고요…….”

그녀는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경찰 조사를 받느라고 조금 늦어졌어요.”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2학년 선배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 말을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고?”

“진짜에요, 선배님!”

“야야, 됐어. 그렇게 말하라고 동하가 시켰겠지.”

“하여간 그놈의 꼴통 짓은 변하지를 않네.”

“동하는 지금 어디 있는데?”

“과실에 음식 재료 만들러 가셨어요. 냉면 육수는 집안의 비법이라면서 혼자 가시겠다고 하셔서…….”

"그래도 군말 없이 음식 재료를 만들어주는 게 어디냐?"

개진상 최동하였기에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그나저나 조심해, 인마!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그게 최동하 수법이니까.”

“수법이요?”

“그 녀석 예전부터 선물공세며 돈지랄로 여자들 마음을 사는데 선수거든.”

선배들은 지금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선하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하는 유경을 도와주고도 공치사를 받기는커녕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학교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결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선하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그냥 온 이유를 물었는데 동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집에 빨리 가야 돼. 지금부터 열심히 음식 재료를 만들면 가까스로 12시 안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예에?”

“내가 신데렐라는 아니지만, 12시 안에 들어가야 되거든.”

최대한 성혜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꼭 집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정말 이유가 그것뿐이에요?”

“그럼, 뭐가 또 있는데?”

선하는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사람이 정말 개진상으로 불린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선하가 정신을 차리고 선배들에게 말했다.

“그, 그게 진짜로 저희는 경찰 조사를…….”

“너 아직까지 그 얘기냐?”

“그렇다고 해줄 테니까 빨리 네 자리로 돌아가서 음식이나 만들어.”

“예.”

선하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왠지 선배들에게 제대로 찍힌 기분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축제를 시작한지도 3일째가 되었다.

하지만, 동하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운기행공을 하고 1시간 동안 달린 다음 헬스장에 가서 근육을 단련했다. 헬스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사흘째였지만, 몇 달은 한 것처럼 근육이 보기 좋게 튀어 나와 있었다.

이젠 신체 비율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지 더 이상 살은 빠지지 않았다. 대신 배에 왕자가 더욱 선명하게 새겨지고 팔과 가슴의 근육들도 보기 좋게 만들어졌다.

동하는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한 뒤 학교로 넘어왔다.

첫날 대박이 났던 국문학과의 주점은 이튿날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렸다.

그리고 사흘째인 오늘은 손님이 더욱 많아져서 어제 준비한 재료들이 3시도 되지 않아 동이 나고 말았다.

대박도 이런 초대박이 없었다.

전통의 강자인 식품영양학과보다 오히려 국문학과의 주점에 사람들이 더 많았다. 식품영양학과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어제와는 다른 메뉴를 들고 나왔지만, 이미 한 번 기울어진 승부의 추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3, 4학년 선배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음식을 팔아주러 주점을 찾아왔다.

여기에 졸업생들까지 가세를 해서 국문학과는 마치 동창회 모임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다들 식품영양학과 애들 표정 봤지?”

“크크, 하나같이 약이 잔뜩 오른 표정이던데?”

“아유, 통쾌해! 살아생전에 식품영양학과 녀석들 콧대를 꺾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안주가 따로 필요 없었다.

이런 기분이라면 축제기간 내내 출근 도장을 찍으래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이면 드디어 필드에 가는 날인가?”

동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어플에 1이란 숫자가 찍혀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동하의 가슴을 짓눌렀지만, 그는 최대한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에겐 책임감이 필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소홀한 사람은 큰일을 맡겨도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하가 회귀하고 달라진 것 중 하나를 꼽자면 책임감을 들 수 있었다.

사실 선하의 자살을 막고 나이트클럽 콘셉트를 바꾼 것으로 학교 축제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동하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즉석복권으로 얻은 돈은 모두 주식에 재투자한 상태.

동하는 한 달 이내에 주식을 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한 달 동안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이제 성혜에게 돈을 타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돈을 모으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쉬운 대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싶었지만, 한 달 뒤에 월급을 받을 수 있기에 과감하게 생각을 접었다.

지금 동하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돈을 쥘 수 있는 것이었다.

“일자리는 아무래도 필드에 갔다 온 다음에 구하는 것이 좋겠지?”

이제 정말 카운트다운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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