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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19화 (19/167)

<-- 19화 : 서유경-01 -->

동하는 심장이 정지된 기분이었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온몸에 열기가 확 올라오며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되었다.

이곳이 편의점만 아니었다면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을지도 몰랐다.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숫자를 스크래치해서 5가 나왔을 때의 감동과 환희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동하는 무엇보다 가장 먼저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5천만 원만을 가지고서는 가족들을 호강시켜 주긴 어렵다.

그래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된 상황.

효도도 하고 오빠 노릇도 하는 생각만 해도 울컥했다.

하지만, 동하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처음 번 돈은 가족들을 위해 쓸 생각이었다.

식당을 리모델링하는데 5백만 원 정도 주고, 남은 돈은 성혜에게 생활비도 주고, 미진과 미현에게 용돈도 주고 싶었다.

벙커를 만들고 앞으로 다가올 멸망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이 먼저 살고 봐야 하는 일 아닌가?

당장 미현만 봐도 그렇다.

미현이 학업을 포기하고 미진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이건 장남인 동하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데, 당첨금이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세금 22%를 떼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돈이 3천9백만 원이었다.

더구나 동하에겐 아직 증폭된 능력이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이걸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목돈을 불리고도 남는다.

그러니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회는 있을 때 잡는 것.

동하는 목돈을 불리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 ☆ ☆

어제와 오늘의 태양이 똑같듯 동하의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새벽에 운기행공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1시간 이상 땀을 흘리며 달리는 것으로 활력을 일깨웠다.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몸은 날아갈 것처럼 개운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나고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동하는 운기행공 말고도 근육 운동의 시간을 대폭 늘렸다.

이제 며칠 뒤엔 필드라는 곳을 가야 한다.

어플을 확인해 보니 숫자는 4로 변해 있었다.

4일 남았다는 뜻이었다.

“목요일이군.”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더 수련에 매진했다.

동하는 필드에 가기 전까지 최대한 몸을 단련하고 거인의 힘을 조금이라도 더 복구할 생각이었다.

오늘부터는 헬스도 시작할 생각이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는데, 관리사무실 2층에 있는 이 헬스장이 가격대비 시설이 괜찮았다.

한 달에 2만 원이었다.

그리고 3개월 치를 끊으면 1만 원 할인해서 5만 원이었다.

당시에는 굳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헬스장을 이용할 수 있어서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샤워시설이 없었다.

운동하고 나서 바로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뭐 싸니까.”

동하는 일단 한 달 정도만 해볼 생각이었다.

오전이고 출근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다 보니 헬스장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저씨 2명에 아줌마 1명이 전부였다.

헬스는 처음 해보는 운동이었다.

하긴, 평소 통통했던 동하가 운동을 좋아했을 리 없었다.

“어디 한번 해볼까?”

동하는 가장 먼저 벤치프레스부터 도전했다.

원래 투수들이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연습투구를 해서 어깨를 풀어주듯 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육운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반드시 유산소 운동으로 근육을 풀어줘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동하는 이미 1시간 이상 달려 왔기 때문에 유산소 운동을 건너뛰었다.

쌀 한가마니도 가볍게 든 동하였다.

그 밑으로는 너무 가벼워서 운동하는 기분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동하는 벤치프레스의 무게를 100kg으로 맞추었다.

한 달에 2만 원짜리 헬스장이었다.

관장이 있긴 하지만, 운동을 봐주거나 자세를 잡아주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돌아다니면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동하는 차라리 그게 더 편했다.

“확실히 가벼운데?”

역기를 처음 드는 순간부터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래도 몸을 풀어준다는 기분으로 10번을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는 120kg으로 무게를 올렸다.

“이것도 가볍네.”

동하는 그렇게 무게를 몇 번 올리더니 결국엔 180kg까지 올렸다.

바벨을 뺐다가 크기에 따라 끼워 넣는 것도 일이었다. 여기저기 있던 바벨을 모두 끌어와 간신히 무게를 맞출 수 있었다.

“으음.”

이제야 제대로 운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기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 사이에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동하는 모든 운동을 3세트로 한정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은 1분.

그렇게 벤치프레스부터 시작해서 렛풀다운과 숄더프레스 등 상체운동만 하는데 1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팔 운동과 하체 운동까지 해서 2시간을 채웠다.

동하는 2시간 내내 격렬하게 운동을 했는데도 약간 뻐근한 느낌만 있고 그리 힘이 들진 않았다.

물론 내일 되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무리하게 운동한 다음 날이면 꼭 생기는 알이 배기는 일은 왠지 없을 것 같았다.

거인의 힘이 올랐다는 괴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근육이 아까보다 좀 더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처음엔 3명뿐이던 사람들이 지금은 7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번엔 젊은 여인들이 2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운동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동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저게 가능해?”

“스커트 무게만 200kg이야.”

놀랄 만도 했다.

스커트는 흔히 역기를 뒷목에 걸치고 앉았다 일어나는 기구였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은 가능하면 동하와 멀찍이 떨어져서 운동을 했고, 여자들은 힐끔힐끔 동하를 훔쳐보기 바빴다.

오죽하면 관장까지도 약간 주눅이 들 정도였다.

☆ ☆ ☆

“살이 또 빠졌네.”

이제는 더 이상 뱃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온몸의 근육은 탄탄해졌고, 배에는 왕자도 새겨져 있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90kg이 넘던 몸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유독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한국에서는 가장 큰 경쟁력을 얻은 셈이었다.

이전 생애에서 불구가 되고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대인공포증까지 가졌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이상 입을 수 있는 옷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속옷조차 말썽이었다.

“옷은 몰라도 속옷은 사야겠는 걸?”

일단은 속옷을 입지 않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동하는 은행에 가서 당첨금을 찾고 인근에 있는 증권사에서 계좌를 개설했다.

그는 남은 한 번의 기회를 주식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지점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벽에 설치되어 있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당시에는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주식을 거래하고 싶으면 무조건 지점에 가야만 했다.

물론 지점에는 주가의 당락을 확인할 수 있는 화면이 준비되어 있었다.

동하는 수시로 변하는 화면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된 상태였다.

실패할 확률은 없었다.

다만, 기간을 언제까지 정하고, 이익을 어느 선까지 맞추느냐가 문제였다.

단타로 치고 빠지자니 그러면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사용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장투로 가자니 지금 동하의 사정이 그리 오랜 시간동안 투자할 여건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10일 안에 2배 정도 오르는 것으로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상한가를 몇 번 치는 종목들은 공시가 뜨고 제한이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결국 단타로 조그만 먹느냐, 아니면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가는 대신 이익을 높이느냐의 선택이로군.”

동하는 과감하게 모험을 거는 쪽으로 선택했다.

설령 원하는 조건이 나오지 않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사라진다 해도 동하로써는 손해 보는 건 아니었다.

“30일 안에 3배 이상 오르는 종목이 뭐지?”

☆ ☆ ☆

식당에 오니까 2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바쁜 시간은 지나가고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었다. 동하는 성혜와 성미만 잠깐 보고 학교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저 왔어요, 이모!”

“동하야, 너 어디 아프니? 요 며칠 아주 반쪽이 됐네.”

“후후! 저 괜찮아요. 요즘 운동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옷이 그게 뭐니?”

성미는 혀를 끌끌 찼다.

이건 뭐 패션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었다.

“안 되겠다. 나하고 같이 좀 나가자.”

“왜요?”

“젊은 애가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면 여자들이 싫어해.”

“괜찮아요, 저는…….”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이모가 옷 하나 못해주니?”

성미가 자발적으로 동하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구운 김과 돈가스김밥 때문에 고맙기도 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동하는 더 이상 개망나니가 아니었다.

동하는 몇 번이고 거절을 했다.

성미의 형편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식당에서 가까운 옷가게를 찾아가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나니까 마음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거울 속의 동하가 180도 달라져 있었다. 183센티미터의 키에 탄탄하고 슬림한 몸매는 영락없는 모델이었다.

성미도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우리 동하 잘 생겼네. 인물이 훤해졌어.”

“잘 입을게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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