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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18화 (18/167)

<-- 18화 : 능력 증폭 -->

“역시!”

꽝이었다.

뜨겁게 올라왔던 열기가 한순간에 식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충분히 각오했던 일이긴 했지만, 이런 결과에 실망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동하는 허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남은 5장의 복권도 마저 긁었지만, 가장 비싼 당첨금 액수가 5만 원이었다.

“하아!”

어쩌면 이게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적중률 5% 미만의 확률을 믿고 연속해서 몇 번이나 달려왔던가?

돌이켜 보면 그랬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7번의 횟수 중에서 심안의 눈동자가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인지 아니면 한 번이라도 진실을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기회는 3번 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줄어드는 횟수에 조금씩 쫓기던 동하였다.

한데, 이제는 벼랑 끝에 선 것 사람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변했다.

괜히 아까운 포인트만 날려먹은 건 아닌가 싶어서 후회가 되기도 했다.

과연 3번 안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다시 물어야 하나 아니면 처음 갔던 편의점에 가서 확인을 해야 하나??

동하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변해갔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지금 동하가 그랬다.

평소에는 글자들이 눈앞에 둥둥 잘만 떠다니더니 지금은 스크래치에 막혀서 복권에 어떤 숫자가 숨어 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각성 상태가 너무 낮아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물론 9성급 S몬의 능력 중 가장 하찮은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였다.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우우웅!

“뭐지?”

스마트폰으로 전화나 문자가 올 리 없었다.

그렇다고 시계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 알람이 울릴 리도 없었다.

띠링!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약합니다.

“응?”

괴음이 대낮에 들려오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염동력의 수치를 높이면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올라갑니다.

“어라?”

동하는 적잖이 놀랐다.

괴음이 오늘따라 너무 친절했다.

이런 부가설명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스마트폰 안에도 9성급 S몬의 프로그램이 전이된 상태.

동하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집중을 하고 글자가 둥둥 떠다니는 능력을 떠올리자 동하의 몸속에 있던 프로그램과 스마트폰에 있던 프로그램 사이에 동기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자주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마침 심안의 눈동자의 속성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의 속성이 비슷하지 않았다면 동하의 심정이 아무리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해도 일어나지 않았지도 몰랐다.

9성급 S몬은 전지전능한 능력의 신과도 같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사물 안에 스며든 능력도 얼마든지 흡수할 수 있었다. 일종의 흡혈신공과도 같았다.

☆ ☆ ☆

-진실의 눈을 흡수해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 혹시 이걸 말하는 거냐?”

동하는 본능적으로 심안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진실의 눈은 아무래도 심안의 눈동자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럼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뭔데?

동하가 채 묻기도 전이었다.

-흡수를 시작합니다.

“자, 잠깐! 여, 여기서는…….”

동하가 황급히 말했지만, 심안의 눈동자를 쥐고 있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끝에서 시작된 청량한 기운이 팔을 타고 두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띠링!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어느새 심안의 눈동자가 힘을 잃고 푸석하게 변해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남은 3번의 기회도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었다.

동하는 혹시나 공력이 생겼을 때처럼 앉아서 명상을 하라고 하거나 수련을 하라는 말이 나올까 싶어 잔뜩 긴장했다. 대학가 근처에서 은밀하게 수련할 장소를 찾는 건 무리였다. 그땐 정말 큰 낭패를 겪을게 뻔했다.

하나 흡수가 완료되었다는 말을 한 이후 괴음은 조용했다.

그제야 동하가 한숨을 내쉬고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휴우!”

십년은 감수한 기분이었다.

그때, 동하의 눈동자에 파란색 기운이 일렁거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평소의 검은색 눈동자로 되돌아왔다.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동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안의 눈동자 상태를 보면 그 안에 있던 능력을 흡수한 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대충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분명 글자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혹시 스크래치 안에 있던 글자들이 떠오르는 것일까?

동하는 바로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 실험해 보았지만, 여전히 스크래치에 막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 ☆

아르바이트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복권을 다 긁으셨나 봐요. 적중률 5%가 효과가 있던가요?”

“전혀요. 역시 미신이었던 모양입니다.”

실망은 실망한 거고 굳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티를 낼 필요가 있을까?

동하는 가볍게 농담하듯 말했다.

“호호! 아쉽네요. 저도 한번 써먹어볼까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한번 해보세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건 기본 옵션이니까 참고하시구요.”

“풉! 아, 아니에요.”

아르바이트생은 이제 동하가 무슨 말만 해도 웃었다.

오늘 처음 본 손님과 이렇게 웃고 떠든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그녀조차 놀랄 정도였다.

무척 생소한 경험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동하는 얼굴도 준수하고 꽤나 유머러스했다.

더구나 지금은 살도 많이 빠져서 통통하기 보다는 슬림한 쪽에 가까웠다. 턱선이 좀 더 날카로워졌고, 원래 준수하던 얼굴이 더 준수하게 변했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만 옥에 티라면 동하가 입고 있는 옷이 하나같이 엄청 커서 꼭 다른 사람의 옷을 얻어 입은 것처럼 없어 보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하가 운기행공을 하고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옷을 살 형편도 없거니와 요 며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옷차림에는 아예 손을 놓고 지냈던 것이다.

‘옆에서 도와준다면 해볼 용의가 있다고 말해볼까?’

그녀는 입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정작 속으로는 앙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하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가 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들이 모두 글자가 되어 동하의 눈앞으로 둥둥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게……?”

동하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무래도 심안의 눈동자와 사물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합쳐져 이런 식으로 진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확인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괴음에 따르면 진실의 눈을 흡수해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시적이란 단어였다.

심안의 눈동자는 딱 10번만 사용할 수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방금 전 그녀의 참된 마음을 알게 된 것 역시 1번 사용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능력을 증폭 시킬 수도 있었구나!’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모든 게 아직은 각성 상태가 너무 낮아서 발생한 일이긴 했지만, 동하는 엄청난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사라졌던 기회가 다시금 찾아온 셈이었다.

그리고 이건 5% 미만의 적중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 ☆

‘남은 기회는 2번뿐이야.’

정말 그런지 안 그런지는 동하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게 여러모로 후회가 안 생길 것 같았다.

동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싱긋 웃어 보이고 즉석복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젠 굳이 손으로 잡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여기 있는 복권 중에서 천만 원 이상 금액으로 당첨되는 것이 무엇이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100장 정도의 복권이 한데 섞여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숫자들이 둥둥 떠오르며 동하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숫자가 너무 많아 당황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것이 즉석복권의 일련번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숫자들이 이쯤에서 나왔으니까……. 아! 여기 있다.”

동하는 눈앞에 떠오른 일련번호와 일치하는 즉석복권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증폭된 건 확실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었다.

여기서 실패해도 1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무래도 이 500원은 조금 이따 돌려드려야겠네요.”

“이번에는 10장 단위로 안 물어 보시네요.”

“이거 정말 비밀인데, 놀라지 마세요. 미신의 능력이 좀 더 증폭 되었거든요.”

“풋!”

배꼽을 잡고 웃는 아르바이트생을 뒤로 하고 동하가 다시금 테이블로 돌아왔다.

쓱쓱싹싹!

이번에도 동하는 당첨금 금액부터 확인했다.

“오천만 원!”

아까보다 2천만 원이 오른 셈이었다.

동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행운숫자를 벗겨냈다.

5란 숫자였다.

이제는 내 숫자를 벗겨낼 차례.

숫자는 모두 네 자리였다.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왼쪽에서부터 하나씩 벗겨나갔다.

먼저 1이란 숫자가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 9가 나왔다.

세 번째 숫자는 7이었다.

남은 숫자는 이제 하나.

동하는 마지막 남은 숫자 하나에 운명을 거는 심정으로 천천히 벗겨 나갔다.

[5]

당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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