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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16화 (16/167)

<-- 16화 : 심안의 눈동자-01 -->

“이모, 쌀은 제가 옮길게요.”

“어? 그, 그래 주면 고맙지.”

“이거 어디다 둘까요?”

“주방에 가면 쪽문 있거든? 문 열고 나가면 창고가 있을 거야. 거기에 두면 돼. 근데, 동하야! 쌀 한 가마를 혼자서 들 수 있겠어? 그냥 수레에 싣고 옮겨도 되는데…….”

“옆집 가게에서 빌려와야 한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진짜 괜찮겠니? 잘못 하다 허리 다쳐, 얘!”

“남자가 이 정도는 들어야죠.”

동하는 말과 함께 쌀 한 가마를 번쩍 들었다.

한데, 너무 가벼워서 동하도 깜짝 놀랐다. 공력이 생기고 거인의 힘이 3%가량 복구되어서 혼자도 충분히 들 수 있겠단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가벼울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왠지 한손으로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힘자랑을 해서 사람들 눈에 띄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성미는 충분히 놀라고 있었다.

“우리 조카 장사네. 그럼, 부탁할게, 동하야!”

동하는 주말 이틀 동안 성미의 식당에 나와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설거지면 설거지, 배달이면 배달, 그리고 지금처럼 힘을 써야 하는 일까지.

덕분에 성미는 한결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이 맞다.

무작정 성미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팔아볼 생각이 있냐고 말하면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덜컥 의심부터 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찌 되었든 성미는 여전히 동하를 개망나니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동하는 벙커를 만들면 성미만큼은 꼭 데려갈 생각이었다.

집안이 망했을 때 일가친척들이 모두 외면했지만, 오직 성미만이 눈물을 흘려주고 고통을 함께해 주었다.

성미의 형편이 넉넉했다면 지금처럼 크게 감동받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나 성미의 형편 역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고, 식당 역시 장사가 그리 잘 되지 않아 가게 월세 내는 것도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통의 짐을 같이해 주었으니 그 은혜를 어찌 쉽게 잊겠는가?

그래서였다.

동하는 이제부터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다 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음식과 관련된 일은 성혜와 성미에게 맡겨야 동하는 더 편한 마음으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언니, 요즘 동하에게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요즘 동하를 보면 철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예전하고는 너무 달라서 말이야.”

동하는 불과 며칠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가 알던 개망나니 최동하가 아니었다.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놓은 게 아니어서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동하가 쌀가마니를 창고에 두고 다시 가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동하야, 밥 줄까?”

시간은 어느새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당은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밥을 먹어야 해서 대부분 점심은 11시 정도에 먹는다.

“오랜만에 김밥 먹고 싶은데 괜찮죠?”

“호호! 김밥이 먹고 싶었구나! 잠시만 기다리렴.”

성미가 주방으로 들어가 김밥을 만들려는 순간이었다.

“이모, 지금 그 김, 구운 김 아니죠?”

동하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아무것도 모른 척 물었다.

“구운 김? 조미 김 말하는 거니?”

김밥용 김에 구운 김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김밥용 김으로 일반 생 김이 쓰이던 시대였다.

하지만, 십여 년 후에는 구운 김을 김밥용 김으로 사용하는 게 대세가 된다.

구운 김과 일반 김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반 김은 식감도 그리 좋지 않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비린 맛이 난다.

그에 비해 구운 김은 식감도 식감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비린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김밥의 맛과 질 역시 구운 김이 몇 배는 더 좋다.

“이렇게 프라이팬을 불에 살짝 달궈준 상태에서요. 앞뒤로 살짝 구워주시면 되요.”

구운 김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하는 순식간에 십여 장을 구웠다.

이번엔 성혜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동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김치말이 국수의 여운이 많이 남았던 것이다.

“김을 구워서 김밥을 싸면 맛이 달라지니?”

“후후! 드셔 보시면 아실 거예요.”

“그래?”

성미는 고개를 기웃거리면서도 김밥 몇 줄을 뚝딱 만들었다.

겨우 김을 구웠다고 맛이 달라질까.

하지만 막상 김밥을 딱 한 조각 먹는 것만으로도 성미는 두 눈을 크게 치떠야 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구운 김을 사용했을 때와 일반 김을 사용했을 때가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성미는 김밥이라고 하면 안에 들어가는 속 재료가 중요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김밥용 김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맛있구나!”

성혜도 김밥을 먹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이미 동하가 구운 김을 얘기할 때부터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겨우 김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동하야, 혹시 요즘에 요리학원 다니니?”

“핫핫!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이건 어떻게 안 거야?”

성혜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당연했다.

간단해 보여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구운 김으로 김밥을 만드는 곳이 없다.

심지어 호텔 뷔페에 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친구 중에 식품영양학과에 다니는 녀석이 있거든요. 그 녀석 말이 김을 살짝 구우면 비린 맛이 안 난다고 했거든요. 그때, 문득 김밥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랬구나!”

성혜가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혹시 동하가 요리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기대했던 것이다.

사실 며칠 전에 미현이에게 만들어준 또띠아 피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동하를 요리 천재로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성미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동하가 요리에 재능이 있는지 몰랐네.”

“하하! 이모도 참. 겨우 그거 가지고 재능이 있다면 사람들이 욕해요.”

“이게 어떻게 겨우니? 난 그 친구라는 아이보다 김밥에 응용하려 한 동하 네가 더 대단한 것 같다.”

성미는 원래 빈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만큼 구운 김으로 만든 김밥은 몇 번을 칭찬해도 부족함이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동하야. 이걸로 김밥을 만들어서 팔면 어떨까?”

동하가 하고 싶던 말을 성미가 먼저 꺼냈다.

동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야 상관없어요. 근데, 이모! 김밥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제가 몇 개 생각한 게 있거든요.”

“그래? 어떤 건데?”

성미의 눈에도 기대와 호기심이 어렸다.

“돈가스김밥이라는 겁니다.”

“도, 돈가스?”

“여기도 돈가스 팔죠?”

“응, 팔아!”

“그 돈가스를 김밥에 넣는 거예요. 그리고 돈가스 소스와 마요네즈를 같이 넣어서 마무리 해주면 일석이조일 것 같거든요.”

“일석이조?”

“돈가스도 먹고 김밥도 먹고.”

“아!”

성혜와 성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먹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기분 좋은 상상이 떠올랐다.

☆ ☆ ☆

돈가스김밥이야말로 히든카드였다.

사람들이 이걸 사먹기 위해 1,20분 이상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십여 년이 지난 후였다.

지금처럼 김밥의 종류가 몇 개 안 되는 시대에는 무조건 통한다.

성혜와 성미의 반응도 엄청났다.

대박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돈가스김밥이 특히 여자들의 입맛에 더 맞아서 더 그럴지도 몰랐다.

성미는 이제 동하를 요리 천재로 생각했다.

개망나니 최동하는 잊은 지 오래였다.

성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고뭉치였던 아들이 확 달라진 것도 부족해서 엄청난 요리 센스를 보여주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동하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보여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성미의 신뢰도 얻고 자신의 의도한 대로 자연스럽게 음식을 팔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동하는 지난 이틀 동안 식당에서 일하고 나서야 식당의 문제점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리적인 위치가 좋지 않은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

한창 바빠야 할 점심시간에도 유동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가게가 지저분한 것도 문제였다.

이래서는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어도 과연 사람들이 먹으러 들어올지가 의문이었다.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입소문이 나려면 아무래도 나이든 사람들보단 젊은 사람들이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적든 많든 돈이 필요했다.

가게를 인상대학교 근처로 옮기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선책으로 지저분한 가게를 리모델링해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동하가 넌지시 운을 떠보자 성미도 마음이 아예 없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리고 끌어다 써도 리모델링 하는 것도 벅찬 모양이었다.

“심안의 눈동자를 사용해 볼까?”

적중률이 5% 미만이라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더구나 10회 이상 사용이 불가한지라 아무거나 선뜻 결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 까짓 거. 인생 뭐 있겠냐?”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그는 돈가스김밥이나 김치말이 국수 등을 믿었다.

설령 식당을 리모델링하지 못해도 언제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반드시 입소문은 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동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적중률 5%미만도 그렇게까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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