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지구 최초의 손님-02 -->
그림의 떡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정작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법.
지금 동하가 그랬다.
문제는 돈, 즉, 만물상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고객센터에서 가져온 안내책자에 따르면 필드는 3주에 한 번씩 열린다. 그리고 다음 필드까지 남은 시간이 6일 정도이면 그때는 테스터들이 대부분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 만물상점이 한가할 때였다. 덕분에 동하는 여유 있게 D 블록을 둘러볼 수 있었다.
거리에 테스터들이 거의 없었다.
가끔 가다 한두 명 보는 게 전부였다.
무림관의 구조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의외로 복잡했다.
먼저 정파의 무공만 취급하는 매장이 따로 있다. 그리고 마도와 사파의 무공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이 따로 있었다.
여기에 권법, 검법, 장법, 보법 등 무공의 종류별로 매장이 있고, 영약과 기보를 취급하는 매장도 있었다.
한쪽에는 말과 수레 그리고 마차만 파는 거리가 따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적토마도 있고 설리총도 있네.”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전설의 명마였다.
동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는 별로 끌리지 않았지만, 무림 종족들 사이에서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꼭 갖고 싶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동하도 무공비급이나 영약 등을 보았을 때는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천년설삼에 만년화리 내단에 독각도룡의 피에…….”
동하는 입에 침이 고였다.
천년설삼이 놓인 매대 앞에는 간단한 설명서가 적혀 있었다.
[한 번 복용으로 백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
무려 백년이란다.
이제 고작 1성 수준의 내공을 가진 동하에겐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였다.
[만년화리 내단은 한 번 복용으로 이백 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
“이, 이백 년!”
백년의 공력도 대단한데 이백 년이라니.
한 사람이 이백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련을 해도 얻기 힘든 법이다.
하물며 내단 하나에 이백 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면 이건 거의 사기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백 년의 공력이 생기면 9성급 S몬의 능력도 회복될 수 있을까?”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회복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독각도룡의 피는 70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무한한 정력을 갖게 되어 밤일에 유용하게 쓰인다.]
공력을 높이는 것만 놓고 보면 천년설삼이나 만년화리 내단에 비해 결코 좋은 건 아니지만, 밤 일에 좋다는 건 남자들에게 로망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 동하에겐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림의 떡이었다.
포인트는 필드에 갔다 오면 순위와 성과에 따라 멤버십 카드에 저절로 적립이 된다고 안내책자에 적혀 있었다.
테스터들은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곧바로 만물상점에 들려 무기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영약을 구입해 공력을 높인다.
더 좋은 영약과 무공비급.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서라도 테스터들은 목숨을 걸고 필드를 다녔다.
“천년설삼의 가격이 100만 포인트고 만년화리 내단이 200만포인트라…….”
그나마 저렴한 독각도룡의 피도 75만 포인트였다.
상위 테스터들도 감히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다.
이곳의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이 5포인트였다. 그리고 제법 비싼 음식은 10포인트였고, 최고급 코스 요리는 20포인트 내외였다.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데에도 15포인트를 써야 한다.
테스터들이 쇼핑을 끝내고 조금이라도 빨리 각자의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하루만 보내도 써야할 포인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지금 25포인트가 멤버십 카드에 적립되어 있다.
아까 안내직원이 바코드기계로 회원 인증을 하면서 가입 축하금으로 적립시켜 준 것으로 한 끼 식사밖에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25포인트 가지고는 무림관에서 살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막말로 육합검법이나 삼재검법이니 해서 삼류무공조차 30포인트가 넘어갔다.
설령 이것들을 살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해도 동하는 별로 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괜히 포인트만 낭비하는 일이었다.
☆ ☆ ☆
생활관은 C 블록에 있었다.
여기도 테스터가 거의 없어서 거리는 한산했다.
이곳은 생필품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어쩌면 무림관보다 더 호기심이 들었던 곳이었다.
“이 거리는 오직 음악과 관련된 물건만 취급하는 매장만 있네.”
그 매장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기타 등등.
음악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는 것이 없었다.
“주니얼 3개월 속성 교본?”
책 서문에는 단지 한 번만 읽고도 3개월 동안 피아노 학원에 다닌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아마 지구로 치면 바이엘과 같은 개념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지금 동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스마트폰에 있는 노래들을 활용하려면 악기를 연주하고 악보를 그리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아쉽게도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 통기타를 몇 개월 연습한 것이 전부였다.
“피아노 셔먼 속성 마스터?”
서문을 읽어 보면 대충 체르니와 비슷한 수준 같았다.
이건 눈이 번쩍 떠질 만큼 괜찮은 것이었다.
하나 유감스럽게도 가격이 문제였다.
“끙! 1,000포인트라니…….”
겨우 25포인트 가진 동하에게는 ‘넘사벽’이나 마찬가지였다.
생활관에는 언어와 관련된 매장도 있었지만, 동하에겐 딱히 쓸모없는 곳이었다.
만물서점은 지구와 관련된 것이 없었다. 당연히 영어니 중국어니 한국어니 하는 것들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음악처럼 비슷한 물건들은 제법 많았다.
“이건 공유기인데?”
이것 역시 동하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공유기를 돌려서 스마트폰을 한 번 실행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끙! 이것 역시 50포인트네.”
그나마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저렴한 것이었다.
“응?”
동하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거렸다.
특이한 물건을 발견한 것이다.
“심안의 눈동자?”
푸른색이 감도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보석이었다.
얼핏 봐도 무언가 꿰뚫어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명서에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었다.
25포인트.
원래는 50포인트였는데, 50% 특가 세일을 하고 있었다.
25포인트면 동하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로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대박이란 생각이 언뜻 스쳐지나갔다.
로또나 주식 등과 연계시키면 진실을 알려주지 않을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왜 이런 것이 50%나 특가 세일을 하고 25포인트 밖에 안하는 거지?
동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설명서 가장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깨알같이 적혀 있는 주의사항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적중률 5% 미만. 10번까지 사용 제한]
“끙! 삼류검법보다 더 싼 이유가 있었군.”
정말 안 팔려서 50% 특가 세일을 하는 것 같았다.
5% 미만이라면 아예 없는 것과 다를 없었다.
동하는 고민에 빠졌다.
이걸 사야 하나 아니면 포인트를 아꼈다가 다음에 좋은 걸로 사야 하나.
5% 미만이라도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단 높다.
그래도 괜히 샀다가 피 같은 포인트만 낭비할 것 같아 망설여진다.
“끙!
동하는 고민에 빠진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 ☆ ☆
공간이 일렁이며 동하의 모습이 과실에 나타났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애초에 자신이 만물상점으로 오게 한 것을 이용하면 된다.
동하는 스마트폰의 베타테스트란 어플을 이용했는데, 한 번 누르면 로그인이 되고 다시 한 번 누르면 로그오프가 된다.
시간이 꽤 지난 줄 알았다.
만물상점에서 쇼핑한 시간만 4시간이 넘었으니까.
한데 시간을 보니 동하가 처음 공간에 빨려들어가기 전보다 1분 정도가 더 지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분명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 정도로 배고픔이 느껴졌는데, 막상 과실에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았다.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한바탕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지만, 그의 손에는 심안의 눈동자가 쥐어져 있었다.
그랬다.
동하는 꽤나 오랜 시간 고민을 했지만, 결국엔 지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대신 최대한 기대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게 과연 로또나 주식 등과 연계될지도 아직은 의문이었다.
“응?”
동하가 스마트폰을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는 베타테스트 어플이었다.
만물상점으로 빨려들어가기 전에는 검은색 아이콘만 있었다면 지금은 어플에 빨간색으로 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카운트다운인 모양이었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필드로 가는 게 틀림없었다.
그때에도 아이콘을 터치해야 하는지 아니면 저절로 알아서 실행이 되는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필드가 어떤 곳인지 모르니 온갖 잡념이 다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 않던가?
동하는 머리를 흔들고 잡념을 떨쳤다.
그리고 과실을 정리하고 인천으로 향했다.
동하가 도착한 곳은 이모의 식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