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3화 (13/167)

<-- 13화 : 만물상점-02 -->

새벽 5시가 되자 어김없이 괴음이 들렸다.

동하는 습관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운기조식의 자세를 취했다. 수련을 시작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적응이 된 상태였다.

고고한 달빛이 창문 너머 과실 안을 비추고 있었다.

동하는 간밤에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과실의 소파에 누워 잠을 잤다.

덕분에 오늘은 미리 일어나 뒷산을 오르는 수고는 하지 않아서 좋았다.

-운기행공을 시작합니다.

따듯한 기운은 어제와 같은 동일한 경로로 움직였다.

동하가 인체의 혈도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었다면 공력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한결 편했을 것이었다.

그 점이 못내 아쉬운 동하였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혈도의 위치를 공부해야겠다.’

공력은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고 있었다.

그때 문득 웅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하는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운기행공 중에 움직일 뻔했다.

처음에는 이 새벽에 누군가 과실에 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핸드폰 진동 소리 같았다.

‘과실 안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 되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준비위원들을 모아놓고 시식회를 하지 않았던가?

아마 누군가 핸드폰을 놓고 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관심을 없애려고 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진동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공력이 두 바퀴를 돌고 세 바퀴째가 되자 진동 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그제야 동하는 이게 단순한 진동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력이 체내를 도는 횟수가 더해질수록 진동 소리도 더 강해졌다.

동하는 신경이 쓰이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운기행공 중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동하는 답답한 마음을 참고 운기행공에 집중했다. 회귀 하고 둘째 날 산속에서 운기행공을 할 때도 이렇게까지 시간이 느리게 가지는 않았었다.

-운기행공을 마칩니다.

동하는 재빨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분명 소파 근처에서 났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소파 위는 아니라는 소리.

간밤에 동하가 소파 위에서 잤으니까 말이다.

어느새 시간은 7시가 되었지만, 과실은 약간 어두웠다.

동하는 불을 켜서 과실을 환하게 밝힌 다음 소파 밑을 확인했다.

저 안쪽 깊이 무언가 있었다.

동하가 손을 뻗어 물건을 꺼내고 확인하는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이건?”

☆ ☆ ☆

핸드폰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스마트폰이었다.

이전 생애에서 동하가 9성급 S몬과 함께 죽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이었다. 당시 동하는 죽기 직전에 성혜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죽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에 9성급 S몬의 피가 잔뜩 떨어져 있어서 끝내 성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근데 이게 어떻게 여기 떨어져 있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동하는 자신이 회귀할 때 같이 딸려 왔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당시 동하가 죽기 직전에 입고 있었던 옷과 신발도 딸려 왔어야 하는데, 그것들은 같이 오지 않은 것이다.

필유곡절이라 했다.

스마트폰이 같이 딸려 온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하나 이는 상식을 뒤엎는 일이었다. 동하는 모든 가능성을 열고 생각해 보았지만, 머리가 복잡해지고 골치만 아파질 뿐이었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동하가 처음 회귀하고 눈을 떴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동하는 자신을 부르는 선하 등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소파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던가?

아마 그때 스마트폰도 함께 떨어져서 소파 밑으로 들어간 것이리라.

“응?”

문득 홈 버튼을 눌렀다가 또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하가 회귀를 한지도 벌써 4일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배터리가 0%가 되어 전원이 꺼져 있어야 정상이었다.

한데 놀라운 일이었다.

배터리 잔량이 100%였기 때문이었다.

☆ ☆ ☆

우주 말살 프로젝트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을 꼽으라면 딱 두 가지가 나온다.

결정체와 프로그램.

이 두 가지가 없으면 몬스터 자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결정체는 몬스터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었다.

결정체의 힘이 강하면 몬스터의 능력도 덩달아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프로그램.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여기엔 샤이언 종족의 초고도 문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였다.

9성급 S몬을 움직이는 결정체와 프로그램은 단연 샤이언 종족의 문명을 총집약해 놓은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하가 9성급 S몬와 함께 죽을 때 결정체의 힘과 프로그램이 동하의 몸으로 전이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동하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에도 프로그램 일부가 전이된 상태였다.

동하의 무공 수련을 알려주던 괴음의 정체가 바로 9성급 S몬의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하에게 전이된 프로그램의 상태는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프로그램 상태가 정상적이었다면 단순히 운기행공을 하라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발경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무공을 익혀야 하는지 등도 알려줬어야 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에 버그가 생기거나 오류가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프로그램 일부가 스마트폰으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동하가 운기행공을 하자 스마트폰이 반응을 보인 건 당연했다.

그래서일까?

동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만 있는데도 마음이 한결 안정된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무공을 수련할 때 기물의 도움을 받아 능력을 높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은 예전 그대로였다.

당시 동하가 깔아놓은 어플들도 그대로 있었고, 성혜의 사진 등도 폴더에 들어가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통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와이파이도 없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용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냥 공기계보다 사용 용도가 떨어졌다. 이건 배경화면에 나오는 시간마저도 먹통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스마트폰 안에 내려 받은 노래는 꽤나 유용하겠군.”

이것도 행운이라면 엄청난 행운이었다.

동하가 다운 받은 노래들은 데이터나 와이파이가 있어야만 실행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공기계 상태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이 안에 있는 노래들을 자신의 저작권으로 등록하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십 년은 더 지난 후에 발표된 노래들이 대부분인지라 다른 가수들이 불러야 한다는 제약이 뒤따르긴 한다. 만약 다른 가수들이 불러도 노래들이 동일하게 성공한다는 확신할 수 없었다.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가수의 브랜드 파워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가수가 불렀으니 그 노래가 떴다는 말은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시기적으로도 지금 유행하는 노래들과 스마트폰 안에 있는 노래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CD로 앨범을 내던 세대에서 MP3로 음악을 소모하는 세대 사이에는 노래의 분위기나 기승전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것저것 다 고려하고 시대를 불변해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동하는 가슴이 격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음식에 이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원저작권자를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어떤 노래들이 시대를 불변하고 사랑을 받지?”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스마트폰 안에 있는 노래들만 국한해서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동하는 자신이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몇 년 후의 노래들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응?”

스마트폰을 살펴보던 동하의 눈에 의문의 기운이 떠올랐다.

낯선 어플 하나가 눈에 보였다.

자신이 이런 어플을 설치했던가?

이름도 생소했다.

베타테스트

“이게 뭐지?”

동하는 별 생각 없이 어플을 눌렀다.

순간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눈앞에 공간이 일렁이는 듯싶더니 온몸이 공간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억?”

동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두려운 나머지 두 손과 두 발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극히 짧았다.

동하의 눈앞에 이내 광장이 나타났다.

주위가 온통 하얀색뿐이었고, 커다란 기둥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가구나 탁자조차도 없었다.

“헉?”

동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귀신에 홀려도 정도가 있지. 동하는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비벼 보았지만, 새하얀 공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베타테스트를 지원하셨습니다. 인증이 필요합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괴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양쪽 벽에서 붉은색 빛이 나오더니 동하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띠링!

-인증 완료. 무림 종족으로 확인 되셨습니다.

“무, 무림 종족?”

베타테스트는 또 뭐고?

동하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250,000번째 테스터로 선택 되셨습니다. 현재 당신의 필드 순위는 250,000등 입니다.

“테스터?”

단순한 직역만으로도 뭔가를 시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위는 뭐고 필드는 또 뭐야?

동하는 맹세코 그걸 하겠다고 결정한 적이 없었다.

-필드는 6일 뒤에나 다시 열립니다. 만물상점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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