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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12화 (12/167)

<-- 12화 : 만물상점-01 -->

덜컹덜컹!

전철 안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출근시간이 지나 오전 10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동하는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근육단련을 하면 거인의 힘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단서가 새롭게 추가된 상황.

이제 단순히 하루에 운기행공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몬스터들이 지구에 침공하기 전까지 9성급 S몬의 능력을 최대한 많이 복구하는 것이 동하에겐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그에겐 공력이라는 것이 생겼고, 불사지체와 거인의 힘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동하 말고는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동하는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비해 강해진 것이지 과연 몬스터들과 비교했을 때 어떨지는 생각해볼 문제였다.

일정 수준의 내공이 생겼다고 당장 고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성취 자체가 너무 낮은데다 동하는 별다른 무공 초식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동하는 아직 내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무협소설에 보면 발경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는 단전에 축기된 내공을 몸 밖으로 발출시키는 것으로 발경법을 모르면 아무리 단전에 공력이 쌓여도 소용이 없었다.

“나참, 아무리 불친절해도 그렇지. 적어도 발경법은 가르쳐 줘야지! 무작정 팔만 뻗는다고 될 리 없잖아.”

동하는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보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쭉 뻗어 보았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렁이더니 팔을 타고 손바닥으로 무언가 빠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쇄애애액!

한 줄기 바람이 날아갔다.

그리고는 이번 역에서 내리려고 문 앞에 서 있던 여인을 덮쳤다.

“어맛!”

짧은 치마를 입고 한껏 멋을 낸 여학생이었다.

그녀의 짧은 치마가 펄렁 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황급히 두 팔로 치마를 붙잡고 밑으로 내렸다. 바람이 절대 불 수 없는 전철 안에서 난데없이 치마가 위로 올라갔으니 꽤나 놀랐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놀란 사람은 동하였다.

그는 설마 팔을 앞으로 뻗는 것만으로 발경이 되는 줄 몰랐던 것이다.

동하는 재빨리 두 눈을 감고 자는 척 했다. 혹시라도 여인과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난감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민트색이네.’

귀여운 고양이도 그려져 있었다.

☆ ☆ ☆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캠퍼스는 한창 들떠 있었다.

특히, 이번 축제에는 총학생회에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과 가수들을 섭외해서 여러모로 기대를 높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주점용 천막을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동하는 그들을 지나쳐 과실이 있는 구관으로 향했다.

축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숙제를 풀고 넘어가야 했다.

하나는 과비를 마음대로 사용해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는 걸 해결해야 했고, 두 번째는 선하가 자살하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했다.

사실 이 두 가지 문제는 출발 지점이 같았다.

때문에 어느 하나만 바로 잡아도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준비위원들을 호출했다.

어느 학교이든 2학년들이 주축이 되어 축제를 준비한다.

1학년들은 거의 빠짐없이 항시 대기를 하며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고 3,4학년들은 와서 음식을 팔아준다. 고마운 선배들은 친구들까지 데려와 왕창 사주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 졸업생들도 찾아와서 매출을 높이는데 일조를 한다.

아무튼, 여기서 준비위원들이라면 대부분 1학년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선하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막은 어떻게 됐어?”

“무대는 어제 다 만들었고, 오늘부터 천막을 만들려고요.”

“수고들이 많군. 한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아무래도 무대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예? 그게 무슨…….”

“나이트클럽 콘셉트 말고 다른 걸로 할 생각이다.”

“예에?”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힘들게 무대를 만들었던 후배들의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동기들도 발끈하고 나섰다.

“야, 최동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뭐, 그렇게 됐다. 하지만, 이번 콘셉트가 더 좋으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게 지금 걱정하고 말고의 문제냐?”

“최소한의 예의 문제다.”

“월요일부터 축제 시작이라고. 바꾸려면 미리 바꾸던가. 지금부터 착실하게 준비해도 어려운 마당에 갑자기 콘셉트를 바꾸면 그게 될 것 같냐?”

그나마 욕이 안 나오는 게 다행이었다.

☆ ☆ ☆

국문학과는 지난 7년 동안 축제 기간에 단 한 번도 재미를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다시없을 흑역사의 연속이었다.

주점도 해 보았었고, 한시를 체험하는 자리도 마련했었다.

이도저도 안 되자 당시 유행하는 게임을 모두 가져다가 시도해 보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주점은 매번 식품영양학과에 치여 대참사를 당했고, 한시를 체험하는 행사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악평에 시달렸다.

다른 학과에서 국문학과를 부르는 말이 따로 있었다.

축제 브레이커.

축제 아웃사이더.

축제 마이너스의 손.

별명도 많았다.

오죽하면 국문학과에서 하는 것을 미리 알아보고 그것만 피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

이젠 국문학과 선배들조차 포기한 상태였다.

그나마 올해는 여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이트클럽 콘셉트를 무리하게 밀어 붙였던 데에는 어쩌면 지난 7년 동안의 흑역사의 굴욕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졸업하신 선배들도 오신다고 했단 말이야.”

“혹시 정은영 선배가 며칠 전에 너보고 인간쓰레기라고 말한 것 때문에 그러냐?”

그건 동하가 회귀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은영은 지금 4학년으로 취업 준비로 한창 바쁜 시기였다.

한데도 나이트클럽 콘셉트로 여자들 옷이나 벗기려 드는 동하의 태도에 화가 나서 한바탕 퍼부은 적이 있었다.

‘그런 적이 있었나?’

동하는 하도 오래된 일이라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정은영 선배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동하보다 2년 선배였고, 단아하고 지적인 미모로 국문학과 최고의 퀸카로 통하고 있었다.

“그런게 아니라 나이트클럽 콘셉트보다 더 확실한 카드가 있어서 그래.”

“확실한 카드?”

“그게 뭔데?”

동기들이나 후배들은 평소부터 동하의 허풍이 심해서 그다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동하는 그들의 반응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학교에 오기 전에 모든 재료들을 다 장만했던 터였다. 더구나 그가 축제 기간에 팔 음식들은 조리 시간도 무척 짧고 간단했다.

처음 김치말이 국수를 먹었을 때는 두 눈이 크게 떠지는 정도였다.

국수에서 냉면 맛이 나는 게 신기하면서도 또 먹고 싶어졌다.

한데, 또띠아 피자를 먹었을 때는 대박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만들기도 쉽고 간단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동하는 그 외에도 스파게티도 만들었다. 토마토 스파게티는 어차피 또띠아 피자를 만들 때 같은 소스가 들어가기 때문에 면만 따로 삶아서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놀란 건 크림 스파게티였다.

남자들은 느끼해서 아주 싫어하지만, 여자들은 환장하는 그것.

일명 까르보나라였다.

이건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야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라 생각했다.

한데, 동하는 우유에 생크림을 부어 간단하게 크림소스를 만들었다. 면이야 토마토 스파게티와 같으니까 별 문제될 건 없었다.

“다들 어떠냐?”

“으음.”

과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충격도 이런 충격이 없었다.

최동하가 음식을 이렇게 잘 했던가?

그들이 알고 있는 동하는 라면 하나 끓이지 못했다.

한데 지금 동하가 선보인 음식들은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초간단 요리들이었다. 게다가 맛도 좋았다. 이 정도 음식과 퀼리티라면 나이트클럽 콘셉트보다 더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맛은 인정!”

“하지만, 이거 모두 음식이잖아. 이미 사 놓은 술과 마른안주들은 다 어쩔 건데?”

“후후! 그것도 생각해 두었다. 낮에는 한정판으로 음식을 팔고 저녁에 술을 파는 거지.”

“안주는 우리가 좀 약한데.”

약한 정도가 아니었다.

오직 나이트클럽 콘셉트만 믿고 술과 마른안주만 준비해 놓은 것이다.

동하는 그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빙그레 웃었다.

“몇 가지 안주가 있긴 하지만, 가장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걸로 하나만 보여주마.”

그는 비빔면을 하나 삶았다.

그리고 거기에 야채를 조금 썰고 준비해온 골뱅이를 넣고 같이 버무렸다.

순식간에 골뱅이무침이 완성된 것이다.

그걸로 게임은 끝이었다.

☆ ☆ ☆

캠퍼스 위에 어둠이 깔렸다.

시끄럽던 캠퍼스도 조금씩 조용하게 변해갔다.

가끔씩 술을 먹고 고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렇게 모두가 집으로 가고 과실에는 동하만 남아 냉면 육수를 연구하고 있었다.

한결 같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확실한 레시피가 필요했다.

이제부터 벙커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돈을 벌 생각이었다. 이전 생애에서 파생되었던 축제 문제들을 무사히 해결 했으니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었다.

동하는 이모의 식당에서 팔 음식으로 김치말이 국수를 팔 생각이었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서는 정확한 레시피가 필요했다.

물론 그것 말고도 몇 가지 음식들을 생각해 두었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어려웠다.

벙커를 만드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지 않던가?

설령 자신이 만든 음식들이 대박을 친다고 해도 5년 안에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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