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1화 (11/167)

<-- 11화 : 신체의 비율 -->

동하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일단 씻어야 할 것 같았다.

산속에서 2시간 동안 운기행공을 했더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단칸방 안쪽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동하가 살던 식대에 있던 것 같은 샤워 시설을 찾는다는 건 넌센스나 마찬가지였다.

주방에서 세숫대야에 담아온 물을 바가지로 전신에 물을 끼얹으며 샤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5월 중순이라 해도 아침에는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당연히 찬물에 샤워를 하면 추워서 이빨이 덜덜 떨려야 하는데, 지금은 별로 추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공력이 생겨서 그런가?”

지금도 단전에 따듯한 느낌이 있었다.

비록 일성의 수준이라 해도 9성급 S몬의 능력이다 보니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운기행공을 끝냈는데도 불사지체나 거인의 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이래서는 공력이 높아지는 것과 불사지체 등의 관계가 어찌 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일단 공력이 2성으로 올라가면 뭔가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그렇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동하는 샤워를 끝내고 옷을 입는데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원래 이렇게 헐렁했나?”

트레이닝팬츠가 밑으로 흘러 내렸다.

동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제 입었던 바지를 찾아 입었다.

한데 어제까지만 해도 딱 맞았던 바지가 지금은 허리가 커서 입기 불편하게 변해 있었다.

그제야 동하는 뱃살이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턱선이 조금은 날렵해진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뱃살이 조금 빠진 것뿐인데도 전혀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9성급 S몬의 능력이 전이되어서 그런 것일까?

어쩌면 단전에 공력이 생기고 운기행공을 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후후! 어쨌든 기분은 나쁘지 않군.”

☆ ☆ ☆

저녁이 되었지만, 걱정했던 괴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제야 동하는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어제는 단전이 생겨서 갑작스럽게 운기행공을 해야 했고, 오늘부터는 정해진 시간에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휴우!”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만약 시도 때도 없이 괴음이 들여와 수련을 강제로 시켰다면 기연이고 나발이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매일 새벽이 문제로군.”

수련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했으니 매일 새벽 5시에 괴음이 울릴 가능성이 높았다.

동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집에서 운기행공을 할 수 없으니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 뒷산에 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동하는 몇 가지 해결할 일이 있었는데, 오늘은 괴음 때문에 여러모로 꼬인 하루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자 일단 어제 생각해둔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기 위해 인상대학교 근처로 향했다.

인상대 후문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이곳은 대표적인 인천의 먹자골목이라 인천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하는 인근 지역의 식당을 모두 돌아다녀 보았다.

혹시 김치말이국수를 파는 곳이 있나 싶었던 것이다.

하나 다행스럽게도 물국수 메뉴는 있어도 김치말이 국수를 파는 곳은 없었다.

“일단 테스트를 거치면서 확실한 레시피를 만들어야겠다.”

맛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면 곤란하다.

항상 일정한 맛이 나와야 좋은데, 그렇게 하기에는 좀 더 연습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학교 축제는 최고의 기회였다.

원래 클럽 콘셉트를 버리고 음식을 팔 생각이었는데, 사업 아이템까지 연결되다 보니 더욱 의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마음 편하게 학교 축제에 집중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를 통으로 날려 버리는 바람에 이제 시간은 금요일인 내일 하루 밖에 없었다. 주말 쉬고 바로 월요일에 축제이니 정말 시간이 없었다.

국문학과는 아직 주점용 천막도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원래 주점용 천막은 학과들이 개별적으로 만든다. 학교에서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더구나 국문학과는 나이트클럽 콘셉트로 설정을 잡았기 때문에 단체로 춤을 출 수 있는 무대도 필요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동하는 후배들에게 무대부터 만들라고 지시를 내린 직후였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후배들은 열심히 무대를 만드느라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다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이건 물론 이전 생애에서 지시한 내용이긴 했지만, 만약 나이트클럽 콘셉트를 버리겠다고 말하면 후배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꼴통 소리 듣겠군. 그렇다고 계속 클럽 분위기로 갈 수는 없지.”

주점용 천막은 서둘러서 작업하면 주말 안에는 완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이런 쪽은 토목건축학과에 유리한 것이지만, 정작 그곳은 여학생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서 주점을 여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정작 메뉴가 문제였다.

지금 현재 정해진 메뉴는 김치말이 국수 하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 믿고 가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여러 학과들이 주점을 열고 음식을 팔지만, 그 중에서도 식품영양학과는 전통의 강호였다. 정상적인 메뉴로는 도저히 식품영양학과를 이길 수 없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획기적인 음식이 뭐가 있을까?”

동하는 이전 생애의 기억을 모두 더듬어 나갔다.

그러다 축제에 어울릴 만한 적당한 음식이 떠올랐다.

“자고로 여심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는 법이다.”

동하는 커플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메뉴를 정하는 쪽은 여자에게 있었다.

여자들이 먹겠다고 하면 남자들은 싫어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피자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세상에 피자 싫어하는 여자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아무 곳에서 먹을 수 없다는 인식도 있었다.

무엇보다 집에서 만들어서 먹기에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십여 년 후에 이런 인식이 완전히 깨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또띠아 피자라고 방송에서도 나온 적도 있고, 블로그에서도 많이 소개된 아주 유명한 레시피였다. 대부분 뷔페에 가면 나오는 피자들이 또띠아 피자였다.

피자를 구울 화덕이나 오븐 따윈 필요 없었다.

준비물은 프라이팬과 뚜껑만 있으면 된다. 만약 프라이팬 뚜껑이 없다면 신문지로 대충 덮어 두어도 상관없었다.

레시피도 아주 간단하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또띠아 피자는 그동안 피자에 대한 상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다.

블로그나 지식인이 없던 시대였다.

얼핏 생각하기에도 학교 축제에 피자를 팔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동하는 엄청나게 히트 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다.

☆ ☆ ☆

“오, 오빠!”

미현은 오늘도 집에 돌아왔다가 깜짝 놀랐다.

오늘도 동하는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어제는 김치말이 국수더니 오늘은 피자였다.

한데, 더 놀라운 것은 피자를 오븐에 굽지 않고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 이건 또 뭐에요?”

“또띠아 피자라고 다음 주에 있을 학교 축제에 팔 메뉴야.”

이젠 동하의 부드러운 말투가 그리 무섭게 느껴지진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피자를 프라이팬에 만들어도 괜찮은 거예요?”

“이것 봐봐. 모짜렐라 치즈가 다 녹았잖아.”

“그, 그렇긴 한데…….”

미현의 상식에 프라이팬으로 피자를 만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냄새나 비주얼은 정말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꼴깍!

미현이 자신도 모르게 침이 흘러 내렸다.

“한 번 먹어볼래?”

“그래도 괜찮아요? 축제에 팔 거라고 해서…….”

“어차피 미리 예행 연습하는 거라 누군가 맛을 평가해줄 사람이 필요했어.”

“헤헤! 그럼, 내가 먹어볼게.”

미현이 환하게 웃다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자신이 동하를 보고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더구나 귀여운 막내 동생처럼 편하게 말도 놓았다.

평소였다면 동하는 틀림없이 화를 내겠지만, 지금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확실히 동하는 어제와 오늘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인지 미소도 자연스럽게 나올뿐더러 피자가 맛이 없어도 기꺼이 먹어줄 마음이 있었다.

한데, 막상 피자를 한 입 먹는 순간 미현은 기적을 느껴야만 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정말 피자 전문점에서 사먹는 것과 맛이 거의 비슷했다.

“오, 오빠!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해?”

이건 명백히 사기였다.

미현의 반응에 동하는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지었다.

사실 또띠아 피자를 축제에 팔기 위해서 만든 건 아니었다.

이는 이미 이전 생애에서 몇 번이고 해 먹었던 것이라 굳이 예행연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팔기 전에 미진과 미현에게 먼저 해주고 싶었지만, 어제처럼 미현이 당황할까 싶어 일부러 이유를 댔던 것이다.

‘휴! 다행이다.’

미현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따듯해졌다.

☆ ☆ ☆

다음 날.

동하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뒷산으로 향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산속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해 가며 5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띠링!

-수련하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운기조식을 하세요.

“역시!”

동하의 생각은 적중했다.

괴음은 그리 불친절했던 것이 아니라 규칙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동하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앉아 자세를 취했다.

순간 단전에서 따듯한 기운이 일며 혈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운기행공은 2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다가 멈추었다.

“이러면 매번 2시간 정도 운기행공이 진행된다고 보면 되겠군.”

이번에는 한결 여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몰라 공포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보니 공력이 전신을 몇 바퀴 도는지 정확히 셀 수 있었다.

모두 12번이었다.

고수들은 이를 두고 대주천을 했다고 표현한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뒷산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운기행공을 한 번 하고 나면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동하가 수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았다.

학교에 가서 축제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고 그가 구상한 사업 문제도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응?”

동하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어제보다 조금 더 뱃살이 빠져 있는 듯 허리가 더 커져 있었다.

그때였다.

띠링!

-신체의 비율이 개선되었습니다. 거인의 힘이 복구되어 3%로 올라섰습니다.

“아!”

동하는 어렴풋이 살이 빠진 걸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육단련을 통해서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