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달라진 일상 -->
시계의 시침이 정확히 새벽 5시를 가리키는 순간이었다.
띠링 하며 곤히 자고 있던 동하의 머릿속에 괴음이 울려 퍼졌다.
-수련하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운기조식을 하세요.
“헉?”
동하가 자다 말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괴, 괴음이다.”
잠이 번쩍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괴음이 들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여보세요?”
동하는 괴음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새벽이었고 가족들이 자고 있는 좁아터진 단칸방이었다.
마음은 답답했지만, 소리를 죽여 가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봐! 이봐! 대답 좀 해보라고.”
여전히 불친절한 괴음이었다.
오늘도 괴음은 자기 할 말만 딱 하고 더 이상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끙!”
동하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어제도 경험했지만 경고음이 들리면 바로 운기조식을 해야 하는데, 6시 정도면 성혜가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운기 행공할 때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주화입마를 피할 수 없었다.
만약 이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운기조식을 취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동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뒷산으로 내달렸다.
새벽 5시이긴 했지만,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뒷산에 약수터가 있기 때문에 종종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였다.
동하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경고! 당장 운기조식을 하세요.
“이런 미친! 여긴 사람이 다니는 곳이라고.”
동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괴음은 좀처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강제 프로그램 발동. 운기행공을 시작합니다.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빠르게 달리던 자세에서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큭!”
동하는 엉덩이에 불이 난 것처럼 아팠다.
누가 봤더라면 그보다 더 꼴사나운 모습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의 단전에서 따듯한 기운이 일며 혈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이런 거였어?”
강제 프로그램 발동이란다.
이건 즉 괴음이 알아서 수련을 관리해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건 동하가 굳이 수련 방법을 알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기도 했다.
운기조식에 관한 의문은 하나 해결한 셈이었다.
오늘 수련 결과에 따라 불사지체와 거인의 힘의 회복력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지켜보면 다른 의문점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었다.
동하는 누가 오지 않나 잔뜩 긴장한 채 두 번째 운기조식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다니는 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고, 주변에 나무들도 제법 많아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았다.
☆ ☆ ☆
-운기행공을 마칩니다.
“휴우!”
동하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번엔 무려 2시간에 걸쳐서 진행이 되었다.
따듯한 기운이 혈도를 타고 전신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전부 세지는 못했다. 세 번째까지는 셌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갑자기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바람에 계속 그쪽을 신경 써야 했던 것이다.
동하에게는 2시간이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긴 했지만, 다음번에도 무사하리란 법이 없었다.
“이러다 심장마비 걸리겠다.”
수련 방법이 완전 강제적이다 보니 생긴 현상이었다.
동하가 편한 시간에 맞춰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가한 시간으로 미루거나 아니면 시간을 앞당겨 수련하면 좋겠는데, 오늘 보니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설마 오늘 하루 종일 이러는 건 아니겠지?”
워낙 불친절한 괴음이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내공이니 공력이니 하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당연히 운기행공 상황에서 살짝만 건드려도 큰일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중에 갑자기 괴음이 들려오면 그보다 더 낭패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긴 그렇다.
교수에게 손을 들고 운기행공을 하고 오겠다고 하면 퍽이나 믿어줄까.
십중팔구 교수를 능멸했다는 이유로 단단히 찍힐 게 뻔했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만약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아니면 전철을 타고 있는 중에 괴음이 울리면?
“하아!”
동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거렸다.
문득 어제와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오늘 일정은 올 스톱이었다.
동하는 해야 할 일이 몇 개 있었지만, 수련 시간을 확인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 ☆ ☆
미진이 씻고 나오자 미현이 아침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동하가 개차반인데 반해 미진과 미현은 사이좋은 자매였다. 미현은 고3인 언니를 위해 매일 아침상을 차려주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 아침상은 더욱 휑했다.
낡은 식탁 위에 김치말이 국수 한 그릇만 올려져 있는 게 전부였다. 어제 저녁에 미진만 먹지 못했는데, 동하가 미진의 몫을 따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아침부터 웬 국수?”
미진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집에 왔을 때는 성혜는 저녁만 먹고 다시 식당으로 일하러 갔고, 미현은 아르바이트 갔다가 아직 돌아올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집에 동하 밖에 없었다.
수험생인 미진은 1분 1초가 아쉬운 때였다.
원래는 집에 와도 공부를 해야 했지만, 동하 혼자 있는 걸 보고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동하하고 좁아터진 방에 함께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며칠 전에 동하가 그녀를 때리고 학원비를 빼앗아간 이후로 미진은 동하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그냥 씻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김치말이 국수라는 건데, 어제 오빠가 만든 거야.”
“넌 아침부터 농담이 나오니? 오빠는 라면도 못 끓이는데 무슨 국수야?”
“그, 그러게. 나도 그게 진짜 이상하다니까. 그런데, 정말 오빠가 만든 거야. 어제 엄마하고 다 같이 먹었거든.”
“진짜 이걸 오빠가 만들었단 말이야?”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하지만, 미현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때, 문득 미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그 인간, 네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걸 알고 그런 거 아냐?”
미진은 얼마 전에 동하에게 돈을 빼앗긴 걸 떠올리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만에 하나 동하가 미현까지 건드렸다면 그때는 정말 그녀도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내 이름도 불러주고 욕도 하지 않았다니까.”
“그, 그럴 리가.”
미진이 알고 있는 최동하는 뼛속깊이 양아치였다.
하루라도 욕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인간이 최동하인 것이다.
그런 그가 욕도 하지 않고, 음식까지 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튼, 언니! 빨리 먹어 봐. 생각보다 맛있어.”
미현은 말을 하면서도 침을 꼴깍 삼켰다.
원래 식탐이 없는 그녀였지만, 어제 먹었던 김치말이 국수가 하루 종일 생각났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던 것이다.
“이게 맛있다고? 오빠가 만든 게?”
지금 미현이 제정신인지 묻고 싶었다.
국수에 들어간 고명이라고는 잘게 썬 김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한 젓가락도 안 먹었다가 동하가 먹었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궁색해질 게 뻔했다.
“난 딱 한 젓가락만 먹으면 되니까 그렇게 맛이 있으면 나머지는 네가 다…….”
먹으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미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뭐가 이렇게 맛있어?”
“헤헤! 언니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니까.”
미현은 재밌다는 듯 미진을 보고 웃었다.
어제 자신도 딱 저런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