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3화 (3/167)

<-- 3화 : 회귀-02 -->

“선배님, 일어나 보세요.”

흐릿한 시선 사이로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것이 느껴졌다.

“으응?”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쉽게 눈이 떠지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제야 동하는 자신이 S몬과 죽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 여……긴?”

당연히 지옥이겠지.

생전에 좋을 일을 한 적이 없으니 천국에 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올 곳은 지옥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 죽은 사람이 머리가 아플 수도 있나? 그리고 몸은 또 왜 이렇게 천근만근이지?

“우리 못하겠어요. 아니, 절대 안 해요.”

“응? 무, 무엇을?”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학교 축제 말이에요. 학교 축제!”

지옥에서 웬 학교 축제?

동하는 당최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면서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 넓지 않은 방 안이었다. 창문 너머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먹다 남은 과자와 십여 개의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는 세 명의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헉?”

동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다 그만 소파에서 떨어졌다.

쿵!

엉덩이에서 불이 난 것처럼 아팠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 누구세요?”

저승사자냐고 물으려다 그만 말을 삼키고 말았다.

세 명의 여학생 모두를 저승사자라고 하기엔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 위에 과자나 술병들도 지옥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주 잠깐 살펴본 것이지만, 지금 이 풍경 역시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동하는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선배님, 농담하지 마세요.”

“우리 지금 그럴 기분 아니거든요?”

그녀들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 나왔다.

원래 동하는 호감이 가지 않는 스타일의 인간이었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에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오직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

그게 바로 최동하였다.

신입생들 중에서 동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아마 동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집안이 부유하고 씀씀이가 커서 따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너무 심했다.

지금 학교는 한창 5월에 열리는 축제 준비로 바쁘기 그지없었다.

다른 학과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지 논의도 하고 토론도 하는데, 국문학과는 동하의 독선 아래 모든 것이 결정 되었다.

동하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여자 후배들의 옷을 거의 벗기다시피 해서 손님들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삐끼나 마찬가지였다. 음식의 질이나 종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동하의 관심은 오직 후배들의 옷을 벗기는 데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관련 프로그램도 동하가 이미 다 짜놓은 상태였다.

남녀가 함께 춤을 추는 건 기본이고 게임을 해서 진 사람은 폭탄주를 마시기 등 이게 학교 축제인지 아니면 나이트클럽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술을 마시고 안주를 시키는 손님들에 한해 동하는 부킹을 할 생각이었다.

여기에 신입생 여학생들이 동원되는 건 당연지사.

남자 동기들과 선배들은 열렬하게 호응하는데 반해 여자 동기들이나 선배들. 그리고 후배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기류가 흘러 나왔다.

그래도 동하가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려고 하자 결국 세 명의 여자 신입생들이 총대를 메고 동하를 찾아왔던 것이다.

다 좋다.

솔직히 동하의 계획은 다른 학과들과 차별성은 있었다.

손님들을 많이 유치할 수도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옷을 벗고 손님들을 유치하는 건 오로지 올해 신입생 여학생들의 몫이라는 데 있었다.

신성한 대학에서 웬 나이트클럽?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더구나 우린 국문학과라고요.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아, 아니 나는…….”

동하는 그녀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S몬에게 죽었는데 난데없이 학교 축제라니. 어인이 벙벙할 뿐이었다.

“선배님이 아무리 강요하셔도 저희는 절대 안 할 거예요.”

그녀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외친 다음 도망치듯 과실을 나갔다.

그녀들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대학교 1학년.

처음 맞는 학교 축제였다.

그렇다면 기대가 되고 설레야 당연한데 이건 어째 시작하기 전에 망했다는 느낌만 들었다.

아니, 과를 잘못 선택해서 들어왔다는 후회마저 일었다.

‘이번 축제는 망한 거야.’

그녀들의 역할은 야시시한 옷을 입고 남자들을 끌어 오는 삐끼였다.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이게 무슨 술집 작부도 아니고. 선배 하나 잘못 만나면 학교 생활이 이렇게 피곤해 질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 ☆ ☆

“이, 이게 뭐지?”

동하는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예전에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확히 동하가 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니 17년 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었다.

가끔 악몽이 되어 가위에 눌리기도 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노골적인 과다 노출과 나이트클럽 분위기. 게다가 부킹까지.

결국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9시 뉴스에 보도가 되었고, 그 충격으로 당시 1학년 여자 후배 중 한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자살한 후배가 방금 그녀들 중 한 명이었다.

“이름이 선하라고 했었지?”

동하는 머릿속이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는 분명 S몬과 함께 죽었는데 왜 갑자기 17년 전 상황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하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흠칫 놀랐다.

그러고 보니 두 다리가 멀쩡했다.

원래 동하는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당해 평생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고, 얼굴을 크게 다쳐서 이마와 뺨에 심한 흉터가 생겼다. 몬스터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일 년 전 일이었다. 그때는 이미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직후이기도 했었다.

절름발이에 얼굴 가득한 흉터.

자신이 생각해도 괴물이 따로 없었다.

그는 평생을 대인기피증 속에 살아야만 했다.

슈퍼에 라면 하나 사러 가는 것조차 무서워서 이틀 정도 굶은 기억이 있었다.

일자리를 써 주는 곳도 없었다.

동하가 피해의식에 빠져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밥맛 떨어진다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몬스터가 침공하고 나서는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도 불구의 몸이거나 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동하는 주변을 둘러보다 과실에 걸려 있는 거울을 보고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다리를 질질 끌지 않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그는 충분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한데, 거울 속의 동하 얼굴에도 흉터 하나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동하는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통증이 느껴졌다.

혹시나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보았지만, 그만 너무 세게 꼬집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 이게 가능할 리 없잖아?”

이건 절대 꿈이 아니었다.

학과실의 모습도 진짜였다. 벽이며 탁자며 의자 등을 수없이 만져 보았지만, 느낌이나 감각이 생생하게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방금 전의 그녀들 모습도 환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동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분명 S몬과 같이 죽었었다. 그때의 공포와 절망 그리고 후회와 회한 등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디 그뿐인가? 집안이 망하고 그가 폐인이 되어 거지처럼 살아갔던 모습들도 영상처럼 눈앞에 쫙 펼쳐졌다.

한데 난데없이 17년 전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은 뭐란 말인가?

이젠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호, 혹시?”

동하는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그는 할 말을 잃어야만 했다.

익숙했던 캠퍼스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 것이다.

몬스터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햇빛을 받아 유리창들이 반짝반짝 거리는 학교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고 더러운 건물이 구관인 것도 맞았고, 학과실이 3층에 있는 것도 정확했다.

‘이, 이건 진짜야. 나는 17년 전 과거로 돌아온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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