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회귀-01 -->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동하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지금 이 시대는 7성급 레드몬만 출현해도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는 세상이었다.
한데, 놈은 9성급 S몬이었다. 놈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방어막은 핵폭탄을 수십 개 쏟아부어도 절대 뚫리거나 파괴되지 않는 절대무적의 괴수였다.
어디 그뿐인가?
놈은 무엇으로든 변신이 가능하고 불사의 신체를 지니고 있으며 무공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신적인 존재로 불리고 있었다.
9성급 S몬의 출현은 인류에겐 끔찍한 재앙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놈은 샤이언 종족의 문명이 총집결되어 만들어진 과학의 결정체였기 때문이었다. 놈의 단전에는 무림 종족의 내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능력만으로도 능히 극강의 경지에 이르러 그 어떤 무림의 고수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놈의 심장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있다는 것이었다.
7서클 마법은 물론 8서클 마법까지. 놈은 판타지 종족의 최고 마법사도 마법으로 꺾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놈의 능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불사의 능력을 지닌 괴수 종족의 신체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그 어떤 것으로도 파괴가 되지 않았고, 거인 종족의 괴력까지 지녀서 그 힘이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그랬다.
9성급 S몬은 그동안 샤이언 종족이 우주의 다른 종족들을 침공해서 얻어낸 능력이 총 집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초고도 문명을 자랑한 샤이언 종족도 9성급 S몬을 만드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다른 종족의 능력을 한 몸에 집결시켜 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오직 샤이언 종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놈에겐 지성이 없었다. 놈의 머릿속에는 샤이언 종족이 심어 놓은 프로그램이 이식되어 오직 샤이언 종족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놈이 공장을 급습한 건 십분 전 일이었다. 불과 십분도 되지 않아서 수만 평 부지의 공장은 초토화로 변했고, 일하던 사람들이 전부 죽고 말았다. 놈은 오직 인간들만 사냥한다. 한 명 한 명 죽일 때마다 놈은 즐기고 있었다.
“결국 나도 죽을 테지.”
운이 좋아 동하만 살아남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놈의 포악한 눈동자가 동하를 향해 있었다. 동하는 더 이상 도망치길 포기했다. 아니, 도망칠 수도 없었다. 등 뒤로 벽이 닿았던 것이다. 동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사지가 덜덜 떨려왔다.
최동하의 나이 서른 여덟.
그리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돌이켜 보면 한 많은 인생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있었다.
하지만, 4년 내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만 치고 다녔다.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지 않아 잘못된 길로 빠진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조기유학의 폐해였다. 어렸을 때 유학을 가면 언어습득이 빠르다는 장점도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많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도 컸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의 생활은 딱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을 먹고 담배를 피웠고, 사고를 치고 살았다. 그의 주변에는 나쁜 친구들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이 부유하다 보니 주머니에는 항상 돈이 많았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에게 돈을 쓰며 대장 노릇을 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래도 대학교는 서울에 있는 중하위권 쪽으로 갈 수 있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한 아버지 성진이 족집게 과외며 고액과외까지 마다하지 않고 시킨 결과였다.
“그때는 그래도 좋았었는데.”
집안이 망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날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에 온통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한 것이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한 것이 부도의 원인이었다.
황당하게도 동하는 그전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돈을 펑펑 쓰고 다녔었다. 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할 리 없었다. 분명 그전에 여러모로 조짐이나 전조 같은 것이 있었지만, 동하는 집안일에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주르륵!
그때만 떠올리면 동하는 죄책감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버지 성진이 자살한 건 모두 동하 때문이었다.
성진은 경제사범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3년형을 치르고 집에 돌아온 성진을 대놓고 무시하고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것도 동하였다.
“아버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는 집안이 망한 것만 창피했고,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지내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집안이 망하자 일 년 넘게 사귀던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했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 녀석들도 멀리 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동하는 친구들에게 없어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는 여동생들의 명의로 사채를 써서 돈을 빌렸고, 며칠 만에 친구들과의 유흥비로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사채를 갚지 못해 여동생들의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간쓰레기.
동하는 그 말도 사치스러운 인간이었다.
☆ ☆ ☆
“크르르릉!”
9성급 S몬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한 모습이었다.
놈은 전혀 만족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 잠깐 사이에 수천 명도 넘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한 명 남은 동하마저도 죽이려고 했다.
공장에는 경찰과 군대는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에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은 모두 집결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정공은 물론이고 민간인들끼리 만든 연합체인 막공까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여든 것이다.
이 전쟁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이곳은 무기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재래식 무기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죽이면 사체가 나온다. 그 몬스터의 가죽과 뼈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었다. 몬스터는 총이나 미사일에는 죽지 않았지만, 그들의 사체로 만든 활, 석궁, 방패에는 죽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어제부로 세 개가 있던 무기 공장이 모두 파괴되고 이젠 이곳만 남은 상태였다.
여기야말로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인 셈이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사활을 걸고 지켜내려 했다.
하지만, 끝내 9성급 S몬 앞에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전쟁은 너무 시시하게 끝났다.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들이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싸웠지만, 누구도 9성급 S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고작 10분을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으로 대한민국도 끝장이었다.
몬스터의 사체를 이용해서 만든 무기도 9성급 S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직 인류는 9성급 S몬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9성급 몬스터 중에서도 좀 더 특별한 놈을 S몬이라 하는데, 지금 동하의 눈앞에 있는 놈이 바로 9성급 S몬이었다.
9성급 몬스터만 해도 인류는 대적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S몬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놈은 전지전능한 신과도 같았다.
내공과 마나를 가지고 있어서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다.
또한 염동력과 초능력은 기본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들을 마음먹은 대로 펼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온 인류가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S몬이 출현한 것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인류는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난데없이 S몬이 동시에 네댓 마리가 나타나 전 세계를 휩쓸었다.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영국이 망했고, 중국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이제 남은 나라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그중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어쩌면 오늘로 그것이 마지막일 것 같았다.
“크르르릉!”
S몬은 당장 동하를 덮치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동하에게 다가오며 최대한 공포심을 맛보여 주었다. 겁에 질린 동하의 모습을 보고 놈의 눈빛이 더욱 교활하게 빛나고 있었다.
동하는 고양이 앞에 쥐가 된 기분이었다. 놈은 마지막 생존자인 동하를 최대한 데리고 놀다가 죽이려는 모양이었다.
“으으.”
동하는 지독한 공포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한평생 한심한 모습으로 살다 죽는 것도 억울한데, 이젠 몬스터에게까지 놀림거리가 되고 있으니 그 비참한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적어도 네놈의 먹이가 되진 않겠다.”
동하는 마침내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사실 그는 아까부터 자살을 하려고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자살할 용기도 나지 않아 작업복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다.
몬스터의 사체로 만든 특수 수류탄이었다.
크기는 주먹만 하게 생겼어도 그 위력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서너 개 합친 것과 비슷했다. S몬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7성급 레드몬은 단 하나만으로도 방어막을 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팅!
동하가 안전핀을 뽑았다.
더 이상 후회는 들지 않았다. 마지막 죽을 때만이라도 당당하고 싶었고, 자신의 의지로 끝내고 싶었다.
‘어머니!’
스마트폰 속의 김성혜가 웃어 주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차분해 지면서 조금씩 죽을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놈의 눈빛이 변했다.
동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지한 것이다.
놈은 동하가 자살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지 천천히 움직이던 몸이 갑자기 빨라졌다.
쇄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S몬은 수류탄 정도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놈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몇 미터 떨어진 거리를 좁혀 동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놈이 자랑하는 능력 중 하나인 공간이동이었다.
동하는 기겁했다.
설마 놈이 자살하려는 동하를 먼저 죽이려고 할 줄은 꿈속에서라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또 다른 차원의 공포였다. 이미 자살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수류탄의 안전핀까지 뽑은 직후였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놈의 모습에는 절로 모골이 송연했다.
하지만, 동하는 이내 이를 악물었다.
이젠 하다못해 죽는 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건가?
눈물과 회한뿐인 그의 인생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며 악에 받쳤다.
“씨발! 꺼져버려.”
동하가 수류탄을 던졌다.
돌발사태였다.
이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S몬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망해서 자살하려던 인간이 난데없이 수류탄을 던져 공격해올 줄 그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상황이 무척 공교롭게 흘러갔다.
동하가 던진 수류탄이 하필이면 동하를 잡아먹기 위해 입을 벌린 S몬의 입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S몬은 재빨리 시간을 정지시켰다.
순간 시간이 느려지고 모든 움직임이 정지되어 버렸다.
이는 S몬의 능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수류탄이 터지고 말았다.
펑! 콰르르릉!
S몬의 입속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케에에엑!”
놈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댔다.
놈의 거대한 몸체가 분리되며 살점들이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동하의 몸에 놈의 살점들이 달라붙어 피부가 녹아 내렸다.
끔찍한 고통이 몰려오는 것도 잠시.
놈의 피가 온몸을 뒤덮는가 싶더니 수류탄의 강렬한 열기가 놈의 몸을 뚫고 뻗어 나와 동하를 집어 삼켰다.
죽음은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동하는 죽는 순간만큼은 희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적어도 놈의 먹이가 되어 죽는 건 아니었다. 아니, 놈과 함께 죽는 것이니 오히려 이득인 건가? 놈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랬다.
동하는 마지막으로 스마트폰 속의 성혜의 모습을 보려 했지만, 놈의 피가 잔뜩 묻어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에 탄식이 나왔지만, 끝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몸이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한 점 빛으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