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
297. 무신의 기억. 완(完)
297. 무신의 기억. 완(完)
아틀라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패와 함께 테세우스를 갈라버릴 것처럼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아틀라는 그럴 힘과 능력이 충분한 사내였고 내리쳐지는 공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거력을 담고 있었다.
그 순간 테세우스는 눈을 빛내며 방패로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아틀라의 무구는 모든 아틀라스족 중에 최상의 것이었고 그의 힘과 무기라면 호위병의 방패를 베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틀라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내지르는 팔에 힘을 더욱 가했다.
부우우웅!
서거걱!
방패가 잘려나가고 이윽고 붉은 피와 육체가 떨어져 나갔다.
“커허허허헉!”
아틀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팔이 잘린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뭐 이런 미친 놈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모든 상념이 끊어졌다. 아틀라의 굽힌 무릎을 밟고 뛰어오른 테세우스가 남은 오른 주먹으로 그의 머리통 역시 부숴버렸기 때문이었다.
테세우스는 아틀라의 대검이 방패를 가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이상 전투가 지속되면 육체가 강력한 힘과 기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할 것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몸상태가 정상도 아니고 아틀라의 강력한 힘과 무용을 고려하면 놈이 그나마 방심하고 있을 때 죽이는 것이 수월했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살을 주고 뼈를 취했다.
아틀라의 대검이 방패를 자르자 테세우스는 몸을 오른쪽으로 빼면서 왼손으로 방패를 지탱했다. 미리 몸을 뺀다면 아틀라의 대검은 방패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베어버릴 테니 말이다.
이윽고 대검이 방패를 가르고 자신의 왼팔을 깔끔하게 양단하자 테세우스는 오른손으로 양단된 방패의 날카로운 한쪽 면을 아틀라의 목에 처박았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테세우스는 그 흔한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목에 잘린 방패가 틀어박힌 아틀라가 피를 토하며 컥컥거리자 테세우스는 지체하지 않고 아틀라가 고통에 저도 모르게 굽힌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오른손으로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버렸다.
그렇게 아틀라의 뇌수와 피가 사방으로 튀자 모든 아틀라족이 기겁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아틀라스족의 대왕 아틀라가 처참하게 살해당했으니 말이다.
“으아아아아!”
테세우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오른손으로 아틀라의 대검을 취해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모든 적병을 베어 넘겼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왼팔이 잘린 테세우스는 지혈조차 하지 않고 적병을 베고 또 베어 넘겼다. 이윽고 테세우스 주변에는 낭자한 피와 시체만이 즐비했다.
“후우우우우.”
테세우스는 깊게 숨을 뱉으며 다시 목적했던 곳을 향해 달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한계를 벗어난 힘과 움직임 등으로 내부에서부터 육체가 빠르게 붕괴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석벽을 아틀라의 대검을 후려쳐서 부수고 또 부쉈다.
쾅! 콰아앙! 쾅! 콰아아아앙!
잠시 뒤 황당하게 석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테세우스의 오른팔 관절 부위에 뼈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온 것이다.
신경 역시 잘못된 모양인지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손가락으로 들고 있던 대검을 떨어뜨린 테세우스는 석벽 안쪽에서 환하게 빛나는 기묘한 석판을 확인했다.
테세우스는 지체하지 않았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온 이유가 바로 이 석판을 부수기 위해서였다.
두 팔이 사라진 셈이지만 아직 두 다리와 상체가 남아 있었다. 테세우스는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가 미친 듯이 석판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앙!
석판이 으스러지자 그곳에서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테세우스의 살갗을 녹이고 근육과 뼈가 드러나게 만들었다.
‘아직. 아직이다.’
테세우스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가 어깨로 석판을 들이받았다.
쾅! 쾅! 콰아앙!
한 번이 안 되면 두 번.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그럴수록 테세우스의 몰골은 괴물처럼 변해갔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테세우스는 드디어 석벽이 산산이 박살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눈동자가 새까맣게 타버렸기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몸이 산산이 갈라지고 불타는 감각과 함께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성공? 성공인가?’
아스라이 멀어지는 기억 속에서 테세우스는 자신의 모든 삶을 반추했다. 피와 살육으로 물든 삶을 피하고자 발버둥 쳤지만, 결국엔 피와 살육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항우와 리처드의 모든 생애보다 태서후의 생애를 높이 평가했던 것은 한 가지. 그 이유야 어쨌든 태서후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사람이다.
‘이유야 어쨌든······. 아!’
테세우스는 그런 생각에 휩싸이다가 알 수 없는 광경들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게 찰나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을 모두 지켜본 테세우스는 이윽고 편안한 마음에 휩싸여 눈을 감았다. 탄성을 내지를 성대도, 감을 눈꺼풀도, 볼 수 있는 눈동자도 모두 사라져버린 후였지만 말이다.
‘그래. 이런 죽음도 나쁘진 않겠지······.’
비록 원하는 삶, 원했던 결말도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은 항우와 리처드의 마지막이 아니라 서후의 마지막을 소유했다. 아쉽다. 미치도록 아쉽고 씁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
이데아도, 자신도, 그로 인해 펼쳐질 세계도 송두리째 사라졌지만, 나는 살아있었고 그 살아있음이 한 줄기 미래나마 바꿀 수 있었으니까. 그의 삶은 나의 삶이기도 했으니 이 흔적이 끝나버릴 삶을 이어가게 만든다면 잊혀질 모든 것들도 생기를 얻어 흩날리리라.
테세우스는 도리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실로 그다운 모습이었다.
*
머나먼 과거. 모든 문명이 발원하기도 전,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거대한 체구를 지닌 거인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처참하게 도륙하고 있었다.
“너희 노예 놈들은 우리 아틀라스족의 영원한 영광과 불멸을 위해 죽는 것이다. 그러니 영광스러워하며 죽어라!”
“크하하하하!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아틀란티스 대륙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면 노예 놈들을 수천만이라도 쳐죽여야 한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 있는 아틀란티스 대륙 곳곳에서는 잔혹한 살육이 거행되고 있었다. 거인족의 강력한 힘과 뛰어난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은 그저 처참하게 살육당할 뿐, 어떻게 대항할 수도 없었다.
“아아악!”
“크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아틀란티스 대륙 전체를 뒤덮어가고 있었다.
찬란한 아틀란티스 문명의 꽃. 아틀라스 최상층에 위치한 왕궁에서 7m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가 흉흉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준비는 어찌 되고 있나?”
그러자 제사장으로 보이는 거인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아틀라스의 왕. 곧 아틀라에게 입을 열었다.
“아틀란티스가 멸망할 미래를 막기 위해선 더욱더 많은 제물이 필요합니다. 예정된 대로 아틀란티스 대륙이 바닷속에 가라앉더라도 아틀란티스 대륙은 다시 융기할 것이고 아틀라스인의 기억은 노예 놈들의 육체를 얻어 영원한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흥! 고작 노예 놈들 수천수만을 죽인다고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대왕이시여. 대왕의 말씀대로 노예 놈들의 목숨이야 비천한 것들에 불과하지만, 저들을 죽임으로써 예정된 미래를 뒤틀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지 않을 자들을 무참하게 살육함으로 미래는 더욱 크게 뒤틀릴 것이고 그 뒤틀린 변곡점이 아틀란티스 부활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애초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물속에 가라앉지 않도록 만들도록!”
“대왕이시여. 황공하오나 그 일을 행하기엔 시일이 너무 촉박하나이다. 대왕께서도 아시다시피 앞서 말씀드린 계획을 시행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실정이옵니다.”
“흥! 이런 쓸모없는 것들. 미래를 바라본다는 자들이 정작 아틀란티스 대륙의 멸망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이 말이다!”
“황.. 황공하옵니다.”
“듣기 싫다. 썩 물러가라! 만약 이 일마저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 점은 심려 마옵소서!”
제사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틀라스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휘황찬란한 장식들과 튼튼한 건축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부서질 정도로 강력한 진동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서. 설마? 벌써?”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느냐?”
“며.. 멸망의 날이 다가온 것으로 보입니다.”
“뭐라! 아직 몇 년이라는 세월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그것이!”
쿠우우우우우웅!
콰르르르
콰아아아아앙!
아틀란티스 대륙 곳곳이 갈라지더니 이윽고 곳곳에서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맹렬한지 그것을 바라본 모든 이들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아틀라스 최상층에 있던 아틀라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이런 천하에 쓸모없는 것들! 멸망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그것을 고작 2주일 전에 발견해? 그러고도 네놈들이 미래를 예견한다는 제사장들이냐?”
“대.. 대왕이시여. 이.. 이건!”
“시끄럽다!”
아틀라는 극도로 분노한 표정으로 당황한 제사장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퍼어억!
으드득
주먹을 움켜쥔 아틀라는 급히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둘러 배를 준비해라. 아틀란티스 대륙을 떠난다.”
아틀라가 보기에도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머저리같은 제사장이긴 하나 아틀란티스 대륙이 멸망하는 것은 불변하지 않는 미래라고 했었다. 그러니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아틀라스 밑으로 내려오자 이미 아틀란티스 대륙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대지가 갈라지고 용암이 미친 듯이 솟구치고 있었으며 바다 저편에서는 해일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대체 이건?”
이에 아틀라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들에게 닥친 대재앙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틀라는 어디로도 피할 수 없었다. 아틀라스의 왕이 피할 수 없었으니 누구라고 피할 수 있겠는가?
그때 아틀라스 지하 저편에서부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빛이 터져나왔다.
“이.. 이건? 또 뭐냐? 크아아아아악!”
엄청나게 환한 빛에 휩싸인 아틀라는 피부와 근육이 녹아내리더니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화아아아아악!
아틀라뿐만이 아니었다. 초거대 구조물인 아틀라스 역시 그 빛에 휩싸여 먼지처럼 흩날렸고 아틀란티스 대륙 전체가 그 환한 빛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빛의 정체는 아틀란티스 대륙에만 존재하던 이데아가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을 향해 짓쳐 들던 거대한 해일은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바다를 덮쳤을 뿐, 그 어디에서도 아틀란티스 대륙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디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아예 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들뜬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로마’ 하면 대명사처럼 떠올리는 것이 콜로세움 아닌가? 그러니 콜로세움을 보지 않고는 로마를 봤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왔다. 콜로세움을 보려고.
생각보다 줄이 길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다. 태서후는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줄이 짧다는 사실이 관광객에게 나쁠 일이 뭐 있겠는가? 깊게 파고들 이유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느니 카메라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담아가는 것이 이득이었다. 정신없이 주변을 살펴보던 태서후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환한 빛이 자신의 망막을 가득 메운 것을 느꼈다.
“윽!”
그 순간 눈알이 타는 것 같은 통증에 눈을 감싸 쥐고 저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아니 젠장! 어떤 새끼가 얘기도 하지 않고 플래쉬를 눈앞에서 터트려?’
눈알이 빠질 것 같았고 골까지 빠개질 것 같은 충격이었다. 실명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이런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태서후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자리에 일어서며 빛이 번쩍인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카메라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태서후는 다시 그 옆을 바라봤다. 그 옆에는 옷을 제법 두껍게 입은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 사내에게서도 카메라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뭐지?’
이상한 생각에 다시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봤다. 빛이 터진 방향 어디서도 카메라를 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그토록 강렬한 빛을 발생시킬만한 장치가 달린 카메라 자체가 이 주변에 없었다.
‘이거 안과라도 가봐야 하나?’
태서후는 괜히 하늘의 태양을 바라봤다. 햇살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 날이라 햇볕이 뭔가에 비춰 들어온 것 같지도 않았다. 두 눈의 망막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난 빛이었다. 플래쉬. 그것도 아주 강력한 플래쉬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였다.
‘씨발 뭐지?’
황당한 심정에 휩싸인 태서후의 눈에 두꺼운 옷을 걸친 사내가 괜스레 거슬리기 시작했다. 뭔가 강력한 빛을 발생시킬 장치가 있었다면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는 사내가 그나마 제일 유력한 용의자였다.
이에 태서후는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잘 안되는 영어로 외투 안쪽 좀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웬걸? 사내의 표정이 사납게 변하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태서후가 그 사내의 턱을 으스러뜨려놓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콰직!
태서후는 품에서 사내의 팔을 잡아채는 것과 동시에 오른 주먹으로 그 사내의 턱을 후려갈겼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 씨발 새끼가! 또 지랄이냐?”
서후의 주먹에 얻어맞은 사내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스르륵 쓰러졌다.
털썩!
“응? 이게?”
서후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내와 자신의 주먹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당연히 콜로세움 주변에 경계를 서고 있던 경비병들이 다가왔고 태서후는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미친 새끼야. 갑자기 사람은 왜 때리고 지랄이냐? 아니 그 전에 내 주먹이 이렇게 강력했나? 뭔가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는데? 아.. 젠장.’
사람을 무턱대고 후려친 것으로도 모자라 턱까지 으스러뜨린 것이라면 분명 큰 사고를 친 건데 왜 이렇게 후련한 것인지 자신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묘한 감정에 휩싸여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경비대가 쓰러진 사내를 확인했고 놀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테러범이라고.
경비대는 급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내를 포박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졸지에 태서후는 테러범을 단신으로 제압한 영웅이 되어버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다가와 시끄럽게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이탈리아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에도 익숙하지 않은 태서후가 제대로 알아들을 리 만무했고 무엇보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체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씁쓸한 거냐?’
태서후는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서후의 얼굴을 한 줄기 미풍이 가만히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그 순간 태서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태서후는 이해할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는 잊혀진 이름과 기억이 바람처럼 가만히 다가와 그를 휘감고는 아스라이 멀어졌을 뿐이다.
완결(完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