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
291. 이데아.
291. 이데아.
BC 69년 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베르킨게토릭스의 아버지 켈티우스가 갈리아족을 모으고 분투했지만, 카이사르의 전술과 전략 앞에 순식간에 와해 되었고 카이사르는 성공적으로 토벌을 마칠 수 있었다.
고작 31살의 나이에 로마 역사상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반면 승승장구하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카르하이 전투에서 대패한 여파로 로마에서 그 영향력이 대폭 감소했다. 나날이 그의 지지자들이 줄어들 것은 극명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승전이든 크라수스의 패배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혹 기억하더라도 그 사실에 감탄하거나 경시하는 마음 같은 걸 품을 여유가 없었다.
지중해 전역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진, 해일, 기근, 병마를 비롯한 하나같이 대재앙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했고 자신을 아틀란티스인이라 여기는 이상한 자들까지 나타났다. 지난 대재앙에 휘말려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곳곳에 혼란이 가득한 상황이라 정신 나간 자들의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이들은 나라와 신분을 초월해 결집하기 시작했고 머잖아 지중해 전역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당연히 각국의 병사들이 이들과 맞서 싸웠지만, 놀라운 것은 급조된 것이 분명한 이들의 군대가 정예병을 웃도는 막강한 군대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이상 현상이 발생한 다음 날, 테세우스는 나디르와 모든 병사를 데리고 즉시 로마로 향한다. 로마로 향하는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굳어 있었다.
*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그리고 은퇴한 루쿨루스까지 로마에서 명성이 자자한 위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로마의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때라면 저들끼리 다투느라 회의장이 무척이나 시끄러웠을 텐데 기이하게도 저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내는 바로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테세우스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역을 비롯한 북부를, 폼페이우스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루쿨루스는 소아시아 지역 근방을, 크라수스는 로마 본국을 수호하시오. 세세한 사항은 각자 알아서 시행하면 될 일. 나는 히스파니아로 가서 이 모든 재앙을 끝낼 방법을 강구하겠소.”
그러자 루푸스 의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아틀란티스? 하! 내가 지금 뭘 들은 것인지 모르겠군. 테세우스 당신도 연이은 대재앙으로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이오?”
테세우스가 로마로 돌아온 이때는 아직 아틀란티스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미 움직임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로마가 알아차릴 수준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로마에서도 아틀란티스인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공화정은 이들을 정신병자 취급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는 소리다.
왜 아니겠는가? 아틀란티스 대륙 자체가 어떤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대륙처럼 여겨지는 판국에 아틀란티스인이라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바다 건너 나타난 미지의 타지인이라면 또 모를까? 그들은 로마인이거나 그리스인이거나 뭐 암튼 과거가 분명한 이들이었다. 미친 소리로 치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소리였다.
“재앙과 관련된 일이라고 해서 들었더니. 이딴 소리냐 하려고?”
“황당하기 그지없군. 아틀란티스? 테세우스 저자가 드디어 정신이 나간 모양입니다.”
회의장에 모인 대다수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테세우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바로 크라수스였다.
“재앙을 끝낼 방도가 있긴 한 것이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에서 대패를 당하고 돌아오긴 했으나 로마의 위상을 더럽힌 것도 아니고 로마의 국력을 쇠하게 만든 것도 아니었다. 단지 본인의 재산과 위신을 깎아 먹었을 뿐이니 크라수스의 영향력은 로마에 아직 남아있었다.
아닌 말로 크라수스나 되니까 파르티아 정벌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의 패배를 놓고 그를 대놓고 비웃을 자는 없었다.
따라서 크라수스가 입을 열자 다시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확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오르’를 파괴할 수만 있다면 저들의 야욕을 분쇄할 수 있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러자 폼페이우스 역시 입을 열었다.
“대체 그 ‘오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단지 인신공희를 통해 오르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과 그렇게 활성화된 오르는 과거나 미래를 보거나 강한 능력을 얻는 등 불가사의한 일들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입니다.”
“결국 그 말은 아틀란티스인들이 지진과 해일을 인위적으로 일으켰고 기근과 병마를 세상에 흩뿌렸다는 소리가 아니오? 저들이 무슨 신화 속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 힘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따라서 대재앙과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오르는 아틀란티스인이라고 해도 결단코 쉽게 연성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같은 소리 아니오? 그 오르를 아틀란티스인이 만든 것이라면!”
“오르는 아틀란티스인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힘, ‘이데아’를 이용하려고 만든 도구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활성화된 오르가 힘을 잃으면 오리칼쿰, 오레이칼코스라는 부산물이 생성됩니다. 어쨌든 그렇기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다시 융기시키려는 것이고!”
가만히 경청하고 있던 루쿨루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테세우스 당신 말을 요약하자면 아틀란티스인들이 자신들이 멸망할 미래를 보고 뭔가 모종의 조치를 취했고 그 핵심이 오르인데 이 오르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오르가 활성화되면 고대 아틀란티스인의 안배대로 아틀란티스 대륙이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정말 미친 소리 같군. 이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테세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루쿨루스를 바라봤다.
“저도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군요.”
테세우스의 눈을 바라본 루쿨루스는 그저 할 말을 잃었다. 진실을 말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그도 아니면 정말 제대로 미쳤거나.
테세우스는 다시 단호한 어조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할지라도 이대로 시행해서 로마에 불이익이 될 것이 있습니까? 이미 대재앙이 지중해 전역에 발생했으니 곳곳에 혼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 군단을 파견하고 어차피 그 지역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잠시 듣고 있던 테세우스가 다시 외쳤다.
“다만 내 말대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리고 오르를 획득한다면 괜한 탐욕을 부리지 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하십시오. 세계 각지에 퍼진 오르는 오직 한 목적만을 위해 연성 되었을 뿐이고 그 목적은 바로 아틀란티스 대륙의 융기입니다. 과거 아틀란티스인들은 이런 목적을 지닌 오르를 연성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오르가 활성화될 때마다 세계 전체가 요동치는 것이고.”
테세우스의 너무나 확고한 태도에 그를 의심하던 자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테세우스의 말을 경청했다.
“그럼에도 이것이 왜 그토록 위협적이냐고 묻는다면 아틀란티스 대륙이 융기하면 저들은 다른 목적을 지닌 오르를 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연성 방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갈아 만든 오르로 저들은 과거 아틀란티스인의 기억을 산 사람에게 불어넣을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겠지만. 어쨌든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르는 분은 없겠지요.”
테세우스의 말이 끝나자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미친 소리로 치부하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사실 테세우스가 정말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소리를 지껄일 인사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재차 봐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사실이 황당한 발언에 무게를 더 했다.
지금껏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카이사르가 입을 열었다.
“아틀란티스인들이라 밝힌 이들은 결국 선봉대라는 소리겠군. 아틀란티스 대륙이 융기하고 저들이 오르를 다시 연성할 수 있게 되면 저들은 또 다른 육체를 소유하여 생을 이어간다는 소리고. 무엇보다 테세우스 당신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 것이지? 당신도 아틀란티스인인가?”
테세우스는 카이사르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고대 아틀란티스인은 한 가지 목적, 곧 아틀란티스의 부활을 위해 고도로 축약된 오르를 연성했지만, 예측을 벗어난 이른 멸망으로 그 오르는 계획과 다르게 산산이 갈라져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떨어져 나간 작은 파편들이 본래 목적과 다르게 간혹 비상식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괴물을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이고.”
“그들 중 하나가 당신이다?”
“아마도.”
짧게 답변한 테세우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목적을 잃은 오르가 무슨 현상을 일으켰는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언급했다시피 ‘오르’는 정체불명의 힘, ‘이데아’를 이용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고 그 이데아가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오르를 만들어낸 고대 아틀란티스인들도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테세우스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오르가 활성화되고 이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러한 내용들이 단편적으로나마 떠올랐기에 항우, 리처드, 서후의 기억과 기묘한 능력이 오르, 곧 이데아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추측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아틀란티스의 부활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 아닌가?”
“나 역시 이상 현상이 발생한 후에야 알게 된 것들이니 이러한 내용을 어찌 아는 것인지 그런 내 말을 어떻게 믿을지에 대해선 나도 답변해줄 말이 없다. 하지만 진위여부가 금세 드러날 이런 말들이 내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을까?”
금방 들통날 거짓을 말할 까닭이 없다는 소리였다.
카이사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테세우스가 권력을 잡으려 했다면 로마를 떠날 이유도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잡고자 황당한 말을 늘어놓을 위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어떻게 이런 내용을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현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 오르에 저항할 방법은? 그러니까 고대 아틀란티스인이 내 육체를 점령하려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그건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는지 카이사르의 말에 놀라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융기하기 이전이라면 대개 의지만 바로 세워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라면? 나도 모른다. 아니 대다수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저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겠지. 당금 스스로를 아틀란티스인라 밝힌 대다수 사람들이 이상 현상에 깊게 휘말렸던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마라.”
“으흠.”
카이사르는 침음을 흘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비단 카이사르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뒤 카이사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갈리아 지역만 방어하면 되나?”
“일단은.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아틀란티스인이라 밝힌 자들은 아마 기억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혼란 때문에 잠시나마 스스로를 밝혔을 것이다. 저들이 밝히지 않는다면 어찌 알 수 있을까?”
“으흠.”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불분명해진다는 소리다.
“다만 그렇다 할지라도 저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오르 역시 유한하기에 아틀란티스 대륙 융기만 막는다면 이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
그러자 루쿨루스가 입을 열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이 아니면 새로운 오르를 연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계 각지에 퍼진 오르는 모두 고대 아틀란티스인들이 연성한 것들이고 그것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약해지다가 종국엔 완전히 힘을 잃어버릴 겁니다. 그러니 저들은 반드시 그 전에 각지에 피를 흩뿌려 모든 오르를 활성시키고자 할 겁니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부활을 위해서 말인가? 대전란의 이유는 인신공희를 위함이고?”
그러자 폼페이우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스로를 아틀란티스인이라 밝힌 자들은 일단 모조리 죽여야겠군.”
“이데아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오르의 힘이 소멸하면 육체를 빼앗긴 자들도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그리하십시오. 아틀란티스 대륙이 융기한다면 죽이고 죽여도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군대와 싸워야 할 테니까.”
전에 없이 단호한 테세우스의 태도를 확인한 모두가 진정성을 느꼈다. 저자는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테세우스 저자에게는 확고한 진실이 분명했다. 그것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에 로마는 현 상황을 국가 전복 위기로 규정하고 빠르게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아울러 지중해 각 나라에도 테세우스가 언급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렇게 얼마 뒤 테세우스의 발언대로 아틀란티스인의 침공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전쟁을 대비한 로마와 로마를 뒤따라 대비한 나라들은 그나마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피와 혼란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