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285. 전란의 시대.
285. 전란의 시대.
지중해 지역 전역에 전란의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 시작은 바로 로마의 동방원정부터였다.
아테네 정복 후 해군의 육성을 절감한 술라로부터 해군편성의 중임을 맡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는 이미 해군육성에 성공한 바 있고 역시 그렇게 편성한 해군을 이끌고 BC 86년 폰토스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전적이 있는 사내다.
폰토스는 흑해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국이기에 그 모습은 흡사 로마를 축소한 것 같았다. 이런 해상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선 해전에 능한 장군이 필요했고 당연히 폰토스를 무너뜨리고 아시아를 얼마간 다스렸던 루쿨루스보다 탁월한 적임자는 당금 로마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명성이 자자한 폼페이우스 역시 해상전보다는 육상전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는 사내였기에 폼페이우스는 아르메니아를, 그리고 루쿨루스는 폰토스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폰토스가 해군이 강성한 나라라면 아르메니아는 동방의 파르티아를 접경하고 있는 나라답게 기병이 강성한 나라였다. 근접기병인 창기병이나 검기병은 물론 궁기병까지 보유하고 있는 나라였기에 폰토스나 아르메니아 모두 결코 만만히 볼 나라가 아니었다.
이런 두 왕국과 한꺼번에 전쟁을 치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지만 이미 두 왕국의 결탁이 확실했기에 로마는 폰토스와 아르메니아를 동시에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로마로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동방원정의 발목을 잡던 본토의 반란은 모조리 진압되었고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라는 당대의 가장 걸출한 두 장군이 군단을 이끌었으니 로마는 패배를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실제로도 저들은 강대한 두 왕국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루쿨루스는 잘 훈련된 해군과 뛰어난 함선으로 차근히 폰토스의 해군을 격파, 흑해의 제해권을 공고히 쌓았고 폼페이우스 역시 정예중장보병을 근간으로 무리하지 않고 아르메니아 지역의 거점을 공략함으로 승기를 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와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 모두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대국적인 측면에서는 로마가 우세했지만 국지적인 전장의 상황은 일전일퇴를 거듭하는 치열함 그 자체였다.
초반의 패배는 왕국의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후퇴였다는 듯 저들이 반격에 나서자 파죽지세로 두 왕국을 점령해가던 로마군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이에 미트리다테스 6세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미트리다테스가 두려움에 미친 것이 아니라면 이는 매우 기이한 태도였다. 최근들어 교착상태에 빠졌다고는 하나 말했다시피 대국적인 측면에서는 로마가 훨씬 우세했다. 그러니 지금은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을 때가 아니었다.
“아르메니아는 어떻다고 하더냐?”
여유로운 표정의 미트리다테스를 바라본 장수는 왕의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왕의 하문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금은 자신의 의문을 해갈할 때가 아니라 왕에게 답변을 고할 때였다.
“본국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사옵니다. 이미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로마군에게 내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좋군. 좋아.”
미트리다테스의 말에 장군은 결국 그간 품었던 의문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대왕이시여. 외람되오나 제가 대왕께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고하라!”
“감히 고하겠습니다. 현재 본국이나 아르메니아가 모두 열세에 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데 어째서 좋다고 표현하시는 건지 소장은 도무지 대왕의 의중을 헤아리기 어렵사옵니다.”
“그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미 깊숙이 들어왔으니 본토로의 귀환은 더더욱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음? 본토로의 귀환을 거론하심은 혹 로마군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패전을 거듭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연전연승을 거두고 승기를 잡은 로마군단이 어째서 본토로 귀환한단 말인가? 그는 더욱더 미트리다테스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잠잠히 지켜보라! 때가 되면 폰토스를 침공한 자들이 어떤 말로를 겪는지 온 세상이 알게 되리라. 그러나 이 이상 로마놈들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얻을 것도 얻지 못할 것이야. 그러니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한시도 방심하지 말라 이르라! 알겠느냐?”
“누구의 명이라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대왕의 명을 어기는 자는 엄벌에 처해 본보기로 삼겠습니다.”
미트리다테스는 휘하 장군의 듬직한 모습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마음속 칼을 예리하게 갈았다.
“하하하하!”
기다려라! 때가 이르면 그간 내가 감내해야 했던 이 모든 치욕을 너희 로마놈들에게 곱절로 갚아줄 것이니!
*
미트리다테스 6세는 자신의 바람대로 대왕에 이를 수 있는 기본 능력은 갖춘 인물이었다.
하지만 본래 역사에서도 그렇듯 이번 역시 시대가 그를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가 동방원정에서 승승장구할 때 로마에서는 한 사내의 이름이 연신 호명되었다.
“카이사르!”
“카이사르!!”
“카이사르야말로 로마의 진정한 콘술이다!”
“우와아아아아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카이사르의 이름이 호명되는 것은 로마인들의 깊은 원한과 두려움을 카이사르가 해갈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이었다.
시내를 거쳐 의회장에 들어왔던 크라수스는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카이사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니 제때 방비하지 않는다면 로마의 큰 화가 될 것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요. 로마 역사상 누구도 갈리아를 토벌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크라수스의 심기를 헤아린 것일까? 세네토르 루푸스가 언성을 높이자 카이사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제가 미트리다테스였다면 상당수에 이르는 정예군단이 원정을 떠나 서둘러 로마로 귀국할 수 없음을 갈리아족에게 알려주었을 겁니다. 로마의 현명한 세네토르들께서도 이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결국 그건 콘술의 추측일 뿐이지 않습니까?”
친 폼페이우스 파 아티커스 역시 루푸스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힘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도 제 망상에 불과했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망상이 아니라면? 로마의 시민들은 무참하게 도륙당할 것이고 로마는 저 무도한 갈리아 놈들에게 다시금 불타오를지 모릅니다. 그리된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폰토스와 아르메니와의 전쟁에서도 패배하게 되겠지요.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까?”
“가장 먼저는 이집트의 반란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고 아울러 각지에서 로마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이 나타나겠지. 콘술 카이사르의 염려는 단순히 망상으로 끝날 부분이 아니오. 로마의 존폐여부와도 직결된 부분이니까 말이오.”
이 자리에는 콘술 크라수스도 함께 하고 있었다. 회의를 주관하는 콘술이 카이사르가 아니라 크라수스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갈리아 정벌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토의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콘술 크라수스께서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는군요.”
크라수스는 눈매를 좁히며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상황이라면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주변정세는 둘째치고 이미 여론을 움직여서 갈리아 정벌에 반대할 수 없게끔 만들었으니 확실히 카이사르 이자는 테세우스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자였다.
테세우스는 탁월한 능력이 위험했기에 견제했지만 카이사르 이자는 로마를 삼키고도 남을 야망을 지닌 자였다. 심지어 이빨을 드러내기 전에는 미처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으니 그 사실이 크라수스의 마음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크라수스는 확고한 배경과 뛰어난 능력, 그리고 시대의 지지가 뒤따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잘 알았다. 어찌 모르겠는가? 바로 전 시대에 술라 펠릭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그 발자취를 남겼는데 말이다.
확고한 배경과 사람들을 사로잡는 언변과 매력, 이제 카이사르에게 남은 것은 폼페이우스조차 넘어설 뛰어난 전공뿐이다.
그러니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것이 크라수스의 본심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아서는 안 된다. 카이사르의 말대로 갈리아족들이 연합하여 로마로 밀고 들어오기 전에 저들의 야욕을 반드시 분쇄해야 한다.
갈리아족들은 매우 사납고 용맹하며 그 수가 엄청나지만 수많은 부족들로 나눠져있고 서로 반목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모두가 나눠 먹고도 남을 로마라는 군침 도는 사냥감이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면 저 들개 같은 자들은 일시적인 연합이라도 맺어서 남하할 것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진 않겠지만 만만한 상대로 여겨진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 카이사르는 선제타격을 통해 로마를 침공할 야욕을 미리 뿌리 뽑겠다는 소리였다. 자신도 이 제안에는 동의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을 막고 싶을 뿐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 군 지휘권의 최우선순위는 콘술이다. 이 말인즉 카이사르의 정벌을 막으려면 콘술인 자신이 군을 이끌고 갈리아 지역 정벌을 떠나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건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다.
세네토르 루푸스가 언급했다시피 갈리아는 지금껏 로마에게 토벌된 역사가 없고 도리어 로마가 갈리아족에게 침공당해 불타올랐던 역사가 있다. 장발의 거대한 체구를 가진 갈리아족은 이 시대 로마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명사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카이사르가 갈리아족을 토벌한다고 했을 때 로마시민들이 저토록 열광하며 카이사르를 부르짖는 것이었고.
갈리아족이 두렵다는 소리가 아니라 손수 정벌하는 것이 여러모로 내키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어떤 지형인지, 어떤 전력을 보유했고 얼마나 많은 전사가 도사리고 있는지 등등 아는 것이 전무했다.
심지어 저들과 협상을 하려고 해도 단일한 조직체계가 아니기에 협상할 수도 없다. 오늘 이 부족과 정전 협상을 맺어도 내일이면 또 다른 부족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부닥칠 수 있었다. 실제로 과거에 그런 경우가 왕왕 있었고 말이다.
토벌은커녕 처참한 실패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운이 나쁘면 그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러니 카이사르의 정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이 직접 군을 이끌고 갈리아로 갈 수는 없다. 자칫하면 수년 이상 갈리아 침공 견제를 이유로 갈리아라는 오지에 처박힐 수도 있는 노릇이다. 폼페이우스보다 먼저 콘술에 오른 기회를 그런 식으로 날려 보낼 수는 없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카이사르 이자는 이런 자신의 반응까지 계산하고 움직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동방원정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이런 계산을 하고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여겼을 뿐이요. 하지만 토벌을 시행하더라도 콘술도 아시다시피 전력에 공백이 생긴 만큼 전폭적인 지원은 어렵소이다. 전선이 길어지면 아예 보급을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그럴 바에는 갈리아 경계지역에 병력을 더 충원하고 시설을 보강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안이 아닌가 싶소.”
“콘술 크라수스의 말에 찬성합니다.”
세네토르 아퀴우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립을 고수하던 칼두스 의원이 입을 열었다.
“방어보다 공격이 최선이라고 했소. 저들이 탐욕을 품고 로마로 몰려들기 시작하면 방벽을 아무리 튼튼히 쌓더라도 뚫리고 말 것이오. 그러니 본 세네토르는 콘술 카이사르의 제안에 찬성하오.”
그렇게 찬반이 갈린 상태로 크게 웅성거리는 의원들을 지켜보던 크라수스는 이미 의원 중에서도 카이사르의 의견에 찬성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대다수의 시민이 이번 정벌에 찬성하고 있다. 만약 이번 갈리아 정벌이 자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면 이것 역시 이로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성공하게끔 풍성한 지원을 할 생각도 없고. 그러니 본인이 원하는 오지로 가게끔 내버려 두고 크라수스 자신은 이곳에서 입지를 더욱 두텁게 쌓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생각하던 크라수스는 카이사르와 눈이 마주쳤다. 이에 카이사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필요한 일이라 여기셨다는 것은 찬성한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갈리아 지역을 들어선 이후의 보급은 본 콘술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딱히 문제 될 것이 없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보급을 알아서 해결해? 무슨 수로? 아니 그건 알 바 아니다. 크라수스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사르가 주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반드시 갈리아 지역에 위대한 로마의 위상을 떨치고 돌아오겠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이 결정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