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84화 (284/298)

# 284

284. 무신(武神).

284.

스파르타쿠스는 테세우스의 병력이 도달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검을 버리고 테세우스에게 말을 이끌었다.

끝까지 싸우고자 한다면 싸울 수는 있으리라. 테세우스가 사신처럼 전사들의 목숨을 거두긴 했으나 그는 고작 한 명이었고 아군은 3만에 이르는 대군이었으니까.

테세우스의 병사가 도착했어도 여전히 아군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러니 싸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의미 없는 짓에 불과했다. 신화 속 헤르쿨레스가 살아 돌아와도 테세우스보다 강하진 못하리라. 그런 테세우스를 상대로 누가 싸우려고 들겠는가?

도망? 칠 수야 있겠지. 그러나 역시 일고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피로 온통 붉게 물든 테세우스를 바라보던 스파르타쿠스는 말에서 내려와 그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척.

“내가 바로 스파르타쿠스요. 이대로 항복하겠소. 그러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오.”

스파르타쿠스가 무기를 버린 모습을 본 반란군들은 그 즉시 무기를 버리며 테세우스 앞에 엎드렸다.

드르르르륵! 쿠웅!

그뿐만이 아니라 세리누스의 성문도 활짝 열렸다. 모두 항복한 것이다. 잠시 뒤 성에 있던 자들도 모두 무기를 버리고 성에서 나와 테세우스 앞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경은 나디르와 그가 이끄는 기병이 세리누스 성까지 다가올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나디르는 테세우스가 정한 기한인 사흘이 끝나기 무섭게 미리 준비시켜 놓았던 기병들과 함께 세리누스를 향해 전력으로 진군했다.

그렇게 세리누스에 도착한 나디르는 놀라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테세우스를 가장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나디르건만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던 테세우스의 모습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불현듯 본인이 로마인이면서도 주저 없이 로마를 칠 것을 주장했던 호라티우스가 떠올랐다. 어쩌면 호라티우스가 이런 테세우스의 모습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결국 홀로 4만이 넘는 반란군을 토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만들어도 이런 이야기는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이야기 따위도 아닌 엄연한 진실이었다.

테세우스를 안다고 자부했던 나디르조차 놀랐으니 다른 자들이야 어떤 심정이겠는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주 치열한 전투가 될 것을 각오하고, 다시 말해 목숨까지 잃을 것을 각오하고 전장에 나섰던 테세우스의 전사들은 전투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에 하나같이 말문을 잃고 오래된 신목처럼 우뚝 서 있는 테세우스를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적이든 아군이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테세우스는 무릎을 꿇고 있는 스파르타쿠스를 일별한 뒤 들고 있던 극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박아 넣었다.

콰직!

“성에. 포도주가 있나?”

테세우스가 무기를 움직일 때 스파르타쿠스는 그 무기가 자신의 목을 쳐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무기는 자신의 목이 아니라 바닥에 꽂혔다. 무엇보다 포도주? 이 상황에 스파르타쿠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미 목숨을 내어놓은 자에게 놀랄 일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있소이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부어라. 세리누스 성에. 포도주의 향기가 진동하도록. 무기를 놓은 너희 손으로 직접.”

스파르타쿠스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세리누스의 성에도 달콤한 포도주 향기가 퍼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장의 자욱한 혈향을 덮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도 부족했다.

*

나디르는 세리누스 성을 빠져가는 반란군의 무리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왜 저들을, 아니 왜 스파르타쿠스를 놓아주신 겁니까?”

“살아남을 자는 살겠고 죽을 자는 죽겠지. 이곳의 일은 끝났다. 로마로 돌아갈 채비를 갖춰라.”

“예?”

나디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지만 테세우스는 그 말을 끝으로 성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더 질문할 수 없었던 나디르는 가만히 테세우스의 심기를 헤아려보며 테세우스의 명령을 하달했다.

*

시칠리아에 무신(武神)의 전설이 탄생한 후 이주 뒤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2만의 선발대를 이끌고 파노르모스에 도착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파노르모스에 주둔하던 테세우스에게 간략한 보고를 들은 뒤 즉시 군을 이끌고 시칠리아 동부에 잔존하고 있는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시칠리아 동부의 모든 도시 틴탈리스, 미라에, 메사나, 나서스, 카타나, 시라쿠세, 카마리나, 겔라를 탈환했고 반란군을 잡아다가 잔혹하게 처벌했다.

아울러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스파르타쿠스와 그 일당들을 토벌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시칠리아의 토벌은 그렇게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손에 종결되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스파르타쿠스의 수급을 방부처리 한 뒤 목함에 넣어 로마로 이송하라고 명했다. 로마의 시민들이 자신이 이룩한 쾌거를 모두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시칠리아에서 반란군을 학살하고 있을 때 테세우스와 나디르, 그의 1,200명의 병사들은 먼저 로마로 귀환했다.

로마로 돌아온 후 수부라 지구의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던 테세우스는 공화정의 부름이 있고 나서야 자택에서 나서서 회의 장소인 베누스 빅트릭스(승리의 비너스) 신전에 도착했다.

의회의 부름이 있기 전에도 회의가 있었지만 전투 중 부상을 이유로 모두 불참했고 공화정에서도 딱히 그를 부르지도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회의는 로마에 남은 한 명의 콘술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주관했다.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스파르타쿠스를 살해하고 그 수급을 로마로 보냈지만 이를 신전에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세네토르 테세우스와 함께했던 수하들에게 그것을 확인해보라 전했습니다.”

잘린 머리를 최대한 빨리 방부처리 했다고 해도 이미 구더기가 득실거릴 테니 그런 것을 신전에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썩은 시체를 확인한 자가 회의에 참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목함을 확인한 것은 테세우스도 아니었고 나디르가 확인했다.

테세우스는 회의장으로 지정된 베누스 빅트릭스 신전으로 걸음을 옮기며 목함을 확인하고 온 나디르를 만났지만 따로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스파르타쿠스라고 죽인 자는 스파르타쿠스를 사칭했거나 자청한 자였을 테니까. 아니면 정말 스파르타쿠스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날,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한 반란군이 끝까지 항전했다면 모조리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자들에게는 전장에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자들에게는 로마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스파르타쿠스를 따라 도망친 자들은 살았을 것이고 끝까지 항전하거나 뭣도 모르고 항전한 자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스파르타쿠스가 무리를 이끌고 어떻게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눈과 손을 피해 목숨을 부지했는지 등은 알 바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손에 토벌당하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살아남았든 죽었든 간에 다시는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으로 반란을 일으키지는 못하리라. 그것이 그날 맺은 암묵적인 약속이었으니까. 그러니 스파르타쿠스는 죽었다. 반란도 그날 세리누스에서 끝났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자는 살았을지도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은 자는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손에 의해 모조리 죽었겠지. 저들의 사정이야 더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시칠리아의 반란을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종결하지 않은 것? 복수는 세리누스에서 끝났고 카이사르 등과의 거래 역시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도 카이사르도 만족할 수 있게끔 세리누스에서 깔끔하게 끝마쳤다. 명예와 명성? 지금까지 그딴 걸 신경 썼다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네토르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원들에게 말했다.

“로마의 콘술이 손수 보낸 목함 입니다.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음.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서신에는 세네토르 테세우스의 공이 적지 않다고 하던데. 원하는 보상이 있소?”

테세우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나와 함께 로마를 위해 싸운 내 사병들에게 모두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해주십시오. 그 정도 권한은 이곳 의회에 있겠지요.”

“음?”

“으흠?”

“정녕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세네토르 테세우스! 당신은 3년간 정무관에 출사하지 않기로 맹세했던 사람이오. 혹 저들을 시민으로 삼아 표를 얻으려 한다면?”

의원들의 말에 테세우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표? 그래 봐야 하층민일 뿐이오. 대체 언제부터 하층민의 표가 당 하락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까?”

“음.”

“으음.”

저들이 침음을 뱉자 테세우스는 간단히 말했다.

“얼마 전 카파도니아에서 나와 내 사병의 원군을 요청하는 서신이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사병들도 시민이라면 로마는 카파도니아에 정규군을 파병하는 것이 됩니다. 이게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는 여러분들께서 상의해보시지요.”

“로마에 공을 세운 이의 요청이오. 하물며 그 보상으로 로마를 위해 싸운 이들의 시민권을 요청하는데 이를 거부한다면 앞으로 누가 로마를 위해 싸우려 들겠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소.”

찬성을 던진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크라수스였다. 본인 스스로 별다른 이권도 취하지 않고 카파도니아로 사라져 주겠다는데 찬성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폼페이우스와 눈을 마주친 아티커스 역시 입을 열었다.

“프라에토르의 말씀이 옳소. 찬성하지 않을 까닭이 없군요.”

이에 테세우스는 나디르를 비롯한 자신을 따른 1,200명 전사의 시민권을 확보했고 덤으로 야스미라 왕녀의 시민권도 얻어냈다. 이는 카이사르의 호의였다. 야스미라 왕녀는 로마의 시민권을 얻음으로 마우레타니아의 왕 마스타네소스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마스타네소스가 미치지 않은 이상 로마의 시민을 죽이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단순히 호의로 야스미라 왕녀가 시민권을 얻도록 조력한 것이 아니었다. 야스미라가 팅기스와 그 주변 지역에 가진 영향력을 파악하고 그녀에게 시민권을 얻게 만들어 주변 지역에 로마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 가운데 야스미라 왕녀와 카이사르의 관계가 부쩍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물론 테세우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나디르 등과 함께 로마를 떠날 채비를 할 뿐이었다. 따르는 자들에게 로마에 남을 자들은 남으라고 말했지만 그 어느 한 사람 테세우스를 떠나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그 모습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기실 테세우스 몸에서는 포도주의 진한 향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돌아온 이후로부터 쭉 말이다.

로마에서는 연일 연회가 열렸다. 로마에서 연회가 뭐 특별한 일이겠냐만은 근래에 접어들어 더욱 자주 열린 것은 이제 곧 있을 콘술 선거를 비롯한 동방 원정에 대한 은밀한 내용을 저마다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BC 75년 겨울이 다가오기 전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가 로마군이 폰토스와 아르메니아를 정벌하기 위해 로마를 떠났다.

이맘때쯤 호라티우스와 백인대의 이야기가 로마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믿지 못할 테세우스의 소문도 빠르게 퍼져갔다. 다만 대부분의 로마시민들은 이야기꾼들이 재미를 위해 각색한 이야기로 믿을 뿐,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것이 테세우스가 의도하던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소문을 믿는 자들은 그를 무신이라 추앙하며 은연중에 테세우스를 로마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손꼽았다.

소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콘술 선거를 준비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빛이 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있어 로마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외에는 없었다. 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인연을 통해 테세우스와 만남을 가진 후 종종 만남을 가지며 그에게 여러 가지를 배웠다. 자신이 만난 테세우스는 항상 포도주에 취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그 어떤 전사보다 굳건했고 지혜로웠다.

그런 그가 카파도니아로 떠나려는 배에 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어린 나이가 이토록 통한스러울 수가 없었다. 안토니우스 역시 따르고자 했지만 테세우스가 자신의 어린 나이를 거론하며 카이사르 아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라 말했기 때문이다.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그는 항상 자신보다 멀리 보고 있었으니까. 이번 역시 이것이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리라. 그럼에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테세우스 님. 그래도 저는······.”

테세우스는 커다란 손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머리에 얹으며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배웠고 행해야 할 것도 알았으니 남은 건 숙련뿐이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

“다음에 볼 때는 더 듬직한 사내가 되어 있어라.”

“반드시!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당찬 발언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테세우스는 그 말을 끝으로 배에 올랐다. 그리고 테세우스와 1,200명의 정규군을 태운 갤리선은 빠르게 카파도니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한 여인, 야스미라 왕녀는 말없이 눈물을 한 방울을 떨군 뒤 돌아섰다.

그렇게 다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BC 74년, 콘술 프라이오르에는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콘술 포스테리오르에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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