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
278. 호라티우스.
278.
테세우스는 정색하며 나디르에게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지?”
나디르는 착잡한 심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와 그의 부관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 모두 시칠리아 반란군에 살해당했고 그들이 이끌던 군대 역시 반란군에게 살육당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호라티우스가 군을 이끌고 세리누스를 방어하기 위해 움직인 것까지는 파악되었지만 그 이후의 일은 현재 파악할 수 없었다.
호라티우스와 테세우스의 생사가 모두 불분명한 상황이었기에 먼저는 테세우스의 생사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시칠리아의 반란이 워낙 거셌기에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현재 호라티우스의 생사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대로 소식을 알려달라고 서신을 보내긴 했지만······.”
자신이 폭풍우에 휘말린 사이,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이란 말인가? 병력 4만에 유리한 고지까지 점령한 상황에서 고작 몇 주도 버티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다니.
테세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나디르에게 말했다.
“당시 병력 구성은? 오천씩 병력을 나눈 것인가?”
“예. 호라티우스와 켄튜리 하나가 세리누스 방면을 방어했고 나머지 1,200은 히메라를 방어하고 있었습니다만 세리누스가 함락되자 히메라의 병력은 급히 파노르모스로 후퇴했습니다. 소식 역시 저들을 통해 들은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염려 마십시오. 호라티우스, 그놈이 그렇게 쉽게 목숨을 잃을 놈이 아니라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분명 전략적인 후퇴였을 겁니다.”
테세우스는 담담한 어조로 나디르에게 말했다.
“시칠리아. 시칠리아로 가는 배편을 알아봐라.”
나디르는 테세우스를 만류하려다가 그의 차분한 눈빛 가운데 이글거리는 분노를 확인하고는 그만두었다. 테세우스가 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칠리아로 가고 말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의회에 보고는 하셔야 합니다. 또한 의회는 테세우스 님의 행보를 막아설 겁니다. 테세우스 님의 군권을 허하기는커녕 시칠리아행 자체를 막아설 수 있습니다.”
“······. 나는 지금껏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디르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금껏 확보한 사병을 데리고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완비하겠습니다.”
로마 내에서는 무기를 소유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사병을 구해놓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 봐야 100명 남짓한 수에 불과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미 충분히 많은 숫자였기에 더 많은 사병을 보유한다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그 말과 함께 문밖을 나섰다.
*
테세우스는 그 길로 카이사르를 찾아갔다. 폰티펙스 막시무스인 카이사르는 유피테르 신전에서 여러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항상 신전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카이사르의 위치는 나디르가 상시 파악하고 있었기에 테세우스는 헤매지 않고 바로 그를 찾아갈 수 있었다.
테세우스를 발견한 카이사르는 놀란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테세우스! 역시 살아있었군. 대체 어찌된 일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테세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말했다.
“로마로 오는 길에 폭풍우에 휘말렸다. 그보다도 부탁이 있다.”
“혹 시칠리아 폭동을 말하는 것인가?”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사르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세네투스가 파견한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가 테세우스, 자네가 간신히 안정시킨 시칠리아의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어버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네를 시칠리아로 보내려고 하지 않을 거야.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게. 세네투스가 자네를 노리고 있는 걸 모를 사람이 아니지 않나? 그들에게 타당한 이유를 주는 건 결코 현명한 태도가 아니야.”
테세우스는 카이사르의 말에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경고를 떠올렸다. 원로원과 척을 졌으니 더 큰 공을 세우거나 명성을 얻어 저들의 경각심을 부추기지 말라는 맥락을 가진 충고 말이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큰 공을 세우거나 명성을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사람을 염려할 뿐이었다. 그 길 위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무엇이든 베어버릴 뿐이다. 조금 전 나디르는 테세우스의 대답에서 단호한 결단을 확인한 것이었다.
“시칠리아에 내 사람이 있다. 나의 명을 따르기 위해 남은 사람들이.”
카이사르는 묘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지금껏 테세우스를 만나며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았다. 자신이 읽은 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도 판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하기 어려운 사내가 바로 테세우스였다.
하지만 오늘 눈앞의 테세우스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서 있기는 했지만 카이사르는 그의 초조한 기색을 확연하게 읽을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잠시 말을 아꼈다가 입을 열었다.
“······. 정확히 내가 무엇을 해주면 되는가?”
테세우스가 초조한 기색을 보인다고 해서 그를 얕잡아보는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오늘 그의 초조함은 본인의 위기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부하를 염려하는 마음에서였다. 부하를 저토록 아끼는 자라면 테세우스의 부하들은 그를 어떤 마음으로 따르겠는가? 이미 나디르의 충성된 모습을 통해서도 그의 저력을 남몰래 가늠하고 있던 카이사르는 오히려 경각심을 가지고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것은 기회였다. 자신이 알기로 저런 성품의 사람은 빚진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지금껏 테세우스와 관계를 맺으며 줄곧 노려왔던 절호의 기회를 놓칠 카이사르가 아니었다.
“나를 시칠리아로 보내주게.”
마음 같아선 이대로 의회고 뭐고 당장 시칠리아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과 적대관계에 있는 자들이 그 사실을 가지고 반역자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세네투스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두렵지는 않다. 무엇이든 되든 피할 수 없다면 분쇄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두려워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있는데 피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테니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춘 것이다. 카이사르의 조력을 얻는다면 최소한의 보험은 될 테니까.
카이사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설마 군대도 없이 혼자라도 가겠다는 소리인가?”
“그렇게라도 허락이 떨어진다면 이 일을 결코 잊지 않겠네.”
카이사르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하하. 자네 나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 아닌가? 그래서는 도움이라고 할 수 없겠지. 하다못해 함께 싸울 군대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자네 혼자 시칠리아로 떠난다면 그것 역시 세네투스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꼴이 될 테니 그건 도움이라 할 수 없지.”
원로원이 테세우스를 적대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원로원의 눈을 가릴 사람이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니 여기서 테세우스가 무너져서는 곤란하다. 자신을 위해 원로원과 좀 더 싸워줘야만 한다.
원로원은 테세우스의 모든 행보를 막을 테고 당연히 혹시나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향후 구성될 시칠리아 토벌군을 자신들의 사람으로 구성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니 테세우스에게 군권을 맡기는 일은 있을 수 없고 테세우스의 시칠리아행마저 금할 것이다.
만약 테세우스가 이런 상황에서 혼자든 혼자가 아니든 시칠리아로 향하게 된다면 원로원은 그를 반역자로 몰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생긴다. 테세우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최소한 자신만이라도 합법적으로 시칠리아에 갈 수 있게끔 허락해달라는 소리였고.
사실 반란이 일어난 시칠리아에 가는 것 자체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다만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행동을 한다면 그건 반드시 문제가 된다. 아닌 말로 테세우스가 시칠리아에 마실이나 하려고 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군대를? 마음은 고맙지만 그건 자네라도 불가능하다. 또한 그런 부담을 지우게 하고 싶진 않아.”
“맞는 말이네. 나로선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 사람이 콘술이라면 말이 다르지 않겠나?”
테세우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콘술?”
“먼저는 의회를 소집해야겠군. 흠 그전에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에게 사람을 보내야겠어. 자네가 직접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속으로 잠시 반문하던 테세우스는 그가 누군지 생각났다.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바로 스파르타쿠스 토벌에 실패한 콘술이었다. 그 뒤를 이어 콘술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군을 이끌어야 했지만 그는 크라수스에게 그 토벌을 넘겼고 크라수스는 보란 듯이 본토의 반란군을 토벌했다.
일련의 일들을 상기한 테세우스는 카이사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도 알아차렸다. 토벌에 실패한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명예를 회복할 길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세네투스와 얼마간 척을 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터, 현 상황에서 테세우스에게 누구보다 훌륭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울러 켄소르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게도 이 일을 언급해 놓도록 하겠네. 이 정도는 되어야 나 카이사르가 도움을 주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
테세우스가 홀로 그를 찾아갔다면 거부할 확률이 높지만 카이사르와 더불어 켄소르 브루투스의 영향력을 등에 업는다면 과장해서 옥타비우스가 오히려 제발 시칠리아로 자신을 보내 달라고 간청할지도 모를 일이다.
테세우스가 말없이 카이사르를 바라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파르타쿠스라는 자가 제법 대단하더군. 이번에 시칠리아 토벌군이 다시 무너진 이유가 본토에서 스파르타쿠스가 넘어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어. 재미있지 않나? 크라수스는 본토의 반란군을 토벌했다고 세네투스에 오바티오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말이야.”
오바티오는 트리움푸스보다 급이 낮은 개선식으로 지난날 폼페이우스가 행했던 바가 있었다. 이번 반란의 규모가 제법 대단하기는 했지만 크라수스가 세운 공적은 폼페이우스가 세운 공적에 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크라수스가 담대하게 이런 요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네투스와의 연계가 폼페이우스보다 훨씬 깊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참으로 오묘하단 말이지. 세네투스가 내세운 사람으로 인해 도리어 본인의 오바티오가 물 건너가게 생겼으니 크라수스도 이번 일만큼은 반대하지 않을 터, 누가 되었든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확실히 종결짓기를 원할 거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별 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테세우스에게 많은 짐을 지울 수 있으니 왜 돕지 않겠는가?
“일단 시간이 급하니 서둘러 움직이도록 하지.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다음에 로마로 돌아올 때는 내가 역으로 도움을 구해도 되겠는가?”
테세우스는 묵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시칠리아를 토벌한 공적은 카이사르, 네 것이 될 것이다.”
카이사르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팔을 내밀었고 테세우스 역시 그의 팔을 맞잡았다.
*
테세우스는 그 길로 카이사르가 언급한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를 찾아갔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켄소르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테세우스. 그를 돕겠다고? 글쎄.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구려. 잊었나 본데 그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를 살해한 사내요. 세네투스가 테세우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카이킬리아 가문의 입김도 있다는 소리지. 설마 테세우스를 위해 카이킬리아 가문은 물론 다수의 세네토르와 척을 질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별로 당신답지 않은 행동같은데?”
“물론 기억합니다.”
카이사르의 담담한 말에 브루투스는 미간을 좁혔다가 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나와 유니아 가문은 당신에게 협조하도록 하겠소. 어찌되었든 시칠리아 반란이 서둘러 종결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고 메텔루스 피우스를 패배시킨 사내라면 시칠리아 정도야 금세 수복하겠지. 다만 그는 로마에 적대했던 사람이오. 그걸 잊으면 곤란하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으리라 믿겠소.”
“로마인은 로마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로마를 취하려고 들 뿐. 테세우스 그도 로마인입니다. 의견이 다름에도 뜻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아무튼 잠시 뒤 의회에서 보도록 합시다.”
카이사르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브루투스에게 말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