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75화 (275/298)

# 275

275. 대반격.

275.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를 어찌 모르겠는가? 폼페이우스의 군공이 화려해 최근에는 그에 비해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기야 하지만 그래도 그는 폼페이우스와 나란히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술라는 죽음 이후 자신의 아들 파우스투스의 보호자로 루쿨루스를 내세웠는데 테세우스는 이 사실을 유의깊게 들었다.

딕타토르였던 술라는 로마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사람이었다. 물론 황제의 자리에 오른 건 아니지만 그와 같은 권력을 행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가 바로 술라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술라가 위협거리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카이사르를 그토록 죽이려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 결국 자신과 너무나 닮은 사람이었기에 죽이려고 든 것이다.

그런 술라가 신뢰했던 사람이라면 루쿨루스의 성품을 추측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라에게 루쿨루스는 폼페이우스보다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자신의 죽음 이후 아들을 맡겨도 될만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술라와 동류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랬다면 술라가 그를 신뢰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루쿨루스가 그 술라를 속인 것이라면 실로 무서운 사람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머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루쿨루스를 바라보던 테세우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입니다.”

“역시 그랬군. 그런 눈빛을 가진 사내가 흔할 리 없으니. 아아 이거 실례가 많았군. 로마의 세네토르에게 너무 격의없이 행동했구려. 무례를 용서하시지요.”

“무례랄 것이 있겠습니까? 루쿨루스 님의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하하하.”

루쿨루스는 크게 웃음을 터트린 후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 나와 같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군. 확실히 카이사르가 인물은 인물이로군. 술라께서 그 어린 아이를 왜 그토록 경계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어.”

테세우스는 멋스럽게 늙은 중년의 사내 루쿨루스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실내로 들어서며 나디르에게 말했다.

“나를 찾아오셨다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혹.”

테세우스가 더 말을 꺼내려 할 때 루쿨루스가 그의 말을 끊었다.

“따로 그에게 질문할 것 없소. 당신의 예상대로 나는 카이사르의 부탁을 받고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고자 걸음을 옮긴 것이니······. 무사히 로마로 돌아왔으니 사람들을 시켜 수색할 필요는 없겠소이다.”

예상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로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테세우스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디르를 슬쩍 바라봤다.

그러자 나디르가 그에게 다가서서 작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폼페이우스와 함께 동방원정을 나설 분입니다.”

동방원정이라면 바로 폰토스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테세우스 자신은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따라서 루쿨루스가 언급한 수색은 곧 함선을 운용할 수 있는 병사들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니 이미 군권을 획득했다는 뜻일 것이다.

아울러 카이사르가 자신을 위해 나선 건 특별할 것도 없었다. 테세우스 본인이 살았든 죽었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카이사르 본인에게 득이 되는 행동이니 어찌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고맙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루쿨루스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실 텐데 그럼에도 이렇게 나서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 일을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내가 한 것이 있겠습니까? 로마에서 로마로 마실이나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인 것을. 그리고 내가 아프리카 등지를 전전했어도 귀는 항상 열어두고 있었소. 세네투스가 열화와 같이 환대하는 사람의 이름을 나라고 듣지 못했겠소? 소식을 들을 때면 매번 궁금했소. 그 대담한 자가 대체 누군지 말이오.”

테세우스는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루쿨루스는 잠시 회상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그는 뛰어난 장군이었지. 술라께서도 경계하던 인물 중 하나였어.”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서로 적대하는 사이였으니 안다는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 않고 인정했던 사람이라고 해두지. 그에게 이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어 로마의 세네투스를 뒤흔들 줄이야 당시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문득 루쿨루스는 술라가 이 사내를 봤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죽이려고 들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술라와 마리우스의 내전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고 그 과거의 일에 얽매여 괜한 원한 관계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마리우스파와 날선 관계를 유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케케묵은 원한을 굳이 파헤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부끄럽게나마 아버지의 이름을 이었을 뿐입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로마에서 혈연보다도 이름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러니 체면치레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나 나눕시다.”

테세우스는 표정을 굳히며 루쿨루스에게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돌려 말하지 않겠소. 로마를 폐하거나 로마와 적대할 것이 아니라면 다 내려놓고 떠나시오. 그게 당신을 위해서도 좋을 거요.”

테세우스는 루쿨루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뭐라 답해야할지 몰라 침묵을 지켰다. 그러면서 루쿨루스와 눈을 마주했는데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눈빛에서 동질감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루쿨루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폼페이우스와 동방원정을 떠날 것이고 이후 크라수스와 카이사르가 내년 콘술에 오르겠지. 당신이 율리아 가문과 유니아 가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알지만 그 정도 관계야 유구한 로마 역사 가운데 숱하게 있었던 관계에 불과하오. 오늘날 당신과 두 가문의 관계가 그 두 가문이 다른 가문들과 맺어왔던 관계보다 무겁다고 할 수 있겠소?”

루쿨루스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대담해. 트리뷴이었던 당신의 행보는 아이러니하게도 딕타토르였던 술라를 떠올리게 한단 말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당신은 로마에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 카이사르가 콘술에 오른다고 해도 그는 이제 막 싹을 피어올리는 새싹에 불과해. 그가 당신을 위해 세네투스와 척을 지려면 당신도 그만한 대가를 카이사르에게 지불해야만 하겠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던 루쿨루스는 서늘한 눈빛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세네투스와 척을 질만한 대가라. 정확히 어떤 일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을 해낸다면 카이사르 역시 당신을 적대하게 될 거라는 건 확실하지. 당신의 적은 세네투스에서 카이사르로 옮겨가던가 아니면 모두를 상대해야만 할 거요. 크라수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나와 폼페이우스도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겠지.”

“음.”

테세우스가 침음을 뱉자 루쿨루스가 다시 말했다.

“감당할 수 있겠소?”

“······.”

“혹 내가 당신을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다 내려놓고 떠나시오. 폭풍우에 휘말려 죽은 것으로 해도 나쁘지 않겠지. 다만 오해는 마시오. 나는 당신을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으니 말이오. 아무튼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 합시다.”

루쿨루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나서며 테세우스에게 다시 말했다.

“내 말을 흘려듣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그리곤 훌쩍 테세우스를 떠났다. 눈매를 좁히고 루쿨루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세우스는 나디르에게 입을 열었다.

“로마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루쿨루스가 괜히 저런 말을 뱉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와는 첫 만남이었고 자신은 실종되었다가 나타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떠나라는 등지의 말을 하다니 기묘한 발언이 아닌가? 따라서 지금의 질문은 바로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

“로마도 로마지만······. 그보다 시칠리아에 일이 발생했습니다.”

테세우스는 눈을 크게 뜨면서 나디르에게 반문했다.

“시칠리아에? 무슨 일이?”

*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반란군은 대담하게도 시칠리아에서 가장 방비가 잘 되어 있는 메사나를 함락시켰다. 메사나에 틀어박혀 방어만 하던 시칠리아 정규군이 미라에와 틴달리스를 수복하기 위해 도시를 나선 부분이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반란군이 생각보다 공성준비를 철저하게 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없는 요소가 되었다.

반란군이라고 그간 놀고 있지만 않았던 것이다. 많은 도시를 함락시키며 상당량의 물자를 확보한 반란군은 메사나를 함락시키기 위해 착실히 준비했고 그 결과 스파르타쿠스는 주저하지 않고 메사나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

결국 헨나와 메사나는 순식간에 반란군의 손에 떨어졌다. 메사나를 함락시킨 스파르타쿠스와 오이노마우스는 그 즉시 군을 나눠 미라에와 틴달리스를 재탈환했고 헨나를 함락시킨 크릭서스와 가니쿠스 역시 겔라와 카마리나를 함락시켰다.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는 겔라에서 필사적으로 항전했지만 크릭서스의 손에 의해 결국 죽고 말았다. 다만 치열한 전쟁 중이라 끔찍한 고문을 행한 후에 죽일만한 여유가 크릭서스에게 없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크릭서스와 가니쿠스는 반란군이 근래에 잃어버린 도시를 모두 수복한 후에도 더 진격했고 그 결과 아그리겐툼까지 반란군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반란군이 동부에 이어 중부까지 장악했으니 이제 남은 도시는 서부에 위치한 다섯 도시만 남았다. 히메라, 파노르모스, 드레파눔, 릴리바에움, 세리누스로 모두 테세우스가 되찾거나 보호한 도시였다.

호라티우스는 혹시 몰라 테세우스가 언급한 대로 히메라와 세리누스의 경계를 튼튼하고 있었지만 나타난 황당한 결과에 기함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라티우스는 급히 본국에 이러한 사실을 상세히 적어서 보낸 후 만에 달하는 군을 반으로 나눠서 오천은 히메라로, 오천은 세리누스로 이동시켰다.

다만 1,300에 달하는 테세우스의 정예병들 중 1,200명은 히메라로 보냈고 호라티우스 본인은 남은 100명과 함께 세리누스로 향했다. 아그리겐툼이 함락된다면 히메라보다 세리누스 방비가 시급했기에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의 갑주를 걸치고 방어전에 임할 생각이었다.

테세우스의 체구가 자신보다 컸기에 무구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착용하고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몇몇 장비를 빼고 착용하고 확인해보니 전투에 지장에 없을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테세우스의 위명에 힘입어 남부의 세리누스를 방어하고 북부의 히메라는 노련한 1,200명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얼추 서부지역을 방어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호라티우스가 그렇게 방어전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반란군은 호라티우스의 예상보다도 빨리 세리누스를 공격해왔다.

바로 크릭서스와 가니쿠스가 이끄는 반란군들이었다.

“세리누스를 함락하면 서부지역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이대로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릴리바에움, 드레파눔을 격파하면 스파르타쿠스와 오이노마우스가 히메라와 파노르모스를 함락시킬 테니 그것으로 시칠리아는 우리 손에 완전히 떨어진다.”

가니쿠스의 말에 크릭서스가 가슴을 쿵쿵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맡겨둬라. 저까짓 성! 지금 당장이라도 밀어버릴 테니!”

크릭서스는 사나운 표정으로 어둠 속에 잠긴 세리누스 성을 바라봤다. 가니쿠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크릭서스에게 다시 말했다.

“이번 해와 다음 해까지는 시칠리아의 풍성한 물자로 충당할 수 있다지만 적어도 이번 해에 전쟁을 끝 마쳐야 식량을 생산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스파르타쿠스의 말대로 로마를 우리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 하지만 저.. 저곳은 테세우스. 사신 테세우스가. 테세우스의 군대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성벽에 걸린 깃발을 알아본 반란군 지휘관이 벌벌 떨며 말하자 크릭서스가 성가시다는 듯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놈의 테세우스. 테세우스! 내 앞에 나타나면 단칼에 죽여버릴 것이다. 아니 테세우스 그놈이 그토록 대단한 놈이고 놈이 이곳 세리누스에 있다면 내 도발을 참지 않겠지.”

크릭서스는 그러면서 가니쿠스를 바라봤다. 동의를 구하는 눈빛에 가니쿠스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도 테세우스라는 이름이 거슬리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도발에 응한다면 어떻게든 테세우스를 죽이면 될 일이고 없다면 근거없는 저들의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좋아! 어디 그토록 대단한 테세우스의 면상 한 번 확인해볼까?”

크릭서스는 자신의 방패에 검을 퉁퉁 거칠게 내리친 후에 거침없이 세리누스 성벽까지 나아갔다. 그리곤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테.세.우.스. 나와라! 네놈의 비루한 면상을 보고 네 놈의 멱을 따기 위해 나 크릭서스가 친히 네 앞에 걸음했으니 겁쟁이 새끼가 아니라면 어디 한 번 기어 나와서 내 칼을 받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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