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
273. 대반격.
273. 대반격.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는 군대를 장악하자마자 그 즉시 시칠리아 중앙지역인 헨나에서 남부 지역인 겔라로 군을 이끌었다. 시칠리아의 반란군은 그 기세가 꺾인지 오래라 바리니우스는 어렵지 않게 겔라를 되찾을 수 있었고 이에 최남단 도시라 할 수 있는 카마리나까지 함락시켰다.
로마로부터 시칠리아의 모든 지휘권을 인정받은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는 시칠리아 정규군에도 명령을 하달하여 미라에와 틴달리스를 공략하게끔 했고 이에 지금껏 거북이마냥 메사나의 성벽 아래 웅크리고 있던 시칠리아 정규군 역시 두 도시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로마가 탈환하지 못한 도시는 나서스, 카타나, 시라쿠세 세 도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가봐도 반란은 순조롭게 진압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상황은 예전과 달랐고 반란군의 주축 구성원 역시 새롭게 변모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주변에 선 사내들을 훑어본 뒤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겔라, 카마리나, 미라에, 틴달리스를 내어줌에 따라 저들의 병력은 그만큼 흩어졌다. 우리는 저들의 허를 찔러 역으로 헨나와 메사나를 점령한다.”
점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점령지를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병력은 한정되어 있고 도시 하나를 점령할 때마다 그곳을 방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은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최전방이 아닌 도시들은 그만큼 수비병력이 줄어들겠지만 어쨌든 점령지역이 많아질수록 병력이 분산되는 것은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이었다.
테세우스가 진격을 멈춘 이유에는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도 있지만 잠시 숨을 돌리며 이러한 병폐를 대비하기 위한 부분도 있었다.
오이노마우스와 접촉한 스파르타쿠스는 어렵지 않게 반란군을 장악할 수 있었다.
오이노마우스는 모든 반란군이 두려워하던 테세우스를 암살하고자 함으로 반란군의 신뢰를 얻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려움의 대상이던 테세우스는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에게 군을 인계하고 모습을 감췄고 본토에서 이름을 떨치던 스파르타쿠스가 반란군에 합류함으로 반란군들은 스파르타쿠스를 총지휘관으로 인정했다.
물론 그 가운데 잡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깔끔하게 무력으로 정리했고 그 모습이 오히려 그에 대한 신뢰를 더하게 만들었다.
“테세우스가 그토록 대단한 인물이라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지만 네 도시를 점령하는 가운데 그는 물론이고 그의 정예병들도 확인할 수 없었으니 로마로부터 경질되었거나 스스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테세우스에 대한 혁명군의 두려움은 상당히 깊었기에 반격을 하기에 앞서 그 부분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테세우스가 전장에 없다는 것이 확고해진 이상 사실 그대로를 언급해주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고 이마저도 승리를 거두다보면 자연히 스러질 것이다.
“아울러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계속된 승리로 방심하고 있을 테니 우리가 역습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얼추 파악된 저들의 숫자는 4만으로 추산되었다. 저들은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아군의 병력 역시 4만에 달했다. 이토록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도 그간 감히 반격에 나서지 못한 것은 한 사람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가 남긴 공포 때문이었다.
홀로 이천에 달하는 척후대와 상대하여 격파하다니. 그 소문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지만 그만큼 대단한 무용을 지닌 인물인 것은 확실했다. 검투사의 악몽이라 불리던 디오클레스 역시 단신으로 살해했다는 사내가 아닌가?
그뿐 아니라 그의 군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시칠리아 혁명군이 저들에 입은 피해를 확인해보니 살해당한 자는 4만에 달했고 사로잡힌 자는 2만에 달했다. 합치면 그 수가 무려 6만이다. 아무리 전술과 전략에 밝지 못한 이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최초 저들의 병력은 1만 명에 불과했다고 들었다.
물론 6만 명과 1만 명이 한꺼번에 전투를 치른 것이 아니라 차례차례 격파 당했겠지만 이런 테세우스를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그의 군대는 3만에 달하는 숫자로 오히려 불어난 상황이었다. 1만으로 6만을 상대한 사내가 3만으로 4만을 상대하지 못할까? 당연히 그에 대한 공포는 허상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었고 만약 그가 건재했다면 자신 역시 일단 그를 암살한 뒤에 전면전을 치러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승산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시칠리아에 없다. 혹 시칠리아에 남아있다고 해도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서늘한 눈으로 외쳤다.
“크릭서스, 가니쿠스! 반드시 헨나를 탈환해라!”
“알겠다.”
“반드시 함락시키겠다.”
가니쿠스와 크릭서스가 확고한 음성으로 대답하자 스파르타쿠스는 오이노마우스를 바라봤다.
“오이노마우스! 너는 나와 함께 메사나를 점령한다. 점령 이후에는 머뭇거리지 말고 다음 계획을 시행한다!”
스파르타쿠스에 의해 재편된 반란군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테세우스는 이곳 시칠리아에 없었다.
*
며칠간 준비를 마친 테세우스는 무인도를 떠나 육지로 향했다. 무사히 육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얼마 뒤 근방에서 도시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마군이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에서 테세우스는 이곳이 로마 본토라는 것을 재차 확신했다.
“말 좀 묻지.”
테세우스가 병사에게 말을 건네자 병사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테세우스를 위아래로 살폈다. 무시와 경계심이 혼합된 눈초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가 갑자기 말을 건넨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인데 심지어 그는 도시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보초가 아닌가?
“뭐냐?”
“이곳은 어딘가? 이곳이 어디든 간에 나를 관청으로 좀 안내해 줬으면 좋겠군.”
“뭐? 당신이 누군줄 알고?”
“내 이름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로마의 세네토르다.”
“테세우스?”
병사는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봤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때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다른 병사가 급히 테세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잠깐만! 테세우스라고? 당신이 테세우스라고?”
테세우스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병사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시지요.”
테세우스가 처음 말을 걸었던 병사는 그를 만류하려다가 자신이 테세우스의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는지 떠올렸다.
“트리뷴? 그 트리뷴 테세우스?”
“일단 비켜서!”
그를 먼저 알아본 병사는 그렇게 말하며 테세우스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테세우스는 그의 안내를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섰는데 도시 안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 도시였다. 서후의 기억을 가진 테세우스에게 로마의 뭔들 고풍스럽지 않겠느냐만은 이 시대 로마 기준으로 봤을 때도 고풍스러운 건축물이라는 소리였다.
테세우스가 주변을 이채서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를 안내하던 병사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곳 베투로니아는 에트루스칸인들이 세운 도시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축물들이 제법 많지요.”
에트루스칸은 투스코스트 지역의 고대 이탈리아의 부유하고 강력한 문명이었다. 베투로니아는 로마 북부의 에투로리아 지역구에 속한 도시 중 하나였다.
“보다시피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내 말을 믿는 건가?”
병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아.. 제가 트리뷴께 관심이 많아서 말입니다. 혹여라도 트리뷴을 만나게 되면 알아볼까 싶어서 사람들이 말하는 특징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죠. 이렇게 만나뵐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특징?”
“형형한 눈빛에 상당히 거대한 체구라고 하더군요. 세네토르처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테세우스 님을 사칭할 일도 드물지요. 요청하신 부분도 단순히 관청으로 안내해달라고 했으니 딱히 믿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세네토르께서는 어찌 이런 모습으로 베투로니아를 방문하신 겁니까?”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던가? 테세우스도 단순히 궁금했을 뿐이었기에 더 묻지 않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로마로 향하던 길에 폭풍우를 만나 배가 좌초되었네.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보니 무인도더군.”
“아! 폭풍우! 안 그래도 바닷가에 사는 이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짧게 끝나서 망정이지······. 그런 폭풍우를 바다에서 만났다면 그야말로 천운이네요. 그나저나 무인도라면? 주변에 위치한 포르토페라이오 섬은 무인도가 아니니 일단 그 주변은 아닐 테고. 혹 힌테크리스토(몬테크리스토) 섬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곳의 지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섬의 대부분이 바위로 이뤄졌더군.”
“그럼 힌테크리스토가 맞을 겁니다. 그곳의 화강암이 질이 좋다고 건축가들이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잠깐만. 그곳에서 이곳까지 거리가 상당할 텐데요? 어떻게 그곳을 탈출하신 겁니까?”
“뗏목을 만들어 탈출했지.”
“뗏목이요?”
병사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곳입니다. 끝까지 안내해드리고 싶지만 이 이상 근무지를 벗어나면 안 돼서 말입니다.”
이름 모를 병사의 호의에 테세우스는 그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이름이 뭔가?”
병사는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비누스. 알비누스라고 합니다.”
“내 말을 믿어줘서 고맙네.”
“그거야 뭐. 그럼 복귀하겠습니다.”
테세우스는 알비누스란 이름의 가진 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가 알려준 관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말과 같은 이동수단을 얻든지 먼저 로마에 소식을 전하든지 하면 될 것이다.
*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는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스의 부관이자 그와 함께 로마에서 온 지휘관이다.
반란군은 이제 동부 해안가 도시 세 곳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리니우스는 코시니우스에게 5천의 병력을 주어 헨나를 경계하도록 했다.
헨나는 동부 해안 도시 중 가장 근접한 카타나와도 상당히 먼 거리에 위치한 도시였고 다른 도시들이 모두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달리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기에 대군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쉬운 전략적 요충지에 가까웠다. 물론 시칠리아의 지형 자체가 완만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기에 무슨 깎아질 듯한 절벽에 위치한 철벽 요새가 아니었다.
다만 적의 대군을 발견하는 즉시 아군의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위치였기에 바리니우스든 코시니우스든 이곳이 공격당할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현 상황에서 5천에 달하는 병사가 이곳에 주둔하는 것은 병력의 낭비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크릭서스와 가니쿠스는 나서스에서 출발하여 에트나 화산을 돌아 헨나로 향했다. 시칠리아에서 에트나 화산보다 높은 지역은 존재하지 않았고 크고 작은 산들이 시야를 가렸기에 조심히 움직이면 군의 움직임을 숨길 수 있었다. 이 경로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고 조심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발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카타나에서 헨나까지는 대부분이 평야였고 그마저도 완만한 경사를 이뤘기에 카타나에서 진격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헤이해진 저들의 경계심을 생각하면 헨나를 공략할 때쯤에나 알아차릴지도 모를 일이다.
긴머리를 질끈 묶어 말총머리를 한 가니쿠스는 날렵한 체구를 가진 사내였다. 가니쿠스는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수신호를 통해 명령을 내렸다.
가니쿠스의 수신호를 받은 전사들은 날렵하게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건 가니쿠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헨나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까지는 파악할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가니쿠스는 헨나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지 그리고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목적만은 명확했다. 헨나의 문을 열고 가능하다면 헨나의 지휘관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의 머리를 취하는 것.
따라서 가니쿠스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성벽을 빠르게 타고 올랐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험난한 절벽도 타고 올랐던 그에게 이 정도 성벽을 타고 오르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성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경계병들이 문제였는데 잠시 시간을 두고 살펴본 결과 경계조차도 삼엄하지 않았다.
착!
기어코 성벽 위에 안착한 가니쿠스는 횃불을 들고 걸어가는 경계병을 확인하고 그 뒤로 은밀히 다가가 입을 막고 검으로 목을 그어버렸다.
“컥! 크르르륵.”
단말마와 함께 피가래 끊는 소리가 미약하게 울려 퍼짐과 동시에 한 사내의 삶이 허망하리만치 사라졌다. 가니쿠스는 죽은 경계병을 끌어다가 은폐하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성의 경계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허술했다.
가니쿠스는 자신을 따라 성벽을 올라온 전사들에게 다시 수신호를 했다. 그러자 올라온 전사들은 두 무리로 나눠서 은밀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패는 성문을 여는 장치를 향해, 한패는 가니쿠스와 함께 성벽 안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어둑한 헨나의 성안에 매서운 맹수들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