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268. 피로 물든 로마.
<<오늘 글을 쓰다가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여 수정합니다. 율리아 가문의 카이사르를 어느 순간 유니아 가문 사람으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 하여 229, 230, 233. 240, 249편을 간략하게 수정했습니다.
큰 내용은 변경이 없고 다만 유니아 가문과 율리아 가문이 합심하여 켄소르 부활을 주장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유니아 가문이 얻은 혜택 역시 율리아 가문과 함께 나누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켄소르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른 가문 사람입니다. 이걸 왜 혼동했는지 의문이네요; 혼란을 드린 점 죄송합니다. 19.1.25 변경.>>
268.
카이사르 역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먼저 프라에토르와 상의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 말에 크라수스가 살짝 눈매를 좁히며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글쎄요. 전쟁터에서 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선결되어야 할 과제도 있습니까?”
“글라디우스와 스쿠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아니지요. 당장 프라에토르만 하더라도 글라디우스와 스쿠툼으로 전쟁에 임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를 조롱하기 위해 로마에서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하셨습니까? 안 그래도 직접 글라디우스와 스쿠툼을 쥐고 일선에 나서야 할 판이오!”
크라수스가 분을 터트리려고 하자 카이사르가 입가에 서린 미소를 지우며 그에게 말했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크라수스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침음을 뱉으며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음······. 일단 그게 뭔지 들어나 봅시다.”
“프라에토르께서는 이번 반란을 성공적으로 토벌하고 이어서 폰토스 전에 나설 계획이셨을 겁니다. 제가 잘못 파악한 것인지요?”
크라수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카이사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소만?”
“폰토스 전쟁을 폼페이우스에게 양보하시지요.”
크라수스는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면서 카이사르를 노려봤다.
“폼페이우스, 그자와 결탁한 것이오? 노예 반란도 처리하지 못하는 내게 폰토스 전쟁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오? 흥! 물러가시지요. 또한 오늘의 치욕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폼페이우스와 결탁이라? 제가 프라에토르를 격분케 하여 얻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폼페이우스가 아니라 크라수스 님과 일시적이나마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싶을 뿐입니다.”
크라수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카이사르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나와? 그렇다면 폼페이우스에게 폰토스 전을 맡기라는 소리는 대체 무엇이오? 나를 지금 희롱이라도 하는 것이오?”
카이사르는 정색하며 그에게 말을 이었다.
“프라에토르께서는 로마를 떠나 계셔서 모르겠지만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아프리카 지역의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귀환했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크라수스 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과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가 로마 진격을 명했을 때 지휘관 중 유일하게 그의 명령대로 움직인 사내, 그로 인해 미트리다테스 전쟁 때는 물론 향후에도 술라의 총애를 받아 수많은 전공을 세운 사내, 당금 로마에서 폼페이우스에게 비견되는 전공과 능력을 보유한 사내가 바로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였다.
크라수스가 어찌 그를 모르겠는가? 폼페이우스와 다르게 권력욕이 없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사내지만 명예와 탄탄한 배경을 지닌 루쿨루스가 로마에 귀환했다면 그건 말이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자신과 같은 리키니아 명문가 출신이지만 계보가 다르다. 게다가 이미 혁혁한 공을 세운 루쿨루스와 다르게 자신은 노예 반란도 토벌하지 못해서 애먹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크라수스는 표정을 굳히며 재차 반문했다.
“그가 로마로 귀환했다는 것이 정말이오?”
“저는 프라에토르께서 이번 토벌을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과 같이 토벌에 어려움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엔 토벌을 완수하시겠지요.”
크라수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카이사르의 말을 끊었다.
“애써 위로할 필요 없소! 그래서 내게 폼페이우스에게 양보하라고 한 것이로군. 루쿨루스가 로마로 귀환했으니 공화정은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 둘 중 한 사람에게, 아니 아르메니아가 폰토스와 결탁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 모두에게 원정을 맡길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오. 내가 세네토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 여길 테니······.”
“그렇게 자조하실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크라수스가 싸늘한 눈빛으로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자조할 필요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이 프라에토르께 그리 나쁜 소식은 아닙니다. 프로프라에토르인 루쿨루스가 해외 원정을 가지 않는다면 다음 해의 콘술에 나서지 않겠습니까? 프라에토르 폼페이우스 역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루쿨루스는 BC 78년에 법무관을 지냈던 인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해외 원정의 적임자로 거론되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크라수스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께서 하시는 말을 들으면 마치 아군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승리로 가는 길이 어찌 승리로만 연결되겠습니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저는 벌써 술라의 손에 의해 죽었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으흠.”
“물론 콘술에 오르실 분께서 이 이상 패배한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 일이 되겠지요. 그 일을 위해 제가 이리 달려온 것이기도 합니다.”
크라수스는 눈을 번뜩이며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이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준다면 내 무슨 도움인들 아끼겠습니까?”
“일단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 두 사람 모두를 로마에서 떠나게 하시지요.”
크라수스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크라수스는 그제야 카이사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허허. 너무 급한 것 아닙니까?”
카이사르가 자신과 함께 콘술 위에 오르고자 한다는 것을 눈치챈 크라수스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입가에 가득한 미소와 다르게 그의 두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예전에 형성된 명예의 길을 따라 움직이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쿠르수스 호노룸을 거론하는 것임을 카이사르라고 왜 모르겠는가? 카이사르 역시 급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고루한 일처럼 여겨질지는 모르나 그 일 자체로 강력한 명분과 배경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법이니까. 아닌게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카이사르는 쿠르수스 호노룸과 전통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바뀌었고 카이사르의 판단과 선택 역시 달라졌다.
“제가 지지하고 말고를 떠나 가능하겠습니까?”
“시칠리아에서도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세네토르의 지지와 콘술 위에 오를 분의 지지라면 부족한 사람을 이끌기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로리카 하마타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로리카 하마타를, 토가 프라에텍스타를 원하는 사람은 토가 프라에텍스타를 취하면 될 일이겠지요. 프라에토르께서는 저 두사람보다도 토가 프라에텍스타가 어울리는 분이시니 그저 믿을뿐입니다.”
황제나 성직자, 집정관이 착용하는 것이 토가 프라에텍스타였다. 크라수스는 카이사르의 말이 칭찬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주력 분야로 돌아오라는 소리로 들렸다. 잠시 카이사르의 눈을 마주하던 크라수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패장에게 너무 과분한 말이오. 하지만 솔직히 토가보다 로리카 하마타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오. 무엇보다 루쿨루스가 로마에 귀환했다면 어차피 동방 원정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겠지. 당신 말대로 그 둘로 하여금 공적을 다투게끔 보내버리고 먼저 콘술 위에 오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선 현명한 판단이겠소.”
보아하니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쥐어주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계산이 섰다. 어떻게 생각하면 폼페이우스든 루쿨루스든 모두 만만한 작자들이 아니니 로마가 패배할 확률은 그만큼 희박해진다. 그러니 위험을 일부러 감수할 필요없이 안전하게 콘술 위에 먼저 오르는 것이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이 되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카이사르가 콘술에 당선된다면 원정 나간 이들의 보급 문제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카이사르는 율리아 가문의 사람이고 유니아 가문의 켄소르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니 그와 함께 하는 것이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테세우스와 무슨 약조를 어떻게 맺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지지를 통해 카이사르가 콘술이 된다면 그만큼 테세우스를 향한 지지를 카이사르가 가져간다는 뜻도 되니 그 역시 나쁠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카이사르와는 테세우스와 가도 정비 문제 등으로 얽힌 사이이기도 했다. 그러니 테세우스가 카이사르를 지지하는 일과 자신이 카이사르와 연계하는 모습이 세인들에게 전혀 이상한 일로 비춰질 일도 아니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 토벌을 완수한 후에나 가능할 것이오. 두 번의 패배를 압도할 완벽한 승리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프라에토르께서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기다리면 된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적어도 저들이 원정을 떠나기 전까지는 토벌을 완수해야!”
“상황을 볼 때 시칠리아는 테세우스에 의해 머잖아 정리될 겁니다.”
“으흠.”
테세우스의 선전은 자신을 더 조급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으니 그 사실에 어찌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맞장구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침음을 뱉을 뿐이었다.
“그건 스파르타쿠스가 남쪽 시칠리아로는 갈 수 없다는 소리가 됩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했을 확률이 높으니 레기움 주변으로 병력을 포진하고 있을 겁니다. 심지어 저들은 이번에도 승전했지요.”
“으흠.”
크라수스로서는 쓰라린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스파르타쿠스 군이 3만에 이르는 대군이었다지요? 어쩌면 이번 전투를 계기로 사람들이 더 합류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니 서둘러 레기움을 둘러싸는 장벽을 건설하시지요. 로크리 근방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장벽을?”
“징집령을 통해 로크리나 비보 발렌티아, 카우로니아 등지의 사람들을 동원한다면 저들의 진격을 저지하는 정도의 장벽은 금세 건설하고도 남을 겁니다. 그런 뒤 소문을 퍼트리시면 됩니다. 시칠리아의 반란이 테세우스에 의해 종식되었다고.”
“그런 소문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소문이었다.
“소문이 아니라 곧 진실이 되겠지요. 어쨌든 크라수스 님도 아시겠지만 대군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보급입니다. 지금껏 저들의 보급은 약탈로 충당되었지만 약탈품이 언제나 넘쳐나지는 않지요. 이미 보급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에 거듭된 승전에 취한 반란군은 스파르타쿠스의 명령도 듣지 않고 북상할 테지요. 반란이 종식되었다고 알려진 시칠리아로 넘어갈 생각은 품을 수 없을 겁니다. 레기움과 메사나가 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라고 해도 대군이 바다를 건너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크라수스는 눈을 번쩍 뜨며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그러니 프라에토르께서는 그런 무리를 기다렸다가 멸하시고 저들이 지리멸렬할 시점에 한번에 몰아쳐서 토벌을 완수하시면 됩니다. 딱히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크라수스는 감탄한 표정으로 카이사르를 바라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의 도움 반드시 잊지 않을 것이오.”
“그럼 먼저 로마로 돌아가 승전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물을 덥혀 놓을 테니 너무 늦지 않게만 오시지요.”
“하하하. 물론. 물론이오!”
크라수스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카이사르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의 말대로만 이뤄진다면 이건 절대 패배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
“크릭서스! 함부로 움직일 상황이 아니다!”
오이노마우스가 소리치자 크릭서스 역시 고함을 지르듯 말했다.
“이미 두 번이나 패배시킨 비루한 로마군따위에게 무슨 겁을 그리도 집어먹은 것이란 말인가? 어차피 싸우지 않는다면 말라죽던가 내부에서부터 반란이 일어나고 말 거다. 시칠리아의 반란이 종식된 것이 사실이라면 스파르타쿠스 계획은 이미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어. 그러니 남은 건 북상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왜 진격하지 말라는 것이냐?”
담담한 표정의 가니쿠스가 고개를 주억이며 동의를 표했다.
“내 생각도 크릭서스와 동일하다. 시칠리아로 갈 수 없다면 토벌군을 박살내고 북부 지역의 도시들을 유린하는 수밖에 없다. 식량과 물자는 물론 더 많은 동료들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북진뿐이다.”
카스투스 역시 크릭서스와 의견을 같이했다.
“다른 건 둘째치고 날이 추워지기 전에 거점을 마련해야만 로마를 상대로 계속해서 항전할 수 있다. 계획대로라면 그 거점이 시칠리아가 되었겠지만······.”
스파르타쿠스는 근심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토벌군이 계속해서 남하해 온다면 유인해서 일망타진하려고 했는데 돌연 태도를 완전히 바꿔서 장벽을 건설할 줄이야.
크릭서스 등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는 북진이 해답이지만 사실 두 번째 전투도 저들을 유인해서 겨우 승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장벽 뒤에 숨은 토벌군을 무슨 수로 격퇴하고 북진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북진하지 않는다면 아군이 갈가리 찢어지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 할 수 있으니 스파르타쿠스는 심란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스파르타쿠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크릭서스의 날선 반응에서 스파르타쿠스는 두려움을 읽었다. 비단 크릭서스뿐이랴? 아니 크릭서스가 두려워하는 사실을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으랴? 지금의 현실이 널리 퍼지면 군이 붕괴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러니 나아가든 멈춰서든 물러서든 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에 스파르타쿠스는 주위의 사람들을 가만히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