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265. 굶주린 늑대처럼.
265.
크릭서스가 이끄는 반란군은 이동 중이던 옥타비우스 군대를 매우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이끄는 병력은 4천이었고 크릭서스가 이끄는 병력의 수는 고작 오백여 명밖에 지나지 않았다.
크릭서스 외 오백 명은 당대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기술을 지닌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검투사들이었고 시민군은 신병 위주에 소수의 퇴역병들로 구성된 병력이라 결코 강병이 아니었지만 8배에 달하는 병력 차이는 물론 집단전술을 이해하고 있는 퇴역병이나 지휘관이 있는 로마군을 이길 수는 없었다.
급히 이동 중이었고 신병들로 이뤄진 군대라 습격에 민활하게 대처하지 못해 상당한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로마군은 금세 진형을 이루고 저들을 압박했다. 습격 인원이 5백에 불과했기에 전방에서 습격을 받지 않은 신병들은 퇴역병이나 지휘관의 말에 비교적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크릭서스 군은 뿔뿔히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 달아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는 서늘한 눈빛으로 재차 명령을 내렸다.
“센튜리온의 인솔 하에 저들을 추격하여 사살하라!”
“알겠습니다.”
글라베르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가 진형을 허물고 크릭서스 군을 추격했다.
말없이 그 모든 광경을 주시하던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글라베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곳은 수풀이 무성한 곳이라 역습을 당할 수도 있을 듯한데 무작정 추격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나?”
“습격을 가한 이들은 얼추 오백 명이었고 반란군의 주력 병력이 틀림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피해를 입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 저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토벌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혹 저들이 역습을 위해 병력을 숨겨두었더라도 그 숫자 역시 오백을 넘지 않을 테니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들이 병력을 숨겨두었다면 남은 병력으로 지원을 하면 될 일이니 오히려 이곳에서 토벌을 끝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습격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아군의 빠른 진격에 어쩔 수 없이 습격한 것이리라. 그러니 이곳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르고 말리라.
“음. 그렇군. 하지만 자네는 반란군이 레기움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어. 그래서 아군이 서둘러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었고. 아군이 큰 피해를 입은 것에는 행군이나 진형을 구축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신병들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거야. 아닌가?”
날카로운 지적에 글라베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반란군이 선제공격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혹 콘술께서 지휘권을 무르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비록 전쟁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나 전쟁 중에 명령권자를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는 알고 있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급박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저.. 적입니다!”
“기.. 기병이?”
“기병이라니?”
글라베르가 급히 눈을 들어 군단의 뒤를 바라보니 대략 200기가 넘는 기병이 포필리아 가도를 따라 질주하고 있었다.
글라베르와 같이 기병을 바라보던 지휘관들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들이 대체 말을 어디서?”
“그거야 여러 마을과 도시들이 저들의 손에 당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
“하긴 카푸아만 해도······.”
“잠깐만! 저 방면은 카푸아 방면이 아닌가? 왜 저곳에서 적이? 반란군은 레기움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남쪽으로 이동 중에 적의 습격을 받은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어째서 이미 지나온 북쪽에서 적이 출몰한단 말인가?
“그만! 매복했다가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호들갑떨지 마라! 방진을 형성하고 필룸을 날려서 적의 진격 속도를 줄여라!”
고작 200기의 기병이다. 이곳에 남은 병력만 2천이다. 기병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보병의 적절한 도움이 없다면 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긴 어렵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예상과 다른 광경이 일어났기 때문에 글라베르도 긴장한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
가니쿠스가 이끄는 기병을 확인한 오이노마우스가 스파르타쿠스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차례로군.”
스파르타쿠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전략을 되짚어보았다. 크릭서스가 각종 함정이 마련된 지역으로 적을 유인하고 카스투스는 크릭서스를 도와 유인한 적을 쳐부순다. 가니쿠스는 남은 적의 후미를 공격하고 자신과 오이노마우스는 적의 수뇌부를 공략한다.
병력의 구성은 크릭서스 500명, 카스투스 300명, 가니쿠스 250명. 자신과 오이노마우스가 500명 으로 모두 1,550명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크릭서스와 함께 한 병력은 발이 빠른 자들로 구성되어서 신속하게 후퇴할 수 있게끔 구성했고 가니쿠스에게는 기마술에 능한 자들을 보내 말을 조달할 것을, 카스투스에게는 병력을 모집하라 명했다. 그리고 모두 맡은 임무를 완벽하리만치 수행했다.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의 예상대로 어쩔 수 없이 습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된 공격이었다는 소리였다.
저 멀리 일어나는 전투소음을 뒤로 하고 스파르타쿠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500명의 전사들을 둘러봤다.
“오늘 우리는 로마를 쳐부순다. 그리고 살아남을 것이다. 가자!”
“우와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스파르타쿠스와 오이노마우스가 이끄는 500명의 전사들은 천지가 떠나갈 것처럼 고함을 지르며 로마군에게 짓쳐들었다.
*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후미에 기병이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울려 퍼지는 엄청난 고함에 전투경험이 부족한 신병들은 두려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먼저 나타난 적을 추격해 들어간 지역에서 처절한 비명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긴장하지 마라!”
“정신 차려라!”
퇴역병과 지휘관들이 고함을 치며 저들의 정신을 바로잡지 않았다면 두려움에 병장기마저 내버리고 도망쳤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로마군은 강병이지만 저들이 강병인 이유는 압도적인 훈련량과 엄정한 군율 때문이지 타민족에 비해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급히 모집한 시민군은 엄정한 군율과 군단의 명예를 알지 못했고 치열한 훈련 역시 받지 못한 신병들에 불과했다. 정규군단에서 직업군인으로 활약한 퇴역병이 있다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돈이 필요해 합류한 자들이었으니 역시 믿을 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상당한 재물을 얻었을 것이 분명한 퇴역병이 돈이 필요해 합류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시사해주니 말이다.
잠시 로마군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자면 로마군의 시초는 봉급을 받지 않는 의무로서의 시민군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봉급을 받는 직업군으로 발전되었다. 로마에서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시민뿐이었고 그 시민 중에서도 일정 재산을 갖춘, 그래서 본인의 장비를 마련할 수 있는 계층만이 참여할 수 있는 특권?에 가까웠다. 그래서 시민군이라 부른다.
그러던 것이 중산층의 붕괴등으로 원칙적으로 이러한 제도를 지킬 수 없게 되었고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으로 인해 부와 사회계층과 관계없이 시민이라면 입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아울러 모든 시민을 군인으로 모집할 필요가 없는 시대 상황에 따라 시민의 의무 입대가 자원 입대 위주로 변하게 되고 로마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정기적으로 군인을 고용하게 된다.
요약해서 현 로마 공화정 후기의 군대의 형태는 전략지역에 배치된 전문화된 이러한 상비군과 필요에 따라 임시적으로 구성하는 시민군으로 나눠진다. 상비군 역시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군이나 후자의 경우에는 군 경험이 없는 모험을 원하는 젊은 사내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에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모집한 시민군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옥타비우스 군이 생사를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검투사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에 가까웠다.
스파르타쿠스는 폭풍처럼 달려서 자신의 양손에 나눠든 검으로 로마군을 도륙했다.
“으아아아아! 모조리 죽어라!”
“와아아아아!”
스파르타쿠스는 물론 오이노마우스와 그를 따르는 검투사들도 괴성을 지르며 두려움에 질린 신병들을 베어 넘겼다. 괴성을 지르는 것은 저들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반란군에 의해 로마군의 진형은 마치 철퇴에 얻어맞은 수박처럼 겉잡을 수 없이 붕괴되었다.
저들이 레기온(역시 시민군이나 여기서 레기온은 정규군을 뜻함)이라면 스파르타쿠스도 감히 이러한 기습을 감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전투기술이 얼마나 뛰어나던 간에 수많은 집단전을 수행한 레기온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2천에 달하는 병력이 오백에 불과한 검투사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에 글라베르는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진형을 바로 세워! 고작 오백 명이다! 진형만 바로 잡으면 적을 격퇴할 수 있단 말이다!”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이 지금껏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던 정규군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은 노련한 정규군이 아니라 신병들에 불과했다. 전술과 전략이 얼마나 뛰어나던 간에 그것을 수행할 사람이 없다면 그 모든 전술과 전략이 다 무슨 소용이랴?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는 고함을 지르고 병사들을 독려했음에도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는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200명 남짓한 기병들은 어찌나 민첩한지 로마군의 취약한 지역을 헤집고 다니며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글라베르는 훨씬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후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뭐라 대답할 수도 없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지 않는가?”
“후.. 후퇴해야 합니다.”
“뭐라? 후퇴?”
“이미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큰 피해를 입는다면······.”
“이.. 이.. 무슨 치욕이란 말이냐? 위대한 로마의 콘술이 고작 노예병들에게 패배를 당하다니! 이게 무슨! 이 일을 어찌 처리할 것이냔 말이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 목을 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후퇴하셔야 합니다.”
“글라베르의 말이 맞습니다. 후퇴하셔야 합니다.”
“잃어버린 명예는 다시 찾으면 그만이지만······.”
목숨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흉악한 표정으로 글라베르와 지휘관들을 바라봤다.
“내 너희를 믿고 중용했는데 내게 이런 치욕을 안기다니!”
“······. 송.. 송구합니다.”
“죄송합니다.”
“되었다! 후퇴해야 한다면 해야겠지. 으드득.”
이윽고 후퇴를 명하는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웅. 뿌우우웅.
4천을 이끌고 토벌에 임했던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이날 3천에 달하는 사상자를 남기고 로마로 패주했다. 그야말로 치욕스러운 대패였다.
*
이 황당한 결과에 로마의 의회는 크게 당황하며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대체 이게 무슨 황당한 소식이란 말이오?”
“패배는 패배일 뿐이오. 놈들이 승리했으니 더더욱 서둘러 토벌군을 편성해야 하오.”
“고작 노예 반란군 따위에 콘술이 이끄는 군단이 패배하다니 이런 치욕스러운 일이 다 있나?”
“허어······. 쯔쯔쯔.”
“황당할 노릇이구만!”
긴급회의 가운데 사람들이 저마다 의견을 늘어놓는 가운데 루푸스 의원이 입을 열었다.
“콘술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흐음.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패배한 일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오.”
“그렇다고 그에게 다시 토벌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퀴우스가 말을 꺼내자 콘술 코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하면 콘술께서 군을 모집하시겠습니까?”
“으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이번 일을 프라에토르 크라수스가 맡는 것이 어떨까 싶소.”
그 말에 아티커스가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열었다.
“콘술께서 나서면 될 일입니다!”
“로마의 콘술로서 확실히 하고 싶을 뿐이오. 상황을 보면 정규군을 움직여야 할지도 모를 일인데 그리되면 로마의 적들에게 본토 내의 반란도 처리하지 못해서 군단을 움직이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오. 프라에토르 역시 임페리움을 가진 직위일뿐더러 우리 모두 프라에토르 크라수스가 자비로 대군을 일으킬 역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이번 회의 전에 이미 물밑 협상이 진행된 것이 분명했다. 코타는 자신의 역량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 옥타비우스가 패배한 이상 자신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확률이 높았다. 크라수스는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코타는 쓸데없는 위험은 줄이고 적절한 보상과 함께 크라수스의 호의를 얻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
너무 늦었다. 콘술이 직접 토벌 지휘관으로 크라수스를 지명한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었다. 따라서 아티커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회의 결과 역시 콘술 코타의 뜻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만장일치로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 토벌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