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
264. 굶주린 늑대처럼.
264. 굶주린 늑대처럼.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4천에 달하는 시민군을 모집한 후 즉시 출병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부유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 부는 귀족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수준의 부유함에 불과했다. 승전한 후 참전한 장교들이나 병사들에 대한 보상은 공화정이 책임진다고 해도 4천에 달하는 병사를 먹이고 입히는 일은 상당히 벅찬 일이었으니 그가 다수의 의원들에게 빚을 졌음은 너무나 자명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BC 230년경 옥타비아 가문을 처음으로 알린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푸스로 시작된 옥타비아 평민 가문 출신의 집정관이었다. 이 옥타비아 가문은 후대에 카이사르에 의해 귀족 가문으로 승격되지만 현재는 그 카이사르조차 크게 조명받지 못하는 시점이었으니 더 거론할 필요가 없다.
참고로 그 이름도 찬란한 아우구스투스 황제, 곧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역시 바로 옥타비아 가문 출신이었다. 물론 먼 친척에다가 그 아우구스투스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전쟁 수행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쯤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을 맺어오던 평민 출신 장교들을 이번 토벌에 참가시켰다. 콘술까지 오른 자가 귀족 가문 인사들과 친분이 없을 리 없지만 상전을 모시고 싶은 생각도, 공을 나누고 싶지도 않았던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견고해보이는 로리카 하마타를 걸치고 검지로 지도의 한 부분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글라베르. 이곳 카푸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놈들이 어디로 움직였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한 사내가 패기 넘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베수비우스 산이 폭발해서 그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킬 일이 없었더라면 카푸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노예 놈들은 아마도 베수비우스 산으로 도망쳤을 겁니다. 노예 놈들이 감히 로마군에 대적할 생각은 품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입을 연 사람은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라는 사내였다. 그 역시 평민 가문 출신으로 전장에서 제법 공을 세웠던 지휘관이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현재 가장 신뢰하는 지휘관이기도 했다.
“베수비우스? 그건 매우 곤란하군. 토벌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좋지 않다는 것은 글라베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물론입니다.”
글라베르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다시 말했다.
“이곳에서 공을 세운다면 폰토스로 군단을 이끌 때 결코 자네를 잊지 않을 걸세.”
토벌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원로원을 비롯한 시민들에게 무능력하다는 인상을 남긴다면 반드시 승전해야 하는 폰토스와 싸움에서 자신은 완전히 배제당하고 말 것이다.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자신이 정치가이긴 하지만 승전에 따른 전리품이 얼마나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지를 왜 모르겠는가?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다면 빚을 모조리 갚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재물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눈에 진한 탐욕이 서렸다.
“염려 마십시오. 베수비우스 산이 주변의 모든 것을 불살라버렸으니 마땅히 숨을 곳도 없고 저들이 그곳에 숨는다면 오히려 기뻐해야만 할 일입니다.”
“하긴 폼페이가 베수비우스 산으로 인해 사라진 것이 확실하다면 그것도 그렇겠군. 그럼 놈들이 어디로 이동할 것이라 보는가?”
“시칠리아에도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고 들었으니 아마도 저들과 합류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자 다른 장교가 고개를 주억이며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에게 말했다.
“시칠리아는 로마의 주력 곡물 생산지인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으흠. 하면 네아폴리스나 미세눔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겠군.”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말에 또 다른 지휘관이 서둘러 동의를 표했다.
“탁월한 식견이십니다. 카푸아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항구 도시는 네아폴리스나 미세눔이니 저들이 그곳으로······.”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글라베르가 그의 말을 중간에 끊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만 베수비우스 산으로 인해 현재 미세눔과 네아폴리스의 방비는 전시체제 준하는 수준입니다. 그런 곳을 노예 반란군 따위가 뭘 어쩔 수 있을 거라 보기는 어렵군요.”
그러자 반박을 당한 지휘관이 벌겋게 변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실제로 미세눔과 네아폴리스 방면으로 저들의 행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건 초창기에 발견된 행적이 아니오? 이미 네아폴리스에 주둔하던 병력이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하기도 했고. 존경하는 콘술 옥타비우스 님. 제 의견을 계속해서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네. 나는 이번 토벌을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네.”
“하면 고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세눔이나 네아폴리스로 향하는 것처럼 흔적을 꾸며 놓고 그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파에스툼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에스툼이라고?”
“파에스툼의 병력과 성벽 역시 단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저들이 미세눔과 네아폴리스를 함락시킬 수 없다면 파에스툼이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주변에 있던 지휘관들이 고개를 흔들자 글라베르가 다시 말했다.
“파에스툼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 이동하며 병력과 물자를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흔적으로 볼 때 저들은 한 무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여러 무리로 나눠져 이동 중인 것으로 추측되고 결국 저들의 최종 목적지는 레기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억측이오! 노예 놈들이 무슨!”
“그 노예군들에게 상대적으로 방비가 미약한 내륙의 여러 마을과 도시들이 약탈당했습니다. 저들을 서둘러 격퇴하지 못한다면 역으로 우리가 당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병력을 더 모집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할 테고 말입니다.”
“으흠. 서둘러야겠군. 자치군을 수차례 격파하며 악명을 얻은 반란군의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는 나도 들은 적이 있어.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
“예. 하명하십시오.”
“네게 이번 일에 대해 맡기겠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반란군의 수괴, 스파르타쿠스의 머리통을 콘술께 바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가이우스 클라디우스 글라베르 이 자는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제3차 노예 반란과 치른 공식적인 첫 전투에서 패배한 장군이었다. BC 73년 당시 법무관이었던 그는 시민군 3천을 이끌고 베수비우스 산 아래 진을 쳤으나 도리어 스파르타쿠스의 기습으로 대패를 당했다.
그러나 역사가 이미 뒤틀렸으니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오욕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
피로 물든 무구를 걸친 사내가 비교적 높은 지대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차가운 눈빛으로 저 멀리 다가오는 로마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아폴리스와 미세눔 방면에서 활약하던 가니쿠스와 파에스툼 방면에서 형제들을 모집하던 카스투스가 병력을 이끌고 합류했습니다.”
“크릭서스 역시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오이노마우스가 그에게 말했다.
“저들이 아피우스 가도에서 바로 포필리아 가도로 연이어 진군하고 있으니 우리보다 먼저 레기움에 도착할 걸세.”
아피우스 가도는 로마에서 브룬디시움까지 이어지는 가도이며 포필리아 가도는 카푸아에서 레기움까지 이어지는 가도였다. 다만 아피우스 가도는 브룬디시움에 다다르기 전에 카푸아를 거쳐가게끔 길이 이어져 있었다. 고로 카푸아는 두 가도의 분기점이라 봐도 무방했다.
아무 대답이 없는 스파르타쿠스에게 오이노마우스가 다시 말했다.
“뜻을 함께 하는 형제들은 생각보다 많지만 저들의 숫자는 우리의 두 배 이상은 되네. 정면승부는 생각할 수도 없고 저들이 먼저 레기움이 닿는다면 우리는 북쪽으로도 남쪽으로도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되네. 그간 알아본 바에 의하면 북쪽은 위명이 자자한 폼페이우스의 정예 군단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결국 남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로마군이 레기움을 틀어막고 다른 자치군들의 적절한 조력을 얻는다면 로마의 정규군단이 나설 것도 없이 자신들은 지리멸렬하고 말 것이다. 고로 오이노마우스의 염려는 지극히 현실적인 염려였다.
오이노마우스의 말에 침묵을 지키던 스파르타쿠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이노마우스.”
스파르타쿠스의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에 오이노마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상했는지 모를 오이노마우스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신뢰하지 않기에 염려를 표출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비록 저들 로마군에 비한다면 영세하지만 70명이 조금 넘는 검투사들이 천 오백 명에 달하는 대군으로 변모한 것은 모두 눈앞의 이 사내, 스파르타쿠스 덕분이었다.
“말하게나.”
“검투장에 처음 섰던 때를 기억하나? 아니 그보다도 전장에 처음 섰던 때를 말이야.”
스파르타쿠스의 말에 오이노마우스가 아련한 눈빛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여인과의 뜨거운 정사보다도 강렬하며 뼛속을 에일 듯한 추위만큼이나 두려우며 귀신이 혼을 잡아 빼는 것처럼 혼미했던 그 잔혹하고 치열한 순간을 어찌 잊겠는가? 다른 수많은 전투는 모두 잊어도 여리고 여린 소년이 맞이한 첫 전투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건 마치 영혼 속에 기억을 각인시킨 것과 같은 충격을 선사했으니 말이다. 물론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결단코 말이다.
오이노마우스는 아련한 눈빛을 지우고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적들의 악의와 살기가 가득한 함성 가운데 나는 한 가지 생각만 계속해서 되뇌었다. 살아남아야겠다. 나는 살아남아야겠다. 방패를 들지 않는다면 적의 칼이 내 뱃가죽을 찢고 내장을 잡아뽑아 씹을 테니 필사적으로 붙잡았고 칼을 들어 적의 목을 치지 않는다면 그가 내 목을 자를 테니 떨리는 손을 깨물어서라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
“뜻을 함께 할 용감한 이들을 모으고 모았으나 이게 우리의 한계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도망친다면 그 끝은 죽음밖에 없다. 전투에 내몰렸던 그 순간처럼 우리는 물러설 길이 없다. 저들에게서 승리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로마와 맞서 싸울 정도로 용맹하고 그 숫자가 전에 없이 많아지기는 했으나 저 로마의 강철같은 성벽을 부수고 저들의 단단한 갑옷과 예리한 무기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저들이 레기움에 먼저 도달하든 아니든 혹 우리가 먼저 레기움을 함락시키든 아니든 우리는 그곳에서 멸하고 말 것이다.”
“······.”
스파르타쿠스의 말은 무거운 침묵을 가져왔다. 스파르타쿠스는 잠시 말을 멈춘 후 오이노마우스를 비롯한 자신을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검투사들, 곧 뜻을 함께 하는 형제들을 바라봤다. 그런 뒤 낮고 강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먹듯 말했다.
“우리는 굶주린 늑대처럼 사냥할 것이고 늑대처럼 뜯어먹을 것이다. 우리를 죽이고자 달려온 저들을 죽여서 저들의 단단한 갑옷과 예리한 칼을 빼앗을 것이고 그것을 이용해 저들의 강철같은 성벽을 허물어버릴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말에 누구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저들의 눈은 당장이라도 불이 토해져 나올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크릭서스에게 신호를 넣어라! 저들을 유인한다. 그리고 하나 하나 잘근잘근 씹어먹겠다.”
스파르타쿠스의 명령에 전령은 어떤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 뒤 바람처럼 크릭서스가 매복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포필리아 가도를 진군 중이던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의 군대를 크릭서스가 이끄는 반란군이 습격을 가했다.
“와아아아아!!”
“죽어라!”
“와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