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61화 (261/298)

# 261

261. 공포.

261. 공포.

붉은 피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크허헉!”

그렇게 이리저리 피를 흩뿌리며 육편이 되어버린 시신들 사이로 한 마리의 말이 길게 울부짖으며 눈을 희번덕거리며 스쳐갔다.

히이이이잉!

다그닥! 다그닥!

테세우스는 말을 탄 채로 비탈을 따라 매섭게 질주하며 앞을 가로막는 반란군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적이다!”

“마.. 막아!”

“로.. 로마군?”

투구에 달린 로마군 특유의 깃을 발견한 반란군이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차가운 금속으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분명 일반적인 로마군의 갑주가 아니었기에 당황한 가운데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매복인가?”

“놈이 뭐던 간에 고작 한 놈뿐이다! 죽여!”

“놈을 죽여라!”

갑자기 나타나 아군을 도륙하는 테세우스를 발견한 정찰병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분분히 앞길을 막아섰지만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일격이라도 받아낼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촤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테세우스는 말의 좌우로 극을 ∞ 형태로 휘두르며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을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경악과 두려움, 피와 살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고 전방을 주시하는 그의 눈에서는 그 어떤 망설임이나 자비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테세우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지 않는 자들은 애써 추격해서 죽이지 않고 곧장 호숫가에 주둔하고 있는 척후대를 향해 질주했다. 방향을 틀지 않고 이대로 계속해서 질주한다면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반란군 척후대 전부가 테세우스의 존재를 눈치채고 말 것이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저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호숫가로 향해 나아갔다.

*

노예 반란군은 이곳 호수 주변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북상할 계획을 가졌는지 나름대로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걸 딱히 진지구축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말 그대로 잠시 야영하기 위해 잘 곳과 먹을 것을 준비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척후대를 이끌고 있는 리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척후병을 운용해 적의 습격을 미연에 차단하고자 했기에 딱히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적이 습격이라도 한다면 대번에 뚫리고 말 것이다.

“젠장! 혈기에 휩싸여 너무 깊숙이 진격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르베르니의 귀족 출신인 자신이 치욕스러운 노예의 삶따위는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로마를 불태우고 트라케와 일리리아(발칸반도 서부)까지 유린했던 위대한 아르베르니족의 후예가 로마인의 노예로 전락하다니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켈티우스 족장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오합지졸을 이끌고 로마에 속한 속주 따위나 침략할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한 형제들과 함께 위대했던 옛 선조처럼 로마의 본토를 짓밟고 있었을 것을!”

아르베르니족의 족장 켈티우스는 야망이 넘치는 사내였다. 크고 작은 수많은 갈리아족 모두를 통합할 야욕을 가진 사내였고 그만큼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갈리아의 전부족을 통합해? 소규모 부족은 거론할 것도 없고 제법 이름이 알려진 부족의 숫자만 70여 부족이 넘어간다. 자신이 보기엔 비현실적인 이상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를 신뢰하지도 않았고 깊숙이 진격하지 말라는 명령은 겁쟁이같은 발언이라 코웃음쳤는데 결국 켈티우스 족장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그의 말을 무시하고 로마군이 유인하는대로 깊숙이 진격했다가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던가?

참고로 이 켈티우스는 갈리아인의 영웅이자 카이사르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베르킨게토릭스의 아버지였다. 역사대로라면 BC 75년, 현재 베르킨게토릭스의 나이는 7살 남짓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자 리누스와 마찬가지로 갈리아인으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이곳을 점령하고 배를 만들어 로마 본토를 침공하면 될 일 아닙니까?”

“우리 갈리아인의 배 건조 실력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건조기술을 가진 전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설혹 실력이 좋은 기술자가 배를 만들더라도 낮은 해역에서 로마 함대를 맞닥뜨리면 몰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리누스의 말대로 갈리아인의 함선 건조 기술은 상당한 편이었다. 거친 해역을 두루 다니면서 발전된 기술로 보였다.

다만 갤리선이 아니라 돛을 항해로 이용하는 범선 위주였다.

용골이 로마 함선에 비해 높기에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로 대항한다면 로마 함선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긴 하지만 노를 이용하지 않기에 전투시 빠른 기동력은 기대할 수 없고 돛을 잃으면 기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로마 함대와 자웅을 겨루기 어렵다.

더욱이 함대전은 육상전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전투인데 자신의 마음에도 차지 않는 병력을 데리고 해상전을 치른다면 그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칠리아의 도시 메사나(메시나)와 인접한 본토의 도시 레기움(레조디 칼라브리아)과의 거리는 배로 고작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거리입니다. 정교한 배를 건조할 필요도 없고 저들의 함대를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미점령지인 시칠리아 서부와 북서부 지역을 정리하여 뒤를 방비하고 이후에 동북단에 위치한 메사나를 점령하면 나머지는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없이 좋겠군.”

하지만 자신이 겪은 로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곳 시칠리아는 다르게 로마 본토의 군대는 결코 허망하게 패배할 군단이 아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메사나에서 재정비를 마친 시칠리아 정규군만 해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리누스는 굳이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수하 사이메의 말대로 시칠리아를 수월히 장악하고 본토로 진격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자신이 다시금 검을 쥐고 로마인을 도륙할 일이 있을 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리누스는 의아한 눈으로 진영의 동북쪽 방향을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소란이지?”

사이메 역시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저 멀리서 비명이 들려오는 것을 봐선 전투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저 방향은? 음. 아무래도 연기가 일어난 산기슭을 확인하러 보낸 정찰병들이 당한 모양입니다. 군대가 주둔할 지형은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말입니다.”

서늘한 눈으로 소란이 일어난 곳을 바라보던 리누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로마군이든 아니든 목격자를 남겨둬서는 곤란하다. 전사들을 보내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철저히 제거해라. 이번 임무를 성공해야만 우리 갈리아인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편이 아무래도 낫겠군.”

그러나 사이메가 병력을 이끌고 따로 이동할 필요도 없이 소란의 주인공이 저 멀리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어두운 밤이라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을 봐선 기병 한 명에 불과했다.

놈은 겁대가리를 상실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수많은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말을 달리고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사이메는 미친놈이니 금세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뱉으려다가 이어진 광경에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전사들이 그를 죽이기는커녕 그의 앞을 막아서는 자도 없었다. 그의 반경 안에 들어서는 자는 어김없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 손속이 얼마나 잔인하고 신속한지 그가 지나가는 곳곳마다 피의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예삿놈이 아니로군. 그러나 홀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어지간히도 얕보인 모양로군!”

리누스는 서늘한 눈으로 맹수처럼 날뛰는 사내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놈을 찢어죽여야겠다. 따르라!”

“예!”

“알겠습니다.”

*

테세우스는 오른손에는 극을 들고 왼손에는 장검을 든 채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반란군을 모조리 육편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자 그대로 테세우스의 공격은 저들의 신체를 반드시 절단내버렸기에 그의 극과 검에 베인 반란군은 하나같이 끔찍한 몰골을 면치 못했다.

테세우스는 폭풍처럼 몰아치며 달려드는 반란군을 베고 또 베었다. 갑주를 갖춰 입었어도 갑주째로 베어낼 테세우스이건만 제대로된 갑주도 걸치지 않은 반란군을 베는 일이야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크아아아악!”

“아아악!”

“이 괴물 같은 놈!!”

“죽어라!”

기회를 포착한 켈타이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냅다 테세우스의 등을 향해 투창했다.

후우우웅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테세우스가 허공을 격하며 날아오는 창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등 뒤로 날아오는 창은 매우 절묘한 순간을 포착해 날아왔다.

전방과 좌우에는 살기등등한 적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었기에 테세우스는 일단 양손에 나눠진 극과 검으로 저들을 양단시켜버렸다.

그러는 사이 창은 그의 등뒤까지 바짝 다가왔다. 이미 몸을 돌려 피하기는 늦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테세우스는 그저 몸을 슬쩍 뒤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창의 궤적을 피할 수는 없는 움직임에 불과했다.

창이 테세우스의 등에 닿는 순간, 테세우스를 제외한 주변의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분명 투창이 등에 닿았으면 피륙을 뚫거나 갑주를 뚫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인데 청명한 소음과 함께 빗겨나간 창이 도리어 테세우스 앞에 있던 아군의 머리에 틀어박혔기 때문이었다.

차아아앙!

다마스쿠스 강철로 제련한 카이트 실드가 등에 착용되어 있었기에 테세우스는 그저 각도만 틀어서 투창의 타격점을 빗겨나가게만 만든 것이다. 심지어 빗겨나간 창이 반란군의 머리에 틀어박힌 것까지 그의 계산대로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카이트 실드가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타격당했더라도 다마스쿠스 강철로 만든 갑주를 뚫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테세우스를 아는 자라면 그가 전무후무한 전략병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전략병기에는 약점이 존재했다. 칼로 찔리고 베이면 피가 나고 그 역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약점 말이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이 무구는 그 실낱같은 약점까지 감추게 만들었다. 맨몸으로 전투를 치러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테세우스인데 그런 그를 전장에서 과연 누가 죽일 수 있을까?

2,000명에 달하는 척후대에게 홀로 진격하는 일이 이시아스와 나세스는 무모한 행동이라 생각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테세우스에게만은 예외였던 것이다. 2,000명 남짓한 전사들도 아니 로마의 정예군단이라 해도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 수 없었다.

테세우스는 저들이 두려움과 경악에 질린 채로 멈칫거리거나 말거나 말을 달려 반란군을 베고 또 베어냈다.

“괴... 괴물!”

“어... 어디서 이런 자가!”

“사... 사사.. 상대할 수 없어!”

“차.. 창칼도 들어가지 않는 괴물을 무슨 수로 죽여!”

“으아아아아아!!”

얼마 되지도 않는 동안에 수백명에 달하는 아군이 살해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괴물같은 놈이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두세 명 그 이상까지도 죽어나가니 그렇게 백 번만 휘두르면 2~3백 명은 훨씬 넘는 숫자가 아닌가?

저 괴물같은 놈은 지치지도 않고 진영을 돌아치며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혼백이 나갈 지경이었다.

푸르르륵 푸륵!

지친 기색에 역력한 말의 투레질 소리를 들은 테세우스는 그제야 말을 멈춰세우고 두려워서 감히 다가서지 못하는 반란군을 향해 일갈했다.

“내 앞에 창칼로 나오는 자는 두려워하고 절망해라. 나는 너희의 사신이 될 것이고 너희를 무참히 살육하는 도살자가 될 것이니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그것이 나의 이름이자 너희가 앞으로 엎드려야 할 이름이다.”

맹수가 울부짖는 것처럼 살벌하고 우렁찬 테세우스의 외침에 천 명을 훌쩍 넘는 전사들이 그의 기세에 짓눌려 어떤 말도 뱉지 못했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서라도 서둘러 이 전쟁을 종식시켜버리겠다. 그러니 살 자는 살고 죽을 자는 철저히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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