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60화 (260/298)

# 260

260. 난세의 재림.

260.

이곳 시칠리아에서는 유독 노예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크고 작은 노예 반란이야 항시 있어 왔던 일이지만 공화정 기간 동안 대표적인 노예 반란은 크게 세 번 있었다.

BC135~132년에 일어난 자신을 예언자라 자처하는 에우누스가 이끈 제1차 시칠리아 노예 반란, BC104~100년에 일어난 아테니온과 트리폰이 이끄는 제2차 시칠리아 노예 반란, 그리고 마지막으로 BC73~71년에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이탈리아 본토에서의 노예 반란 말이다.

1,2차 시칠리아 노예 반란을 제외하고도 시칠리아에서는 크고 작은 반란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도 시칠리아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가 진압되었다.

반란이 일어난 지역의 노예들의 성향이 매우 사납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볼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노예는 각지에서 조달되기에 특별히 이곳의 노예들만 진취적이거나 사나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곳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지역은 유독 노예를 학대하는 경향이 짙었다. 바로 그것이 이유였다. 이 지역에서 반란을 일어난 역사가 있으니 선례를 따라 반란을 조장하기 쉬웠을 것이고 압제하는 로마인은 노예 반란을 예방하기 위해 더 큰 억압과 폭력을 가했을 테니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역사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시칠리아로 향했던 이유 역시 이러한 시칠리아의 반로마 정서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였다. 테세우스가 로마와 반목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시칠리아를 전초기지로 삼으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테세우스는 서늘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40여 명의 반란군을 바라봤다. 로마의 압제와 폭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으니 저들도 저들의 대의가 있을 것이다.

저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동기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는 십분 동감한다. 자신이 저들의 입장이라고 해도 반란을 일으켜서 로마를 전복시키고 싶었으리라. 로마인이라면 치가 떨릴 테고 어쩌면 모조리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저들이 당한 일을 고스란히 자신이 겪었더라면 말이다.

그러니 어찌 저들이 행한 잔혹한 일만을 가지고 저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저들이라면 저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무차별적인 살육과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겠지만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내뱉는 말이란 어떤 다짐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행동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렇기에 테세우스는 저들을 판단할 생각 자체를 품지 않았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으니 너는 죽어 마땅하다 이런 식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소리다.

적으로 만났으니 벨 뿐이고 악한 일을 보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으니 죽일 뿐이다. 내 대의가 저들보다 나은 대의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아아!”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짓쳐드는 반란군을 바라봤다. 저들도 사람이다. 저마다의 고충과 애환이 있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삶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까지 다다른 이유가 무엇이든 죽고 죽이는 전장 위에 서 있다. 비극이다. 그리고 그뿐이다.

테세우스는 오른손에 쥔 극에 힘을 가했다.

부우우웅

그와 동시에 방천화극과 할버드를 묘하게 결합해 놓은 테세우스의 극은 표홀하게 사선을 허공에 그려냈다.

이윽고 그 사선 위에는 선명하지만 처연한 붉은 선이 사선을 따라 색을 입히며 처절한 비명을 토해내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악!”

테세우스가 가볍게 내지른 극에 달려들던 반란군들이 상체와 목이 잘려진 채로 비탈길을 따라 이리저리 굴렀다.

그 모습을 목격한 모든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사람을 절단내는 일이 저자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쉬워 보이는 황당한 느낌은 어째서일까? 전장의 혈기에 휩싸여 있던 전사들의 마음에 싸늘한 두려움이 내려 앉았다. 일순간이나마 극도로 솟구친 아드레날린의 효과를 무마시킬 정도였다.

“히이이잉!”

테세우스는 달리던 말의 고삐를 잡아채며 멈칫거리는 두 세 명의 반란군을 또다시 베어냈다. 역시나 테세우스가 휘두르는대로 어떤 저항도 없이 육체가 이리저리 절단났다. 피륙으로 이뤄진 육체가 쇠보다 강할 수 없기에 날카로운 무기로 육체를 베고 쑤시면 잘리고 뚫리고 찢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뿐이라면 딱히 놀랄 것도 없다.

하지만 육체를 완전히 절단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자는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을 아무렇지 않게 절단내버렸다.

“으아아악!”

“크허허허헉!”

키브란은 테세우스의 믿지 못할 위용에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까지 멈춰 세우고 수하들을 도륙하는 테세우스의 행동에 강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이에 키브란은 고함을 지르며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말이 필요없다면 내가 그 목을 쳐주마!”

일반적으로 정지한 말 위에서 보병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지만 저자는 말 위에 앉아 기다랗고 기묘한 무기를 이용해 너무나 수월하게 수하들을 상대했다. 아니 도살했다. 비탈 위 그리고 말 위에서 긴 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수하들은 저자에게 접근조차 못하고 죽임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에 키브란은 노련하게 수하들이 테세우스의 시선을 분산시킨 사이 그의 말을 노린 것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키브란은 테세우스가 몸을 돌려 수하들을 벤 시점을 노려 도끼를 휘둘렀고 이에 그의 도끼는 테세우스의 말의 머리를 찍을 일만 남았다.

푸우우우욱! 콰드드득!

피륙과 뼈가 동시에 박살나는 끔찍한 소음이 너무나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어째서 그 소음이 외부가 아니라 몸 안쪽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인가? 키브란은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가슴에서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다.

“크허허헉!”

테세우스는 오른편의 반란군을 극으로 쓸어낸 다음 왼편 뒤쪽 사선에서 짓쳐드는 전사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극미 부분으로 그의 가슴을 관통시켜버렸다.

“키.. 키브라아아아안!!”

안톤의 절절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키브란은 그 소리가 아스라히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크흑! 이 새끼가!”

키브란은 꼬챙이에 꿰이듯 테세우스의 극에 꿰뚫리고도 전의를 잃지 않고 테세우스의 서늘한 극을 부여잡은 뒤 고통 가운데서도 손에서 놓치 않은 도끼를 테세우스에게 던지려고 들었다.

그러나 그의 투쟁심과 노력은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테세우스는 키브란을 허공에 던지듯 위로 쳐올리며 극미를 뺌과 동시에 극의 월아를 이용해 허공에서 그를 반으로 쪼개 버렸기 때문이었다.

형제와 같은 아니 고난 가운데 친형제보다 더한 정을 나눴던 키브란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자 안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거꾸로 서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키브라아아아안!! 이 개같은 놈이! 감히!”

테세우스는 장검을 든 갈리아인이 크게 분노하며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는 어떤 감정의 요동도 보이지 않았다.

무릇 전장이란 그런 곳이다. 덧없이 죽고 죽임을 당하는 곳 말이다.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이 비정한 곳에서 일회일비한다면 그 시기를 앞당길 뿐이다. 지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갈리아인처럼 말이다.

테세우스는 키브란의 육체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짓쳐드는 갈리아인, 안톤을 사선으로 쪼개버렸다.

촤아아아아악!

안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비탈을 굴러 떨어졌다. 목 아래부터 반으로 나눠졌기에 그 표정이라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지 머리부터 쪼개졌다면 피와 뇌수만이 길 위에 남아 죽음을 장식했을 것이다.

“으으으으으.”

“미.. 미친..”

“사.. 사신이다.”

순식간에 열댓 명에 달하는 아군을 베어버린 테세우스의 위용과 압도적인 기세에 잔뜩 겁에 질린 반란군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더니 이윽고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지난 로마군과의 전투 등를 통해 탁월한 전투 능력을 입증한 키브란과 안톤마저 단칼에 죽임을 당했으니 그들보다도 못한 자신들이 저자의 상대가 될리 만무했다.

“우아아악!”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이렇게는!”

수풀을 헤집을 때 뛰어오르는 메뚜기떼마냥 도망치는 반란군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테세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 몰려올 것이 분명하니 동쪽으로 우회해서 북쪽으로 이동해라.”

대단한 실력이라고 추측하긴 했지만 직접 목격한 테세우스의 무위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나세스는 충격에 휩싸여 어떤 말도 뱉지 못했다.

테세우스의 무위에 압도당하긴 이시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이런 사내가 다 있단 말인가?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무예가 뛰어나다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이 만나봤지만 단언컨대 이런 전투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 그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이시아스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테세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함께······. 이동하지 않으실 건가요?”

테세우스는 질문을 던진 이시아스가 아니라 나세스에게 말을 꺼냈다.

“나세스. 저들이 척후대로 보이니 북쪽으로 향하는 길목엔 별다른 위협이 없을 거다. 곧 뒤따라 갈 테지만 기다리지는 마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나세스는 질문을 던지다가 황당한 생각이 스쳐갔다.

“잔말말고 떠나라! 차!”

다그닥 다그닥!

테세우스는 자신이 가리킨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을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바로 호수, 수많은 반란군이 모여있는 방향이었다. 척후대라고는 하나 그 수가 1000~2000 명은 될 것이다. 대체 어쩔 생각이란 말인가? 정말로 저들을 단신으로 쓸어버리겠다는 허황된 생각이라도 품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무위가 대단하더라도 그건 극도로 미련한 짓이 아닌가?

나세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내저으며 이시아스에게 말했다.

“그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미끼 역할을 자처해준다면 이곳을 벗어나기 수월한 것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으니······.”

이시아스는 이리저리 널부러진 시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산 위로 오르는 길이 하나도 아닐 테니 정찰병은 저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미끼 역할은 이런 상황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건 극도로 위험한 일이예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설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이득도 없는 일에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다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자신에게 호감을 느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건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저 역시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현재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저들에게 잡히지 않는 것이 저 사내를 돕는 일일 겁니다.”

나세스가 뜻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 이시아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다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

테세우스는 수풀을 헤치며 말을 달리며 지난 헨나에서 본 광경을 떠올렸다.

처참하게 살해된 여인과 아이의 시체를 보는 순간 그곳을 배회하며 악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음에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자신 역시 그들의 일에 동의하는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참으로 잔인하구나.’

자신의 운명이 잔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참으로 공교롭게 되었다.

시칠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 노예들은 어쩌면 자기 휘하에서 로마를 공격할 군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일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랬다. 정규군이 아니라 반란군은 피의 복수를 부르짖을 테고 자신이라고 해도 저들을 이끄는 이상 저들의 요청을 묵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묵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언제고 큰 약점으로 돌아올 것이다.

테세우스가 가장 바라는 바는 반란군이든 정규군이든 간에 더는 전장에 서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장 치열하게 전쟁에 대비하던 테세우스가 바라는 것이라 보기엔 참으로 모순적인 바람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들은 자신의 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군주의 탐욕으로 인한 침공도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며 반란을 일으킨 노예이니 저들을 상대하는 상황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잔인한 선택을 운명이 또다시 들고온 것 같았다. 그것이 잔인하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주저하던 마음도 잠깐이었을 뿐, 테세우스는 싸늘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이유야 어쨌든 창칼을 들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나섰으니 창칼에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하리라.’

그것을 끝으로 테세우스는 마음을 정했다.

‘너희들은 이 비정한 전쟁을 서둘러 끝내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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