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59화 (259/298)

# 259

259. 난세의 재림.

259.

어둠 속에서 긴장한 나세스의 얼굴을 바라본 테세우스는 그 순간 공기 중에 미약하게 뒤섞인 인공적인 냄새를 맡았다. 모닥불이 타며 일어난 연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에 테세우스는 차분한지만 냉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느 쪽이지?”

“산 아래 호수가 있는 방향입니다.”

테세우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나세스에게 말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이동할 준비를 마쳐라.”

나세스는 두말하지 않고 테세우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테세우스의 신분이나 명성도 명성이지만 잠깐동안 동행했을 뿐인데도 그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나세스를 감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주변 지형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야간에 숲길을 통과하는 건 비효율적인 것은 둘째치고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기에 적당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어차피 어둠을 피해 잠시 들린 곳에 불과했다.

그런 뒤 테세우스는 나세스가 경계를 서던 장소로 신속하지만 은밀하게 이동했다. 수풀 등지에 남은 흔적만으로도 그가 지나온 경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암살자라면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데 능숙하겠지만 급히 달려온 나세스가 그 흔적을 지웠을 리도 만무했다.

테세우스 등이 휴식을 취하던 곳은 이 주변에서 고지대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다만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끔 움푹 패인 지형을 찾아 그곳에서 휴식처를 마련했었고 나세스는 휴식처보다 높은 지대에서 주변의 상황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바람처럼 이동하여 나세스가 경계를 서던 장소에서 호숫가를 바라봤다. 상당히 많은 횃불들이 호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제 막 호숫가에 도착한 모습이었다.

저런 자들이 처음부터 있었다면 당연히 우회하여 이동했을 테니 이곳에 휴식처를 마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세스는 저들이 호수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소식을 알리려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테세우스는 빠르게 저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저들 가운데 어디서도 말은 물론 가축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저들 무리 가운데 여자나 아이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저토록 많은 무리가 말을 타고 이동했다면 저들이 호숫가에 도착하기 전에 땅의 진동으로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세스에게 경계를 맡기고 이시아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지만 주변 경계를 게을리 할 테세우스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지금은 야밤이다. 밤에는 소리가 낮고 멀리 퍼지기에 저들이 말을 타고 이동했다면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다. 허공을 울리는 소리보다도 땅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더 멀리 퍼지기에 별 의미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쯤되면 저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테세우스가 아니었다. 만약 피난민이라면 가축은 없을 수 있더라도 여인과 아이는 무리에 섞여 있을 텐데 저들은 모두 성인 남자로 보였다. 성인 남자로 이뤄진 무리가 제각각 다른 모습이기는 하나 병장기를 착용하고 있고 은밀하게 이동 중이라면 이것이 군사작전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시칠리아의 정규군이라면 당연히 로마군의 복장을 갖추고 있을 테고 기습작전을 위해 위장했다하더라도 훈련받은 병사들이 저런 식의 대열로 움직일 리가 없다. 또한 반란이 일어나 다급한 상황이니 무리 가운데 기병이 없는 것도 기이한 일이며 현재 정규균이 기습작전과 같은 전략을 따라 움직일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들이 나타난 방향은 남동쪽이었다.

“노예 반란군이군.”

생각했던 대로 노예군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다. 중간에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북상하는 노예군을 정면으로 마주쳤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쨌든 움푹 패인 지형에서 불을 피웠기에 산 아래에 있는 저들이 불빛은 보지 못했더라도 아마 산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확인했을 것이다.

바짝 마른 나무로 불을 피웠기에 다량의 연기를 피워 올리지도 않았고 구름에 달빛조차 가려졌기에 미처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기습을 위해 북상하는 자들이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 보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였다.

저들이 노예로 이뤄진 반란군이라고는 하지만 저들 가운데는 본디 도적이었던 자들도 다수일 것이고 무엇보다 전쟁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되는 경우도 상당수였다. 광산일과 농장일을 비롯한 매우 고된 작업은 건장한 육체를 가진 노예를 선호할 수밖에 없으니 저들 가운데는 갈리아, 켈타이, 트라키아 등 전쟁을 겪은 노예들도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노예 반란군을 어찌 로마의 정예군단에 비하겠냐만은 그렇다고 오합지졸이라 무시할 수 있는 계제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일례로 이미 저들은 시칠리아의 정규군을 수차례 격파했다.

“척후병? 아니 척후대라고 해야 하나?”

호수로 밀려든 반란군의 숫자는 상당한 숫자였지만 도시를 공략할 정도로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피어오른 횃불 등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저들의 숫자는 아마 1000~2000명 정도로 보였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저 정도 병력으로 도시의 성벽을 공략하려 들지는 않을 테니 정탐 및 유격전을 치르기 위한 척후대가 분명해 보였다.

당연히 척후병을 어중이떠중이로 뽑지는 않을 테니 산 위에 피어오른 연기쯤이야 벌써 전에 파악했을 것이다.

빠르게 저들의 면면을 파악한 테세우스는 다시 몸을 돌려 이시아스 등에게 돌아갔다.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세스와 이시아스를 한 번씩 바라본 뒤 이시아스에게 말했다.

“말을 탈 줄은 아시오?”

“물론이예요. 왕국의 전사들처럼 노련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예요.”

동방의 파르티아는 기병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엄밀히 말해서는 궁기병이지만 기병보다 궁기병이 훨씬 더 숙련된 기마술을 요한다.

따라서 파르티아와 접경하고 있는 왕국들 역시 숙련된 기병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고 왕녀쯤되면 기본소양으로 기마술을 알고 있으리라 판단했다.

비단 기마술뿐일까? 딱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체형이나 드러난 근육을 볼 때 상당한 수준의 호신술 역시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숙련된 전사와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실력은 아니겠지만 기습으로 목숨을 빼앗을 수준은 될 것이다.

“이미 길목을 막고 있을 테니 마차는 버리시오.”

“죄송해요. 괜히 저희 때문에······.”

모닥불을 피운 이유는 반란군이 이토록 빨리 북상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주요한 이유는 나세스와 이시아스 두 사람 모두 몇날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들에겐 소량의 식사와 잠깐의 휴식이라도 절실했기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던 것이었다. 사실 테세우스에게 무슨 휴식이 필요하겠는가? 야밤에 이동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다고? 밤새 거의 전속력으로 질주했던 테세우스였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다만 테세우스와 별개로 그가 타고 있는 말 역시 적절한 휴식이 필요했기에 겸사겸사 중간에 휴식을 취한 것이었다.

“어차피 필요했던 일이오.”

테세우스는 담담하게 대답한 뒤 나세스를 바라봤다.

“나세스.”

“예. 하명하십시오.”

“전투가 벌어지면 몸을 피신하는 것에 주력해라. 야밤에 활로 요격할 만한 실력을 갖춘 노련한 궁수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뒤는 내가 봐주겠다.”

일반적으로 노예군에 그런 고급병종이 있으리라 보기는 어렵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시아스 왕녀를 호위하라는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건 나세스에게 너무나 당연한 임무였으니 말이다.

테세우스는 묵묵히 서있는 자신의 말에게 다가가 목을 두들기며 작게 속삭였다.

“얼마 쉬지도 못했을 텐데 다시 달려야겠구나. 부탁한다.”

다마스쿠스 강철은 가볍고 단단하기로 유명한 강철이었다. 테세우스의 모든 무구는 그런 다마스쿠스 강철로 제련한 것들이었으니 일반 강철로 제련한 것보다야 훨씬 가볍겠지만 그래도 그 무게가 얼추 성인 남자의 반절 무게는 될 것이다. 테세우스의 체중 역시 체구로 인해 일반인에 비해 무거운 편이니 말이 느끼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성인 남자 두 명은 거뜬히 태우고 달릴 수 있고 테세우스와 무구를 합친 무게가 성인 남자 두 명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속도나 지구력적인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테세우스는 속도보다도 힘과 지구력이 더 뛰어난 말을 다방면에서 찾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어쨌든 그런 부담을 지고 밤새 거의 전력으로 달렸고 별다른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황이니 테세우스의 말 역시 지쳤을 것이 분명했지만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했기 때문인지 타고 이동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푸르르륵 푸륵.”

말의 투레질 소리가 마치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져 테세우스는 소리없이 미소를 지은 다음 말 위에 올랐다.

“너를 지치게는 할지언정 오늘 네가 창칼에 죽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세스가 준비한 말에 올라 테세우스를 기다리던 이시아스는 바람을 타고 전해진 테세우스의 속삭임을 듣고는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동한다. 나세스 너는 네 임무에만 충실하면 된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

나세스는 담담한 테세우스의 말에 멋드러진 로마풍의 투구를 머리에 착용하는 그를 바라봤다. 하긴 저토록 위용 넘치는 사내마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이 가담한다고 해도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 알겠습니다.”

이시아스는 그런 테세우스를 아무 말없이 바라봤다.

테세우스는 지체하지 않고 먼저 말을 출발시켰다.

“차!”

히이이이잉!

다그닥 다그닥

테세우스의 말이 울음 터트린 후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나세스와 이시아스 역시 말을 달렸다. 전과 달리 수척하고 파리한 안색이 휴식을 통해 그나마 회복된 모습이었다.

*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거야 모르지. 로마군을 우습게 보지는 마라. 저들을 우습게 보다가 이 모양 이꼴로 지내왔던 걸 기억하고 있다면 말이야.”

“흥! 로마인이라면 모조리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은 저들의 피와 살점으로 덮어버릴 것이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명령대로 따라! 우리의 이동경로가 로마군에게 밝혀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 말이야. 산 위에 연기가 피어오른 건 너도 봤을 거 아니냐?”

“그거야 피난민이 피울 수도 있는 일이고. 게다가 지형을 봐라. 전사들이 머무르며 지내기엔 적합한 곳이 아니야.”

“그거야 모르는 것이지. 무엇보다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휘부도 알았으니까 우리들만 보낸 것이겠지. 저들이 피난민이든 군인이든 죽여버리면 깔끔한 문제다. 대장 말대로 만에 하나 저들이 탈출하여 파노로모스 지역에 우리의 행적을 알린다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테니 말이야.”

“쳇!”

갈리아인처럼 보이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 둘이 두런거리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 각기 20명은 넘어보이는 사내들이 눈을 빛내며 은밀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총 42명의 사내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갈리아 전사 출신인 안톤과 키브란은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기병?”

“아니! 기병은 아니다! 로마의 척후병이다! 놈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절대 이곳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말과 동시에 안톤과 키브란을 따르는 사내들이 일사불란하게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전사들의 살벌한 눈과 함께 날카로운 병장기들이 서늘한 날을 자랑하며 이어질 전투를 기다렸다.

이윽고 저들이 무기를 뽑게 만든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로마군이었다.

두두두두두두!

그러나 노예 반란군은 하나같이 기함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체구와 온몸을 갑옷으로 두른 저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느껴지는 강력한 기세에 격전을 치른 경험이 있던 안톤과 키브란마저 간담이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막아! 저놈이 무엇이든 죽여버려!”

성미 급한 키브란이 자신의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달려가자 그를 따르는 노예병들 역시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손가락과 발가락 끝까지 저릿하게 만드는 저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안톤은 키브란을 만류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따라서 안톤 역시 이를 악물고 자신의 장검을 쥐고 달렸다. 어쨌든 신경 쓰이는 놈은 하나다. 놈이 무엇이든 죽이면 될 뿐이다. 그런 후에 뒤따르는 사내는 찢어죽이고 여인은 간살하면 될 일이다.

“놈을 죽여라!”

“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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