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252. 징조.
252. 징조.
크라수스조차 테세우스의 수완에 감탄을 표했으니 테세우스에 향한 부정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당금 로마에서 테세우스의 정치력을 의심하는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담하게 폼페이우스의 명분을 빼앗아 그의 군대를 갈리아로 보낸 자가 향후 3년 간 정무관에 나서지 않겠다?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폼페이우스는 무력시위를 통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했다. 히스파니아의 권한을 폼페이우스로부터 인수한 세네투스는 그 값을 치러야만 했는데 이권과 관련된 부분이다보니 차일피일 미뤄질 수밖에 없었고 폼페이우스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그것을 모를 세네투스가 아니지만 자신들이 지불하지 않은 토지배분을 이유로 주둔하고 있는 폼페이우스에게 무슨 말을 꺼낼 수 있겠는가? 무슨 말이라도 꺼낼라치면 토지배분을 서둘러달라고 정론을 들이밀 것이다.
고로 폼페이우스는 세네투스가 토지배분을 서둘러 집행하든 아니든 잃을 게 없었다. 어떻게 되든 고지 위에 진지를 구축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폼페이우스와 테세우스가 크게 반목하길 바랬다. 서로 물고뜯어 상처입도록. 그러나 일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트리뷴의 권한을 회복한 테세우스가 등장했다. 그는 로마법에 의거해 폼페이우스의 명분을 갈가리 찢어버리며 자신의 안건을 따르지 않을 경우 사법권까지 사용할 것처럼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이는 곧 민회를 비롯한 법정에 폼페이우스를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명분을 잃은 폼페이우스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로마로 군을 진격하거나 테세우스의 말대로 갈리아 근방으로 군을 이동시키는 일밖에 없었다. 전자를 택한다면 그간의 명예를 모두 잃고 반역자로 낙인찍힐 테니 폼페이우스는 테세우스의 말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크라수스 자신이 생각해도 그편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만에 하나 폼페이우스가 로마로 진격했다면······.”
희박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폼페이우스를 막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테세우스는 그것에 대한 대책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길게 갈 것도 없이 일단 폼페이우스를 궁지로 몰은 상황이었으니 아주 간단한 대책이 있었다. 바로 폼페이우스와 주변 사람들을 주시하다가 체포하거나 처단하면 끝날 문제였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폼페이우스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를 바랬다.
“폼페이우스를 그런 상황으로 밀어넣은 것도 테세우스였다. 그토록 치밀한 자가 3년 동안이나 출사하지 않겠다? 이걸 믿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기에?”
크라수스와 세네투스가 트리뷴 권한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테세우스의 정무관 불출마 선언이었다.
“정무관에 진출할 수 있는 권리만 얻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거라면 어째서 파트리키를 비롯한 세네투스와 그토록 반목했단 말······.”
그렇게 의구심을 가진 크라수스의 머릿속에 최근 테세우스의 행보가 스쳐 지나갔다.
“기만.. 설마 기만책인가?”
트리뷴의 권한을 얻자마자 세네투스가 꺼려하는 폼페이우스 문제를 해결했다. 토지배분이 이뤄질 때까지 갈리아 근방에 주둔하는 것이니 세네토르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그러한 여유를 가져다 준 이가 트리뷴 권한을 회복한 테세우스고 그 테세우스는 3년 간이나 출사하지 않겠다고 표명했다. 이미 세네투스가 테세우스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게다가 테세우스, 그가 정무관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권한이 회복되었으니 그는 세네토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출중한 능력과 시민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있는 젊은 세네토르가 세네투스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세네투스는 그를 품을 것인가? 예전처럼 그를 적대할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했······. 군. 이번에도 당했어.”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출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그가 왜 출사하지 않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의 인기란 휘휘 부는 바람의 낙옆에 불과하다. 이리불면 이리가고 저리불면 저리가는.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했다. 1년도 아니고 3년이라고 한다.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3년 동안이나 멀리 한다는데 여유가 있었던들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을까?
“3년, 3년이라고 했나?”
이 시점에서 그를 적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본인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나서지 않겠다는데 무슨 독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는 독사와 같은 자를 괜히 건드릴 이유가 없다.
콘술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나 트리뷴 그나이우스 시키니우스로 하여금 그가 행하는 개혁이나 안건을 반대하고 거부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테세우스, 그는 로마법에 의거, 철저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그런 테세우스를 건드리겠다는 건 벌집을 들쑤시는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하다.
“정말 대단한 자다. 인정하지 않을려야 않을 수가 없군. 전장에 있었다는 자가 어찌 정치판을 구르고 구른 노물들보다도 계산과 판단이 빠르단 말인가?”
크라수스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다가 강렬한 눈빛으로 허공을 주시했다.
내년에는 프라에토르에 출사하고 내후년에는 콘술에 출사할 것이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위업을 남겨 세인들의 뇌리 속에 희미한 잔상조차 남지 못하게 하리라. 그것이면 충분하리라.
*
차갑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테세우스는 역한 냄새에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항구에 내려진 사다리 위로 걸음을 옮겼다.
“테세우스 님.”
그곳에는 일련의 병사들과 함께 호라티우스가 마중나와 있었다.
“호라티우스.”
테세우스와 호라티우스는 그 자리에서 팔을 맞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들었습니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둘이 나란히 프라에토르에 올랐다는 소식 말입니다. 아울러 카이사르 그는 폰티펙스 막시무스 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지금은 BC 75년 2월이었다.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는 자신들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했다. 오직 테세우스만이 어떤 관직에도 오르지 않은 셈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의원 자격을 얻고 원로원에 입성하게 되었으니 작년에 유명세를 떨치던 모두가 로마에 뿌리를 내린 셈이었다.
“어떻게 되긴? 피를 흘리지 않고 살아서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된 것 아닌가?”
“예? 하하. 뭐 그것도 그렇군요.”
“별일은 없나?”
“별일이야 항상 많지요. 이곳 파노로모스만 해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도시니 말입니다.”
파노로모스(팔레르노)는 푸뉘쿠스(페니키아)인이 기원전 8세기에 건립한 도시로 상당히 오래된 곳이었기에 고풍스러운 건물들도 눈에 많이 보였다. 이곳은 시칠리아 섬의 주도로 교역을 위해 수많은 상인들과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호라티우스는 잠시 너스레를 떨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보수를 받고 호위 및 보초를 서는 일이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테세우스 님이야 말로 어찌된 겁니까? 정무관은 왜 출사하지 않으신 겁니까? 이곳 시칠리아에서도 테세우스 님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호응이라면 프라에토르 중 한 자리가 테세우스 님의 것이 되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호라티우스와 1,300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나눠진 채로 시칠리아 이곳 저곳에서 호라티우스가 말한 일들을 감당하며 지내고 있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둘러싸인 산악지대라 로마보다 기후가 높다. 여름철에는 덥고 습하지만 겨울철에는 온화한 기후를 자랑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겨울에는 이곳으로 여행 오는 시민들도 꽤나 많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시칠리아 있다는 에트나 산도 좀 보고 말이야. 정무관에 올랐다면 이런 여유를 부릴 생각은 할 수도 없었겠지.”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히스파니아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이 기회에 두루 살펴볼 생각이야. 아마 히스파니아는 제일 나중이 될 것 같군.”
“두루 말입니까? 흠.”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것은 전쟁을 대비해서라고 알고 있었다. 시칠리아의 중요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으니 말이다.
로마는 이미 너무나 비대해졌기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100만명도 넘는 인구가 오가는 도시였기에 풍요로운 이집트와 시칠리아 등지에서 곡물을 수송받아야만 유지가 가능했다.
로마는 이러한 곡물을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했고 이렇게 나눠준 곡물의 양은 평민이 얻을 수 있는 1년치 식량의 40~50 %에 달했다.
라티푼디움(거대 농장)을 소유한 대지주의 탄생 등으로 중산층이 무너진지 오래였고 보호자 피보호자 관계인 로마 특유의 클리엔테스를 떠올리면 로마의 공화정은 이미 그 뿌리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다시 말해 시칠리아는 로마의 두 번째 보급기지라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보급기지는 당연히 이집트였고 말이다. 테세우스가 자신들을 시칠리아로 보낸 것은 일이 잘못될 경우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이곳을 군사거점으로 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호라티우스는 어떤 관직도 없이 시칠리아를 찾아온 테세우스를 보자 차라리 전쟁이 일어났다면 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견제를 피해 일부러 로마 밖을 떠돌고 있는 것이리라.
다른 자들은 몰라도 호라티우스는 안다. 아니 테세우스를 따라 싸웠던 자들은 안다. 테세우스와 함께라면 그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호라티우스는 들끓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였다.
“대체 왜 피하십니까? 왜 테세우스 님께서 이렇듯 도망치듯 로마를 떠나 타지로 돌아야만 하는 겁니까?”
“후우······.”
테세우스는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만나자마자 그 소리인가? 나디르도 그러더군. 야스미라 왕녀는 나보고 겁쟁이라고까지 했고.”
그 소리에 호라티우스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내심 동감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기에 입을 열지는 않았다. 겁쟁이라는 소리에 동감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테세우스를 도발하려는 야스미라 왕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
침묵을 지키는 호라티우스를 바라본 테세우스가 다시 말했다.
“전장에서 싸우는 적들은 암흑 속에서 태어난 어떤 괴물들이 아니다. 전쟁을 도구로 삼아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피와 생명을 탐한다면 그자는 결국 피를 탐하는, 피 가운데 태어난 괴물이 되어 버릴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미 괴물인지도 모르겠군.”
“테세우스 님!”
“충분하다.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켰고 나는 시민권을 얻었다. 재물도 넘칠만큼 있으니 나와 함께 하던 이들에게 나눠주면 한 평생 살아감에 있어서 부족함은 없겠지. 그거면 된 것 아닌가? 트리뷴으로 지내며 최소한의 기틀은 마련했으니 이제 남은 건 로마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토록 위험한 세상을 자유롭게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진 자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저들은 저들이 원하는 것을 가졌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졌다. 그러니 충분하다.”
테세우스는 트리뷴 임기 중 로마법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평민들이 나아갈 방향과 기회를 제시함으로 더 나은 로마로 변모할 기틀을 마련했다. 그 임기가 1년에 불과했기에 모든 기틀을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행한 일들을 나열하면 결코 1년 동안 행할 수 있는 업적이 아니었다. 물론 테세우스 혼자한 것이 아니라 그를 돕는 사람들과 공무원들과 함께 행한 위업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나디르를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테세우스를 잡고 또 잡았다. 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수없이 노력했다.
하나 테세우스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 이상 나아간다면 독재자, 곧 황제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피의 권좌도 원하는 사람이 취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원치 않는다.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고 겁쟁이라 매도해도 어쩔 수 없다.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거니까. 억지로 떠밀려 수많은 피를 손에 묻히고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는 행동따위야 말로 병신같은 짓이다.’
“저들이 테세우스 님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글쎄. 최소 향후 10년, 그 이상은 저들끼리 견제하고 다투느라 나를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없을 거다.”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의 담담한 말에 시칠리아를 찾아온 테세우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군대를 해산시키기 위함이리라.
“시칠리아로 오신 이유는 결국······.”
호라티우스의 말에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짧게 답한 테세우스가 뭐라고 더 입을 열고자 하는 순간, 파노로모스 항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외쳤다.
“저.. 저게 뭐야?”
“아니! 무슨 일이야 저게?”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갑자기 사람들이 외치며 웅성거리자 테세우스와 호라티우스 역시 그쪽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거의 반파되다시피 한 배가 항구로 들어서고 있었다.